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어찌 보면 이곳에서는 유일한 친구일지도 모르는 준오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일주일전만해도 암 투병 중이라고 했었는데 그저께 준오는 내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 하더니 장례식 일정을 얘기해 주었다.
 
하루 먼저 가서 준오와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엘에이에서 만난 유일한 고교 동창인데, 물론 여기서 새로 알게 된 친구들도 있긴 하지만 그처럼 이십년도 넘게 알고 지낸 건 아니기 때문에, 뭐랄까, 약간의 느낌의 차이 같은 거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있었다.
 
하여간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불과 몇 달 전에도 호수에서 한밤중에 모닥불 피워놓고 소주잔 기울이면서 나와 준오랑 낚시를 했었는데
 
준오는 엘에이에서 비즈니스가 신통찮으니까 프레즈노에 있는 리커스토어를 하나 사서 그리로 이주한 게 사오년 정도 됐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정말이지 세월이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로컬이 아닌 프리웨이를 달리는 차 같다고나 할까,
 
차에 시동을 걸면서 그런 생각들을 해 보았는데 쓸데없이 감상적인 것은 사념의 저변에서 아예 지워 버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월이었고 엘에이에는 안개비 같은 것이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벌어질 그 황당한 일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그저 준오 아버님의 얼굴과 낚시터에서 보았던 그의 제스츄어들 그 멋스러움, 멋져 보이던 주름살, 그리고 죽음과 인간의 애증 관계 같은 거, 그런 거 밖에는 없었다.
 
우연찮게 산위에서 야영하게 된 사건의 저변에는 물론 준오 아버님의 장례식이 원인이기는 하겠지만 이건 좀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느낌이 있다..,모르겠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그런게 꼭 일어나야 한다는 필요 불가결 같은것은 없는 걸 테니까,
 
가게 문 닫고 집에 안 들르고 여덟시에 곧장 출발했다. 
 
오번 프리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매직마운틴 지나고 삼십분인가 한 시간 더 달려 피라미드 레잌이 내려 다 보이는 산 중턱에서 차가 정차되었다.
 
거기가 4500ft 정도였는데 엘에이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는 상황에 이곳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사실 거기 지나가려면 그전에도 짜증이 많이 났었다. 이런 식이다. 칠십 마일 정도로 달리다가 그 언덕 나오면 언덕이 심해서 한 오십 마일 정도로 줄여야 하는데 그건 그나마 차상태가 좋은 경우고 어떨 때는 삼십 마일 정도로 컨테이너들 하고 같이 올라가야 한다. 물론 그거야 내 경제적인 문제인거고. 어쨌든 예쁘기도 하지만 사람 열 받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호수는 정말 컸다. 물론 샌디에고에 있는 솔튼 레잌이나 빅베어 호수 보단 작겠지만 계곡속에 갇혀 있어서 그런지 음험하게, 그리고 크게 느껴졌다.
  도로에서 내려다 볼 때는 그저 크다고만 느꼈었는데 얼마 전엔가 내려가 보았더니 생각 보다 많이 컸다. 느낌이 꼭 영국에 있는 네스 호의 괴물이 살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도 했으니까. 어쨌든, 구경 하느라고 속도가 늦어 진거뿐이고, 몇 번 미끄러지다가. 이건 정말 위험하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앞차들이 전부 정지해버린 것이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모든 차가 멎어버렸다. 아마도 앞에서 콘테이너가 하나 누워 버렸을 것 이라는 생각을 했다.
 
차는 멈추는 게 아니라 옆으로 기어갔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소용이 없었다. 차가 옆으로 가는 건 처음 경험했다. 내가 차를 세웠을땐 차가 도로의 맨 오른쪽 산기슭 밑에 옆으로 서있었다. 그래도 다른 차들 하고 안 부딛힌게 다행이었다.
 
4500 피트 정도였는데 이해가 안 되는 거는 내가 다니는 빅베어 스키장이 육천 피트가 넘는데 눈이 모자라서 기계로 가짜 눈을 뿌리고는 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추워도 엘에이에서 이 높이의 산이 이렇게 얼어붙을 수는 없는 거였다.
 
좌우간, 열한시경 이었나. 거리에 나왔더니 꼬마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일단은 막 차가 세워진 상황이기 때문에 꼬마들하고 눈싸움을 하고 놀기에는 좋았는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이건 아니다 싶어 차에 다시 돌아왔다.
 
화씨로 삼십도 정도 였는데 진눈깨비 같은 눈이 내리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차가움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처음 차가 세워지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까 뒤에는 남미계로보이는 가족이었고 앞에는 백인여자 였다. 그 뒤로 이어져 있는 차들에서도 사람들이 전부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어둠 때문에 잘 분간 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한두시간 이면 해결되고 다시 갈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뒷차의 가족들은 애들이 넷이었고 바로 친해질수 있었다. 차가 서자마자 눈가지고 같이 장난을 친게 그 집 꼬마들 이었다.
 
호세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다가왔다. 막내로 보이는 꼬마하고 다시 한참 눈으로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가 꼬마를 데리고 가서 자기 차에 태우고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할 건데.]
  그가 물었다. 
 [나도 몰라.] 
 [아니 그러니까 블랑켓 같은 거 있냐고.] 
 [없어. 설마 여기서 밤을 새우기야 하겠어.] 
 [나 프레즈노 살아. 여기 자주 지나가고 이거 처음 당하는 일이 아냐. 난 그래서 차에 항상 담요를 싫고 다녀. 물론 한두시간 안에 여기서 빠져나갈 확률이 없는 거는 아냐 하지만. 내 느낌인데 이렇게 미끄러운 길은 일단 처음 당해봤고. 쉽게 빠져 나가지 못할 거 라는 게 내 경험상의 느낌이야.] 
 [나 당신 애들이랑 눈싸움 해야 되거든.] 
 [농담 하는 거로 듣는구나,,,여기 말이야.,,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아름다운 곳이 아냐 지금.] 
 [알아 상당히 심각하지. 눈은 내리고 온도는 삼십도 정도고. 나는 담요도 없고. 차는 전혀 안 움직이고. 그러니 다른 방법이 없잖아. 운동이라도 해야지.] 
  우리는 내 차체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파킹랏(?)을 바라보고 섰다. 발이 얼어 와서 얌전히 서있기가 힘들어 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 생각엔 오늘밤 안에 못 빠져 나갈 것 같아. 방법을 연구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아마 가장 좋은 방법은 너무 추워지면 차에 시동을 키고 십분쯤 히터로 몸을 녹이고 다시 꺼서 한 시간쯤 있다가 다시 반복하고,,,]
 [알아는 듣겠는데 그러다가 그냥 잠들어서, 얼어 죽은 게 아니라 히터 때문에 죽은 사람 얘기 들어봤어.] 
 [그러니까 잠들지 말라고.]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내가 담요를 두개 가지고 있는데 하나를 줄께.] 
 [그럼 당신네 가족은?]
 [애들은 뒷좌석에 모아놓고 하나로 몽땅 덮어놓으면 되고. 나는 와이프가 있으니까 앞좌석에서 둘이 안고 있으면 돼. 체온은 담요 이상이야.] 
 [나한테 이렇게 친절한 이유는?]
 [누구나 다 그래. 당신은 안 그런가? ] 
  나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하긴,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내 막내가 당신을 좋아하잖아.]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말했다.
 [앞차 있잖아. 거기 가서 한번 물어볼게. 뭔가 있을 수도 있잖아.]
 
[그 여자? 아까 벌써 다 대화 끝났어. 그 여자는 당신보다 더 심각해. 블랑켓도 없고 있는 거라곤 얇은 가죽잠바 하나뿐이야. 더 문제는 히터가 안 나온데.]
 [그건 더 황당하군.]
  돌아가는 꼴이 꼭 내 삶하고 비슷해 보였다. 장난 같으면서도 사실은 심각한데 그래도 끝까지는 가지 않는 이상한 자연의 힘 같은 거, 이를테면 한두시간 후면 도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거 라는 게 일반적인 기대인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고 그렇다고 동태가 돼서 죽어 버리지도 않는 뭐 그런 거,,,  다시 돌아온 그가 군청색 담요를 한장 내밀었다.
 [그러니까 헛소리 말고 이거 갖고 있으라고. 장난 아니야. 몸 온도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 알지?] 
  도로는 점점 더 얼어가고 있었다. 군데 군데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의 대화 주제도 우리와 같이 담요 라는건 분명했다.
 [휴머니스트의 애들 대신에 내가 얼어 죽을 께.]
 
 우리들 몸 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둡지만 눈빛 때문 이었는지 어렴풋이 볼 수는 있었는데 우리는 둘 다 검은 머리였고 이제 산타클로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머뭇거리며 담요를 들고 서있는 그에게 나는 화를 내었다.
 
[빨리 가져다가 애들 덮어 주지 않을래?]
 [얼어 죽을 거라며?] 
 [농담에 그렇게 약해? 나 안 죽어. 열 받아서 못 죽어. 죽어도 나가서 죽을거야.] 
  그는 담요를 다시 자신의 차에 갖다 두고 돌아왔다.
  그가 담배를 꺼내 물더니 눈발 사이로 연기를 날리면서 말했다. 
  [막내가 당신하고 눈싸움하고 싶어 하는데.,, 그런 것도 잠깐 동안은 도움이 될수 있지 않을까?] 
 [이럴 땐 그것도 방법 이라니까.,그놈 예쁘데...그런데 이 시간에?] 
 [걔만 잠을 안자고 있어.]
 
 이름이 다이치 라고 했는데, 왜 히스패닉 아이가 일본계 이름을 같게 되었는지는 모르겠고 좌우간 그 아이랑 반시간 이상을 놀았다. 새벽 한시경이였다. 도로가 막힌지 세 시간 반 가량 지나있었다.  아마도 지 형제들은 전부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으리라. 따뜻한 흰 눈이 내리는 나라를 여행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날 샐 때까지 그러고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이라서 그랬는지 졸리다며 들어가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를 호세의 차에다 데려다 주었다.  
 
[저 눈 처음 봤어요.]
  그때서야 알수 있었다. 왜 아이가 유혹적인 잠을 거부하면서까지 나와 놀고 싶어 했는지를, 
 [예뻐?]
 [네.]
 [얼마나?]
 [많이요.]
  더 이상의 어휘를 구사하기에는 무리인듯 싶었다. 다섯 살 이나 되었을까. 
 [세상엔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단다.]
 [정말요?]
 [응. 그러니까. 오늘은 형들하고 같은 블랑캣 덮고 잘 자는 거다. 알았지?]
 [네.]
   일단 나는 잠을 자고 싶었는데 블랑캣이 없었다. 너무 추워서 내 영혼이 다 떨리는 걸로 생각될 정도였다. 머스탱 잠바로 몸을 대충 가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집에 항상 있어주는 담요가 고마웠다는 걸 처음으로 알수 있었다. 몸의 일부만을 가린다는 것은 아예 없는 것과 별로 차이가 없는 거였다. 
  차의 창문들에 떨어져내리는 눈들은 내부에서 나오는 약간의 열 때문인지 곧 녹으면서 얼음으로 변했고 그때문에 시야는 점점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음들은 갈라지면서 마치 거미줄같은 무수히 많은 선들을 만들어 냈다.
  이런 추위는 경험해 본적이 없다. 결국 추위는 온도보다는 가지고 있는 방어장치의 정도에따라 몸이 반응하는 한 형태의 단위라고 밖에는 설명할수가 없었다.
새벽 한시였고, 차들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했고, 나는 고립되어 있었다. 
  히터를 켰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놀라서 다시 끄고는 그냥 앉아있었다.    
  히터 탓인지 속이 메슥 거렸고 얼굴이 불에 덴 것같이 화끈거렸다. 반시간정도 그렇게 앉아있었다. 기침은 좀 멎었는데 추위가 삽시간에 차 안으로 쳐들어왔다.   
   새벽 두시정도 였는데  더 이상 이대로 있다간 얼어 죽을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좀 걸어 다녀볼 생각 이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듯한 풍경, 도로를 꽉 메운 채 지그재그로 죽어있는 차들, 그 주위를 둘러싼 눈 덮인 검은 산들, 그리고 창밖으로 하얗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눈들,
 
그런 것들은 이제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내 차 주변을 빙빙 돌고 있다가 앞차에서 나온 여성을 만났다. 
 
[제가 좀 심각한데요.] 
  하고 여자는 말했다. 몹시 떨고 있었고 서있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저도 그러네요.]
  입이 얼었는지 말투가 이상했다. 
 
[히터 틀어놓고 있으면 되잖아요.]
 [물론 가끔씩 틀었다 껐다 하죠. 그런데 그렇게 히터 틀어놓고 잠들었다 죽고 싶지 않아서요.]
 [그건 그렇죠. 잠들면 안돼요. 위험해요. 그런데 저는 그나마 그 히터도 안 나와요.]
  여자는 위험해 보였다. 대화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닌 걸로 보였다.
 [일단 이리로 들어와요.]
  나는 여자를 내차의 조수석에 앉히고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저,,,얼어,,,죽을 거,,,같아요.]
  실내등에 비친 그녀의 입술은 파랗게 죽어가고 있었다. 전혀 화장기가 없었지만 눈도 마치 너구리처럼 검게 깊이 들어가 있었다.
 [미안해요 몰랐어요. 나는 내 생각만 하느라고, 정말 정말 미안해요.]
  나는 자켓을 벗어 일단 그녀를 덮어 주고 머리에 덮인 눈을 털어주었다. 그녀는 얼음으로 덮인 호수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막 얼음을 깨고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차 안의 온도가 급상승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그녀의 차를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내차 앞에 가로 놓여 있었으므로 자세히 볼수 있었는데 최소한 십년은 넘어 보였다.
 [근데 어떻게 여기 차들이 다 선거죠?]
  십분 정도나 지났을까, 자든가, 혹은 죽었던 가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여자가 그렇게 입을 열었다. 나는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졸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먼저 입술부터 보았다. 아까랑 달랐다. 핏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좀비 비슷했던 형태가 인간에 많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변화는 바뀌어 진 속도에 복귀가 비례 한다는 게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무릎을 어깨에 닿을 듯이 움츠리고 앉아서 내 털 자켓을 덮고 있었는데 쟈켓이든 히터든 좌우간 몸의 온도를 어느 정도는 되찾은 듯이 보였다.  
 [내 생각엔 앞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났을 거 에요. 느꼈잖아요. 이십 마일 이상 갈수가 없었다는 거. 우린 거의 미끄러지고 있었어요. 그건 운전이 아니라 스키 타는 거였어요.]
 [이십 마일 이 아니라 십 마일로 움직이는데도 미끄러지데요.]
 [그렇죠.]
 [난 한두시간 정도면 빠져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었어요.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미리 당신한테라도 도움을 청했을 거에요.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몸이 안 움직이더라구요. 못 깨어났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고요,,,그래서 정말,,,노력해서 일어났어요. 당신한테 도움 요청 하려고,,,너무 힘들었어요 마치 느낌이,,,내 몸이 다 마비되어 있는 거 같았어요. ]
 [어쨌든 지금은 따뜻한가요?]
 [네. 다시 살아난 느낌이에요. 하지만 살에 감각은 없어요.]
 [발을 이쪽으로 뻗어 봐요.]
 [왜요?]
  몸을 움츠리는 듯 했다.
 [내 말대로 해요.]
  그녀는 내 자켓을 들어 상체를 가리고 내가 앉아있는 운전석 쪽 으로 두 다리를 조심스럽게 뻗어왔다. 입술을 보니까 많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사지라고는 평생 받아 본적도 없고 해본적도 없는 내가 그녀의 두발을 문질러댔다.
 [감각이 평상시처럼 느껴지나요?]
 [아뇨. 너무 얼었었나 봐요. 이상해요. 이러다 발 못쓰게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발음 다시 좋아진 거 보니까, 발도 다시 좋아질거 같네요.]
  그녀가 잠시 미소 지었다.
 [그런데 폐가 더 문제에요 히터 일단 꺼요 충분히 따뜻하지 않나요 우리?]
 [맞아요. 히터, 아니죠.]
 [정말 미안해요. 고맙고요. 발에 느낌이 돌아 오는것 같아요. 아까 당신 만나러 올 때는 아무 감각이 없었거든요.]
 [걸어 온 게 신기하군요. 그래요. 좀 편안하게 누워 있어 봐요.]
  히터를 끄고 자켓을 그녀의 몸 중간에 덮었다. 삼십분 정도 지난 거 같다.
 [전 정말 추워요. 죽을거 같아요. 우리 정말 블랑캣 없는거죠.]
 
[근처에 있는 차들 다 돌아 다니면서 물어 봤어요. 다들 우리처럼 심각해요. 되려 여분 없냐고 물어 보더군요.]
  노출된 다리와 상체가 문제인거 같았다. 나는 그나마 가끔씩 히터를 틀었으므로 그녀와는 상태가 다른 거였다.
 
그녀는 네 시간 가량을 영하의 온도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몸 어딘가에서 이미 동상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화에서나 보았지만 얼어죽은 시체들은 너무 불쌍하게 보였었다.  진눈깨비 비슷한 눈들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었다. 그녀에겐 미안했지만 아름다웠다.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던 그녀가 말했다.
 [꼭 꿈꾸는 거 같지 않아요?]
   이름이 에밀리 라고 했다
 [죽는 꿈이요?]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예쁘게도 보이고,,,]
 [말하는 거 보니까 상태가 좋아지긴 한 거 같네요. 어쨌든 그런 얘기 하고 싶지 않거든요. 눈 속에 갇혀 죽으면 예쁜 건가요?]
 
발보다 뇌가 더 심각한 듯했다. 
 [머릿속에서 상상이 일어나요.]
 [무슨?]
 [필요 없는 상상인지 모르겠는데,,,얼어 죽는 게 어떤 건가 하는 거죠. ]
 [상상하지 말아요.]
 [당신도 그래 보여요.]
 [에밀리 라고 했죠, 우리는 여기서 죽지 않아요. 잠들지 말고, 한 시간 간격으로 히터 잠깐씩 틀고, 그러다 보면 아침오고 해가 뜰거에요]
 [그래야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물론 내 평생 처음 당해보는 일이긴 하지만,,,눈이 왔고, 앞에서 망할 놈의 교통사고가 났고. 우리는 움직일 수도 없고.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견디면 되는 거고,,,] 
 [중요한건 우리에게 블랑캣이 없다는 거죠,]
 
하긴 그녀의 말은 정답이었다. 한 장의 담요가 이렇게 절실할수도 있는 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니까, 나는 조금 화가 나려고 했다. 물론 대상은 그녀가 아니라 하도 많아서 가끔 갖다버리곤 하던 담요에 대한 거였다. 아마 나도 정신이 이상해져가는 모양이었다. 담요에게 화를 내다니,,,
 [같이 안고 있으면 안돼요? ]
  에밀리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도 그게 현재로서는 최선 이라는 걸 부정 할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말했다.
 [우선 잠시 히터 다시 틀죠.]
 [그래요.]
 
그러면서 그녀는 손을 내 볼에 갖다 대었는데 얼음이었다. 나는 그녀의 두손을 모아서 내 가슴부위에 대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더 심각한 부위가 다리 같아서 내 다리로 가능한한 감싸려고 했다. 잠시후 그녀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너무 따뜻해요. 진작에 이럴걸.]
 
[우리가 연인도 아닌데,,,좀 그러네요.]
 
[그런 거 따지고 있는 거 보니까 나보다 심각하지 않은건 확실하네요.]
 
[그런 뜻은 아니었고요.] 
 [체온이 이렇게 따뜻한 건지는 진짜 몰랐네요.]
 
나는 아무래도 어색했는데 그러다보니 트렁크에 준오랑 마시려고 싫어두었던 소주 생각이 났다.
 
[이 상황에 술이 도움이 될까요?]
 
[술이 있어요?]
 
[네, 취해서 잠들면 무슨 일이라도 날까봐 안 마시고 있었죠.]
 
[도움 될거 같은데요. 사실 나도 좀,,,이제 따뜻해져서 그런건지 당황 스럽거든요.]
 
나는 포옹을 풀고 트렁크에서 식스팩 소주가 담긴 봉지를 가지고 왔다. 에밀리는 두손을 계속해서 문지르고 있었다. 눈도 너구리 눈에서 많이 사람 쪽으로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이 술 알아요?]
 
[소주잖아요. 내가 근무하던 데가 윌셔 초등학교에요. 저녁 주로 코리아 타운에서 먹거든요.]
 
[선생 인가요?]
 
[이었지요. 해고 됐어요. 특별히 잘못한건 없고. 예산이 부족해서 늦게 들어온 순서대로 감원이 된거죠.]
 
잔이 없었기 때문에 커피 마시던 종이컵을 소주로 씻어내서 같이 마셨다.    
 [떨어져 있으니까 또 추워지네요. 잠시 히터 틀죠.]
 
그녀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는데 어찌보면 아까에 비해 떨수있는 힘이라도 있는 것 일수도 있었다.
 
그녀는 커피 컵으로 반잔 정도를 거의 원샷으로 마셔 버리더니 쿨럭 거리며 기침을 하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외모에 신경이 쓰일 정도면 좋은 현상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었다.
 
[주정부 예산 부족한건 아는데 그래도 학교 선생 자르는 건 정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 똑같은 얘기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워요. 다른 얘기하죠. 지금 몇시나 됐죠?]
 
시계를 보았다.
 
[세시 사십분이군요.]
 
[배고프죠? 내 차에 먹다 남은 프렌치 프라이 있는데 가져올까요?]
 
[그래요. 그리고 좀 움직여보죠.]
 
우리는 몇분간 차 주위를 빙빙 돌았는데 그녀가 소변이 마렵다고 해서 차 밑에 그냥 보라고 했다. 나는 뒤돌아서 있었다.
 
소주는 두병이 비어 있었다. 세병째의 뚜껑을 열고나서 우리는 다시 끌어 안았다.
 
[이 상태로는 잠들어도 얼어 죽을거 같지는 않은데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포개져 있지 않은 부분이 마치 얼음이라도 닿아 있는것 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가 그럴진데 나보다 심각하게 얼어 있었던 그녀는 어떤 느낌일까, 그녀는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필히 의사를 만나보아야 할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처럼,
 
다시 히터를 켰다. 일분정도 지났을까, 그녀가 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돼요, 시동 꺼요. 이건 추위보다 더 나빠요.]
  나는 시동을 일단 껐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인공보다 자연에 가깝다. 예를들면 한국 어머니가 아기를 포대기에 둘둘 말아놓고 잇을때 그들은 아기를 홀라당 벳기다 시피해서 끌고 다니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장면들이 이상한게 아니라 너무잘 쌓여진 아기가 걱정 되었었다. 혹시 그녀도 그런 습관이 붙어 있어서 히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보았다. 
참 더러운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을 하려다가 참고 일어나 앉았다. 
 [우리 정말 얼어 죽으면 어떡하지?]
  에밀리가 의자 옆에 놓여있던 내프킨을 꺼내 눈 주위를 닦았다. 
 [그건 아닌 거 같고요.]
  에밀리는 다시 소주를 마셨다.
 
[이 술 참 좋아요. 물론 전에도 느낀 거지만, 좀 마셔둬요. 잠 드는거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이 상태면 우리 안 죽어요. 병원에 갈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감각을 잃어버린 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화가 나기 시작해서 입에서 막 튀어 나오려는 상욕들을 꿀꺽 삼켜야 했다. 대신에 부드럽게 말했다. 에밀리는 만난지 두 시간도 안된 상대고 게다가 여자고, 내 감정대로 할 수는 없는 거였다.
 
[아, 정말 여기서 나가고 싶다,,,나 여기서 나가고 싶거든. 정말로 이제는 발까지 다 마비됐어. 에밀리..농담으로 듣지말어요.]
 [뭘요?]
 [일단 빠져 나가요.]
 [어떻게요?]
 [걷자구요.]
  이제 차들은 거의 불들을 끄고 있었다. 그 수많은 차들 중에 시동을 켜고있는 차들이 이제는 몇 대 안되는 것 같았다. 멀리에선가 메아리처럼 차가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랑 같은 상황일 테고, 담요를 차안에 싫고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차 유리는 이제 얼음으로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걸어보자 구요. 도시까지.]
 [다섯 시간 이상 걸려요. 그것도 정상 컨디션일 경우에요. 도로는 빙판이구 우리들 발은 지금 정상이 아니에요. 내가 프레즈노에서 태어났어요. 여기 잘 알아요. 가장 가까운 개스 스테이션이 오마일 정도 거린데 걸어서 간다면 다섯시간 정도에요.]
 [그러니까 걸어서 다시 말해 운동해서 정상으로 만들자 이거죠.]
 [발은 가능한데 도로는 운동으로 어떻게 할수 있는 게 아니에요.]
 [좀 이성적으로 생각 하자구요. 당신이랑 나랑 내 차 안에 앉아 있을수는 있어요. 히터 틀어놓고 있든 꺼놓고 있든 잠들게 되면 시체로 발견 될거라구요.]
 [아니요. 이 상태면 되요. 네시 조금 넘었으니까 세 시간 정도만 버티면 된다구요. 어쨌든 걷는건 아니에요. 그건 더 바보 같은 짓이에요. 대화해요. 소주 마시면서. 그러다보면 아침 될 거에요. 해가 떠오를 거구요 저 망할 눈들도 다 녹아 버릴 거에요.]
 
드디어 그녀의 입에서도 상소리가 나왔다.
 
정말 추웠다. 몸 세포 하나하나에 죽음같은 얼음조각들이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눈 덮인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보다는 춥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움직이고 있으니까, 우린 가만히 앉아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에밀리가 남자였다면, 이런 자세가 가능할까? 만약 호세였다면? 아마 우리는 이렇게 얘기 했을것 같다.‘우리 그냥 얼어죽자.’ 그 얘길 에밀리에게 했더니 그녀가 처음으로 밝게 웃었다.
 
[그런 얘기요. 재밌잖아요. 그렇게 웃다가 보면 이 밤 지나가요. 걷긴 어딜 걸어요.]
 [
거기 가서 맛있는 커피 마시고 싶어요.]
 [거
기 커피보다 이 소주가 더 맛있어요. 발이 많이 이상해요?]
  내가 발을 심하게 꼼지락 거리고 있었더니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었다.
 [발 좀 이리 줘 바요.]
 
에밀리가 내 발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발에 감각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지껄여댔다. 그녀의 부모가 프레즈노에 산 다는 것과 잠깐 그곳에서 쉬면서 다른 초등학교 선생 자리를 알아보려 한다는 것과 엘에이에서 무려 이십 군데가 넘는 학교에 원서를 보냈는데 아무런 답이 없었다는 얘기들을 들었다.
  다섯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춥다 보니까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해보기 위해서 지껄이고 있는 거였다. 나도 한병 이상을 마셨는데 취하지도 않았다. 안주라고는 말라붙은 프렌치 프라이가 다였는데,
 
에밀리는 설핏 잠이든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몸을 공처럼 말아가지고 그위에다가 내 쟈켓을 덮어놓고는 시동을 안건 상태로 히터를 틀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온도는 더 내려가 있었다. 비록 얼어있는 피부지만 느낄수 있었다. 호세가 바깥에서 혼자 폴짝 폴짝 뛰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동작을 멈추고는 담배를 내밀었다.
 
[상태 심각하지?]
 
[나는 괜찮은데, 저 여자 많이 안 좋은거 같아.]
 
[와이프랑 그 얘기 했는데, 당신 없었으면 저 여자 분명히 얼어 죽었어.]
 
[그러게 말이야. 초등학교 선생 이라는데 아무리 정부가 돈이 없어도 그렇지,,,사람을 저렇게 방치 하냐구.]
 
[정부 얘기 하지도 말어. 당신 이 나라에서 히스패닉 얼굴 하고 살아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나 알아?]
 
[몰라.]
 
단호하게 잘라 버렸다.
 
호세는 잠깐 내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운명이라는게 있는데 어려운거라서 당신이 결정할수 없는 것들이 있거든.]
 
또 잘라 버렸다.
 
[나 발에 아무 감각이 없어. 아까 나 걸어올때 봤겠지만, 사실 너무 추워. 죽을거 같애. 그리고 취했어. 복잡한 얘기 싫어.]
 
둘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이제는 조금 줄어들은 진눈깨비들 사이를 헤집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어디 가는 길이었어?]
 
그가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말의 주제를 돌렸다.
 
[프레즈노.]
 
[거기 살아?]
 
[아니 친구 아버지 장례식 때문에.]
 
[담배 피우면 폐암 걸릴 확률 80% 라 그러더라.]
 
[어차피 죽거든.]
 
차 안에서든 밖이던 헛 소리의 연발이었다.
 
[왜 막내 이름이 다이치야?]
 [
내 할아버지가 일본 사람이야. 손자중에 하나만 자기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들었거든.]
 
[그렇구나.]
 
차에 돌아 와보니 히터가 꺼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 시동을 걸어 보았더니 예상대로 걸리지 않았다. 배터리가 다 나간 것이다. 열두시도 되기 전에 이짓을 몇 번 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밖을 내다보니 호세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차피 지금 차를 움직일 것도 아니니까 점프는 나중에 해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차들 중에 점프 케이블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을 리 도 없고,,,
 
새벽 다섯시가 넘었는데도 도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불 꺼진 차들이 하얗게 눈 내린 도시위로 질서 없게 지그재그로 놓여 있을뿐 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불을 켜놓고 있는 차가 많았었다. 그게 하나둘 꺼지더니 이제는 암흑이었다. 마치 차 안에 있는 생물들이 다 죽은 것처럼 보였다.
 
뭐랄까. 죽은 도시 같았다. 아니 죽은 눈 내리는 도로였다. 다음날 엘에이 타임즈는 그날 그 거리에서 다 얼어 죽었다 라는 기사를 쓰기를 바랬다.
 
에밀리는 많이 힘든거 같았다. 더 덮어줄 담요도 없었구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문제는 하체였다. 다리가 길어서 그랬는지 내 코트는 그녀의 상체에 달랑 걸려 있는거 같이 보였다. 에밀리의 차에 가 보았는데 예상 했던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의자 밑의 커버도 망할 놈의 비닐 이었다.
 
에밀리를 깨웠는데 인사불성 이었다.
 
눈발은 다시 굵어졌고 차안의 온도는 영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시동을 켜고 히터를 틀고 싶었는데 차는 길길 거리는 소리만 낼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실내등을 밤새 켜 놓은게 문제 였던거 같다.
 
[미안해 에밀리. 내가 할수 있는게 없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섯시경 이었던거 같은데 에밀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공처럼 말린 그녀를 끌어 안고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체온은 서로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던 모양이다.
 [미안해요. 당신 차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고 갑자기 조그맣게 말이 들려왔을때 난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나는 울고 있었다. 정말이지 죽은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때 울었던 게 도움이 된것 같다. 우는 것도 격렬한 운동의 하나일수 있다고 느낀게 그때였다. 마비되었던 손과 발에 좀더 감각이 돌아왔다. 나는 미친듯이 시트를 뜯었다. 칼이 없었으므로 손톱과 이빨을 사용했다. 적당량을 뜯어낸 나는 그걸로 에밀리의 다리를 덮어주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박스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박스를 사용해서 우리는 앞쪽에 길게 포개져 누워있었다. 물론 허리는 아팠지만 그건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이 세계의 혼돈처럼 엉켜져 버렸다. 결국 내 이론이 맞았다. 나가서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랬으면 이런 어리석은 자세들은 생겨나지 않았을것이다.  한시간 정도 였던거 같은데 우리는 서로의 꿈이 각자에게서 동사해 가는걸 느꼈었던거 같다.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 했을때 나는 일어나서 다시 에밀리의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최소한 그녀는 숨을 쉬고 있었다.
  눈이 우박으로 바뀌어 차를 때리고 있었다.  에밀리는 몸을 꿈틀 대었다. 
 [지금 몸상태 어때요?]
 [모르겠어요. 어쨌든 아침 온거 맞죠?]
 
[그런거 같아요. 움직여봐요. 자 일단. 오른손,,그리고 왼손,,,]
 
그녀는 내가 하라는 대로 따라 했다. 한참을 그러다가 나는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는데 그녀는 제대로 서지를 못했다. 그런 그녀를 부축해서 걸음마를 시키다가 호세 차 문을 두드렸더니 꼬마가 먼저 뛰어 나왔다.
 [밤에 안 추웠어?]
 [엄마가 안아줬거든요.]
 [잘 됐구나.]
 [근데 우리 언제 가요?]
 [나도 몰라.]
  사람들이 차안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는데 꼭 무슨 벌레들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토끼뜀도 해보고 팔굽혀 펴기도 해보았다.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하고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특별히 잘못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시끄럽게 날던 그놈은 반마일 정도 뒤로 내려앉았는데 궁금한 건 이렇게 차들이 널려 있는데 어디에 앉을수 있냐는 거였다. 확인하러 가보기에는 너무 멀고, 어쨌든 그건 결국 그곳에서 무슨 일인 가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호세랑 다시 담배를 피웠다. 에밀리는 다시 내 차안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면서 내 자켓을 뒤집어쓰는게 보였다.
 [참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일 생기면 황당해.]
 [어디서 태어났어?]
 [멕시코시티.]
 [여기가 살만해?]
 [선택의 여지가 없을뿐이지.]
 [나도 그런거 같어.]
 [저 여자 괜찮아?]
 [어, 괜찮은거 같애.]
 [당신이 참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 같았겠다.]
 [아니 내가 고마워. 체온이 그런건지 진짜 몰랐어.]
 [연애를 했구만.]
 [그랬으면 나도 좋았겠다.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는 담요를 가지고 있던 당신은 상상도 못 할거야.]
 [아 정말 미안,,,당신이 담요 하나 가져갔어도 정말 괜찮았었는데,,,]
 
[미안은 무슨, 다들 잘 견뎠는데,]
 
 그가 웃었다. 다이치가 다시 눈덩이를 들고 나타났다. 무슨 꼬마가 저리 잠이 없을까, 가만 들여다보니 일본인 피가 섞이긴 한거 같았다.
  밤새 너무 고생을 한 탓인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십 일 세기 어느 날엔가 다이치 라는 사람의 장례식이 있을 것이다. 그 장례식에 참석 하려다가 죽을 뻔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꼬마를 상대로 너무 끔찍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늘상 그렇듯이 진리라는 건 하나니까,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거,
 
나는 다이치랑 잠시 놀아 주었는데 발이 불편해서 쉽지가 않았다.
  마침 호세가 점프 케이블을 가지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내차의 시동을 다시 켤수 있었다.
 
에밀리가 다리를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나는 히터를 켰다.
 
[우리 안 죽었네요?]
  하고 그녀는 피곤한 기색으로 웃었다.
 
[술은 깼나요?]
 
[취하지도 않았었어요.]
 
[둘이서 네 병을 마셨어요.]
 
[눈이 마신 거 에요.]
 
[그런가 보죠.]
 
그후로 우리는 서로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앗다. 살아났다는 뜻이었다. . 해는 나오지 않았다. 심술궂은 구름이 해와 우리의 만남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해는 그 강렬함으로 구름을 뚫고 우리의 피부에 온기를 전해주었다.
 
산위라 그런지 핸드폰이 사용불능 상태여서 준오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분명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였다. 마지막 통화가 저녁 여덟시 였는데 그 후로 사라져 버렸으니,,,
 
여덟시 경에는 호세가 가져다준 과자로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앞쪽에서 다가온 중년 남자가 앞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 주었다. 일마일 정도 앞쪽이라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과일 실은 컨테이너 한대가 미끄러지면서 도로를 가로질러 서게 되었고 따라오던 다른 컨테이너가 들이 받았고 또 그 뒤의 컨테이너가 들이받고,,,물론 속도들이 느려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대략 대여섯 개의 컨테이너가 그렇게 포개져 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뒤쪽에서 두명인가 얼어 죽었다는 소식도 전해 주었다.
  아마도 헬리콥터는 그래서 온 모양이었다.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에밀리의 손을 내가 만지고 있었다.
  연인 사이도 아니었지만 서로 너무 황당한 경험을 하게되다 보니까 손 정도 문질러 주는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되었다.
 [당신 없었으면 얼어 죽었을 거에요.]
 
[그건 내가 할 소리구요.]
 
[엄마 말을 진작 들을거 그랬어요. 사실은 직장 없어진게 삼개월 전이거든요. 뭔가 찾을수 있을거라고 생각돼서 계속 엘에이 있었던 거구요.]
 
[이제 돌아 가는 건가요?]
 
[잠시 쉬러 가는거죠.]
 
[쉬러 가는 길이 험하네요.]
 
그녀가 지난밤의 눈처럼 우울하게 웃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열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나는 내 손과 발을 곰곰히 살펴보았다. 열두시간을 잘 견딘 내 수족이 거기에 있었다.
  혹시 삶이란건 그런거 아닐까. 몇천년전에 얘기했던것처럼, 생각한다는것 자체가 오류인,것, 그럴것이다.
 내몸의 느낌을 다시 가져오기 시작했다. 왠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삶이란게 그렇게 치열한 것이었는지를  처음으로 느껴본거 같기도 했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호세와 함께 에밀리의 차를 잠시 점검해 보았다. 오래된 차이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나는 다리가 너무 불편해서 제대로 걸을수가 없었지만 호세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했다.
 
에밀리를 차에 태우고 시동이 걸린 걸 확인 한다음 ‘바이’ 라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을때 가슴이 먹먹해져서 뭔가 말을 하고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우리는 십초 정돈가 그렇게 마주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쳤던것 같기도 하고, 
 [다이치.]
 [네.]
 
[눈 예쁘지?]
 
[네.]
 
[그것보다 더 예쁜 것들도 많아.]
 
나는 호세와 그 가족들에게도 ‘바이’ 라고 말했다. 운전하면서 뭔가 가슴이 너무 허전해져서 잠깐 울었다. 고통과 죽음과 슬픔 이라는건 결국 비슷한걸까?
 
산을 내려오기가 무섭게 준오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괜찮니?”
 
“응.”
 
“어제 뉴스 다 들었는데 너 거기 갇혀있었지?
 
“응. 근데 괜찮어. 열시간 이었는데 뭐,,,”
 
“나 어제 너 땜에 거기 갔었어. 근데 다 막혀서 들어 갈수가 없었어.”
 
“괜찮다니까. 장례식 오늘 세시잖아. 그때까지 갈 수 있어. 소주도 두병 남았으니까,,,하루 더 있지 뭐,,,”
 “그건 또 무슨 얘기야?”
 
“별 얘기 아니야. 두 시간 정도면 도착 할거 같다.”
 
그냥 한 가지 알수있는것은 그 산이 그리고 지난밤이 내 가슴속에는 죽을 때까지 남을 것이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