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

 

   삼촌이 처음 그 얘기를 했을 때 지민은 티브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새벽 네 시에 신문을 돌리는 소녀가 있다는 얘기 같은 거는 좀 많이 들어본 소설 속 얘기 같기도 했고, 특히나 삼촌은 엉뚱한 데가 있어서 별로 믿음 갈 만한 얘기를 하는 적도 없고,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난다음 지민이 샌디에고 에서 일끝내고 돌아 왔을 때가 새벽 네 시 이었는데 그의 집 앞에 흰색 도요타 승용차가 한대 서더니 갑자기 예쁜 소녀가 차문을 열고 나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봉지에 쌓인 신문을 다섯 개 정도 각각 다른 담 위로 집어던지고 사라지는 걸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주위는 까맣고 소녀만 하양 이었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꼭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달빛 때문 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녀가 신문을 던질 때 잡아당겨진 소매 사이로 드러난 팔목은 너무 희고 아름다웠다. 아마도 그녀는 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차를 주차장에 넣고 걸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어둠속에 서있었으니까, 지민은 그날 잠을 못 이루고 인터넷 들여다보다가 일곱 시가 됐고 삼촌의 모닝커피 테이블에 나가 앉았다. 삼촌은 그 소녀가 던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새벽에 들어온 걸로 아는데 안 잤냐?”

 “응. 잠이 안와서.”

  숙모는 계란프라이를 이 인분을 만들어 왔다.

 “베이컨 좀 구워 올까요 우리 미니 도련님?”

  그녀는 그를 꼭 미니라고 불렀다. 그의 마지막 이름이 ‘민’ 인데 부르게 되면 미니 혹은 미나가 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알아오다 보니까 그게 입에 밴 것 같았다.

 “아니 괜찮아요. 고마워요. 근데 삼촌.”

 “응.”

  그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나 그 신문 돌리는 소녀 봤다.”

  그제 서야 삼촌이 신문에서 눈을 떼고 지민을 쳐다보았다. 빙그레 웃었다. 

 “예쁘지?”

 “아니. 예쁘다는 표현은 그렇고,, 왜 그때 삼촌이 그랬잖아. 예술적 이었다고, 난 그때 또 술 마셨군, 하고 생각했었는데,,,”

 “넌 그게 문제야. 이 삼촌 말씀을 고작 술주정으로만 생각하다니,,,”

 “사실 그렇잖아 그 시간에 신문 돌리면 다 아저씨거나 아니면 아줌마여야지. 그게 먼일이래. 오늘 들어오다가 봤어. 참 기분 묘하데.”

  삼촌은 신문을 접어 옆 의자에 내려놓더니 씩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민아, 내가 보기엔 말이야. 너랑 잘 어울려 보이던데 우리같이 힘 합쳐서 한번 꼬셔볼래?”

 "무슨 얘기에요?”

  옆에 앉았던 숙모가 끼어들었다. 삼촌은 간략하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 주었는데 숙모는 감탄을 하며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어머나, 세상에, 요즘 젊은 여자 아이들 돈 쉽게 벌려고 혈안인줄 알았는데,,,세상에 그런 애들도 있구나.”

 “에이 무슨 말이에요. 다수가 건전하죠. 일부가 이상한데. 그런 애들은 눈에 띄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구요.”

  지민의 말에 삼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쓸데없는 말 말구. 너 나랑 작업 들어갈래 말래?”

 “뭘 어떻게 하자고요. 또 허황된 소리 하려고.”

 “얌마. 이건 그게 아니잖아. 생각해봐라. 그 한국계 신문 아침에 두 시간 정도 돌려서 한 달에 육칠 백 불 벌어서 생활비에 보태 쓰는 건데, 그럼,,,”

 “다음은 내가 얘기할게. 유학생이고 한국에서 오는 돈이 넉넉지 못하고.”

 “잘 아네. 그리고 생각 건전하고 예쁘고. 넌 애인 없고. 딱 이잖니?”

  삼촌은 덧붙였다.

 “몇 살 정도로 보이디?”

 “글쎄 이십대 초반 이라는 거밖엔,,,”

 “그러니까 인마. 생각해봐. 너 스물여섯이잖아. 영주권 있고. 니 맘먹으면 시민권 아무 때나 딸 수 있고. 그러니까 저 어여쁜 애가 새벽마다 저런 노동을 안 해도 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 라는 이 삼촌의 심오한 말씀이시다 라는 거다.”

  숙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그 남녀 문제가 무슨 시민권이나 영주권하고 관계가 있을까?”

 “어느 정도는 있어.”

  삼촌은 계속 주절주절 떠들어 댔는데 지민이 그를 저지했다.

 “근데 말이야 삼촌. 내가 새벽에 본건 일종의 아트 였는데,,,이런 대화는 좀 아니다.”

 “앱스츠랙도 있는 거니까.”

 “그럼 우리 미니 도련님 사랑 찾아 가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재밌게 말하는 숙모 얼굴에서 지민은 뭔가 다른 느낌의 그림자를 언뜻 볼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니 눈에 걔가 환상으로 보였다 이거잖아.”

 “응.”

 “얘기 끝났네. 작전 짜자. 일단은 나 출근해야 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저녁에 다시 뭉치는 거다.”

 “응.”

  삼촌이 나가고 난 다음에 지민은 잠이 들었다. 오후 두시에 잠이 깼는데 깨기 바로전의 꿈속에서 그 소녀는 신문 뭉치로 그의 머리를 톡톡 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민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 소녀가 들어와 있었던 거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소녀라,,,

  저녁 여덟시 경 이었는데 삼촌은 말했다.

 “일단은 새벽 네 시에 일어나라, 우연처럼 마주치라고. 일불짜리 내밀면서 신문하나 보면 안돼요. 하고 말하라고. 알아들었어?”

 “응. 근데 그다음엔?"

 “일주일 있다 또 해.”

 “그리고?”

 “얌마 말이 많어. 내가 하라는 대로해."

  맞는 것도 같긴 한데. 지민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삼촌의 정신세계엔 뭐가 들어 있을까, 나이 사십 넷, 아빠한테 찍혀서 엘에이로 도망 온 낙오자. 물론 그 소녀 얘기는 삼촌 말이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경험은 어딘가 너무 감성적인 삼촌 때문에 고생을 해본 기억이 몇 번인가 있었다는 거였다. 너무나 이성적인 것만 중요시하는 아버지와 삼촌의 관계가 이렇게 된 진짜 이유를 지민은 잘 몰랐다. 그건 어른들의 얘기니까. 하나 아는 건 아버지가 지민 이에게 전화를 하게 되면 삼촌 어떻게 지내나 잘 감시 하라는 거였다. 지민은 그 말이 끔찍하게 싫었었다. 삼촌은 밤에 가끔 피아노를 쳤고, 주로 쇼팽이었는데 그런 세계를 아버지가 이해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 'deer hunter.' 에서는 처참한 베트남의 전쟁터가 나오기 바로 전에 쇼팽의 피아노곡이 흐른다. 지민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를 그가 보게 되고 좋아하게 된 것도 삼촌 때문이다. 십대 중반 때 어머니와 함께 엘에이로 와서 삼년간 살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삼촌은 언제나 지민의 옆에 있었다. 지민이 아기였을 때 자기 손으로 기저귀를 갈아준 적도 있다고 사람들 있는데서 떠벌인 적도 있었다.

  지민이 어릴때 그는 언제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 삼촌이 지금은 식당을 하고 있다. 멕시칸 식당인데 타코 브리또 팔면서 뭘 어쩌자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그가 치는 피아노 소리 한 번도 들어보지를 못했다.

  숙모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삼촌에게서 들었다. 하지만 지민은 아직까지 꾀꼬리를 본적이 없어서 숙모가 그 꾀꼬리하고 비슷한지 어쩐지는 몰랐지만 몇 번인가 집에서 삼촌 술자리에 끼었다가 숙모의 노래를 들은 적은 있었다. 숙모는 'you raise me up' 을 가끔 불렀었는데 지민은 숙모가 사라 브라이트먼과 비슷한 음색을 가졌다고 생각 했었다. 물론 그녀가 몇 살 때 녹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날 아침에 삼촌이 물었다.

 “오늘 아침에 네 시 일어났니?”

 “아니.”

 “너 걔 꼬시고 싶다며.”

 “삼촌이 꼬시라 그런거지.”

 “같은 얘기거든.”

 “그럼 어떻게 하라고.”

 “얘기 했잖니. 무조건 마주치라고. 일주일에 한번 정도가 좋아.”

 “알았어. 근데. 나 감정 상하는 거 너무 무서워.”

 “어린 자식이 하는 말투하곤,,,”

  처음 보는 넥타이를 맨 사람이 집 앞에까지 와서 숙모를 내려 주는걸 보고 지민은 놀랐는데 그건 벌써 두 달 전 이야기다. 그 후로 그런 장면을 몇 번 더 보았는데 그 얘기를 삼촌한테 할 수는 없었다. 지민은 그때 집에 들어올 시간이 아니었는데 급한 서류를 하나 가지러 왔다가 목격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날 숙모는 그가 집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을 것이다. 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장면을 또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그때랑 달랐다.

  망설이다가 결국 집고 넘어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숙모 그 남자 누구에요?”

  하고 물어보았다. 우려했던 말투, 사실은 듣고 싶지 않았던 그 억양이 고스란히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도련님이 알 필요 없는 사람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을 텐데, 이런 경우 더 멋진 말은 없는 것일까, '같은 회사 사람이에요' 정도의 답을 지민은 기대했었던 것 같다.

 “물어보는 것도 안 되나요?”

 “알 필요 없다니까요.”

 “알아야겠다니까요.”

  지민은 숙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른들 일에 너무 끼어드는 거 아니에요.”

  하고 숙모가 말했다.

 “저도 어른이거든요.”

 “아니,,미안한데,,”

 “미안할 필요 없고. 그 남자 누구에요?“

 “같이 음악 하는 사람이에요. 그냥 정신적인 교류는 좀 있죠.”

 "무슨 관계냐고 물어본 건 아닌데요."

  숙모가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숙모는 슬픈 눈을 가졌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냥 클라리넷도 불고 곡 만들고 하는 사람이에요. 음반하나 녹음 하고 있는데 노래는 내가 부르죠. 더 나이 먹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고.” 

 “우리 셋이 식구잖아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하고 싶어요?”

  삼촌이 불쌍해지네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않았다.

 “아니요.”

  숙모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위에 올려져 있는 오른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저 한 테는 삼촌하고 숙모밖에 없어요. 그게 잘못되면 전 어떡하라고요."

 "같은 악단 소속이에요. 지금은 벌이가 있어야 되니까. 카페 에서 피아노 치고 난 노래하고."

 "돈이 생기나요?"

 "음반 녹음은 나한테 중요해요."

  결국 말해버렸다.

 "삼촌 불쌍하지 않아요?”

  한참 후에 숙모는 대답했다.

 “내가 더 불쌍해요.”

  지민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길가다가 나이 들어 보이는 홈리스를 만나면 일불짜리라도 꼭 건네주고야 마는 착한 심성을 가진 여자다. 누군가가 불쌍한 상황에 처한다면 그걸 모를 일도 없고 느끼지 않을 리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남녀관계만은 일반적인 감성에서 예외 되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불쌍하다는 것은 절실함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감정일수 있을 것이다.

 “도련님이 모르는 게 있어요. 알 수도 없고 알아서도 안 되고요.”

  한 달 전엔가 어스름 저녁의 막바지 태양빛 밑으로 차가 들어왔을 때 그들은 내려서 입맞춤을 했다. 아마도 그 얘기를 하면 숙모는 ‘뽀뽀는 강아지한테도 하거든요.’ 라고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할 말이 없을 때는 그런 거니까, 강아지한테만 하겠는가, 악기에게도 하고 꽃에게도 하지, 하지만 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할 줄 아는 상대는 의미가 다르다. 지민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끝난 얘기라는 거, 가벼운 입맞춤, 삼촌에게는 너무나 쓸쓸한 그 의미, 다만 확인을 좀 하고 싶었을 뿐이다. 삼촌이 불쌍해서, 하지만 사실은 아무도 상대방의 실존에 관해서 모른다. 같은 집에 오랫동안 살았을 뿐이지 실은 숙모에 대해 그도 모르는 것이다. 그림자만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그림자만 가지고도 행복을 느끼기도 하니까 삼촌은 어쩌면 아주 사라져버리지 않은 그 그림자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십년을 넘는 시간동안 둘 중 한명은 지겨웠을 것이고 한명은 두려웠을 것이며 그러다가 한 명은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을 뿐일 것이다. 이상한 것은 없다. 만남과 헤어짐은 아마도 친구 관계일 것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친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아파하는지는 관심도 없는,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지민은 그 소녀를 잊고 있다가 잠들기 전에 잠시 떠올리고 했다. 하얀 팔, 너무 여름이 빨리 찾아왔는지 새벽부터 더워서 옷 다 벗고 자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세 시경 이었다. 그는 가벼운 복장으로 거리에 나가서 앉아있었다. 네 시에 그 소녀가 나타났다. 그는 일불짜리를 하나들고 그 소녀에게 말했다.

 “신문 하나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러세요. 돈은 안 주셔도 돼요.”

 “아니 그러면 안 되죠. 가판대가 좀 멀어서,,,운동 삼아 걸어가는 것도 좋긴 한데,,,”

  지민은 많이 떨고 있었다. 이런 용기가 자신한테 있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그때 그 소녀의 팔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을 거야, 아마도 문신 같이,

  지민은 그녀의 손에 일불짜리를 들려주고 신문을 한부 얻었다. 그 소녀는 신문을 주고 가려고 했다.

 “잠깐요. 내가 여기서 기다린 게 일주일인데요.”

 “네?”

 “그대한테 관심이 많다고요.”

  소녀가 동작을 멈추고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일주일동안 한 번도 못 봤는데. 무슨 일주일을 기다려요? 보름 전엔가 어둠속에 서 있던 거 본 기억은 있고요.”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일주일동안 계속 신문 돌리는 소녀 생각만 했다는 거죠.”

  소녀는 잠시 웃었다.

 “그럼 계속 생각 하세요. 저 바쁘거든요. 그리고 더 중요한건 일불 아니고 칠십오 전 이에요.”

  그러면서 그녀는 지민에게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니까 삼촌. 일단은 여기까지야.”

 “음 훌륭하다. 잘했어. 내일 또 기다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일불짜리 하나 내미는 거야. 그럼 신문 한부 줄 거고 그냥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만 있어.”

  숙모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에 지민은 다시 그 소녀를 기다렸다. 삼촌이 말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근 보름간을 지민은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 신문 돌리는 거나 도와주시던가.”

  보름 만에 그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지민은 그녀가 가리키는 건물로 그녀가 건네주는 신문들을 집어던졌는데 그녀처럼 잘 날아가지가 않았다. 옆에서 그녀가 웃었다.

 "무슨 남자가 그래요."

 지민의 생각엔 삼촌의 작전이 잘 맞아 떨어진 거 같았다. 그는 어쨌거나 새벽 데이트를 하고 있는 거였다.

 "일끝나면 나랑 집에서 커피 안 마실래요? 정원이 넓고 좋거든요 파라솔도 있어요."

 "여자 꼬실 때 항상 그렇게 하나보죠"

 "처음인데요."

 "삼십분 정도면 끝나요. 다시 올게요."

 "아니 내가 따라다니면서 도와줄 거라니까,,,"

  지민은 그녀가 대답도 하기 전에 그녀의 차 조수석에 타 버렸다. 차는 피코 길을 따라 돌았다가 4th 길로 꺾어졌다. 그는 새벽의 로스앤젤레스가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었다. 로스앤젤레스의 길들은 항상 엄마가 운전하는 차 속에서 학원으로 향하는 길들이었다. 별다른 느낌도 없고 가로수들만 길옆에 푹푹 박혀있는 거리, 물론 가끔은 삼촌의 차에서 숙모의 생음악을 듣기도 했었는데 그때만 조금 그럴듯해 보였었다. 그런 거리가 지금 모습이 바뀌어 잇었다. 그는 그녀가 가리키는 건물들 쪽으로 열심히 신문을 집어 던졌다.

 "나 지민이에요."

  그 소녀가 다시 신문을 한 웅큼 들고 일어서려다가 대답했다.

 "선영이에요."

 "사실은 삼촌이요."

  그는 삼촌의 작전 얘기를 다 해줬다.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삼촌 재밌으시네요."

 "네, 원래 음악 하던 사람인데,,그런 쪽 사람들이 그렇듯이,,좀 너무 자유로워요. 제 아빠는 되게 엄격한 사람이거든요. 삼촌은 막내 동생이구요."

 "그래요?"

 "대마초 사건에 연루됐어요."

 "어머나."

 "재판 끝나고 창피하다고 아버지가 삼촌 엘에이로 보내 버린 거죠. 숙모도 당시 음악 같이하던 여자였어요. 노래 엄청 잘 불러요, 별 얘기 다하네,,,"

  한 스무 군데의 집에 지민은 신문을 집어던졌다.

 "이거 재밌는데요."

 "커피 잘 타요?"

 "음,,, 아주 잘 타죠."

  한두 시간을 같이 다닌 탓인지 소녀는 많이 풀어져 있었다.

 "고마워요. 사실 대화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새벽 여섯시, 커피 두 잔과 함께 도시가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시간에 그들은 파라솔 밑에 같이 앉아있었다.

 "고맙긴 내가 고맙죠. 좀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있죠 가끔씩,,,이 경우가 그런데, 한 이주일 전이었나. 샌디에고 갔다가 새벽 네 시에 집에 들어왔는데,,,그때,,처음 봤어요..뭐랄까, 신선해서,,,충격적이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소녀를 봤거든요. 그 기억 안 없어질 것 같아요."

  소녀가 웃었다.

 "저도 기억나요. 어둠속에 사람이 서 있어서 무서웠는데 언뜻 보니 무서워할 사람은 아니었고요."

 "그런 상태를 뭐라 부르더라,,,모르겠고. 처음 봤을 때 나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일종의 쇼크 상태."

 "왜요?"

 "달빛에 비친 팔목이 너무 희어서요. 솔직히 새벽에 그러고 다니기에는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지 않아요?"

  또 웃었다.

 "안 어울리는 게 어떤 것들일까요. 그리고 저 잘 안 씻어요. 별로 하얄 거 같지 않은데."

 "하얘요 아니 투명해요."

  지민의 삼촌은 그 시간에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연을 가장하고 정원으로 나오다가 그들을 보고 놀란 척 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냥 들어가 줄래 삼촌?"

  

  그날부터 지민에게 세상은 장밋빛 이었다. 그는 새벽 네 시마다 그녀를 기다렸고 그녀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장미는 여러 가지 색깔을 갖는데 그 중에서 지민에게 나타난 색깔은 흰색 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녀의 팔이 흰색 이었으므로, 같은 일들이 몇 달째 반복되었다. 숙모가 그 넥타이의 남자와 같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지만 그 장소에는 소녀가 대신 나타났다. 지민은 그녀를 위해 신문을 던져 주었고 시간이 지나자 익숙해져서 던지는 신문들은 정확하게 그가 원하는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소녀도 그러는 그가 좋았는지 새벽마다 정확한 시간에 지민의 집에 도착했다. 지민은 하루 좀 짓궂은 실험을 했다. 몇 달간 그렇게 새벽 데이트를 한 다음 이었다. 일부러 밖에 안 나가고 창문으로 내다보고 있었는데 소녀는 신문을 다 집어던지고 나서 떠나지를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때 얼른 뛰어 나간 지민은 처음으로 소녀의 볼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어떻게 하나 보려고 일부러 안에 있었어."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음을 알고 싶어서."

  인형 같은 눈으로 그를 바라만 보았다.

 "너무 모르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어서."

 "나 아까 슬펐어요."

 "미안."

 "뭔가 설명은 못하겠는데. 너무 허전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


  룸살롱이었는데 지민은 할 일이 없어 술잔만 들었다 놨다하고 있었다. 심하게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옆에 앉아 있었고 정현 이는 그 여자 중 한명의 어깨에 팔을 얹은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지민은 물어보았다.

 "형 이런데 자주와?"

 "아니. 몇 달 만에 오는데."

  대마초 말은걸 담뱃갑에서 꺼내더니 한번 깊이 빨고는 지민에게 내밀었다. 지민은 불편했지만 거절했다.

 "난 아닌 거 같아서,,, 갈께."

  열 시경에 지민이 들어왔을 때 그들은 이미 취해있었다.

 "그럼 뭐 하러 왔냐?"

 "불렀으니까 왔지.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옆자리 여자가 지민의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가슴을 다 드러낸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

 “뭐가 아니라는 거지?”

 “그냥 아니라고,”

  그는 일어섰다. 한국식 문화라는 건데, 뭐 각 나라마다 문화가 있는 거니까,  

  물론 지민도 실수하고 있었다.

   여자 애가 문을 열고 나갔다.

  정현이 옆에 앉았던 여자가 지민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른 이유는?"

 “공돈이 생겨서 쓰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게 있어야지. 니 생각이 젤 먼저 나든데.”

  위스키를 연거푸 두잔 마시고 나니까 몸이 뜨거워지면서 마음이 조금 푸근해졌다.

  옆에 앉은 여자가 그의 볼을 슬슬 만졌다. 지민은 그 손을 슬쩍 밀어내고 다시 한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육가에 있는 우리 잘 가는 술집 있잖아. 거기 가면되지,,,”

 “왜 이런 덴 오면 안 돼?”

 “여긴 술을 마시는 데가 아니라 모르는 여자들 앉혀놓고 잘난 척 하는데 아냐?”

 “얘 또 시작이네.”

  반시간 가량 지민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정현은 많이 취해보였다. 그의 친구 C 가 나타나고 또 처음 보는 누군가가 나타나고, 또 누군가가 나타나고 여자들은 들어왔다 사라졌다 하고,

  그때 정현이 얼굴을 지민에게 바짝 갖다 댔다.

 “난 니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어. 졸부 아버지 덕에 꼴값 떠는 망나니로 생각하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고 지민은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말했다. 혀가 많이 꼬부라져 있었다.

 “지민아. 너 이런 생각하고 있지. 여기서 쓰는 술값이면 어느 나라에서 굶는 애들 수백 명을 먹일 수 있다고, 맞지?”

 "그런 생각 안했는데.“

 “그럼 그전에 했다 그러고, 지민아, 너 돈이 뭔지 아니? 소화액 같은 거야. 어디로 가든 다 녹여 버리는 거, 여러 가지가 녹지, 자꾸 써대는 사람만이 선한 사람이라는 걸 니가 몰라서 그래. 쓰는 장소? 아니지, 잘 생각해봐. 진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게 뭔지 아니? 배고픔이 아니야. 자존심 상하는 거지. 돈 몇 푼 쥐어주면서 자기만족이나 얻으려고 하는 것들을 나는 경멸해. 그리고 울 아버지 졸부 아냐. 내가 스무 살 넘어서 가져간 돈 전부 장부에 적어놓고 있거든,”

  C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그를 달래서 뒤로 눕혀놓고는 지민에게 말했다.

 "니들은 대체 왜 그러냐? 뭐가 그리 따질게 많아? 친한 척은 더럽게 해대면서. 난 솔직히 너도 맘에 안 들어. 저 새끼야 그렇다 치고. 넌 또 뭐가 그리 잘났어? 솔직히 제대로 돈 벌어본 적 없잖아. 부자 아빠 덕 보는 건 둘 다 마찬가지 아냐?"

  지민은 술잔을 꽉 잡았다가 슬며시 놓았다.

 "형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나 천불도 안 되는 거 벌려고 일주일에 수십 시간 다운타운에서 박스 날러."

  뒤로 등을 눕혔던 정현이 상체를 앞으로 세우면서 말했다.

 "넌 돈이 절실하게 필요해서 그거 하는 게 아냐. 스스로의 만족감 채우려고 하는 거지. 넌 진짜 절실 하다는 게 뭔지 몰라. 웃음 파는 애들이 어찌 보면 더 절실한 거야."

 "그렇다 그럴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밴드로 보이는 이인조가 악기를 메고 들어오다 말고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지민은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이 차갑고 기분 좋았다. 선영이도 역시 자기 만족감을 채우려고 신문을 돌리는 건가 그럼, 그럴 수도 있지, 그나저나, 그냥 가 버렸다간 소위 우정이라고 불리던 것에 금이 갈 것이다. 그런 일을 원하진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리 중요할 것도 없고 심각한 일도 아닌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내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느냐 안 받느냐 하는 것이지 다른 것들은 기준이 모호하다. 어떻게 돈을 벌어 어떻게 살아가든 그것은 그들이 결정할일이고 그런 행동들에 대한 결과들도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것이다. 계산된 행동들일 뿐이다. 다시 돌아온 지민은 한잔을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솔직히 말하면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자에게 팁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주고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왜 갈려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정현이 물었고 지민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새벽에 나가야 돼서."

 "아무런 계산도 할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나가,"  

  지민은 주머니에서 백 불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 테이블위에 놓고 일어섰다. C가 따라 나왔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도 따라 나왔다.

 "별이 많네요." 라고 여자가 말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C가 물었다.

 "청첩장 받았냐?"

 "응. 그러니까 오늘 무슨 배출러 파티 같은 거라도 하려는 거야?"

 "대충, 그랬던 거 같은데,,,"

 "나 때문에 산통 다 깨졌다 그거네,"

 아가씨는 끝까지 따라 나왔다.

 “그래도 놀았으면 그 값은 주고 가셔야죠.”

 “돈 더 이상 없거든요. 그리고 누가 놀았다고요?”

  C가 그러는 아가씨를 불러서 데리고 들어갔다.

   다시 넥타이가 숙모를 내려 주었을 때 지민은 집에 있었다. 커튼 사이로 슬쩍 내다보고나서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한 달일까 두 달일까 혹은 몇 년일까, 여자는 무섭다. 아니 사람은 무섭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대화를 할 때도 그들은 속에 있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비밀 이라는 필터를 건너간 단어만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그동안의 숙모의 행동은, 따라서 말들은, 다 거짓이었다. 따라서 말은 커피와도 비슷하다. 본질은 필터위에 구차스럽게 남게 되고 향기만이 입술을 향해 빠져나간다. 또한 말은 피아노 연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불협화음을 안 내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숙모가 지민의 방문을 노크했다. 달빛이 여느 때보다 차갑고 희었다. 차가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가 집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커튼 사이로 내다보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도련님. 참 하기 힘든 얘긴데요.”

  지민은 가만히 있었다.

 “저 자유스러워 지고 싶어요."

  지민은 한참을 가만히 뭔가 생각하는 척 했지만 사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얘길 왜 저한테 하죠?"

 "삼촌한테 할 수가 없어서요."

 "하세요."

 "이혼하고 싶어서요."

 지민은 이번에는 어떻게 말할까 잠시 생각했다.

 "새는 날아가기 전에 아무 말 안 해요. 그냥 날아가고 싶어서 가는 거거든요."

  정말로 밖에서는 새가 날아가는지, 혹은 달이 도시에 내려와 옷자락이라도 끌고 돌아다니는지 서걱 서걱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옆집 고양이가 나무를 탈 때는 가끔 그런 소리가 난다.

 "하긴,,,그런 대답 외에,,,어쩌면 내가 도련님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고 지민은 생각했다.

 "삼촌한테 말을 전해 달라 그런 뜻인가요? 해 드리죠. 뭐가 어렵겠어요."

  다시 한참을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었다.

 "사실 그것보담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누구한테요?"

 "도련님한테요."

 "삼촌 한 테는요?"

 "그런 거 있으면 직접 말할 수 있겠죠. 아무렴 그런 말을 전해 달라 하겠어요."

  이사를 나가겠다는 건가요? 하고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불현듯이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물어보았다.

 "혹시 돈 얘기 같은 건가요? 그런 말이면 아마도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숙모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실망스러운 대화가 될 줄은,,,"

  사과도 아니고 변명도 아닌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당황한 탓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게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속마음 이었다.

 "대개 남녀관계는 일반적인 룰로 재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죠. 하지만 진짜 남을 배려 한다는 건 그런 감성들까지도 다 포함시켜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것을 뜻하는 거 아닌가요? 당해보지 말고는 판단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다시 또 침묵이 찾아왔다. 서걱거리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전에 말한 거 같은데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고."

 "대체적인 도덕적 잣대를 갖다 대도 통과될 수 있는 그런 상태, 다만 제삼자에게는 말하기 곤란한, 그런 건가요?"

  다시 또 침묵, 한참 후에 숙모는 말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한 십년정도,,,그때 다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난 이렇게 말할 거예요. 결정이 너무 늦어졌노라고, 삶은 예상하던 것보다 짧고 약간의 용기라도 있으면 앞에 있는 문은 빨리 열어보라고, 배려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데요,,,하지만 그것도 이런 상황에 적절한 표현은 아니에요. 더 정확히 고백하자면 아주 마음이 뜨거웠던 시절은 아주 짧았던 걸로 기억하고요. 다음에는 의무감이었고 다음이 배려였던 것 같고 다음은 연민이었던 것 같군요. 시간이 흐르고 더 흘러서 그 배려와 연민으로 보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어쩔까요. 그런데 그런 시간도 지나버렸어요. 그냥 나쁜 년이 되고,,,."

  거기서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을 것이다. 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불행해질 거예요.”

  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하고 이어서

 “그래서 제가 마음이 아픈 거예요.”

  라고 끝을 맺었다.

 “그러리라고 생각해요. 후회하게 되겠죠. 또 말하지만 삶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네요. 아,,,도련님이 아직 어리죠. 불행이든 행복이든 곧 끝나겠죠. 다시 한 번의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쨌든 정지되어있는 상태보다는 나은 거거든요. 후회가 찾아오겠죠. 도련님은 삶이 뭐라고 생각해요? 난 기다림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는 삶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잖아요.”   

 “우리는 지금 이별을 이야기 하는 거군요.”

 “삼촌과는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고요. 지금은 도련님하고 헤어지려는 거 맞는 거 같아요.”

  슬퍼졌다. 슬픔은 무엇일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끝까지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이 그렇거든요. 변하지 말라고요. 이건 주관적인 기준으로가 아니에요.”

  그러면 삼촌과 같은 배신은 안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말이군, 하고  그는 속으로 말을 이어 붙였다.

 가만히 숙모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더 이상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꽤나 미인 형이다. 슬퍼 보이는 눈, 삼촌은 이제 더 이상 저 눈을 들여다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벌써부터 그래왔는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껍데기만 데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에 숙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벽 네 시에 그는 다시 그 소녀를 기다렸다. 정말 거짓말처럼 하얀 도요타 승용차가 그 앞에 멈춰 섰다.

 "이제는 여기 아무도 없으면 너무 허전 할 거 같아요."

 "나 몇 달째 하루도 안 빠지고 출석이야."

 "고마워요."

 "아니 내가 고마워. 잠자고 깨어나고 아무 의미도 없었는데 이제 이유가 생겼거든."

 "그래요?"

 "일단 신문이나 다 돌리자."

 "그런데요."

 "응,"

 "나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거 같아요."

 "뭐?“

 “집으로요.”

 “한국에? 왜? 그럼 난 어떡하라고?"

 "원화가 너무 떨어져서요. 전에는 천불 정도 받았던 게 칠백 불 정도로,,,그 이상은 저희 부모님한테는 무리거든요. 학생비자로 계속 살아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지민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소녀는 가만히 있었다. 지민은 눈물이 나오려는걸 꾹 참았다. 이게 왠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야,

 “우리 일단 이거 다 돌리고 다시 얘기하면 어떨까?”

 “네.”

  새벽 거리를 그들은 또 달렸다. 이런 행복이 깨진다는 것을 지민은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을 때 그들은 다시 파라솔 밑에 앉았다. 요즘은 거의 날마다 있는 일이었다. 하루의 코스처럼 되어 있었다. 다시 지민은 커피를 탔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달리 할 말을 찾을 수 없어서 지민은 이렇게 얘기했다.

 “혹시 술 마실 줄 알아?”

 “네. 조금은요.”

 “오늘밤에 술 한 잔 하자.”

 “어디서요?”

 “여기서.”

  그는 테이블을 손으로 가리켰다.

  지민은 배달을 평소보다 빨리 끝내고 네 시 경에 집에 돌아왔다.

  그 시간에 집에 삼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그가 있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삼촌 이야말로 웬일이야. 가게는 어떡하고? 나는 이 시간에 가끔 오거든.”

  그가 이 시간에 불쑥 집에 들어오는 일만 없었어도 어쩌면 삼촌과 숙모의 관계는 좀 더 오래 지속되었을 수도 있다.

 “어,,,그게 저 지민아 미안한데. 한 두시간정도 있다가 다시오면 안 될까?”

  숙모의 차가 집에 들어와 있었다.

 “삼촌. 다 알고 있겠지만 그냥 보내 버리는 게 좋을 거 같다. 내 의견은 그래.”

  말을 해놓고 보니 삼촌은 그에게 숙모에 관한 얘기를 하지도 않았었다. 차만 있었을 뿐이다. 지민은 차를 몰고 나왔지만 갈 데가 없었다. 아무 곳에나 차를 세워놓고 새벽에 그 소녀에게서 얻은 신문을 펴놓고 광고지까지 한 시간을 넘게 보았다. 어쨌든 오늘은 그 소녀와 술 한 잔 하기로 한 날이다. 그는 마켓으로 가서 맥주와 소주를 사고 팩으로 되어있는 매운탕도 하나 샀다. 여섯시 경에 돌아 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속했던 일곱 시 정각에 소녀의 차가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서 그는 묵묵히 그녀를 에스코트 하기만 했다.

 “여기 세우면 되는 거예요?”

 “응,”

  소녀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지민은 파라솔 밑에 묵묵히 술상을 차렸다.

 “여기 참 좋은 거 같아요. 항상 새벽에만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또 느낌이 다르네요.”

 여름의 게으른 태양은 아직도 서쪽 하늘 언저리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소주잔을 집어 들었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소주잔만 비웠다.

 “잘 마시네?”

 “기회가 없었을 뿐이죠.”

 “사는데 한번 보고 싶어. 새벽마다 데이트 한 게 반년이 다 되어 가는데,,,아직 사는데도 못 가보다니.”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창피해요. 그래서 그런 거죠.“

 “결국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뜻인가?”

 “그 반대 일수도 있고요.”

  소녀가 조금 웃었는데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소주가 한 병이 비워졌을 때 지민은 그 소녀의 손을 잡았는데 잡았다기보다는 손가락 끝의 손톱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는 게 맞고 자신도 그 행동을 못 느끼고 있었다.

 “내 알람시계가 일곱 시에서 새벽 세시 반으로 고쳐졌을 때,,,한 넉 달 전이지?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뭔지 분명해 졌어. 출근 하기위해서 내지는 학교에 가기위해서 였었는데, 내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으로 바뀐 거야. 알람은 세시반 이지만 난 항상 세시 전에 잠에서 깨어났었고,,, 니가 나타나기 전까지 한 시간 동안 이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네 생각만 했었고,,, 차 소리가 들리면 혹시 일찍 온건 아닐까 싶어서 나가보곤 했어. 내가 지금 함부로 지어낸 얘기가 아니고,,,”

  소녀는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떠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가 있어?”

 “쉽게 한 거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나 직접적인 단어 쓰는 거 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어 물어보는 거야. 나 좋아하긴 하는 거야?”

 “많이요.”

 “근데 왜?”

 “그래서요.”

 “아주 냉정하구나.”

 “삼촌이 저 꼬시라고 하면서 했다는 말요. 영주권 애기요. 그게 문제라고요. 이해 되요? 안되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남녀 문제에 그런 게 개입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은 비슷한 입장끼리의 사람끼리 어울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봐요.”

 “영주권은 그냥 종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혼자 만들고 싶으면 또 여러 가지 방법도 있는 거고, 그런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끼칠 만큼 대단한 사안이 아냐.”

 그들은 아예 음식을 먹지 않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에요. 난 너무 가난해요.”

  참 여러 가지 한다.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았다. 흔한 말로, 돈은 벌면 되는 거잖아, 하고도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이가 없어도 적당히 없어야 말이 나오지, 대신에 생각해 보았더니 이제 이십대 중반인 여자라면 경우에 따라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이상하다. 남자들은 상상도 못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어쩌면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사회의 경제구조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맞을 수도 있다. 숙모의 표현대로 곧 찾아올 연민의 시기가 되면 숨어있던 그러한 것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까, 현실 감각이 남자보다 뛰어나다고나 할까,

 “생각해 봤거든요. 아주 많이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자다가도 생각하고 그래서 못자고 또 생각하고,,,"

  지민은 슬픈 눈으로 그러는 소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내가 오빠를 좋아한다면 여러 가지 색깔이 섞이지 않은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잖아요. 내 팔이 너무 희어서 라고 표현 했듯이요. 그런데 거기에 영주권 문제 같은 게 들어오면 어떻게 되죠? 그게 흰색인가요?”

 “그래서 그게 떠난다는 이유가 된다?”

 “고백할게요. 사실은요."

 "사실은?"

 "우리 처음 만나던 날, 오빠가 나한테 신문 한부 달라고 했던 날, 전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날 이었어요."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술 맛있어요. 사실 마셔본지 오래 됐거든요.”

  두 번째 병도 곧 비워졌다.

  열시가 되었다. 삼촌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낮에 그들은 분명 집에 같이 있었다. 무슨 대화가 오고간 것일까, 지금 같이 있을 리는 없고, 삼촌 혼자서 엘에이 밤거리를 숙모를 찾아 헤매는 것일까, 아니면 가끔 가던 가라오케 바에 들러서 혼자 청승맞게 술잔을 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영이도 기가 차고, 숙모도 기가 차고, 소주병이 세 개가 비었는데 둘 다 술에는 약한 편이라 취해 있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그 소녀가 말했다.

 “나 새벽에 일어나야 돼요.”

 “택시 불러줄게 타고가. 차 키는 나한테 주고 세시에 집 앞으로 내가 몰고 갈게.”

 “네.”

  지민은 택시를 불렀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소리 내서 우는 것은 아니었지만 눈가가 촉촉이 젖기 시작했다. 보내고 싶지가 않아서 지민이 얘기했다.

 “여기서 자고 가. 내 침대에서 자. 난 리빙룸 소파에서 자면 되니까.”

  소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많이 취해 있었다.

  지민은 다시 택시회사에 전화를 해서 사과를 하고 택시를 취소 시켰다. 늦여름 이었지만 밤의 공기는 차가웠고 아픈 모습의 창백한 구름들이 달빛 밑으로 모여 있었다. 그들은 리빙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리빙룸 에서 네 병째의 소주병이 오픈 되었다. 아니 다섯 병 째 이었는지, 지민은 중얼거렸다.

 “어쨌든 안 돼. 가면 안 돼. 절대 안 돼. 난 삼촌같이 바보가 아냐. 결혼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서류일 뿐이지,,,칼리지 등록금도 엄청 싸지는데,,,가기는 어딜 간다는 거야. 절대 못가. 날 죽이고 가든지,,,”

  둘 다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마셔서 정신이 거의 없었다. 어쨌든 그는 소녀를 안아다가 자신의 침대에다 눕혀 놓는 걸 잊지는 않았다. 그리고 소파에서 기절해버렸다. 그 소녀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삼촌이 많이 시무룩해서 지민이 먼저 말을 걸어보았다.

 "술 많이 마셨지?"

 "아니."

 "그럼 말구."

 "근데 걔 하곤 잘 되 가냐?"

 "아니."

 "응, 잘 안 돼? 왜? 뭐가 문젠데?"

 "뭔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걔 참 예쁘더라."

 "근데."

 "니 숙모도 참 예뻤어."

 "근데?"

 "그랬다고."

 "근데?"

  삼촌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우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삼촌은 사람이 만나는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뭔 뜻이냐?"

 "나는 헤어지려고 만난다고 생각하거든."

 "말은 맞는데, 감성은 이론과 다르니 어쩌냐."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삼촌이 얼굴을 두 손에 묻고 있었다.

 “뭔데?”

 "구차한 모습의 삼촌을 보는 거."

 "지금 그렇게 보여?"

 “응.”

 "니 눈엔 내가 그렇게 매력 없는 남자로 보이냐?"

 “현재는 그래.”

 "너 보고 있으면 꼭 니 아버지 생각난다. 어쩌면 그리 똑같냐."

 "그러니까 자식이지."

 "그래 니가 스물여섯 살 먹은 놈이 아니라. 인생 동반자라고 취급하고 묻겠다. 너 같으면 어떡하겠냐?"

 “뭘 어떡해. 코 삐뚤어지게 술 퍼마시고 담날은 잊어버리는 거지.”

 “하기사 니가 뭘 알겠냐.”

  지민은 기분이 상하는 걸 느꼈다. 구차한건 정말 싫다.

 "내가 고등학교 이 학년 때 가발 쓰고 클럽에서 기타 친 거 알지?"

 "알죠."

 "그때 사귄 여자야. 이십 오년 째다. 난 저 여자 밖에 몰라."

 "저 여자는 다른 남자도 안다고요."

 "그렇게 잔인하게 말해야 되냐?"

 “아 진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지 모를 분노가 몸을 휘감고 도는 것을 느꼈다.

 "그래야 삼촌한테 도움 되니까."

  그는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청소라기 보담은 전부터 눈에 걸리던 물건들을 길거리에 내다놓는 작업에 가까웠는데 뭘 갖다버리던 삼촌은 참견하지 않았고 일을 하다 보니 가속도가 붙어서 집안이 곧 거덜 날 상황이었다. 삼촌은 술잔을 열심히 비워대면서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는데 무거운 소파를 한참 노려보던 지민은 “잠깐 쉬고” 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술잔이 삼촌의 손에서 그에게로 옮겨졌다. 차 들 지나가는 소리, 아주 멀리서 들린 누군가의 고함소리, 술잔이 유리테이블 위에 딸까닥하고 놓이곤 했다. 한참을 그들은 그렇게 앉아있었는데 선영이 찾아왔다. 들어오면서 밖에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았는지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새로운 마음으로 살자는 거지.”

  지민은 그렇게 멋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옆구리에 상처가 있는 일인용 소파 하나를 끌어다 밖에다 내놓고는 돌아왔다. 이번에는 뭘 갖다버릴까 두리번거리는데 소녀가 그를 저지했다.

 “다시 사려면 돈이 꽤 들 텐데요.”

 “아니, 진작부터 벼르던 건데,,,”

  삼촌이 담배를 꺼내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소녀와 눈이 마주친 지민은 눈을 감았다.

 "화가 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어. 바보였어. 나는 숙모가 내 곁에서 곱게 나이 먹어 갈 줄 알았어. 너도 내 옆에서 항상 있으면서 멋있게 신문도 집어던지고 또 다른 일을 찾아 옮겨가고 학교도 다니고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냐.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아냐. 잘못알고 있었던 거야."

  소녀가 그의 뺨에 손을 갖다 댔다.

 "저기 저 오빠 많이 좋아해요."

 "그럼 이 상황은 뭔데?"

 “그래서 벌어지는 일이죠.”

 “노래가사 얘기하려는 거야?”

 “음,,,그 말 잘했어요. 노랫말들이 예사롭게 들리지가 않아요.”

  머릿속에 조그마한 불빛이 하나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감정도 날씨만큼이나 변화가 없을 거라고 믿는 것은 아니겠죠. 전 감정 안 믿어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남는 건 현실뿐일 거예요. 하지만 운명은 믿어요. 이 말,,,이해할 수 있죠?"

 “못하겠는데,”

 “현실과 사랑이 관계가 없다면 비행기 표와 운명도 관계가 없겠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대답하기가 곤란할 때 말을 돌려서 하는 법이다. 지금 그 소녀가 그러고 있다.

 “내가 두려운 건 어쩌면 상상뿐일지도 몰라. 습관처럼 새벽에 눈이 떠지겠지. 그러면 할 일이 없어 혼자 멍하니 앉아있어야겠지. 이제 더 이상 나갈 일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해봤어. 그게 두려워. 단지 상상만 하는데도.”

 “비행기 표 사러 여행사로 가다가 이리로 먼저 온 거에요.” 

  청소는 잘했지만 마음속은 더 어질러져 있었다.

  정현이의 결혼식장엔 가지 않았다. 식이 끝나고 대형 가라오케를 빌려 놀았다는데 그곳에서도 전화가 빗발쳤지만 끝내 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와의 친분관계는 이로써 종말을 고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충 열다섯 살 때부터 어울렸으니까 십년이 넘은 친분관계다. 그는 왜 자꾸 변해 가는 걸까, 돈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민이의 기억에 그는 열여덟이 되기 전부터 고급 차를 몰고 다녔었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털털이 차를 처음으로 장만해서 좋아하고 있을 즈음부터 그는 말하자면 백마 탄 왕자님 이었었다. 그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른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미국으로 이민 왔다는 사실 밖에는, 흔히들 말하듯이 졸부였을까, 그래서 보상심리로 아들에게 그런 독약과도 같은 지폐들을 함부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했던 것일까, 같은 고등학교의 같은 학년 이었지만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두 살 위였었다. 한국에서 막 들어와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의 정현은 지금처럼 심하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었다. 어쩌면 약을 하는 것은 아닐까, 경험에 비추어보면 약을 하거나 도박을 하게 되면 사람이 변한다.

  그의 결혼식은 아마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북적 거렸을 것이다. 평생을 사랑하며 살겠느냐는 물음이 오가고 그렇다고 대답하고 했을 것이다. 미래에 관한 대답이 대부분 거짓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런 대답을 주고받는다. 어쩌면 대부분의 감정 표현은 사실 여부의 중요성보다는 결심으로서의 값어치가 더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호모 사피엔스들이 시작했을까,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모여살기 시작하자 여럿의 젊은이들이 짝짓기 방식에 혼란해했고 아마도 나이가 많은 족장쯤 되는 사람이 열심히 머리를 굴려 고안해낸 방식일지 모른다. 어쩌면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제도일지도 모르고, 아직까지 남아 법적인 제도까지 마련되어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필요한 제도인 것 같기는 하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생계의 수단으로,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시의 수단으로서,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으로서, 통치자들에게는 안정된 사회를 구성하는 방법으로서, 혹은 인구수를 늘릴 수 있는 효과적 전략으로서, 이 모든 이유들은 이름도 예쁜 포장지 ‘사랑하니까’ 로 포장하면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렇게 틀리지도 않다. 결혼과 사랑의 차이는 종족보존 수단으로 자연이 만들어준 본능과 그 본능의 사회적 제어일 것이다. 협조하는 척 하는 것은 어쨌든 옳은 것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와 결혼 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와 결혼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랑을 하지만 그것은 조건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순수다. 그래서 결혼은 그곳에 포함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마도 정현이 친구 몇 명만 불러다놓고 미래에 관한 결심 같은 것을 담담히 말하는, 그런 방식을 택했다면 오지 말라고 했어도 기를 쓰고 갔을 것이다.

  결혼식에 불참한 이유는 가기 싫어서 이지 가면 안 되니까는 아니다. 친분관계를 생각하면 웃기지도 않는 민망한 코미디 한편 더 보아준다고 그리 괴로운 일도 아닐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민감해 졌지, 하고 지민은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정현이의 행동이 맞는지도 모른다. 거짓말은 가장 좋은 수단이다. 들키지 않을 경우에 더 빛을 발하는, 지난 몇 달간 벌어졌던 일을 생각해보면 그가 맞다. 사람끼리의 약속 같은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이성으로 착각하고 있는 감정은 자신의 바로 앞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 그리고 속물처럼 보인다는 것도 자신이 속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기꾼 눈에는 사기꾼만 보이듯이,   


  초가을의 늦은 밤, 거리를 지나가는 차들도 없어 적막했다. 지민은 혼자 앉아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겨울이어서 소녀가 긴팔소매를 입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흰 팔이 임팩트 있게 사람을 놀래킨 것은 사실이지만 꼭 그게 다는 아니다. 일단은 예쁘게 생겼다. 게다가 그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면서 너무 씩씩했다. 전에 알았던 또래 여자들과 비교를 해보자면 한 번도 화장품이나 가방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전부일까.

  소녀가 집에 도착했다. 낮에 지민과 잠시 통화를 했었다. 비행기 표는 사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장미를 한 다발을 들고 나타난 그녀를 보자 지민은 다시 불안해졌다. 이제는 정말로 이별을 얘기하려고 온 건가,

 “학교에 일본 친구 있는데 생일이라 이걸 선물로 받았데요. 받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 버리기도 곤란하고 하다나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왔죠.”

 삼촌이 조심스럽게 커피를 끓여왔다. 가을이 많이 다가와 있는 시기라 그들은 긴팔 소매를 입고 있었다. 소녀는 여전히 청바지였다.

 “이리 앉아요.”

  삼촌은 숙모가 집에 안 들어오기 시작한지 근 일주일간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지민은 꽃병에 물을 받아가지고 와서 장미의 밑 부분을 가위로 잘라낸 다음 병에 꽂았다.

 “밑을 잘라야 되나요?“

 “응. 말라있기 때문에 물을 빨아 들일수가 없거든. 자르고 나서도 가능한 한 빨리 물에 담가줘야 돼.”

 “왜요?”

  삼촌은 맞은편에 엉거주춤 앉아있었다. 돌아오면 다시 받아줄 거야, 라는 말을 삼촌이 했었던가 하고 지민은 궁금해 하고 있었다. 어제저녁에도 둘이 술을 마셨었다. 기억이 안 난다.

 “일종의 보호 본능인데 물이 들어가야 할 곳에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 장미가 물 빨아들이는 입구를 막아버려. 아주 빨리. 그래서 그래. 그리고 가능하면 칼을 사용해야지 가위를 사용하면 안 돼 물 들어가는 부분이 눌리게 되거든.”

 "아주 잘 아네요."

 "인터넷 뒤지면 오 분이면 알 수 있는 상식이지. 살아있는 것들은 다 똑같은 거 아냐?"

  선영은 대꾸 없이 꽃을 만지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민은 삼촌에게 말했다.

 “노인네한테 심부름 시켜서 미안한데 지금은 커피가 아니라 술 같애.”

 “응.”

  이러다가 알코올중독 되겠다. 라고 그의 뒤통수가 말하고 있었다.

  지민은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그녀는 이별을 얘기하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별은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피치 못해 해야 한다면 편지 한 장 정도가 좋을 것이다. 이별이라는 단어가 어릴 때 치과의사의 손에 의해 전해지던, 갈갈 거리며 돌아가던 기계의 그 고통같이 느껴지던 지난 며칠이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깨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었다. 만약 그 소녀가 이런 감정을 부분이나마 이해한다면 그녀가 얘기한 달러대 원화 같은 말은 몇 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별나라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삼촌은 전의 그들의 술상을 보았었는지 맥주 대신 오징어포와 소주를 가져왔는데 지민의 눈에는 그 누워있는 오징어도 슬퍼 보였다.

  삼촌은 일어나려고 했다.

 “그냥 계세요.”

  라고 소녀가 말했다.

  그럼 행복하세요. 라고 숙모는 말했을까, 그런 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일까,

 “뭐 중요한 얘기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방해 되잖아.”

 “방해될 일이나 있었으면 좋겠네.”

  라고 지민이 중얼거렸다.

  삼촌이 자리를 비키자 소녀가 바로 말했다.

 “할 말이 있어 온건 아니에요. 오고 싶었어요.”

 “잘 왔는데.,,”

 “어쩌면 할 말을 만들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르겠고요.”

 “궁금한 게 있었는데.”

 “뭔데요?”

 "새벽에 그렇게 신문 돌려서 얼마 받아?"

 "칠백 불정도요."

 “사실은, 욕하지는 말고, 같은 시간정도 일해서 수입이 더 되는 일을 소개할 수가 있었는데,,,그럼,,,떠난다는 말을 안 들을 수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왜 안했어요?”

 “오버 하는걸 싫어해.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림이 깨질까봐. 그게 싫어서.”

 “그림이라뇨?”

 “새벽에 신문 돌리는 소녀 그림.” 

  소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런데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새벽에 신문 돌리는 거 좋은 점이 너무 많아요. 그런 거 안 좋아해요?”

 “니가 있으니까 신나서 다닌 거지. 내가 미쳤니. 그 시간에 왜 일어나.”

 “화났어요?”

 “아, 미안. 표현이 과격했네. 화를 내도 안 되니까 그게 화나는 거겠지.”

  화 안 났다는 뜻으로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나만 부탁하자. 할 말이 만약 있더라도 오늘은 하지 말고 내일로 연기해 달라는 거야.”

  소녀는 고개를 옆으로 삐딱하게 하고서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주시하기만 했다.

 “나는 아직 내일을 본적이 없거든.”

  그는 일어났다.

 “삼촌한테 피아노 쳐 달래자.”

  그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삼촌을 데리고 내려왔다. 비틀거리며 내려온 삼촌은 의자 밑에서 악보를 하나 꺼내더니 앞에 펼쳐놓고는 와인 잔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다.

 “내 연주는 비싸. 여기다 지폐 좀 넣어봐. 술도 한잔 따라오고.”

  지민은 시키는 대로 했다. 중학교 다닐 때 삼촌은 가끔 지민을 찾아와서 기타를 치면서 술 냄새를 풍기며 폴 앵카의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티브이에서 말고 그렇게 그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지민은 그전까지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년정도 떨어져 있다가 엘에이에서 한집에 살게 된 것이다. 물론 지민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야 되니까 그 아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행동 이었다는 것을, 어쨌든 그랬던 멋쟁이 삼촌이 지금은 엘에이에서 오래된 연인에게 버림받고 조카 술자리에나 끼어 흘러간 영화음악 주제가를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지민은 이 자리에 숙모가 있었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선영이를 설득하는데 그만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주 조금 깨달았다.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로서야 만족 되어 진다는 것, 만약 그것이 이루어지면 다음은 권태, 이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 만남이 처음부터 좀 잘못 되어진 것 일수도 있어요.“

 “그 얘긴 전에도 했었잖아.”

 “그전에는 관심도 없던 단어들이 징그럽게 싫어지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 영주권이라는 단어는 꼭 지네 같아요. 징그러.”

 “왜 그렇게까지,,,”

 “그러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까요. 오빠 표현대로라면 그 종이, 그거 없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더라고요. 저는 유학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관심이 없었는데 말이죠.”

 “그럴 수도 있겠다. 사실은 여기서 그런 말들은 잘 안하지. 피하니까, 묻는 것도 실례가 되고.”

 “처음부터 있던 사람들은 그런 거 잘 몰라요. 오빠가 대표적인 사람이죠.”

 “그런가,,,그렇게 중요한 거였나.”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관계에 있어서 갶을 만든다는 거예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 좋아지면 그걸로 끝이어야 되는 건데 그치?”

  지민은 그냥 웃었다. 

  손가락이 풀리는지 삼촌의 연주가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저 아저씨 피아노 치는 거 들어본지가 까마득해. 다들 그렇게 적당히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거 아닐까,”

 “제가 어려서 그런가 봐요. 오점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거죠. 숙모님처럼 사라져 버리기도 싫고요. 안할 말을 했나요?”

  꿈을 꾸고 있구나, 하고 지민은 생각했다.

  다시 또 빈병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자고?”

  시간이 피아노 소리와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엘에이 생활 이 년 반 됐어요. 오빠 만나기전까지 이년정도 완전히 혼자였고,,,그런데 이상하죠. 돌아가기가 싫어졌어요.”

 “그러니까 어쩌자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 해야죠."

 “둘 다 선택해도 되는데,,,"

 "같은 얘기 반복하게 하지 마요."

 소녀는 취해 있었다.

 “여기 공부하러 온 거 아냐?”

 “그렇죠. 그런데 너무 힘들어요.”

 “나도 고집 세지만,,, 좀 심하다. 내가 청혼하는 걸로 들으면 되잖아.”

 “그런 계약은 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 몸은 팔고 사는 고기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오빠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그 결혼이라는 건 더 신중해야 되요.”

  소녀는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잠이 들었는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런 성격에 저렇게 안심하고 취해버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착잡해지기만 했다.

  지민은 전처럼 그녀를 들어다가 자신의 침대에 눕혀주었다. 전과 다른 점은 신발을 벗겨주고 베개를 제대로 받쳐주고 한 것이었다. 두 번째 여서 그랬는지 그 소녀도 전처럼 어색해 하지는 않았다.

 “저 다른 집에서 안자요. 술 좀 깰 때 까지만 누워 있을 거예요.”

 “물론 목적했던 학위 따는 거는 포기했지만,,,영어도 많이 배웠고,,,돌아가면 할 일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소녀는 말하고 눈을 감았다.

  다시 소파로 돌아온 그는 한국에 나가서 사는 문제까지도 포함시켜서 여러 가지 방식을 연구해 보았지만 대개가 다 허무맹랑한 상상들일뿐이었다. 어쩌면 선영이는 그저 상상을 하기위해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인지도 모른다. 백설 공주나 마귀할멈 같이,

  삼촌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지민은 실수 할까봐 술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혼자 남게 되자 병째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자꾸 삼촌의 슬픈 얼굴만 떠올랐다. 미니 도련님 이라고 이십년 넘게 부르던 숙모 생각도 났다. 눈물이 자꾸 흘러 내렸다. 이별 하려고 만나는 거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끝내 잠은 올 것 같지 않았다.

  삼촌은 이별을 했고 그는 시작했고 그것은 만남과 같은 의미였다.

  소파에 기대서 잠깐 잠이 들었었던 것 같은데 새벽 두시가 넘어 있었고 언제 일어났는지 선영이가 집에 간다고 박박 우겨댔다.

 “한 시간 있으면 너 일 나가야 돼. 아니 우리 일 나가야 돼 . 그냥 한 시간만 있으면 안 돼?”

 “집에 곰 인형 있는데, 한 번도 나를 안 본적이 없어서,,,”

 "그 말은 이해하겠는데,,,"

  그는 곰 인형까지는 본적이 없으니까 할 말이 없었다. 대신에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언제부턴가 가슴에 얼음 덩어리가 하나 들어와 있었는데 그게 이렇게 아픈 건지 몰랐어,"

  그 소녀를 끌어안았다.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한 시간만 있다 같이 나가자는 말만 반복했다. 그 외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얼굴이 목 뒤에 있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지민은 그 소녀가 소리죽여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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