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밤의 꿈  

  6가를 따라 꺾어지면 왼쪽 코너에, 몇 십 년 동안 자리 잡고 있는 주유소에서 이년 전인가 권총강도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 외에 이 거리는 항상 조용하기만 했다. 물론 간혹 가다가 경찰차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나 도시를 온통 눌러버리는 헬리콥터의 육중한 소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거야 반경 일이마일 정도는 떨어진 장소가 타겟 일 테니까 이 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을 테고,   
  그 주유소를 끼고 돌아가면 역시 삼십년 정도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리커스토어가 있는데 그 앞에는 언제나 두 명의 홈리스가 서성거리고 있어 오래된 풍경의 하나가 되어있었다. 한명은 흑인이고 다른 하나는 백인 이었는데 흑인은 일반적인 홈리스들처럼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동전을 구걸 하곤 했고 백인은 그 파란눈으로만 그 종자를 구분할 수 있을 뿐 마치 걸어 다니는 오래된 나무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온통 짙은 브라운색으로 덮인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걸어 다니기만 했다. 그가 말하는 걸 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것 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그 브라운 룩은 사람이 자연에 위배되는 모든 행동을 중단 했을 때 취득 할수 있는 그런 색이 아닐까,  
  한 블럭을 서쪽으로 가게 되면 알렉산드리아길이 나오는데 소위 카페 촌 이라 불리는 곳으로 엘에이 경찰청의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평균 두번의 각종 범죄가 발생 하는 곳으로 엘에이 최고의 우범지역 이라 했다. 엘에이의 모든 술집은 다 모여 있는 듯이 보이는 그 거리의 스케치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녁 일곱 시 이후로는 거의 출퇴근을 하다 싶이 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알콜이 난무하다보니 모종의 일들이 자주 벌어지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해가 바뀌고 아파트 건물 앞의 꽃밭이 현란한 노랑 빨강으로 뒤덮였다가 찬바람과 함께 사라지기를 몇 번, 이층에 자리 잡고 있는 내 보금자리에도 찾아오는 여자들이 몇 번 바뀌었다. 바라만보고 있어도 슬퍼지는 눈을 가진 이혼녀 A 는 육 개월 정도 내 집을 드나들었는데 결국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시집을 갔고 B는 주말에는 아예 내 집에서 죽치고 살았었는데 어느 비가 많이 내리던 날 밤에 노래방에서 나와 심하게 다투고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무역한다고 중국을 왕복해대던 C는 파산을 하게 되자 내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날 나는 그녀가 끊임없이 지껄이는 동안 단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고 소주잔만 비우고 있었는데 그날의 기억이 아침의 내 침대에서 사라져버리고 난 혼자 누워 자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처럼 세월처럼 그들은 사라져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만 마치 캔버스위에 칠해진 물감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뿐 이었다.
  가장 최근에 이별한 D 하고는 공항에서 끝나지 않을 것같이 긴 시간 공항의 주차장에서 침묵의 대화를 하고 홀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펑펑 울다가 교통사고까지 낼 뻔했다. 그녀는 다섯 살 배기 딸 하나를 데리고 혼자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게 측은해서였는지 너무 깊이 그녀의 삶에 관여 했던 듯 싶다. 결국 내가 없으면 경제적으로 살아가기 힘들게 되어 버렸고 그렇다고 아예 같이 살림을 차릴 수도 없는 미묘한 입장이다 보니 결국 엘에이를 아예 떠나 버리기로 결심하게 된 거 같았다. 타주에 있는 언니에게로 간다고 했다.  
   그녀는 몸이 작았다. 항상 키 큰 여자들 하고만 어울리다가 작은 여자를 처음 보게 된 것인데 작은 여자가 훨씬 더 섬세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여자였다. 그녀는 뜨거운 물에 적신 타월을 선호했는데 막 외출해서 돌아오거나 하면 꼭 타월을 들고 나타나 이곳저곳을 닦아 주었는데 처음에는 거부반응이 있다가 나중에는 오히려 기다려지고는 했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의 마지막 데이트 때 우리는 같이 헐리웃 길을 걸었었다. 아마도 내가 다른 생각에 잠겨 있어서 그랬는지 걸음이 빨라졌고 잰 걸음으로 따라오던 그녀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 손을 잡았다. 십이월 이었고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돌아본 내 눈에 밝으레 하게 상기된 얼굴의 그녀가 미소 짓고 있었다.
 “미안. 너무 빨리 걸었지?”   그녀는 조금 밝게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걷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그녀와 평생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녀가 작다는 걸 다시 한번 느껴야만 했다. 우리가 추위를 피해 들어간 락카페에 어쩌다보니 문신투성이의 덩치 큰 히피들만 모여 있어 그렇게 된 것인데 어쨌든 그날 그녀는 아주 작았다.
 
  몇년 거슬러 올라가면 E가 있다. 내방 왼쪽으로는 대한항공에 근무한다는 부부가 살았고 오른쪽에는 젊은 아가씨가 살았는데, 당시 이 아파트의 90%는 독신여성들 이었다, 그 아가씨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씩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전화가 아니라 밑에서 인터콤을 누른 거 였는데 어쨌든 전화벨이 울리기 때문에 나로서는 전화가 온 거나 다름이 없는 거였다. “저 옆방 사는 사람인데요. 키를 집에 놔두고 나와 가지고요,,,” 전화기의 “9”를 오초정도 눌러주고 나면 일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내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면 아주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서있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나는 물어본다. “넘어가야 돼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그녀, 이 아파트 방들에는 베란다가 하나씩 붙어있는데 E 와 내방 베란다 사이에는 대략 삼 피트 정도 넓이의 기둥이 있었다. 내 집 베란다를 넘어가 쇠 난간을 잡고 버티면서 그 기둥 너머의 그녀 집 베란다 쇠 난간에 발을 걸쳐야 하는 작업이다. 잘못해서 떨어졌다가는 현관으로 통하는 세멘트 계단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E 는 그럴 때 마다, “제가 할 께 요.”   였는데 언제나 거길 넘어가는 건 나였다. 베란다를 통해 잠겨있지 않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어두운 리빙룸을 통과해 복도로 통하는 방문을 열고 나와 내 집 으로 돌아오면 미션은 끝나는 것이다.   네 번째 인가 다섯 번째 인가 그런 험한 꼴을 당하고난 뒤였는데 반시간가량 지난 후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어보니 E 였다.
 “저기 혹시 저녁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실래요? 너무 죄송해서…” 
“나가서 먹자고요?”
 “아뇨 그냥 여기서 시키면 돼요. 뭐 좋아하세요?”
 “아무거나 상관없는데 소주 있어요?” 
“그건 나가서 사올게요.” 
  몇 번 들어와 봤지만 항상 밤이었고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볼수가 없었는데 그녀의 리빙룸 에는 IKEA 에서 구해 왔음직한 흰색 소파와 유리 테이블, 그리고 역시 흰색 식탁과 네 개의 의자가 있었고 삼십 인치 정도 되어 보이는 티브이와 인터넷이 연결되어있는 컴퓨터가 한대 있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그렇듯이 필요 없이 크기만 한 냉장고 안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그녀가 소주를 사러 나간 사이에 그런 것들을 다 확인한 다음 아무 짓도 안한 것처럼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가기 전에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양장피 등을 시켰는데 대화하는 폼으로 보아 단골손님인 것 같았다. 진흥각 에서 음식이 배달되는 데는 반시간 정도가 걸렸고 우리는 안주도 없이 소주 한병을 거의 비우고 있었다.
 “자꾸 키를 집에 두고 나가니까 굉장히 정신이 없다 라고 생각하시겠죠?”
 “아뇨, 차를 안 몰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E는 밝게 웃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수수한 청바지, 쌍꺼풀 수술을 한건지 눈은 동그랗고 커서 얼굴에 눈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두 블럭 떨어진 윌셔 길에 있는 사무실에 근무하거든요. 여기 이사 와서 두 달 만에 차를 팔아 버렸어요. 쓸데도 없는데 그냥 세워놓고 한달에 육백 불 씩이나 나가니 얼마나 아까워요. BMW 였거든요. 그거 타는 얘들이 대체로 돈이 없잖아요.”
  우리는 잠깐 웃었다.
 “그런 경우면 키를 놓고 나가게 되는 수가 많죠.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한 친구는 차에 타려고, 다시 말해 차문을 열려고 하다가 키를 놓고 나온걸 알고는 옆집 베란다를 넘어가야 된대요. 한 달에 한번 정도라지 아마.” 
  E는 크게 웃었다. 그녀가 처음 사온 소주는 두병이었는데 얼마 안 있어 다시 나갔다와야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같이 가요. 밤거리는 위험해서,,,”
 “그래도 손님인데,,,”
 “손님?”  이번엔 내가 크게 웃었다. 
 “아주 먼데서 온 손님?”
  언제나처럼 리커 스토어 앞에는 두명의 홈리스가 문을 기준으로 왼쪽 오른쪽에 앉아있었다. 한인 타운 에서는 리커 스토어 에서도 소주를 판다. 우리는 두병을 더 샀다. 돈은 내가 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언제 나타났는지 짙은 화장품 냄새를 풍기고 있는 두 명의 젊은 여자들과 마주쳐야했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고 서있는 그들은 아마도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일 것이다.
 “좀 궁금한 게 있는데,,,”
  세 번 째 병의 뚜껑을 비틀어 열면서 내가 물어보았다.
 “들어오다가 본 그 여자들 말이에요. 술집에 출근 하는 거 잖 아요.”
 “그런데요?”
 “어떻게 생각해요? 사실 궁금했거든요. 그 또래의 그냥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성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하고요.”
 “생각해 본적 없는데요.” 
  그녀는 술을 참 잘 마셨다. 소주잔은 작지만 그래도 나는 두세번으로 나누어서 마시는데 그녀는 그냥 원샷 이었다. 물론 그 대신 잔에 손이 가는 횟수가 나보다는 적었지만, 
 “대답 참 싱겁네,”
 “자기들 인생 있겠죠 머,,,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못할 거 같아요. 돈 받고 사랑팔고 웃음팔고 머 그런 거 아니에요?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잡담하다가 그런 얘기 나온 적 있는데 걔들도 하나같이 대답이 똑같았어요. 죽어도 못 한다 구요.”
 “대답 잘 하면서 내숭이야,,,”
  나는 또 웃었다.
 “한 친구 기집 애 말에 의하면 어릴 때 무슨 상처가 있었거나 아니면 부모중에 누군가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에 걸려서 아주 안 좋은걸 보고 자랐을 거라데요. 단순히 가난 하다 거나 돈이 필요해서는 아니래요. 그럼 어디가서 콩나물 장사라도 하지 그건 아니라는 거죠.”
 “콩나물,,”
  그녀는 계속 나를 웃겼다
 “왜 동생 학비가 필요해서 라던가 부모님 먹여 살리려고 몸 파는 여성들 있다 잖 아요. 제가 태어나기도전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제가 같은 여자라서 하는 말인데 마음이 망가지지 않는 한 몸은 망가지지 않아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러니까,,,정말 못살던 시절에,,,동생 학비를 벌려고 몸을 팔았다고 치더라도,  아마 벌써 마음이 망가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을 거라는 얘기죠.”
 “마음은 어떻게 망가지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대, 그러니까 남자친구나 애인이 아닌 상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아니면 반대로 자신이 원하던 상대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는 경우에요. 남자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게 되죠. 그럼 마음이 망가지는 거구요.”
 “모른다더니 아는 거 되게 많네.”
 “다른나라 여자와 우리나라 여자와의 차이를 아세요?”
 “우리나라 여자들은 그게 아버지였던 애인이었던 잘못된 남자들 때문에 마음이 망가진 거구요. 남자들 자존심 버리면 시체라면서요. 여자는 몸 함부로 돌리면 그게 바로 시체라는 뜻이에요.”
 "결국  잘못은 전부 남자한테 있는 거네."
 "그렇게 생각해요."
  설흔도 안된 아가씨가 참 아는 것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접경험은 입에 올리려면 적어도 지적인 위태로움의 한계는 알고 있어야 된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지금보다도 더 어린 시절에 그렇게 자란 몇몇의 친구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병째 병이 오픈 되었을 때 E는 대화주제를 갑자기 바꾸었다.
 “근데 그때 그 여자 누구에요?”
  두 번째 인가 세 번째 인가 내가 베란다를 넘어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진 날 나는 소파에 앉아 B 와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그때 둘이 잠시 마주 쳤던 것이다. 그날 중상도 안 입고 미션에 성공한 나는 한동안을 B의 바가지에 시달려야했다.
 “자기가 왜 걔 때문에 그런 위험한일을 해야 돼?”
 “그럼 여자보고 거길 넘어가라 그러냐?”
 “왜 못 넘어가 내가 보여줄까?”
  이런 식 이었는데 나중에 노래방에서 대판 싸울 때도 이 얘기가 다시 등장했었다.
 “그냥 잠시 사귀던 여잔데 성질이 좀 더러워요. 부잣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큰 얘들 있잖아요. 뭐든지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그래서 헤어졌어요?”
 “내가 자꾸 도망 다니니까,,,좌우간 싸움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추억이네요.”
 “뭐 아예 같이 사는 거 같던데,,,아침에 보면 그 아가씨 차 그대로 있고,,,”    
  아니 차까지 알고 있었단 말이야,
 “차는 어떻게 알죠?”
 “한두 번 마주친 게 아니거든요. 내리는 거 봤는데 차를 모르겠어요.”
 “하기 사,,,”
 “아주 헤어진 거 에 요?” 
 “그게 그리 중요해요?”
 “그냥 물어보는 거에요.”
 “혹시 질투해요?”
 “내가 아저씨 애인도 아닌데 왠 질투요?”
 “그렇게 될 가능성 때문에 미리 질투연습이라도 할 수 있다던가,,,”
 “꿈 깨세요.”
 “미국 몇 년 살았나요?”
 “십년정도요 왜요?”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 끼리 처음 마주치면 언어에 대한 의식을 하죠. 어느 언어가 상대방에게 적합한가 같은 거,,,”
 “전 영어 못해요.”
 “자랑이네요.”
 “한국말도 못한다는 뜻이에요.”
 “잘하고 있는데,,” 
  아마도 술이 많이 취해서 그랬는지 그다음부터는 무슨 얘기를 해도 웃겼다. 이를테면 그녀는 침팬지 얘기를 했다. 미국에 처음 들어온 한국 사람은 다섯 가지의 단어를 분별 할 수가 있는데 그게 예스,노,쉿, 오케이, 그리고   제스츄어 라고 했다. 보노 박사 인가하는 사람이 쓸데없이 이십년간을 투자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침팬지는 그보다 더 많은 단어를 구사 할수 있다는 거였는데 그러고 보면 엘에이에서 차 몰고 다니는 외국인들 중 아주 많은 수가 차에다가 핸디 캪 딱지를 붙이고 다녀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다시 말해 병신, 이라는 거였다. 
 “난 병신 아닌데,”
 “잘 났 어요 아저씨.” 
  눈물이 나올 정도로 웃다가 내가 그 방을 나 온 게 열두시가 넘어서였다. 두개의 소파를 하나씩 점거하고 앉아 있다가 열두시가 넘어 하나의 소파가 주인을 잃게 되는 경우는 일반적인 영화에서도 가끔 나오는 건데 당시 나는 그냥 그 아가씨랑 한 침대에서 잘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복잡 미묘한 사회적 여건이 그런 그녀의 바램을 묵살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과감히 그녀의 성채를 빠져나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느끼는 바지만 살아가는 놈이나 년들은, 정말이지 더럽게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인줄 알았다. 그 후로 그녀가 인터콤 으로 누르는 내 전화기는 더 이상 울리지를 않았고 현관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서 그녀랑 마주치는 적도 없었다. 그렇게 달들이 지나가고 여름이 찾아왔을 때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던 나는 아파트 앞에 큰 이삿짐센터 차가 서있는걸 보았다. 짐이 밖으로 날라지는 걸로 봐서 누군가 이사를 나가고 있는 걸로 보였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스위치를 누르고 서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큰 박스를 들고 E가 거기 서 있었다. “어?” 하고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저 이사 가요.”  하고는 내 옆을 고개를 까딱 숙여 보이고는 지나갔다.  내방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를 통해 그녀가 분주히 이삿짐 차로 왔다 갔다 하는 걸 내려다보았다. 이건 아닌데,,,사람들은 어쩌면 그들이 꿈꾸는 일부를 보기라도 원하는것인데, 나도 그 중 하나인데, 이건 너무 잔인한거 안닐까, 나는 어쩌면 지난 육 개월 간 여섯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울리던 그녀의 전화벨 소리나 혹은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를 기다려 온 건지 도 몰랐다. 어딘지는 몰라도 너무 아팠다.
  담배를 세가치나 연속해서 빨아대던 나는 홀린 듯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E 의 방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는 일꾼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플랫 달리에다가 티브이를 옮겨 싣고 있었다. E는 없었고 나는 거기서 기다렸다. 잠시후 엘리베이터가 올라와 정지하는 소리가 들리고 카펫을 밟는 발자국소리, 그리고 E가 나타났다. 나는 아무 말도 준비해 놓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바보같은  질문을 해야 했다.
 “왜 이사 가요? 사무실도 가깝다면서?” 
  E는 그 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일꾼들을 피해 베란다 쪽 유리문으로 다가간 그녀는 오른손을 펴서 그 유리문에 대고는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온 길을 되돌아 나에게로 왔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냥 멀거니 서있었다. E는 그 큰 눈 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결혼해요. 남편 될 사람 집으로 이사 가는 거 에요.”
 “잘됐군요.”  
   마음에도 없고 생각에도 없는 바보 같은 말이 내입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진짜로 키 놓고 나온 건 두 번 뿐이에요. 전 너무 외로웠 구요. 아저씨 몇 번 보고 나서 대화 좀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됐어요,,,한 달 전엔가 엄마가 선을 보라구해서 나갔고요. 별로 맘에는 안 들지만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몇 분이나 그러고 서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달이 나에게 다가와 악수 하자고 하면 느낄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여전히 미지의 세계가 남녀관계 라는 거였다. 나는 멀뚱히 서있었지만 할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예쁘게 잘 사세요 라고 말할까, 아니면 가지 말라고 말할까, 그렇게 말하면 이삿짐 차에 실렸던 짐들이 다시 그녀의 아파트로 되돌아 올수도 있을 거 같았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앞섰고 끝내 그 말은 언어가 되지 못 한 채 내 가슴속에서 회오리바람 속에 갇힌 나뭇가지처럼 부러지고 있었다. 그해의 봄은 그렇게 가을보다도 더 쓸쓸하게 지나갔다. 여전히 방문을 열면 죽음 같은 어둠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날 밤엔 꼭 눈물 같은 봄비가 내렸다.
  
  여름의 끝자락, 초가을로 들어서며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금요일의 오후 일곱 시 경에 나는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한인 타운 축제에 가기 위해서였는데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라도 그곳에는 주차할 장소가 없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해야만했다. 차츰 오렌지색으로 짙어져가는 서쪽 하늘의 노을을 쳐다보고 있던 나의 왼쪽 시선으로 언제부턴가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 한명이 나와 비슷한 자세로 서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도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십대 중반쯤으로 보였고 낮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키가 거의 나 만큼이나 컸다. 센티미터로 170은 확실히 넘어보였다. 웨이브 진 머리에 희고 갸름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수수한 흰색 원피스는 그녀가 그 시간에 출근(?) 하기위해 서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왼손을 들어 집게손가락과 엄지로, 정확히 그녀의 방향은 아닌 약간 앞쪽을 가리켰다. 그녀는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고개를 갸우뚱했다.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혹시 장터에 가나요?”
  하고 나는 물었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곧
 “네.”
  하고 대답했다. 
 “택시 기다려요?”
  하고 다시 묻자 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마치 그 말 밖에 할 수 없는 인형처럼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럼 택시비 절약해야겠군요.”   그녀는 다시 –네‐ 하지 않았다. 잠시 애매한 표정으로 서있더니 내 쪽으로 두 걸음 다가왔다. 딜은 성사된 것이다. 남자보다는 언제나 똑똑한 여자는 오초 정도의 시간에 나에 관한 탐색 작업을 끝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엔 머릿속에 든 것 보담은 외모가 우선한다. 어쨌거나 당시 나는 소주를 반병정도 마신 상태였는데 그 알콜 기운으로 그런 일들이 가능했던 것 같다. 잠시후 승용차 한대가 우리 앞에 서고 조수석 창문 쪽으로 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물어왔다.
 “택시 부르셨나요?"
  뒷좌석 문을 열어 그녀를 태우고 나는 앞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바람맞은 다른 한명의 택시기사는 그리 투덜대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오늘은 바쁜 날이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올림픽 길로 들어서기가 쉽지 않을 거라면서 택시기사는 우리를 9가쪽 뒷길인 놀이터 입구에 내려주었다. 점차 어둠속으로 묻혀 들어가고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그네주위를 뛰어다니며 떠들어대고 있었고 블록으로 만들어진 길로는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향해 어깨를 부딪혀가며 걷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섞여 걸었는데 거기서는 그나마 걸을 수 있었는데 정작 행사장에 도착하니까 그게 용이치가 않았다. 워낙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인파에 밀려 걸핏하면 둘 사이가 멀어졌고 다시 그녀를 찾으려고 깡총 걸음을 해야 했다. 어쨌거나 택시 동료인 우리사이로써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힘을 준 것도 안 준 것도 아닌 상태로 그렇게 그녀의 오른손은 내 왼손을 꼭 잡고 있게 되었다. 그 제서 야 나는 그녀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깡총 걸음을 다시 안 해도 되게 되었다.
 
  처음 우리는 특산물 판매부스로 갔는데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한국의 지역 상품들이 많았는데 주로 음식이나 조리기구들 이었다. 그 상품명들이 천막위아래로 인도위의 껌 딱지처럼 붙어있었다. 간혹 동양화나 신문사에서 설치한 부스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쥬얼리 가게 앞에서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왼손으로 턱을 만지면서 잠시 들여다보았는데 만난 지 삼십분 만에 사줄까말까를 물어보기도 이상한  거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스스로 자유로워진 그녀의 오른손이 푸른색으로 반짝거리는 조그만 귀걸이 하나를 집어 들었고 귀걸이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부스의 주인 인듯 한 중년의 여자가 중얼거렸다.
 “잘 어울리네요. 워낙 예뻐서 그런가,,, 그거 한국산 이란 거 알죠? 십오 불 에 파는 건데 그냥 십 불만 주세요.” 
  여자가 예쁘다는 건지 쥬얼리 가 예쁘다는 건지 헷갈리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십불짜리 지폐를 한장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당연히 들을 줄 알았던 ‘아니에요 내가 낼게요.’ 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다른 쪽 귀의 귀고리 교체 작업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중년의 여인이
 “참 좋으시겠어요. 이런 미녀 와이프를 두셔서 모델 출신 인가요?”
  라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저 와이프 아니에요.”
  라고 말했을 뿐 그 나이또래의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수다는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녀가 한국말을 할수 있다 는 점만은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이 손에 들어온 귀고리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듯했다. 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출발했는데 그전에는 그녀의 밤색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던 귀부분이 갑자기 청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붉은색이었다. 부스안의 유리제품들이나 하다못해 내 팔뚝의 시계까지도 붉은색 이었는데 그 귀의 색만이 푸른색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내 눈에는 그녀의 귀부분만이 보였다. 다른 모든 붉은색들은 그녀의 푸른색을 강조해주려고 쎗업 된 연극무대 같았다.  그녀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있는 쪽으로 나를 끌었는데 나는 손에 약간 힘을 주어 그녀를 당기고는 먹는 시늉을 했다.
 “뭐 좀 먹고.” 
  그녀는 다시 안보일정도로 고개를 까닥하더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는데 조그맣게 예쁜 입은 여전히 꾹 다문 채였다.  왠 묘령의 아가씨를 데리고 나타난 –그것도 손을 잡고‐ 나를 보더니 친구는 자리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네 명의 남자들이 앉아있는 원탁 테이블로 가서 무슨 얘기인가를 주고받았는데 그들은 곧 의자들을 바짝 끌어 당겨서 우리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었다. 이런데 서는 흔히 있는 합석을 하게 된 것이다. 사오십 대로 보이는 그들은 그녀를 많이 의식하는듯했다.
 “뭐 마실래? “
 “막걸리요.”
  이런 경우에는 99%는 글쎄요 알아서 시키세요, 라는 답이 정석인데 그녀는 막걸리요 하고 대답한 것이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막걸리를 갖다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녀에게 물었다.
 “왜 막걸리여야 되지?”
 “이런데 아니면 구경하기 쉬운 술이 아니잖아요.”
  그녀는 생각했다 대답하지 않는 버릇이 있는듯했다. 잠시 후 막걸리가 믿을 수 없이 빨리 도착하자 그녀는 자기 잔에 따라 나는 안중에도 없이 혼자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건 마치 막 마라톤을 끝낸 사람이 찬물을 마시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나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포위한 네 명의 남자들은 그런 우리가 참 신기했는지 아니면 그녀의 외모 때문 이었는지 자기들이 조금 전 까지도 열심히 떠들어대던 대화의 주제를 모두 잊어버리고 우리를 관찰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더 괴상하게 된건 그녀가 나를 무시하고 자신의 오른쪽 옆의 중년 남자에게 라이터가 있냐고 물어본 거였다. 화들짝 놀라면서 라이터를 꺼내 들 은건 세 명의 남자였다. 친구가 나를 불렀다. 우리는 그 친구의 천막을 붙들어 맨 솔 나무 밑에서 같이 담배에 불을 붙혔다.
 “누구야?”
 “몰라.”
 “그렇게 대답하면 안 돼지. 이놈아,,,”
 “택시비 절약 하려고 같이 온거뿐야. 울집 아파트 앞에서,,”
  친구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진짜 너답다, 잘났다,, 나잇값 좀 해라 등등,,의 힐난을 들으면서 우리는 맛있게 담배를 피웠다.
   “자릿세는 나오냐?”
 “또이 또이지. 그래두 그냥 재밌잖아 와이프가 즐거워 하니까,,,” 
  친구는 한인 타운 에서 조그만 분식집을 하고 있는데 장터가 서게되면 꼭 나오곤 했다. 이혼한다는 얘기가 자꾸 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도 그는 할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백불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주었다.
 “이건 뭐야?”
 “오늘 먹는 거 계산이다.”
 “필요 없어 임마. 내가 너한테 돈을 받겠 니,,,집어넣어 짜샤,,,한대 맞기 전에,,” 
  십년도 더 전에 칼리지에서 만난 그는 멋쟁이 였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었다. 그런 그가 몇 년 전 한인 타운 에서 나와 마주쳤는데 완전히 중년남자가 되어있었다. 세월이, 싸우나 탕에 있는 꺼칠꺼칠한 때밀이 타월처럼 모든 걸 지워버리고 있는듯했다. 백불짜리 지폐를 앞치마의 한쪽 주머니에 꾸겨 넣은 그와 헤어지고 내 자리로 돌아오니까 나의 그녀는 두 번째 막걸리 병을 혼자 비우고 있었고 네 명의 남자는 그런 그녀를 경이로운 시선으로 흘끗거리고 있었다. 일곱 난쟁이와 공주님이 아니고 네 명의 난장이와 공주님이었다.
 “그 막걸리가 말야. 달콤해서 잘은 넘어가는데 갑자기 취하거든.”
  걱정 어린 내말에 그녀는 행동으로 답했다. 내 잔에 막걸리를 잔뜩 부어버리고 나를 쳐다보았는데 약간의 취기 탓 이었는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명의 남자들 중 한명이 웃으면서 잔을 건넸다.
 “형씨 한잔 받으세요.”
  소주였는데 나는 그가 고마웠다. 미장원에서 잘랐음직한 전형적인 한국남자의 머리를 하고 있는 그는 계속 빙글거리면서 웃고 있었는데 역시 같은 머리를 한 옆의 남자가 말을 붙혀 왔다.
 “애인이신가보죠? 정말 미인이세요.”
  그는 서글서글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남자 분들만 넸 이서 오셨습니까 그래?” 
  내가 그가 준 소주잔을 원샷 하면서 웃자 테이블은 갑자기 오래된 가족처럼 화기애애 해 졌다. 다른 한 남자가 얘기했다.
 “마누라 데리고 오면 기분이 나겠어요. 남자들끼리가 좋죠. 우리 해병대 친우들이거든요.”
 “아,,네,,”
  소주잔이 돌려지고 친구까지 장사 때려치우고 합석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찬물을 끼얹은 건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의 발언이었다.
 “요즘 젊은 분 들은 결혼 같은 걸 꺼리 나 봐요?”
  였는데 그건 이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나의 그녀는 소주를 거부한 채 여전히 막걸리 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내가 갑자기 소주잔을 앞에 들이밀자 약간은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막걸리 다 마셨어?”
 “아니 더 마실 거 에요.”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내가 던진 의미없는 질문에 그녀는 주책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이런 식 이에요. 우린 아무런 계약이 없으니까 자유롭거든요. 형님들은 종이에 싸인 같은 거 하셔서 자유롭지 못한 거구요.”
 “둘이 어떤 사이에요?”
  다른 한 남자가 물었다. 재밌는 건 그녀가 나보다 먼저 대답했다는 거다.
 “택시비를 자기가 내더라고요. 지갑에서 돈 꺼내려 구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런 사이에요.”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술 너무 많이 마신 거 같다,”
 “가요.” 
  그녀는 내 왼손을 잡았다. 여기 오기전 까지 잡혀 있었던, 아니 내가 잡고 있었던 그 손이었다. 나는 해병대 분들한테 멋 적게 인사하고 일어나야만했다.
 “어딜 가자 구?”
 “음악회요.”
 “여기서 막걸리 마시는 게 더 낫지 않아?”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나를 끌고 어딘지 미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깨를 부딪혀가며 나는 그렇게 끌려가고 있었다. 음악회장은 빽빽히 사람들로 차있었다.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었는데 그녀는 나를 무대의 바로 앞쪽, 그러니까 화단이 세멘트 블록으로 막혀진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높이로 길게 연결된 장소로 이끌고 갔다. 무대의 앞쪽이었는데 그 시멘트 의자가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나를 아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을 거라는 근심이 들었는데 여자는 관심도 없는듯했다.
 “여기가 편해?” 
 “네.”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그녀는 신발을 바꿔 신기 시작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새로 꺼낸 신발은 장딴지까지 줄을 묶어야 하는 거였는데 참을성 있게 그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다음날에 돌아올 힐난을 준비해야만했다. 
 “다 됐어?”
 “네.”
  그녀는 항상 ’네’ 였다.
 “너 진짜 길다.”
 “한국식으로 175에요. 여기서는 파이브 텐 이구요,.”
 “내가 파이브 텐인데,,,”
 “그니까 아저씨랑 나랑 같다구요.”
 “발음 보니까 여기서 태어난 거 같은데,,,”
 “그게 뭐가 중요해요?”
 “그냥 웃겨서 그래.”
 “전 안 웃겨요. 진지하거든요.”
 “전혀 진지해 보이지 않는데.”
 “저 막걸리 더 마셔야 되거든요.”
 “어 떡 하자 구. 음악 들으러 온 거 아냐.?”
 “따라오세요.” 
  그녀는 나를 데리고 다시 미로를 걷기 시작 했다. 왼손이 그녀의 오른손에 잡혀 있었는데 붉은 빛깔의 부스들을 지나서 그녀는 다시 내 친구네 집으로 왔다. 결국 그녀는 이효리가 노래 한곡을 부르는 동안 신발을 갈아 신으러 거기 간 거였다.
 네 명의 사나이는 벌써 없어지고 그곳에는 할아버지둘이 남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말 못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잘 하지? 엄마 때문인가?”
 “잘하니까 신기해요?”
 “응.”
 “근데 사실은 영어가 훨씬 편해요. 마이애미에서 태어났거든요.”
 “엄마 아빠 둘 다 한국사람 야?”
 “네, 아빠는 아저씨랑 똑같이 생겼어요. 아까 깜짝 놀랐어요. 죽은 아빠가 다시 나타난 줄 알 구,,,울 아빠도 머리길 구 아저씨처럼 예쁜 모자 눌러 쓰구 다녔거든요.”
 “어떻게,,,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죽었냐구요. 음,,, 총 맞아서요.” 
  다시 나타난 내가 신기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친구는 시키지 도 않은 막걸리 병을 들고 있었다. 열한시가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총을 맞았는데?”
 “궁금해요?”
 “응.”
 “해가 너무 뜨겁던 날 이었는데요. 마이애미 가보셨죠? 헤밍웨이 집에서 다리 열개 건너면 되는데 였거든요. 아빠는 교수였어요. 책을 보고 있었고 옆집 여자는 옷을 하나도 안 입은 채 아빠 옆에서 캌테일을 만들고 있었고요. 그 여자의 남편이 들어와서 총을 쐈대요. 전 일곱 살 이었어요. 엄마는 뉴욕에 회사에 다니느라고 마이애미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나 다녀가곤 했고요.”
 “어쨌든 한국말 진짜 잘한다.”
 “말 잘 안한지 오년도 넘어요. 지금 처음으로 많이 하는거에요.”
  두 할아버지는 우리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자기끼리 대화도 못하고 술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서 내가 한마디 했다.
 “저기,,어르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내 미소가 맘에 들었는지 한분이 어렵게 얘기했다.
 “잘 어울리는 쌍 같은데,, 뭐가 그리 복잡하게 말 쌈이야,,,”
 “아니 쌈 하는 거 아닙니다.”
 “저 정신병원에 있었어요.”
  그녀는 마치 발밑으로 막 총총거리고 지나간 참새가 얘기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미국정부에서는 그렇게 할일이 없나 봐요. 저처럼 말짱한 사람을 강제로 데리고 가더라 구요. 말하기가 싫어진 게 그때부터구요. 아저씨 만나서 오랜만에 말하기 시작한 거 에요. 십년정도인거 같은데,,저 말 안하고 살았어요.”
 [영어로 애기할까? 그게 편하면,,,]
  나는 영어로 얘기했다.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전 한국말 듣고 싶어요. 이 상태로 그냥 했으면 좋겠어요.”
 “아빠 얘기 좀더 해봐.”
 “음,,지올로기 교수가 하는 게 뭐 있겠어요. 맨 날 땅만 파는 거죠. 아는 게 없어요. 내가 너무 어렸거든요. 아빠 시체 화장하는 날 엄마가 나한테 그랬어요. 니 아빠는 흙에 미쳐있는 사람이었는데 옆집 백인여자가 착각을 하구 덤벼들어서 이렇게 됐다구, 용서라는 단어도 썼구,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인데요. 스무살 지나니까 모델회사 같은데서 자꾸 연락이 와요. 그래서 그쪽일 하고 있어요. 치근대는 남자들도 있지만 그리 불쾌하지는 않구요.”
 “그 아파트에 사나?”
 “한블럭 위쪽이에요. 아저씬 그 아파트 사나봐요?"
"응."
 “저 이효리 다시 봐야 되거든요.” 
  그녀는 많이 취해 있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손을 잡혀 음악회장으로 가야했는데 이번에는 친구가 내 옆에 붙어있었다. 그는 내가 걱정이 된거 같았다.
 “야 임마 니 새로운 얘인, 보기는 좋은데 정상은 아닌 거 같다.”
 “무슨 얘기야?”
 “너무 취했다구. 그리고,,, 어딘가 좀 이상해.”
 “시끄러 짜샤. 나도 어차피 정상은 아냐. 어쨌든 길구 보기 좋잖아.”
  맘에 안들어 서 한마디 더했다.
 “아주 정상이구 다만 니가 준 막걸리에 좀 취해서 그래.”
 “참한 아가씨 있는데,,,지금 여기 있거든,,연결해 줄께 만나보면 어떻겠니.”
 “니가 델꾸 살아라 임마.” 
  나는 내 택시 애인을 찾아야 했으므로 빨리 움직여야했다.
  그녀는 아까의 그 음악회장에 있었다. 이효리도 없어지고 무대는 이미 어둠 이었고 사람들은 분주히 빠져 나가고 있었다. 열한시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뭐하는데 여기서?”
 “아저씨 안 오는줄 알고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요.”
 “많이 취했지?"
 “네 그런데요.”
 “이제 일어날 시간이 된 거 같아서 그래.”
 “집에 누구 기다려요?”
 “아니,”
 “그럼 사람들 다 나갈 때 까지 있어보죠.”
 “왜 그래야 되는데?”
 “갈데 가 없으니까요.”
 “너 너무 취했어. 막걸리하고 무슨 원수졌니. 그렇게 마시게,,,”
 “아저씨 나 좋아해 줄 수 있어요?”
 “무슨 소리야?”
 “아저씨가 아빠 같아서요. 참 좋은 사람이었거든요 멋쟁이였구.”
 “일단은 나가자.”
  열두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그렇게 인파가 밀리는 장소는 아마 여기가 유일하리라고 난 생각했다.    
  불이 꺼졌다. 주최 측 에서 일부러 불을 끊거 같았다. 사람들을 내보내는 그보다 더 좋은 방도가 없을 테니까 취해진 조치였겠지만 문제는 있었다. 일단 구경 객 들은 입구 쪽으로 몰려나가기 시작했지만 전체가 한꺼번에 연결되었던 전기를 사용하고 있던 식당부스 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좀 성질 급한 남자는 심하게 욕을 해댔다.
 “이거 미친놈들이야 뭐야. 불을 끄면 어떻게 정리를 하라는 거야.”
  그런 욕들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는데도 아랑곳없이 불은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렌트비는 다 챙겨가면서 전기세 까지 절약 하자 그거냐?”
  누군가 그렇게 소릴 질러서 잠시 웃음소리가 났는데 내 생각엔 주최 측에서 그렇게까지 치사한 발상을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를 상대하려면 때로 미련한 방법이 효과가 있을 때가 많으니까,  어쨌든 암흑속이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그 인파속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는데 덩치가 큰 대여섯 명의 청소년들이 뛰어오다가 나를 들이받았고 “죄송해요.” 소리를 듣다가 내 두 손이 허공에 놓여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꿈속처럼 그녀의 실루엣이 인파에 묻혀 뒤로 뒤로 실려 가고 있었는데 나는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 실루엣은 분명히 오른손을 높이 들고 있었고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 나는 그녀가 있던 방향으로 기를 쓰고 찾아갔는데 그녀는 없었다. 반시간가량 그녀를 찾아 헤맸던 거 같다. 결국 터덜거리며 친구의 부스로 왔는데 막 마무리를 하고 나가려던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 통을 내려 놓으면서 담배를 한가치 꺼내 나에게 권했다. 희뿌연 달빛에 의존해서 우리는 겨우 담배가치를 주고 받을수 있었다. 그의 아내는 밝게 웃으면서, 
 “아까 그 아가씨 어디 갔어요?”
  하고 물었는데 대답할 도리가 없어 가만히 있자 친구가 말했다.
 “사라진 거야?”
 “응 손을 놋 쳤어. 얘들이 와서 들이받는 바람에,,,”
 “그럼 아직 여기 있겠네.”
 “그것도 모르겠어. “ 
  친구는 아내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같이 찾으러 가자고했다. 우리는 근 반시간 가량을 그 별로 넓지도 않은 공원을 돌아다녔는데 경비하는 경찰들한테 잔소리까지 들어야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친구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렇게 쪽쪽 빨면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도 이해가안 되고.”
  그의  아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되게 많이 취해보이던데,,,혹시 착각하구 다른 사람 손잡고 나간 거 아닐까요?”
  욕이 튀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나는 그날 친구네 집 에서 잤다. 기억나는 거 하나는 그의 아내가 내가 간다는 걸 극구 말리던 단편적인 기억뿐인데 왜 그랬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친구가 샤워하러간 사이에 물어보았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죠?”
  친구의 아내는 시선을 정확히 나에게 고정하고 말했다.
 “오늘 다시 거기 갈 꺼죠? 저희 부스에서 같이 있으면 되고요. 그런데 그  아가씨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없다면 제 얘길 믿으실래요?”
 “왜 그렇지?”
  친구가 없어서였는지 전처럼 반말이 나왔다.
 “제가 오빠를 잘 알잖아요. 여자들은 꿈꾸는 남자 좋아하지 않아요.”
 “어쨌든 실험은 해봐야겠네, 진짜 안 오는지.”
  가운을 입고 나타난 친구는 마치 우리 얘기를 다 들었다는 듯이, 한마디 덧 붙혔다.
 “넌 좀 더 성의를 다했어야 했어. 같이 그렇게 술 마시고 기절하면 누가 널 용서해 준데니?
 “같이 마신 거 잖 아.”
 “그게 여자와 남자의 차이야. 이 사회는 남자들이 그렇게 편하게 너처럼 퍼 질러 지는 걸 원치 않거든.”
 “그게 그러냐?"
 “이 자식아 그 방면에는 니가 내 스승이잖아. 그런 나한테 뭘 묻는 건데, 넌 어젯밤에 꿈꾼 거야. 한 여름 밤의 꿈, 어제 그 동생 같이 있었어. 설흔둘 이라던데. 얘가, 널 보는 눈이 아주 관심 있는 거 같더라. 어차피 너 주말에 회사 안 나가니까 나랑 같이 떢볶이나 팔자. 오늘 연결해 줄께.”
 “싫어 난 한 여름밤의 꿈 만날 거야..”
 “잘났다.” 
  그날 그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은 내 인생에서 여러번 있었지만 이번 경우는 좀 특별한 것이었다. 나는 친구와 막걸리를 마셨다.
 “너 원래 막걸리 안마시잖아.”
 “니가 파는 거니까 마신다 짜샤.”
  엉터리 같은 대화가 오고가다가 그가 한마디 했다.
 “세익스피어가 왜 유명한지 알아?”
 “무식해서.”
 “무슨 꽃인가 즙을 짜서 눈에 바르면 사랑에 빠진다더라. 넌 막걸리를 바른거고.”
  가을은 너무 많이 다가와 있었고 나는 몇일째 계속 취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세로 계속 막걸리만 마셔대고 있었는데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뭐하세요?”
  하고 여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여자였다,
  친구 아내가 말한 그 여자인거 같았다.
 “누구 좀 찾고 있어서요,,,”
  세익스피어의 허미어와 라이샌더는 결혼식까지 올리는데,,,
  내 애인은 없어 진 것이 분명했다.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