실버시티
 

  2008년 7월초,  실버시티에 가기로 했다. 물론 제니퍼 하고의 약속도 있긴 했지만 그건 십 년 전에 그냥 반 장난으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절만 되면 서늘하게 다가오는 아픔을 느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십년이라는 시간은 그 정도의 흔한 추억 하나 정도는 기억의 뒤쪽 창고에 옮겨 놓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그때 우리가 춤을 추었던 그 호텔의 플로어에는 누가 또 흔들거리면서 추억을 만들고 있을까, 쇼스타코비치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도시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아 인터넷을 사용해야 했다. ‘silver city' 는 되지도 않았다. 스페인어로 ’ciudad de plata' 를 검색하고 나서 찾을 수 있었다.  비행기표는 7월 19일 아침 여덟시로 예약했다. 십년이 사라지고 나서 제니퍼가 다시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확률은 반반. 50퍼센트의 예스와 오십퍼 센트의 노, 따라서 없을 것이다. 언제나 확률게임은 원하는 반대쪽으로 결말이 나니까,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서랍의 맨 밑에 칸을 열어 십년 전의 뉴욕 트리뷴 기사와 그 위에 얌전히 얹혀져있던 반지를 꺼내 보았다. 팔월 중순에 제니퍼는 나에게 편지로 당시 발행됐던 신문 중에 자기가 쓴 기사를 오려서 보내 주었고 나는 그걸 아직까지도 보관하고 있었다. 좀 어색해 보이는 반지와 함께, 그래도 반지의 정 중앙에 자리한 돌은 아직도 여전히 푸르다. 마치 ‘십년이 지났다고?’ 하고 말하는 듯하다. 계산을 은경이가 했기 때문에 난 아직도 그게 어떤 값어치가 나가는 돌인지도 모르고 있다.
 

  New York Tribune
  by : Jeniffer Higgins, Staff Reporter
  Aug, 12. 1998.
 Generally, most people have some knowledge regarding The Aztec, Mayan, Inca, and the Zapotec Ruins, but not many people know about a five hundred year old historical place named Taxco. A Mexican City at the brink of a mountain lit up by lights. It's as beautiful as a small town in Switzerland. At night it's as if you pondered over a treasure of sparkling gold and gems.
In this city, Taxco, originated as a silver mine city, which soon became a ruin. Two hundred years later they discovered a large silver mine. After a while of this discovery, the mine was stripped of its fruit.
In 1930 a professor, rediscovered one of the abandoned silver mines. The rebirth of Taxco was initiated once again by this rediscovery. In the middle of this beautiful city lie the astonishing Cathedral of Santa Prisca. Today the Cathedral is surrounded by mostly silver shops and artisans. An estimated 80% of the surroundings are said to be silver factories.
I asked the locals about The Cathedral of Santa Prisca. It is said that a wealthy French businessman by the name La Borde, whom they nicknamed "The King Of Silver", sculpted this Cathedral in eight years. The Cathedral which was built from 1750 to 1758, is a remarkable piece of art. People are skeptical about the time frame the Cathedral was built because of its detailed sculptures. La Borde donated this fine Cathedral to the city of Taxco. Shortly he became bankrupt, according to the locals.
This Cathedral's solemnarity and gorgeous classisism reminded me of an Imperial Past Royalty. It seems like a form of art instead of just a Cathedral. It beautifies the soul of whomever views its vast inmensity of sculptural art. A poet once said that if you visit Mexico and did not visit Taxco, there was no point of even having been there.
The Spanish Army followed an Aztec myth. They travelled 1700 meters up the mountain. Following this Aztec myth they found the notorious Silver legend and gave it the name Taxco. Although, The Aztecs had named this place Tlasco, meaning "ball court", much before the Silver Legend was discovered. The Spaniards copied their Capital of Toledo by building this city just as they would have built a city in their own Spain. Taxco City can be viewed as another of Spain's grand cities, the only way you can tell the difference is because it's built on a mountain.
I have been here five days, and I have met people from Russia, Germany, and France, but yet have to meet an American. The only person with a Korean-American descent is a gentleman by the name of Lewis from Los Angeles, California who was visiting Taxco with his girfriend. It seems that Lewis and I have so much in common, such as living in a large city in the United States, among other things. He has helped me a great deal by translating for me with the locals. It is surprising and refreshing that a Korean-American could speak Spanish, English as well as Korean. I appreciate all his help, whom without this article would not have turned out so well.
So if you decide that you want to take a trip down to Mexico, make sure you visit the astonishing beauty of Taxco. In my opinion there's no place like Taxco to revive the soul. It's like Lewis stated, his girlfriend's black dress matches the city of Taxco with all its jewels.
Jennifer Higgins
jenniferhiggins@aol.com
 

 

  비행기가 엘에이 엑스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다시 실버시티에서 내가 만남을 기대하는 것이 잃어버리고 살았던 어떤 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 날치기 여자가 훔쳐간 것은 단순히 여권이나 크레디트 카드 같은 것이 아닌 어쩌면 두 사람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번에도 원웨이 티켓을 끊었다. 삶은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것이다. 티케팅 하고 비행기에 올라타 세시간반을 날아서 멕시코시티에 도착하고 전철타고 Tasqueña 에 도착했다. Estrella de Oro 등의 이름이 붙여진 국제공항에서 가까운 버스터미널에는 Taxco행 직선 버스가 없었고 중간 지점인 Cuemavaca의 버스만이 있었다. 그 두 개의 버스터미널 중의 하나가 내가 날치기를 당한 곳 일 텐데 어느 쪽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사관까지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걸로 감안하자면 아마도 Estrella de Oro 가 아니었을까 짐작될 뿐이다. 버스시간 물어보느라고 시간을 많이 소요 했다. 거기에서 Taxco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미화로 8불 정도였다.
  버스는 세 시간을 넘게 달렸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 때 이미 뒤따라오던 어둠은 버스를 앞질러 버렸다. 다음부터는 어둠과 엔진소리뿐이었다. 괴기영화에 자주 조연으로 출연하는 허름한 건물이나 나무들까지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도로와 검은 숲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버스가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검은 하늘과 숲이 검은색으로 섞여 버렸고 차의 불빛 탓인지 별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약 한 시간가량을 계속해서 버스는 올라가기만 했고 왼쪽 어디에선가 희뿌연 달빛이 산과 하늘을 그림자로 구분하기 시작했을 때쯤 아주 멀찍이 조그마한 별들의 집단이 불현듯이 나타나고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검은 산위에 뿌려놓은 보석들, 어딘가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은밀하게 비쳐 올라온 빛들을 받아 반짝이듯이 그것들은 주위의 그 깊은 어둠과는 전연 무관하게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미스터리에 가끔 등장하는 달 뒤편의 도시같이 실버시티는 십 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나에게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불빛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도시 입구의 터미널까지 도착하는데 다시 반시간 가량이 소요되었다. 차에서 내리자 찬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그 바람 속에는 사라져버린 추억의 쓸쓸함과 숲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마을의 안쪽으로 연결되어진 듯이 보이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군데군데 설치되어있어 바닥에 깔려있는 검은 돌들을 비추었다. 간혹 스쳐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서로 시선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그렇게 길을 걷던 나는 현기증 같은걸 느꼈다.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독특한 간판 모양이라던가. 건물의 구조 같은 것들이 기억 속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본 인상 깊었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된 듯이, 내가 은경 이와 돌아다녔던 그 길들 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혼자서 속으로, 밖으로 약간 들리게 나 돌아왔어, 하고 중얼거려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시는 그대로인데 사람만 바뀌어 간다는 걸 그 건물들과 길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진짜 있었나 하고 의심되는 것이 아니고 이곳에서 돌아가 엘에이에서 보낸 십년이 진짜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고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높이가 아니라 색감이, 그리고 하늘을 닮은 그 모습들이, 돈을 아무리 들인다 해도 다른 곳에다가는 재연해 낼 수없는 특이한 높은 산속의 엔틱 속에 나는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간혹 의심의 손길로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과거라는 창문 뒤의 한 풍경 속에, 열에 들떠서, 그래서 흐릿하게 번져 보이는 그 풍경 속에 나는 들어와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나는 성당 있는 곳까지 걸어왔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오게 된 것이다. 폭스바겐 택시가 옆에 멈춰 서서 호텔을 찾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정중히 돌려보냈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자면 택시를 타고 오 분 이상 간적이 없었다. 따라서 걸어서도 웬만한 곳은 다 갈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성당 앞에 앉아 지도를 꺼내 들었다. 가로등이 흐려 잘 볼 수가 없었다. 택시를 잡고 물어보았더니 이 도시에서 식당과 바가 있고 오래된 건물인 호텔은 Mission 과 Bordo 라고 했다. 둘 중에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알파벳순에 의거해 일단 Bordo로 가자고 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 폭스바겐 택시에는 문이 없었다. 네발 달린 오토바이 라고나 할까, 여름 이었지만 높은 산위라 그런지 새벽이 가까워오면서 바람은 더욱 차가와져 갔고 오토바이는 나를 떨게 했다. 달그림자로 보았지만 Hotel Bordo는 굉장한 건축물 이었다. 몇 백 년 전에 어떻게 산속에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프런트에는 아무도 없어 벨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곤히 자다가 깨어난 것이 확실한 남자에게 방 열쇠를 받아들고 계단을 오르는데 그 건물 내부가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열시쯤 잠에서 깨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자면 나는 원형 계단을 타고 오르내렸었다. 이 호텔은 일층에 객실이 있고 이층에 바와 홀이 있는 것은 같았지만 원형계단이 없다. 그리고 당시의 계단은 실내였는데 여기는 하늘을 보며 걸어 올라갈 수 있게 되어있다. 그리고 큰 풀장이 있는데 기억 속에는 풀장이 없다.   
  룸 이 연결되어지는 복도는 옛날에 은을 캐던 터널을 활용해서 그곳으로 통과하도록 설계 되어 있었다. 모든 안내문은 오래된 나무판에 검정색 페인트로 쓴 것들이었다. 만약 아크릴 릭이나 플라스틱을 사용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두꺼운 대리석이 깔린 방, 묵직한 나무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세면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의자들, 등등,,, 그런 것들이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는 하루 종일 실버가게들을 돌아다녔다. 가물거리는 기억만이 딱할 뿐이지 정확히 이곳이다 하는 가게는 없었다. 아마 가게들도 구조가 바뀌었을 것이다. 어두워 졌을 때 다시 택시를 세워서 Hotel Mission 으로 가자고했다. 호텔은 옛날에는 귀족이 살던 성을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철제 담장은 녹이면 탱크 몇 대는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무식하게 크고 바닥의 돌들도 일반 거리와는 달리 크기가 비슷한 것들로만 골라다가 성의껏 깔아놓았고 역시 까만색 들이었다. 들어서서 잠깐 걸어가자 풀장이 나왔고 오십 명 이상 되어 보이는 중년의 백인들이 모여서 파티를 하고 있었다.
  러시아어가 귀에 들려왔다.
  그들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나는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더더욱 아니었다. 기억속의 내 추억은 차라리 Bordo 가 더 가까웠다. 다시 바깥으로 나와 대기 하고 있던 택시들 중의 하나에게 다가가 여기보다 조금 떨어지는 호텔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대여섯 개의 호텔 이름을 대었다.
 [하나만 고른다면?]
  그는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내가 잔 곳도 역시 내 기억속의 그 장소는 아니었다.
  다음날 나는 Cristo Monumento 라고 불리는 도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로 갔다. 걸어 올라오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렸고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Santa Prisca 성당은 도시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어찌나 큰지 근처의 몇 층짜리 건물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지금도 이 도시 어딘가 에서는 아기가 태어나고 어딘가 에서는 한 사람이 죽고 도시는 그대로 있고, 그러면서 이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남자, 간단한 인사가 오고가고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내 느낌을 얘기했더니 그가 말했다.
 [내가 마흔 살인데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야. 그게 열 번 반복되면 이 도시고. 뭐가 이상 해.]
  나는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 내 소개를 하고 십년 전에 와 본적이 있는데 다시 오고 싶어져서 왔다고 대충 둘러대었다. 그도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중고등학교를 겸한 전체 학생이 칠십 명인 학교의 선생이었다.
 [어쨌든 멋있는 도시는 맞는데,,, 일본인들은 가끔 단체로 찾아오긴 하지. 여긴 미국인들도 잘 몰라. 유럽이나 러시아에서도 가끔 오는 적이 있고. 한국인은 여기서는 처음 보는군.]
 [십 년 전에 안 마주쳤으니까 그렇지.]
  그는 영어가 유창했고 미국식 발음이었다.
 [미국 살았었어?]
 [사년. 뉴욕에서. 유학생활 했어.]
 [여기가 고향?]
 [성당 앞에 있는 글 읽어봤어? 팔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돼있지? 팔년 동안 저걸 만들었다, 자동차도 없는 시대에,,,5800피트 높이의 산 위에다가,,,어떻게 생각해?]
 [놀라울 뿐이지.]
 [베네치아에는 저거보다 더 멋있는 건물 많지만 거긴 항구잖아. 이 꼭대기로 저 돌들을 어떻게 가져왔다는 건지,,,어쨌든 비논리의 힘은 대단한 거야. 일단 저런 작품을 만들어 냈으니까. 들어가 봤으면 알겠지만 왼쪽으로 다시 미사 실이 있지? 어마어마하게 큰 조각들 역시 있고. 거기 맨 정면에 있는 마리아는 오른손으로 불룩 튀어나온 배를 안고 있고.]
 [이제 들어가 볼 거야.]
 [임신한 마리아야. 세계에서 유일한거지.]
 [이유는?]
 [일단은 신기해야 되는 거고. 비논리라야 마을 사람들을 열심히 실버 파는데 사용해 먹을 수가 있거든. 화가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마리아를 표현하려고 했었던 거라고 전문가가 말하더군. 당시 유럽에서 있었던 실버전쟁을 떠올리면 돼. 피사로는 알지? 그 외에도 안 알려진 일들이 많은데 이곳도 그중 하나라고 보면 되고, 미국에 이 성당만 평생 연구해온 학자가 있어. 알프레도 라고 멕시코계 미국인 인데 이거 와 보고나서 홀딱 반해가지고 평생 그러고 살지. 더 궁금하면 미국 돌아가서 그 사람이 지은 책 찾아 읽어봐. 제목은 안 가르쳐줘도 알 테고. ]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잠시 검색해봤더니 이걸 만든 프랑스인은 파산했다더군. 스페인군에다가 프랑스인이라,]
 [중남미의 사 백 년 전 기록은 유럽의 몇 천 년 전 기록과 흡사해. 많이 틀리단 말이지. 지금 이 도시의 알짜배기 은광은 다 그 프랑스인 후예들이 가지고 있어.]
 [그렇게 틀린 기록은 아니군,]
 [아니, 얘기 길어지니까 그만할 거고, 대개의 기록보다는 공룡 발자국이 더 사실에 가까워.]
 [사실은 말이야,,,내가 궁금한 건, 모세가 차에다 싫고 다녔던 그 성궤 말이야. 인디애나 존스, 그 성궤가 저 성당 지하실에 숨겨져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온 거거든,]
  그렇게 그를 웃기고자 했는데 그는 웃지 않았다.
 [그거 내가 벌써 다른데다 옮겨놨어.]
  나는 그와 헤어져서 걸어 내려왔다. 몇 분 내려오다 보니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무릎에서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날 정도였고 구두의 바닥이 얇다 보니 발바닥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대략 삼십분 간을 걸어 성당에 도착 할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한 임신한 마리아도 보고 성당 안을 온통 장식한 거대한 조각품들도 둘러보았지만 결론은 역시 미스터리라는 것이었다. 전기드릴이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저걸 어떻게 만들었단 말이야. 그의 말이 맞았다. 비논리의 힘. 다시걷기 시작했다. 고르지 않은 바닥이 발에 무리를 주고 있었다. 걷다가 호텔 사인이 나오면 들어가 보곤 했다. 어두워 질 때까지 그렇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제니퍼는 르포 기사를 쓰면서 최소한 자신이 오일간이나 머물었던 그 호텔 이름쯤은 써 놓았어야 했다. 왜 그러지 않았을까, 예측 가능한 시간이 흐른 후 나를 골탕 먹일 작정이었을까, 십년이 지난 현재의 이 도시에서 내가 정말 추억을 만나고 싶다면 차라리 성당 앞에 놓여 진 그 많은 철제 의자들 중 하나에 앉아서 코로나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곳엔 모든 관광객들을 태운 차들이 멈춰 서서 사람들을 내려놓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삼십분 정도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웠을 뿐이다. 십년 전에 보았던 그 태양이 서쪽 가파른 경사를 따라 들어서있는 건물들 뒤로 몸을 반쯤 감추고서 '안녕 내일봐.' 하고 인사하고 있었다.
  실버시티엔 어느덧 다시 어둠이 내리고 엔틱 건물들은 에디슨의 발명품에 의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걸어 다닐 곳도 없어 보였다. 나는 아무 호텔이나 들어갔다. 역시 이곳도 아니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한 미련은 버려야 한다. 그것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만약 다시 찾는다고 해도 문제는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니퍼는 지금 이곳에 과연 있을까? 아기 엄마가 되었을까? 아니 그러고 보니 나는 그녀가 미혼인지 기혼 이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은경이의 딸은 열네 살이 되었을 것이다. 7월 22일 이었는데 전혀 바람이 없을 듯이 보였던 도시에 불어오는 연한 바람이 기분 좋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미국영화 한편을 틀어놓고 선인장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날 버스터미널에서 날치기 여자가 가져간 게 단순히 크레디트카드나 여권 영주권 따위가 아니고 어떤 다른 것이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을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신이 주관한다는 운명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나는 아마도 돌아가게 되면 다시는 이 도시에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쓸데없이 실버 반지를 몇 개 샀다. 실버는 빨리 색이 변한다는 단점이 있고, 추억도 역시 실버와 같아서 그냥 서랍 속에 보관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누렇게 변해가는 실버는 마치 사람의 일생을 보는 것 같이 슬프고 처량할 뿐이니까, 취기와 함께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끼고 있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 가방 속에 넣었다.
  나는 혹시 그냥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어떤 꿈들은 기니까, 너무 길어서 다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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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여름 한참 무덥던 때였다.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니 메신저에 이런 글이 들어와 있었다.
  - ^^나야 오빠, 좀 중요한 부탁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농담하는 거 아니니까 진지하게 읽어주기 바래.-
 당시 메신저든 통화든 대개 조크 일변도 이었으므로 이렇게 서두를 꺼냈을 것이다.
  -멕시코시티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은광이 있어. 그 마을 사람들은 전부 거기서 나오는 은으로 먹고살거든, 알다시피 나 쥬얼리 도매하잖아. 그래서 알게 된 곳인데 이번에는 직접 가보고 싶어졌어. 중국제하고 느낌이 많이 달라. 확실히 무거운 느낌이란 말야. 궁금하지? 그런데 문제는 내가 스페인어를 못한다는 거야. 같이 가줬으면 해서.-
  내 컴퓨터에는 아직도 이 글이 남아있다. 몇 년 전에 컴퓨터를 바꾼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나는 이 글만은 그대로 퍼서 새 컴퓨터에 옮겨 놓았었다. 이제 지워야할 시간이 많이 지나가 버렸다. 
  나는 바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갔었다.
 -야 이 지집애야 오리지널 불륜여행 이잖아. 니 남편이 알면 뭐라 그러겠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는지 바로 대답이 들어왔다.
 -잘 알면서 왜 그래 따로 산지가 몇 년인데. 남편 아니고 왠수 거든, 그건 신경 쓸 문제가 전혀 아니고. 같이 갈 거야 말거야?-
 -총 맞을까봐 못 가겠다. 어쨌든 법적으로 이혼은 아직 안했다며.-
 -그게 아니잖아, 좌우간,, 도와줄 거야 말거야.
 -흠….-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전화까지 해 봤는데 멕시코시티에 아리랑 이라는 한국 식당 있어. 오늘이 화요일 이니까 주말 금요일쯤에 거기 가 있을게. 그리로 올수 있지?-
 -그 실버를 뭐 어떡하는 건데?-
 -그 말은 승낙 한 걸로 받아들이겠어. 실버에 관한 거는 여기서 하긴 너무 기니까 만나서 하기로 하고.-
 -잠깐만 내 스케줄도 생각해 봐야지.-
 -바쁜 척 하지말구.-
 -그럼, 비행기 표 붙여.-
 -바부야, 엘에이 엑스 멕시칸 에어라인에 가서 이름대면 바로 티켓 줄 거야.-
 -장난 하는 게 아니군.-
 -그럼 얘기 다 된 거로 알고 티켓 예약한 다음 시간 알려 주께^^-
 -납치당하는 느낌이네,,-
 -ㅎㅎㅎ.-
 핸드폰이 울렸다.
 “응, 그래.”
 “아마 거기 시간으로 금요일 오전 여덟시 비행기가 될 거야. 미리 확인해 뒀었거든. 내가 다시 연락 안하면 그 시간에 맞춰 공항에 나가면 돼.”
 “그전에도 전화 열라 더 할 거잖아.”
  그녀는 소리 내서 웃었다.
  내가 뉴욕에 사는 그녀를 쳇 방에서 처음 만난 게 그로부터일 년 전이었고 전화를 주고받기 시작한지는 육 개월 정도 되었었다. 네 살 난 딸을 하나 데리고 혼자 산다는 그녀는 남편과 별거중이라 했고 사진으로만 보았지만 미인에 속했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하도 많은 대화를 주고받은 까닭에 만나도 어색할일은 없을 터였다.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멕시코의 한 은광을 방문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자 사실 많이 가슴이 설레게 되었었다.
 어쨌든 물어 보았다.
 “나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
 “사진 한두 번 본거 아니잖아.”
 “내가 뽀샵질 전문가거든.”
 "응 좀 사기꾼같이 보이기는 해."
 “친구 사진일수도 있고.”
 “설마,,,.”
 대충 이런 식의 대화였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사용한 단어들을 내가 다르게 기억하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는 그런 식이었다.
 그날, 열시에 시작된 전화는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전화는 이상한 물건이다. 남자끼리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용무가 없을 경우 오 분을 넘기지 못하는데 왜 여자하고는 한 시간이 짧게 느껴질까, 전화가 이상한건지 여자가 이상한건지,,,
 실제로 LAX 내 멕시칸 에어라인 사무실에는 내 이름으로 티켓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전 여덟시 비행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티케팅을 하고나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도착시간이 오후 세신데. 늦지 않게 와.”
 “찾아가는데 한 시간, 네 시 되겠네. 그리고 잊지 않았지? 공항에서 택시 타고 코리아타운 가자고 하면 되고 중국말이나 한국말 간판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서 물어보라고.”
 “니나 잘 찾아와라.”
 비행기는 네 시간을 넘게 날아 지상에 착륙했다. 도시가 넓은지 땅에 닿기 수 십분 전부터 지상에는 도시의 흔적들이 보였다. 비행기 착륙 전에는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나는 그때도 내가 걸리버가 된 것 같았었다. 택시는 나를 무슨 마켓 이라고 한국말 간판이 씌어진 건물 앞에다 내려주었는데 그 상호명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은 나더러 그냥 걸어가라고 했다. 다섯 블록 정도 동쪽으로 걸으면 그 식당이 나온다고 했다.
  시간은 텍사스 시간이었다. 엘에이보다 두 시간이 빨랐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 여자는 친절했다.
  소주를 한 병 시키고 두 시간 가량을 앉아있었다. 여덟시 경에 두 남자가 들어오고 잠시 후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한명 나타났다. 멋을 한껏 낸 그녀는 이마에 ‘나 은경이’ 라고 쓰고 있었다. 그녀는 곧장 걸어와 내 앞에 앉았다.
  여기서 부터는 비교적 소상히 기억한다. 아마도 그녀의 등장이 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후에 또 한 번 만나게 된 이별 때문에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두 시간 정도 기다렸지? 정확히 맞추려고 했는데 비행기 시간이 없어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전화가 아닌 얼굴을 보고 내가 한 첫말이었다. 그 말은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짓을 왜 해, 그건 그렇고 사진보다 난데,”
 “넌 사진보다 못생겼어.”
 “맘에 안 들게 말하는 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이나 똑같구나.”
 “느낀 대로 얘기할 뿐이야.”
 큰 키, 갸름한 얼굴 , 머리 뒤로 질끈 묶은 머리, 그리고 하늘색 치마, 처음 본 그녀는 마치 뉴욕에서 휘파람으로 구름을 불러 여기까지 타고 온 선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진이나 대화를 통해 알고 있던 그녀와 모습과 그렇게까지 이질성은 없었다. 세 명의 현지교포들이 우리를 흘깃 거렸다. 타지인 이라는 걸 느끼는 것 같았다. 해장국을 하나씩 먹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팁으로 오불짜리 달러를 놓았다.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한 다음 매표소 위에 크게 걸려있는 안내문을 보았는데 목표지점까지 가는 버스는 없었다. 가장 근접한 도시로 전철로 이동해서 다시 버스터미널을 찾은 다음 목표 지점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할 수 있었다. 미화로 이불 정도씩 했다. 택시 기사들은 내가 목적지를 대자 미화로 백 달러를 요구했고 당연히 나는 버스를 선택한 것이다. 
 “절약 하는 건 좋은데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갈 건데.”
 “그걸 모르니까 재밌는 거지.”
 “여기 제삼국가야.”
 “그리고 나 절약정신 별로야. 니가 비행기 표 샀기 때문에 다른 교통비는 내가 내야 될 거 같고, 그러니 짜게 굴어야지.”
 “잘났어.”
 “그건 거짓말이구 여행은 이렇게 하는 거야.”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 인터넷에서 프린트 해낸 지도는 아주 졸렬했고 목적지 까지를 백마일 정도라는 걸 알게 된 것만도 다행이었다. 어쨌든 곧장 달려간다면 두시간정도 거린데 멕시코의 도시를 벗어난 도시라면 그건 계산이 안 되는 거리였다. 밤 열 시경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버스에 탄 인원은 대략 스무 명 가량이었는데 우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현지인들 이었다. 달리는 차안에서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을씨년스럽게 어두운 거리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은경이의 왼쪽손이 내 오른손 등을 덮었다.
 “뭐야?”
  손을 빼지는 않았다. 단지 돌아봤을 뿐이다.
 “고마워서,,,와 줘서,”
  엘에이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곳은 더웠었다. 버스가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조금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기 전까지 나는 목에 땀을 닦고 있어야했다. 바람을 얼굴에 느끼며 나는 잠이 들었었다. 비행기에서 마신 맥주 두병과 식당에서 마신 소주 한 병이 수면제 작용을 한 모양이었다. 은경이 흔들어 깨울 때 까지 난 그렇게 계속 잤다.
 “어디야?”
 그녀는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지명을 대면서 말했다.
 “아까 얘기한 도시이름 써 있는 간판 봤어. 십 킬로미터 남았다고 돼있던데.”
 “내가 얼마나 잔거지?”
 “한 시간 반 정도.”
  그녀가 입을 삐죽거렸다.
 “깜박 졸은 거 같은데.”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가야지. 그게 뭐야."
 “그거 무서워서 잔건데.”
 “근데 진짜,,,”
  버스는 근 한 시간가량을 계속해서 고지대로 올라가고만 있었는데 어느 순간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달리는 버스의 밑으로 불빛이 뒤덮인 산이 나타났는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별들이 지상의 보석들과 섞여 산 하나를 덮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게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보이게 된 이유는 주위가 암흑이고 그 산 하나에만 불빛이 있어서 일수도 있고 지대가 높다보니 공기가 맑아서 그렇게 보일수도 있는 것일 테지만 아무튼 눈이 번쩍 떠지는 느낌이었다.
 얼마 후에 버스는 그 도시로 들어섰고 몇 분 정도 더 가다가 멈추어 섰다. 그곳이 버스 터미널 이었다. 당시의 기억으로 도시에는 그 시간에 길가에 노점상들이 있었고 우리는 타코를 사서 맛있게 먹었었다. 데킬라도 한잔 얻어 마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공기가 맑아 적응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대충 요기를 하고나서 택시를 잡았는데 폭스바겐 이었다. 운전사는 사백년 된 호텔 건물이 있는데 그리로 가겠냐고 물었고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도로가 바뀌었다. 달빛을 받아 검게 빛나는 수많은 돌들이 깔려있는 길이 나타났다. 유럽 도시들의 뒷골목과 같은 형태였다. 차는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길이 너무 좁고 가팔라서 내가 꼭 소인국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길이 너무 예쁘다.”
 라고 은경이가 말했던 게 기억난다.
 “처음 봐?”
 “처음은 아니지만,,,”
 "비 올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막신 만들어 신었잖아. 유럽인들은 힘을 합쳐서 돌을 깔았고. 하나는 박물관에 가도 보기 힘들고 다른 하나는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또 시작이다.”
 “여기는 유럽이라고. 아메리카 속 유럽.”
 “마차에 뺏은 물건들 싫고 가려면 길이 좋아야겠지.”
 그가 우리를 내려준 건물은 크고 아름다웠다. 고딕풍의 이층 건물이었는데 순전히 돌로만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당시의 나는 이런 건축 양식은 일층과 이층을 나누는 지붕내지는 바닥을 어떻게 처리했을까가 궁금했었다. 하기야 못 안사용하고 만든 배로 아메리카 땅까지 항해한 인간들인데 뭘 못하겠어,
 처음 들어선 메인 홀은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바닥에 큰 새의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앳돼 보이는 젊은 여자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를 맞았다. 푸른 눈에 옅은 갈색머리를 가진 그녀는 더듬거리며 영어로 말을 하다가 내가 스페인어로 대답하면서 윙크를 하자 환하게 미소 지었었다.
 그 소녀도 지금은 아줌마가 되었을까?
 방은 하나를 예약했다. 침대는 두개였다. 하루 숙박비가 오십 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엘에이 물가와 대조해보면 비싼 호텔이었다.
 짐을 방에 내려놓고 은경이는 샤워를 하겠다고 해서 나 혼자 이층에 있는 바로 갔다. 춤을 출수 있는 홀이 있고 양옆으로 바가 두개, 바텐더가 두 명, 미국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중 오른쪽의 바에 앉아있고 역시 미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두 명이 테이블에 마주 앉아있고 나머지는 동네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는데 메스티소보다는 이태리나 스페인계에 가까워 보였다. 두 미국 여성들 옆을 지나치는데 그 둘 중 하나가 나를 보고 밝게 웃었기 때문에 통역 필요하면 부르라고 농담 삼아 던지고는 바에 가서 앉았다. 바텐더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사용했다.
 “하우 캔 아이 헬프 유 쎄뇰,”
  이런 식이었다.
  나는 데킬라 병을 손으로 가리켰다.
  스페인어로 빠르게 말했다.
 [데킬라 작은 병, 잔 말고 병으로, 그리고,, 리몬, 데킬라는 가장 오래된 걸로, 리몬은 가장 새 거로.] 
 그가 웃더니 주문 한 것을 금방 가지고 왔다.
 안주로 먹으라는 건지 옥수수로 만들어진 칩 한 접시와 살사도 내왔다.
 [스페인어 잘 하네요 일본인 한국인?]
 [아니 멕시칸]
 그가 또 웃었다.
 은경이 많이 파진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을 때는 막 캉캉 춤이 시작되고 있을 때였다. 실버 사러 온다면서 가방에 저런 드레스를 넣어 가지고 왔다는 거야? 나는 놀랐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걸까, 속옷조차 가지고 오지 않은 내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춤을 추는 여자는 짙은 그린색의 레이스가 온통 감싸고 있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의 하단부분이 무척 넓었다. 남자는 그냥 짙은 밤색 양복차림 이었다.
  경쾌한 음악, 게다가 야한 드레스 차림의 은경이 등장하자 실내 온도가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예쁜 어항 속에서 예쁜 고기들이 놀고 있는데 그 안에 근사한 산호초가 하나 더 첨가된, 뭐 그런 모습이라고나 할까,
  은경이의 드레스는 가슴이 반 이상 노출되어 있었다.
  내가 장난삼아 윙크를 보냈던 여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취한 눈의 내게 그녀가 취해 보이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취한 그녀가 어느 정도는 말짱한 나에게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모를 상황 이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손을 내밀면서 춤을 추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었다. 전문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는데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여성은 은경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데킬라 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원 샷을 했다.
 은경이는 그때 갑자기 나타나게 된 미국여성이 설마 자기 애인을 뺏어 가기라도 하겠냐는 듯 한 표정으로 그냥 앉아 있었다. 어항속의 고기를 쳐다보듯이, 어쨌거나 당시 그녀는 제일 우아했으니까, 그녀는 은경이의 귀에다가 한마디 했었다.
 [춤 좀 추고 싶은데 상대가 없잖아. 당신 애인 좀 빌리자고.] 이었었다.
 은경이의 귀에다가 대고 하는 말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내게 까지 다 들렸다.
 [조금 있다가 아무도 없을 때. 춤을 추는 거야. 그럼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거든.]
 말도 안 되는 춤을 추다가 제니퍼의 귀에다가 그런 소리를 했었다. 나는 많이 취했었던 거 같다.
 기억은 멕시코에서 쓰는 영어는 엘에이에서 보다는 더 감미로웠다 정도로 끝나지만 당시의 그 분위기는 알코올이 만들어내는 부풀려진 감성보다는 조금 더 아름다웠던 게 사실이다.
  엔틱에 둘러 쌓여있어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엔틱에 미쳐서 몇 년간 살은 적이 있었으니까, 또한 오랜만에 해보는 여행에다가 은경이라는 존재, 엘에이에서 밤마다 내 조용한 방에 앉아서 듣던 목소리의 그녀와 함께 있다는 사실, 아마도 그러한 것들이리라, 당시를 곰곰 되짚어 생각해보면 그 후에 나는 좀 더 너그러웠어야 했다. 공항 터미널에서 울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으면서 왜 한 번도 그녀를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지를 못했을까,
  다른 남미풍의 음악은 잘 몰랐기 때문에 그냥 아름다웠다 정도로 기억하고 있지만 '라 쿰파르시타' 와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곡은 알고 있었던 곡이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왈츠곡이 나왔을 때 은경이는 플로어에 나와서 상대 남자가 없다보니, 아니 없는게 아니라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제니퍼와 춤을 추었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제법 스텝을 잘 맞추어서 실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녀는 까만 드레스 자락으로 바닥을 다 쓸고 다니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한 시간 이상 계속 되었을 수도 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취기를 덮은 담요를 걷어냈을 때도 머릿속에는 그 음이 남아 있었으니까,
  기억에는 그녀의 가슴이 너무 노출되어 있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것도 포함된다. 데킬라 한 병이 다 비워졌을 때도 기억난다. 빈병을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난 빈 술병을 싫어하는데 그때도 그 노란 술병이 눈에 거슬렸었다. 그래서 그 술병을 가리키며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 어항 속 같은 장면들이다. 플로어에서 잠깐 춤을 추었었다. 물론 흐느적거리는 정도 이었겠지, 누군가와 같이였었는데 그게 누구였는지도 역시 기억이 없다.  제니퍼 이었던 것 같다. 은경이가 다가와 우리 둘을 떼어 놓았던 기억이 있고 다시 그녀가 제니퍼랑 깔깔 거리면서 떠들던 장면도 머릿속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옆 침대가 비어 있었고 샤워 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오줌 마려운걸 참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잠시 후 은경이가 잠옷 차림으로 나타나더니 자신의 침대위에 엎어져 나를 째려보았다.
 뭐 어쩌라고, 나도 그녀를 째려보았다. 아마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있었겠지.
 “그렇게 노니까 재밌어?”
  하고 그녀는 말했다.
 “아니. 응 맞아 재밌어. 왜 내가 뭐 실수 한 거 있어? 그나저나 이리로 건너와.”
 “뭐 하려고?”
 “만지면서 더 자려고. 졸려.”
 “기가 막혀서,,”
 “뭐가?”
 “어젯밤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 안나?”
 “안나.”
 “어쩌면 다행이네. 패줄려다가 참았는데.”
  나는 비척이며 일어났다.
 “화장실이 날 급하게 부르거든,,,?"
 블랙커피를 두 잔 내리 마셨었다. 향기 진한 여름날의 아침이 목을 타고 내려갔었고,,,. 커피향속의 두 남녀는 다가서기에는 조금 힘든 벽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나도 샤워 좀 하자. 아구 골 아파.”
“그렇잖아도 홀라당 벗겨서 욕조에다가 처넣고 싶었거든.”
 “응,"
  물줄기를 타고 지난밤의 기억이 흘러 내려갔다. 말도 안 되게 놀긴 했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꽤 즐거워했었다. 은경이가 문 열고 들어와 등에 비누칠해줄까? 라고 물어봐주기를 기대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고, 대신 샤워를 끝내고 면도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샤워 다 끝났어?”
“응.”
“들어가도 돼?”
“응.” 나는 몸에 타월을 감고 있었다.
 그녀는 들어오더니 타월로 내 등에 묻어있는 물기를 닦아주었다.
 "제니퍼가 그러더라. 오빠 참 좋은 사람 같다고."
 타월이 엔틱이 아닌 건 좀 다행이긴 했는데 은경이가 내 얼굴을 타월로 덮어 버렸을 때 난 이런 말을 했다.
 "근데 말이야. 그 술 선인장으로 만든 거래. 우리 그거 미국 가져가서 비지니스 하자. 그런 거 좋아하잖아."
 “오빠 어젯밤에 나한테 뭐라 그랬는지 알아?”
 “몰라.”
 “방에 돌아왔는데. 날 꽉 끌어안더니 우리 같이 살까, 하고 묻더라고.”
 “그래서.?”
 “주먹으로 한 대 쳤지.”
 나는 신경 써서 면도를 했다. 오늘도 더울 것이고 가져온 옷 중에서 남미 풍으로 꽃들이 디자인된 밝은 하늘색 셔츠를 입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너무 튀어보였고 같이 다니려면 어느 정도는 비슷해야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다음은?”
 “침대에 눕혀놓고 저 술주정뱅이한테 무슨 대답을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근데.”
 “잠들었더라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되는 건가?”
 “나도 몰라.”
 키스를 해주었던 거 같기도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때 주고받았던 대화들은 대충 그런 것들이었다. 머물렀던 호텔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난다는 것은 그녀가 현재 곁에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추억은 사람의 행복과는 반대쪽에 남아 어슬렁거리는 걸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마어마하게 컸던 성당 주변은 전부 실버가게들 이었다. 멀리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실버시티 다운타운에 있었다.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사장인지 매니저 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상대하고 있는 여자는 영어를 썩 잘 했으므로 통역이 필요 없었고 실버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끝까지 같이 있어줄 필요를 못 느껴서 슬며시 그곳을 빠져나왔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길바닥의 검은 돌들은 낚싯줄에 걸려 튀어 오르는 도라도의 등처럼 번쩍 거렸다. 나는 그 비늘들을 밟으면서 천천히 걸었다. 내가 '먹고 살기 바빠서' 라는 이유로 잊고 살아왔던 낭만과 아름다움과 위험한 유혹 같은 것이 그곳에는 있었다. 이런 여행을 하게 해준 은경이 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데 꼬마들 몇 명이 신기하게 보였는지 나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면 사실 인종이 누군지 구분하기 힘든 나였는데 꼬마들의 눈에는 내가 자신이 티브이에서 말고 처음으로 본 동양인 이라는 걸아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영혼이 하얗다 못해 파랗다는 건 나도 인정 하겠는데 어쨌든 그 꼬마들은 아주 맘에 안 들었었다.
  나는 적당히 걷는 척 하다가 갑자기 휙 돌아서서 괴물 흉내를 냈다. 꼬마들이 깔깔거리며 좋아했고 그 수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반시간 가량을 걸었던 것 같다. 결정을 내려야 될 시간이었다.
  이럴 때 주머니에 캔디 봉지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마켓으로 보이는 조그만 가게가 하나 나타났다. 들어가기 전에 꼬마들 숫자를 세어보니까 열다섯 명가량이나 되어보였다. 나는 제일 그럴듯해 보이는 과자로 스무 개를 사서 꼬마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더 이상 따라오지 마! 바쁘단 말이야! 하고 말했는데 꼬마들은 와르르 웃기만 했다.
  그 나라는 내 카리스마가 통하지 않는 나라였다. 나는 도망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을 마켓 주인한테 얘기했더니 웃으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마켓 뒤로 문이 하나 있었고 그리로 나갔더니 가파른 절벽이 나타나고 구름다리 같은 게 저쪽의 언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가파른 산위에 세워지다보니 이런 구조물들이 필요하게 된 모양이었다.
 [저리로 건너가면 카페가 있어요. 거기서 시원한 맥주나 마셔요.]
  꼬마들에게서 탈출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은경이가 있는 곳으로는 어떻게 돌아가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지고 말았다. 우린 서로의 연락처가 없었다. 다시 호텔에서 만나는 방법밖에는, 그 다리를 건너가 어느 카페의 뒤쪽 문에 닿았는데 건물 생김새가 심상치 않았다. 호텔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오래되어 보였고 전문가가 만든 듯이 보였었다. 뒷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들어온 나를 보고 서빙 하는 남자가 놀란 것보다 나는 더 놀랐다. 유일하게 두 명의 손님이 앉아 있었는데 그 둘이 바로 어제 밤의 그 미국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네 진짜 좁네]
 라고 말하면서 나는 그들의 테이블에 합석했다. 제니퍼 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어젯밤의 내 댄스 파트너는 반색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까만 드레스는 어디가구 혼자 다녀요?]
 [은세계를 헤매고 있죠.]
  먼저 물어온 여자의 이름은 캐티 라고 했다. 제니퍼가 말했다.
 [음,, 이 사람 얘기가 그녀는 와이프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그 얘긴 또 언제 들었는데?]
 [춤은 안 추고 계속 떠들더라고.]
 캐티가 웃었다. 그녀는 제니퍼 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어쨌든 그게 무슨 소리래?]
 캐티 질문에 제니퍼가 답했다.
 [그런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뭐 그냥 소중하데. 술주정 몰라?]
 [술 취해서 하는 말 다 헛소리지 뭐.]
 나는 그냥 웃었다.
 [낮이지만 맥주나 마셔야겠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당신같이 헷갈리나요? ]
 캐티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한국사람 친구 없었어요?]
 [있었죠. 칼리지 다닐 때.]
 [헷갈리던가요?]
 [아뇨. 정서적으로 똑같던데요.]
 [그럼 됐지. 뭐가 더 궁금해요. 나도 똑같거든요.]
 [당신은 좀 이상하잖아요.]
 [전혀 안 이상해요. 살다보면 그런 일이 가끔 생기는 거뿐이지,,. 걔 이름이 eun kyung 인데 채팅방에서 알게 됐고요. 실제로 만난 건 여기가 처음이거든요. 나도 헷갈린다고요.]
[사랑에 빠진 남자로 보여요.]
 라고 캐티는 대답했었다.
 나는 말을 돌려야 했다.
 [그나저나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여긴 왜 왔죠?]
 제니퍼가 대답했다.
 [트리뷴 기자에요. 여기 취재해 가야 돼요. 당신 같은 사람이 나타날지 몰라서 원고 다 끝냈었는데 다시 쓰기로 했어요.]
 [내 얘기 쓸려고?]
 [엑스트라로 등장하겠죠.]
 나는 뭔가 술을 마셨다. 이 동네에서만 나는 거라고 했다. 제니퍼도 따라서 마셨다. 두 잔째를 비웠을 때 나는 제니퍼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아침에,,,사실 알다시피 엄청 술 마셨었잖아. 샤워하고,,있는데 들어와서 등에 물 닦아 주더라고요]
[안고 싶었겠네요.]
 [응. 그런데 그렇게 안했어요.]
 [왜요?]
 [여자 살이 무서워. 기억에 너무 오래 남아요.]
 캐티가 꼭 엄마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둘이 같이 살아요. 잘 어울려 보이던데.]
제니퍼가 끼어들었다.
 [어젯밤에 한 약속 기억나요?]
 [무슨 약속이요?]
 [내 이럴 줄 알았어.]
 [무슨 약속 했었는데요.]
 [두 가지를 했는데요. 하나만 말할게요.]
 [이 도시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하는데 미국에서 수집한 자료가 너무 부족해서 현지인과 대화를 해보고 싶은데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했더니 당신이 통역해주겠다고 했잖아요.]
 [내가 그랬어요?]
 캐티는 웃고만 있었다. 즉석에서 카페 여주인이 불려왔고 한 시간 가량을 나는 통역을 해야 했다. 제니퍼는 이 도시에 관한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고 오십대로 보이는 그 여주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선에서 모든 걸 얘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여자와 나는 사이좋게 앉아서 캐티의 카메라에 담겨졌다. 캐티는 두통의 필름을 카메라에서 꺼내 주머니에 넣더니 다시 새로운 필름을 카메라에 집어넣고 밖으로 나가 우리가 대화를 다 끝낼 때 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되자 나는 서둘러 일어나야 했다. 그날 계획은 여러 군데의 도매상을 둘러보자는 것이었다. 난 내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다른 약속 하나는 뭐였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물어보았다.
 [모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당신 애인,,검은 드레스. 같은 여자가 봐도 매력적이에요. 다른 생각하지 마세요.]
[나 가야할거 같은데요. 밤에 호텔에서 캉캉 춤 한번 배워볼까요?]
 그렇게 그녀들과 일단 헤어졌다. 은경이가 있는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도시는 훨씬 작았기 때문이다. 아까의 그 도매상으로 찾아갔더니 은경이가 바로 튀어 나왔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렸어.”
 하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응 미안. 공룡을 한 마리 만났는데 암놈이더라고. 그래서 여태껏 데이트 하다 온 거야.”
 “오빠는 지금 여기 여자 친구 있는데 다른 사람이랑 데이트 하면 안 되잖아.”
 "그런 거 무슨 법 사전 같은데 써 있나?"
  그녀는 내 팔짱을 꼈다.
 “가방은?”
 “호텔로 배달해 주기로 했어.”
 두 번째 가게도 온통 실버뿐이었다. 반지와 목걸이가 주를 이뤘지만 그 외 장식품들도 많았다. 천천히 구경하고 있는데 은경이 다가왔다.
 “이거 한번 끼워봐.”
 그녀는 반지를 하나 내밀었다. 푸른색 구슬이 하나 박혀있는 반지였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고가품으로 보였다. 그녀는 왼손을 들어 보여주었는데 그녀의 손가락에도 똑같이 생긴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커플링 이라는 거야.”
 손가락에 끼워보았다. 딱 맞았다.
 “그럼 우리가 커플이라는 거야?”
 “어쨌거나 이런 게 잘 팔려.”
 "아니 그건 알겠는데. 우리가 커플이라는 거냐고."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게 필요한 거겠지, 다들,"
 그녀는 그곳에서 구입한 물건들은 항공편으로 부치기로 했고 다음 가게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벌써 여섯시가 다 되어있었다. 그곳에서만 세 시간을 보내버린 것이다. 반지 낀 손에 느낌이 좋았다. 길거리에서는 다시 꼬마들이 쫒아오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들 중의 대부분이 티브이가 아닌 현실에서 동양인을 처음 보는 것일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특히나 은경이는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그녀는 노점상만 나오면 발을 멈추고 가격을 물어보곤 했는데 사지는 않았기 때문에 상인들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사지 않을 거면 물어보지 마.”
 “가격 비교를 해봐야 될 거 아냐.”
 “불쌍해 보이는 사람들인데. 하나라도 팔수 있을까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겠어.”
 “그런 거 다 따지다가는 장사 못해.”
 “그러냐,,,”
 택시를 타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실버시티에 다시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레스토랑에는 눈에 익은 사람들이 몇 앉아있었는데 우리는 하루 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는지 환대를 받았다. 특히나 어젯밤의 그 바텐더는 마치 바를 뛰어넘어 올 것처럼 우리를 환대했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제 마신 술만 두병을 시켰다.
 “내일은 일요일 이니까 도매상들이 다 문을 닫을 테고,,,”
 “언제 떠날 거야?”
  내 비행기 표는 원 웨이 티켓 이었었다.
 “여기서 그냥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배시시 웃었었다.
 “그럼 그냥 살던가.”
 “수요일에 코트에 출두해야 돼,,, 딸아이 양육권에 관한 문젠데. 안 나가면 자동으로 지게 되어 있는 거지. "
 “화요일에는 무조건 출발해야 되는 거네,”
 “응,,,그리고,,,”
 “뭐?”
 “이주일 정도는 시간 낼 수 있다 그랬지? 우리 집에 같이 가자. 며칠 있다가가.”
 “원 웨이 티켓 이길래 그 소리 나올 줄 알고 있었어.”
 “헤헤.”
 스테이크를 하나만 시켜서 나눠먹고 또 그 선인장으로 만들었다는 술을 한 병씩 더 마신다음 우리는 이층 바로 올라갔다. 바에는 어제보다 사람이 더 많았다. 제니퍼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윙크를 보냈다. 나도 윙크로 대답했다. 데킬라를 시키자 은경이 나를 말렸다.
 “또 술 취해서 퍼 자려고 그러지? 난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단 말이야.”
 “왜?”
 “어색한 잠자리 경험 없어? 피곤하기는 한데 눈은 계속 말똥말똥,,,”
 “그나마 침대가 두 개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 같은 침대에 누웠으면 더할 뻔 했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거야.”
 “알면서 기절을 해?”
 “아니까 기절했지. 어쨌든 오늘은 좀 나을 거야.”
 나는 기어코 데킬라를 시켰다.
 “아주 술고래 구나.“
 “아니 술이 나한테 이용당하는 거뿐이야.”
 "말 빙빙 돌리면서 하는 게 취미인거 같아."
 "최선의 말투가 아니라는 거는 나도 인정하지. 좌우간 필요한건 서로간의 이해심인데, 말하자면 술과 나 사이, 나와 너 사이, 등등, 말로 안 되지.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 그럴 때는 빙빙 돌리면,,,"
 기억은 또 끊어졌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깨어난 은경이의 첫말은 이랬었다.
“자알 잤다.~ 데킬라 그거 불면에는 최고네.”
  다음날 우리는 무지하게 큰 성당을 찾아가 미사를 드렸다. 나로서는 평생 세번째 드리는 미사였지만 그녀는 자주 찾는다고 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녀는 두 손을 마주잡고서 성모 마리아에게 어떤 바람을 말했었을까, 거기에 나는 포함되어 있었을까, 거기서 주는 빵과 닭고기 스프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곳 사람들은 친절했다.
  밤에 난 다시 바에 올라가지 않았다. 대신 사들고 들어온 데킬라 병을 따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들고 온 책들 중 하나를 꺼내들고 티브이를 틀어 조금 철지난 미국영화 한편을 틀어놓았다. 그러고 있는데 다른 쪽 침대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은경이가 말을 걸어왔다. 그럴 줄 알았다.
 "제니퍼 생각하고 있지?"
 "걔는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거고."
"그럼 지금 머릿속에 뭐가 있는데?"
 "우리 엔틱 속에 있잖아. 지나간 날들에 대한 생각. 스페인군들이 어떻게 이 높은 데까지 올수 있었을까, 좀 신기하지 않니?"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이유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거거든."
 "근데?"
 "내 생각엔 오빠는 지금 거짓말 하고 있는 거 같아."
 "응,,, 아닌 거 같은데. 니 생각 하고 있었는데."
 "내 생각이라고 어떤 거?"
 "발톱에 매니큐어 칠했을까 안했을까,,,"
 "오빠 진짜 불쌍하다. 감정 표현 하면 안 돼?"
 "나 감정 다치는 거 싫어. 칼 맞은 건 병원 가서 꿰매면 되지만 감정 상하는 건 수술도 안 되거든,"
 “마지막에 헤어진 애인 얘기해봐.”
 “티브이나 봐라.”
 “왜 헤어졌어?”
 “티브이 안보고 말 걸어서.”
 턱에 괴고 있던 팔을 풀고 그녀는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래도 고마워. 오늘은 바에 안가고 여기 있어줘서. 난 알아 오빠 내 생각해서 그러는 거."
 "이래서 내가 계집애들하고 말하는 거 싫다니까."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아니면 영원인지 모르겠다. 나는 자꾸 취해갔었고 생소한 공간이 내가 항상 진저리를 치는 내 침실처럼 꼬불거렸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중요한 생각은 내일하자, 이었겠지. 노점상들을 지키고 있던 검게 그을은 멕시코 인들의 모습을 떠올려본 것도 같다. 그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없었다면 그 사람들 얼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을까, 만남은 쉽고 헤어짐은 어렵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건 사실이다. 화초 하나도 그렇고 애완동물도 그런데 사람끼리의 관계는 어떠한가, 게다가 남녀관계라니, 주고받는 대화도 화면속의 대사도 어지러웠지만 한마디는 기억난다.
 화면속의 브래드 피트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럼 나한테 남은 건 뭐지?]
 상대 여배우가 제니퍼 애니스톤 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는 몇 초간 정지되었다. 
 “은경아.”
 “응.”
 “그냥 불러봤어.”
 “잘났어.”
 “하고 싶은 말 중의 아주 일부밖에 할 수 없다는 건 불행한 거 같아.”
 "오빠가 이상한거야. 그냥 할 말 하면 되는 거거든.,,"
 "뉴욕 돌아가서,,아니,"
  말을 좀 아껴야했을 것이다.
 "여기서 산 실버 생각대로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실버는 핑계고 미래에 관한 불편한 얘기를 하고 싶었겠지,
 "아니 잘 온 거 맞아. 그리고 딴 얘기하자. 실버는 이제 그만,"
  하고 그녀는 대답했었다.
 “지금 내 침대하고 니 침대 사이가 백마일이, 아니 엘에이와 실버시티만큼 멀게 느껴지는 게 무슨 이유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날 가능성 말이야. 한마디로 철이 덜 든거지.”
  직설화법이 필요하면 술을 마셔라, 는 적당히 맞는 말이다.
 “결혼의 조건이 포기라며, 더 이상의 가능성은 없다는 확신 같은 거.”
  그녀는 자기 침대에서 내 침대로 바로 건너 뛰어왔다.
 “가깝잖아?”
  술 취한 상태로 베개 가지고 치고받고 싸움 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러고 놀았었고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깨어보니 새벽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달빛이 비추었다. 기억이 안 나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하얀색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하얀 어깨가 슬퍼 보였다. 아름다워 보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왜 슬퍼보여야 할까, 육체는 슬프다. 라고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기억이 났었다. 사랑해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다는 심정, 하지만 그런 것들이 부질없이 끝나버리는걸 한두 번 경험해본 것도 아닌데, 어쩌라고,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대고 알 수 없는 어떤 감정 때문에 잠시 눈물을 떨어뜨렸던 것도 같다.
  전체적인 기억은 희미하지만 그녀와의 그날 밤의 모습은 대충 그런 것들이었다.
  다음날 새벽 이었는데 커피나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층으로 올라갔다가 홀에 혼자 앉아있는 제니퍼를 만났었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이런 생각 하고 있었어. 당신이 이 시간에 여기 나타날 확률 오십 퍼센트,,,]
 [반밖에 못 맞추는군.]
 제니퍼는 직접 자기가 커피를 만들어왔다.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커피를 받아들고 물었다.
 [다음 스케줄은?]
 [뉴욕으로 돌아가야지. 근데 애인 있으면 여기서 그냥 살고 싶어졌어.]
 [내가 당신 애인할까?]
 그녀는 그냥 웃었다.
 [여기 오일 좀 넘게 있었는데,,,오래 기억날 것 같아, 꿈꾼 거 같을 거야.]
 [십 년 후, 칠월 이십이일 새벽에 내가 이 자리에, 이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확인하러 와볼까?]
 [꿈속으로 돌아가는 거네?]
 [재미있겠다 그거. 까만 드레스랑 같이 나타날 확률 오십 퍼센트.] 
 [같이 살고 있더라도 혼자 나타나겠지.]
 

  그런걸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멕시코시티에 근접한 버스 터미널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공항으로 가는 차편을 알아보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가 등을 툭툭 쳤고 돌아보니 애기를 업고 있는 아줌마였다. 그녀는 내 등에 뭐가 묻어 있다고 말해주었다. 돌아보니 아이스크림 같은 게 묻어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냅킨 같은 것을 내밀며 닦으라고 했고 나는 오른손에 무거운 실버가방을 메고 있었으므로 왼손에 들고 있던 손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왼손으로 그 휴지를 받아 등을 닦았는데 그러고 나서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을 때 그 여자와 내 가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애기를 업고서.
  몇 초간의 시간이었는데 그건 경이롭게 빨리 진행된 사건이었다. 정작 실버 반지가 잔뜩 들어있는 가방은 어깨에 메고 있었고 사라진 손가방 안에는 여권을 비롯한 서류 따위밖에 없었다. 화요일 이었고 은경이는 당장 뉴욕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계획대로라면 나도 같이 가야하는 것이었지만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져 버렸다. 일단은 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비행기 표를 끊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서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인은 외계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공항에서 약 세 시간가량 항공사 사무실을 들락거렸지만 결론은 영사관을 다녀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팔팔 뛰는 은경이의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얹혀주고 뒤돌아섰는데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고 내 기억에서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렸다.
  내가 같이 갈 생각으로 무겁게 만든 가방은 그녀가 들고 가기에는 맞지 않는 사이즈였는데 어쨌든 그녀는 그 가방을 메어야만 했다. 까만 드레스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청바지 차림의 그녀는 대충 반시간 만에 눈이 퉁퉁 부어가지고 내 허리를 잡고 있었다.
 "미안해 은경아. "
  내가 해준 마지막 말이었다. 우리는 푸른색 돌이 박힌 같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    삼일간의 러브스토리였다고 나는 그저 기억할 뿐이다.
  당시 영주권자였던 나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고 영사의 도움으로 임시 여권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시티에서 하루를 더 자야했다. 영주권을 분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멕시칸 에어라인에서는 티와나 까지의 티켓만을 구입할 수 있었고 티와나 공항에서부터 국경 까지는 삼십분이나 걸려 처량하게 걸어와야 했다. 그녀는 딸아이의 양육권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그 후로도 몇 개월간 더 메신저나 전화로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차츰 시들해지고 이제는 연락처조차 끊긴 상태다.
 몸이 멀리 있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실버시티에서 만약 그녀가, 정보를 알기위해서 물어 보았다는 그 노점상들에게서 단 하나의 작은 귀걸이라도 하나 사 주었다면 나는 아마도 그 후로 뉴욕으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식당 테이블위에 떨어졌던 오불짜리 지폐가 만약 노점상 중 한명의 손에 들어갔다면 십년 후의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게 되지 않았을까, 이런 말들을 핑계라고 하나,
  더 나쁘게 된 일은 그 여행 후 몇 달 후인가 내게 여자가 한명 생긴 것이다. 몇 달 사귀지도 못하고 헤어지게 된 그 여자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무성의한 전화를 해야 했고 그걸 느꼈는지 그녀도 전화하는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일이년 후에는 두 번인가 뉴욕으로 여행할 일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망설이다가 연락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전화번호가 남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기억속에다가만 놔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