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지 열흘 만에 내가 찾아간 곳은 해남에 있는 미황사 라는 이름의 그다지 크지 않은 절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춘천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 재활센터로 곧장 가야되는 것이었는데 서울에서 나를 맞이한 사촌형의 권유로 스케쥴의 변동이 생긴 것이다. 그 절의 주지스님은 사촌형과 막역한 사이라고 했다. 불교신자인 사촌형은 오래전부터 주말을 이용해 많은 사찰들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아마도 그 절도 그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그 절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고, 다만 왜 하필이면 거기냐고 물었을 때만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말도 덧붙이 면서, 자연이 아름답지 않은 절도 있었나 하고 나는 생각했을 뿐이었다.
 
사월의 셋째 주였고 모든 사찰들이 일 년 에 한번 있는 초파일 준비로 바쁜 때였다. 마침 그런 시기에 나는 알코올중독 치료를 빌미로 한국을 찾은 것이고 불교신자인 사촌형은 내 계획에 약간 수정을 하게 된 것이다.
 
사촌형과 그 절과의 대화 내용은 여과 없이 내 귀로 들어왔다. 처음 한동안은 반갑다. 어떻게 지내느냐 는 등의 인사말이 오고 가더니 곧 나에 관한 얘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네 그렇죠. 춘천에 있다는데요. 글쎄요, 반은 병원 비슷한 곳인 모양인데,,,뭐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죠,,, 마음이 움직이는 거지요,,,그래서 전화 드렸습니다. 네 엘에이에서 왔어요. 어쨌든 초파일이고 거기 일손 부족 할테고,,, 종교요? 아마 무교일걸요,,, 말하다가 사촌형은 잠시 나를 곁눈질 했다. 무교라는 말조차 도 하나의 종교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그 말을 고스란히 수화기에다 대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잠시 웃었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일단은 경치 좋은데서 있다가,,, 두 달 정도 계산 하는 것 같던데요,,,침묵,,,외국인요? 잘됐네요. 잘하죠. 당연히. 어렸을 때 가서 이십년을 넘게 살았는데,,,등, 등, 그러고도 대화는 한참을 더 이어졌다.
 
그날 밤에는 사촌형과 형수와 나와 셋이 모여 앉아 내 다음 스케쥴에 관해 자연스럽게 의논이 시작되었는데 재활센터는 벌써 물 건너가 있었고 그 자리에는 절이 들어와 있었다. 그것도 특정한 절이었다.
 
마치 상담소에서 벌어질 듯한 형태의 대화체가 우리들 사이를 오갔는데 내가 절에 관해 너무 문외한 이라 그랬는지 말들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잘못 하다가는 밤을 새울 것처럼도 보였다. 큰절에 관해 사촌형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건데.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잖아." 라는 말을 수 십 번은 반복 했던 것 같다. 큰 절은 우리 고유 문화중의 하나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주 어릴 때 어른들을 상대로 세배를 해본 이후로 무릎을 바닥에 대어 본적은 없었다. 그런 큰절에 대해 내가 주절주절 거리면서 걱정을 하자 사촌형이 한 말이 그것이었다. 그는 몸소 삼배를 어떻게 하는지에 관한 시범도 보여 주었다. 미묘한 거부감 내지는 까칠한 느낌, 모르는 세계를 여행하려면 일단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마가 대상이 있는 방향으로 땅에 닿는 느낌은 그리 유쾌할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절이야." 사촌형의 말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모든 종교가 해석은 천재적으로 하니까." "해석할 필요도 없는 거고,,,"

  엘에이 엑스에서 출발해 인천공항에 내려 바깥으로 나올 때 까지 근 열다섯 시간이 걸리고, 물론 여기에는 공항 실내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포함이 되고, 나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반대의 환경에서는 한 시간을 채 못 넘기고 다시 또 다음 담배를 꺼내 물곤 하던 사람이 어떻게 열다섯 시간을 참 을 수가 있을까, 중독이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습관이 중독이 되어버린 건지를 굳이 따지자면 이런 경우엔 습관이 중독으로 포장되어 버린 상태 라고밖에는 설명이 힘들 것 같다. 정말 중독이라면, 아니 중독이라고 정의 내리려면 비행기에서 쫒겨 날 각오를 하고서라도 화장실에 숨어서 피웠어야 한다. 비행기의 토일렛 구조는 열 번만 에어를 작동 시킬 경우 그 조그만 실내의 공기를 백퍼센트 바뀌어 버린다고 어느 전문가(?)가 말했다. 공항에 내려서 경범죄로 체포 된다거나 혹은 비행기에서 쫒겨 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근심은 아마도 중독보다 우위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무료한 날이라는 가정 하에, 이왕이면 비도 내리고 있다고 하고, 창가를 내다보며 너무 생각할게 없어 고민되는 시간에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내게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물건들을 열 개쯤 꼽아 본다는 상황을 설정하면, 아마도 일위가 담배, 이 위가 술이 아닐까,
 
일반적인 것보다 많이 심각하던 날에,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한 갑의 담배가 다 사라져가고 자살충동까지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서 담배를 빼앗아 가버린다면 아마도 내 고민은 방향을 틀어 버릴 것이다. 니코틴부터 챙겨놓고 자살을 하든 말든 식으로,,,'내게 가장 무서운 적은 나' 라는 말을 일단 인정해주고 덧 붙히 자면 폐가 그중 으뜸 일 텐데 그게 피해자 일수도 있고 적일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은 습관일 뿐인데, 발목에 족쇄를 채우려고 이박 삼일 간 갇혀 있었던 감옥에서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였는데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었다. 본능은 이성과 타협이 필요할 때 치사한 변명을 한다. 내 몸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어쨌거나,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는 열두시 간 반 동안 나는 맥주 캔을 세 개 비웠다. 공항에서 세금공제로 산 위스키가 내 발밑에 놓여 있었는데 옆 좌석 사람의 눈치가 보여서 이기도 했지만 차마 그것까지 꺼내 마시지는 못했다. 유혹은 싸늘한 짙은 밤색으로 발밑에 요염하게 누워 있었다. 병을 만지 작 거리 다가 바닥에 다시 내려 놓기를 세 네 번 반복했다. 재활센터로 간다고 비행기를 타면서 사 가지고 온 위스키 병, 공항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면서 그 위스키 병은 몇 번 내 손을 스쳤는데 어느새 인지 계산대 위에 담배와 같이 얹어져 있었다. 나는 어쩌면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자격을 상실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세 개의 맥주 캔은 서울 거리에서 소주로 바뀌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연락 하지 않고 모텔을 바꾸어 가며 밤낮으로 술만 마셨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정신 노동 금지' 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시켰다. 몇 년 만에 찾아온 모국이 이 정도는 용서해 줄 것 이라고 스스로에게 우겨댔다. 이 술이, 아니 나의 육체와 정신의 방황이 이걸로 마지막 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믿지를 못해가면서, 

 
"마지막으로 한잔 어떨까?"
 
형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까 말도 안 나온다."
 
"재활센터? 믿지 않아. 정말 완전히 끊을 수 있다면 일 년 이라도 있겠다."
 
"그럼 뭐 하러 온 건데?"
 
"노력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안하고 있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모든 일이 그렇잖아. 짦은 미래에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뀌면서도 현재의 감정에 몰입 하다 보니 쉽게 약속하듯이, 하지만 그렇게 어리석고 싶지는 않아. 공허한 약속을 나 자신에게도 하고 싶지 않다고, 알아 들을 수 있지?"
 
"너 지금 손 떨리고 있어."
 
"알아. 반병정도 들어가면 어느 정도 멈추겠지."
 
"절에 술 냄새 풍기면서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
 
"응, 오늘 반병 마시고 내일은 넘어가고, 그렇게 컨트럴 하면 모레는 상큼하게 들어 갈수 있겠지."
 
"지금 한말 지킬 수 있어?"
 
"지켜야만 돼. 나 살려고 여기 온 거거든,,,아니면 나 죽어,,,"
 
형이 와이프를 돌아 다 보았고 형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는 형수를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사실 일주일전에 들어왔어요. 계속 술만 마셨죠. 님 을 떠나보내기가 그리 쉬운가요. 지금 몸속에 알코올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들은 자꾸 동지를 부르죠. 그들을 갈라놓으려면 좀 체계적인 작전도 필요할 테고,,,"
 
형은 부엌에 가서 소주를 한 병 가지고 왔고 나는 그 병을 물 컵에 따랐다. 어림잡아 반병 정도 였는데 나는 그걸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마지막 이겠군,,,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몇 분의 시간이 경과하고 뱃속에서 뜨겁게 머무르던 어떤 슬픔 같은 덩어리가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기분이 가라앉고 손 떨리던 것이 멈추었다.
 
베란다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아무 말도 없던 사촌형은 담뱃불을 재떨이에 눌러 끄면서 한 마디 했다.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넌 술 빼고는 말해서 안 지킨 적이 없었잖아."
 
소주 반병은 내 신경은 어느 정도 안정 시켜 주기는 했지만 감각을 눌러 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그 맨 정신의 불면의 밤을 컴퓨터 앞에 앉아 꼬박 지새워야 했다. 엘에이에 있는 지인들에게 감정이 많이 이입된 별반 쓸데없는 이메일 등을 쓰면서 그 밤을 지새웠는데 끝내 잠은 오지 않았다. 내 수면은 알코올의 허가 없이 수행되는 게 아니었다.


  팔년 전인가의 여름, 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새벽 두시경의 다운타운 이었는데 보나벤쳐 호텔 옆으로 들어서는 101 프리웨이에서 내 차는 네다섯 바퀴인가를 옆으로 돌다가 벽을 심하게 들이 받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차가 완전히 멈추었을 때는 차는 반대 방향을 보고 서 있었고 비록 차체는 많이 찌그러져 버렸지만 엔진은 멀쩡해서 나는 본능적으로 꺼진 엔진의 시동을 다시 켜고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했다. 차가 반대 방향을 보고 서있었기 때문에 다시 원상태로 돌리려면 크게 유턴을 해야 했고 그런 작업을 급하게 하고 있는 도중에 미처 나를 보지 못하고 달려오던 체로키 한 대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다가 미끄러지면서 내차의 앞부분을 들이 받았고 반대쪽 벽으로 미끄러져가더니 부딪히고 튕겨져 나와 몇 바퀴 돌고는 멈춰섰다. 우리는 둘 다 크게 부상을 입지는 않았는데 그 운전사가 경찰을 불렀다. 내가 취해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민사소송이라도 벌어질 경우, 현장 보고서 같은 게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충격으로 내 차 엔진의 벨트가 벗겨져 버렸고 시동은 걸렸지만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비라도 맞으면 술이 좀 깰까 싶어서 나는 밖으로 나와 차를 밀어가며 힘들게 벽 쪽으로 옮겨 놓았다. 일제차지만 무거웠고 십분 이상 노력을 한 끝에 간신히 벽 쪽으로 차를 옮겨 놓을 수 있었다. 경찰차가 다가왔는데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지만 요란한 불빛으로 주위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행동을 예의 있게 해서 그랬는지 두 명의 경찰은 일부러 나를 한 시간 반 이나 뒷좌석에 태우고 돌아다니다가 테스트를 했는데 그래도 마신 양 때문인지 법적 허용량을 많이 초과하는 신체 내 알코올 농도 결과가 나왔다. 그들은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날은 일단 크지 않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 나왔지만 그로부터 육 개월 후에 내 변호사는 검찰과 징역 구십일, 일 년 반 프로그램 이수에 합의를 해야 했다.
 

  강남 버스 터미널까지는 시내버스로 움직였다. 새벽 이었지만 드문 드문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그 중 하나를 탈수 있었다.
  나는 새벽 여섯시에 사촌형 집을 나왔는데 몰래 빠져 나오려던 건 내 바램 이었고 두 부부가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사월 이었고 새벽 이었는데 서울에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어제는 비가 왔었는데 일기예보는 오늘도 비올 확률이 높다고 했다.
 
"해남까지 태워 줄까?"
 
"버스 타보고 싶어."
 
"어차피 주말 이니까,,,바람 좀 쐬는 것도 좋지,"
 
"내일 쯤 형수랑 같이 오면 되겠네."
 
"그럴까, 그나저나 좀 잤어?"
 
"아니, 술 없이 자본지가 너무 오래돼서 내 몸이 어떻게 하는 건지 까먹었나봐."
 
"괴롭겠다?"
 
"아니 편안해."
  버스 밖의 풍경은 크게 푸른 산들과 아파트 였다. 아마도 아파트의 높이나 숫자로 볼때 이 나라는 세계제일의 아파트 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많은 고층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는 광경은 본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머리 위로 위로 올라가 살아가고 있었다. 한시간 정도 그런 아파트 들을 구경했던것 같은데 나는 반 수면 상태에 빠져 버렸고 정신이 들었을땐 버스가 해남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중간에 버스는 잠시 휴게소에 들러 십오분 정도 휴식을 취했는데 나는 내리면서 담배를 피워 물다가 심하게 헛구역질을 했다. 전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었다. 
 담배 갑을 들여다보았다. 반 정도 들어 있었다.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으려던 충동을 잠깐 자제하고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뛰어 다닌 것도 아닌데 숨이 차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내 스스로 들을 수 있었다. 스넥샾 에서 커피를 한잔 사서 마시니까 기분이 좀 가라앉긴 했는데 확실히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당분간 술을 안 마실것이다. 오늘도 안 마실 것은 확실하다. 담배 피우는 시간도 줄었는데 그건 아마도 환경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 같은 나만의 공간이 전철이나 버스 같은 공동 기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 결심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해야 하는데 난 그건 믿지 않는다.
  난 곧장 절로 들어가지 않았다. 해남
시내를 두 시간 가량 걸어 다닌 다음 버스를 타고 땅끝마을로 가서 모텔을 하나 잡고 불면의 밤을 티브이만 보면서 지냈다.
  다음날, 택시를 타고 절의 입구에 내려 걸어 올라가기 시작 했다. 택시 운전사는 오 분에서 십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고 했다. 구불거리는 포장도로는 가파르게 높아지면서 깊고 푸른 숲속을 향해 사라져 갔다. 한참을 오르다 절 모양으로 보이는 일단의 건축물들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근처에 평평한 돌을 하나 찾아 앉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당분간은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바로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 시작되고 읽기 힘든 한자 현판이 붙은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더 들어서자 사람들이 두 명 들어서 있는 가건물 비슷한 게 나오고 -그게 종무사 라는건 나중에 알았지만- 물론 역시 기와지붕 이었고 그들 중 한명이 나를 방으로 안내했다.
 
반시간 가량 지난 후에 나는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서 주지스님과 마주 앉았는데 의자가 없이 바닥에 앉는 구조라 불편했다. 처음 대면했을 때 그는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인사했는데 나도 사촌형에게 배운 대로 따라했더니 그런대로 그림이 나왔다.
 
"공양 시간이 끝나서,,, 시장하시면 다시차려 드릴까요?"
 
"그러실 필요 없죠."
 
약 십 분간의 담소가 이어지고 나서 일곱 시에 있는 예불에 참석해야 했다. 옆자리에 있는 사람을 흘긋 거리며 열심히 따라 했는데 쉽지는 않았다. 큰절은 생각보담은 그리 많은 거부감을 주지는 않았다. 그런 내 앞에서 금색 부처님 세분은 웃는 건지 졸린 건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다만 문제는 절을 해 본 적이 없는 내 두 다리와 발목, 특히 발가락과 발의 경계부분 뼈마디들이 심하게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인데 그렇게 한 시간을 견디고 나니까 걷기가 힘이 들었다. 내가 우려했던 정신적 부담감은 없었다. 육체적 괴로움뿐 이었다.
 
다음이 차 마시는 시간이라 했는데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라는 조건을 붙여 놓았지만 빠질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곳으로 따라가야 했는데 내 생애 최초로 절에 발을 들여 놓은 지 두 시간 정도가 경과된 후였다.


  그 해의 겨울이 막 시작되고 있던 무렵 이었는데 나는 Interlock Device 라고 불리는 롤렉스 시계 보다는 조금 크고 파란색 센서를 왼쪽 발목에 차고 이박 삼일 간 있었던 카운티 구치소에서 나오게 되었다. 망할 놈의 검사 자식은 하필 나를 금요일 밤에 구치소로 들어가게 만들었고 모든 행정이 중지된 주말을 꼼짝없이 구치소에 있어야했던 것이다. 약속대로 라면 아침에 들어갔다 저녁에 나와야 하는 것이었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낼 대상이 없었다. 검사의 시간표는 정확히 삼십일 후에 맞춰져 있었고 그걸 수행한건 사람이 아닌 컴퓨터 였다. 조지 오웰이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두 달 전 엔가 내 변호사와 검사 놈들이 농담 해가면서 사인해 넘긴 서류 몇 장은 그렇게 나를 찾아와 끈질기게 나를 쫒아 다니게 되었다. 처음 나는 그들이 보낸 캄톤시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새로 구입한 스테레오라도 되는 것처럼 박스에 들어있는 기계를 집에 들고 와서 설치해야했고 그 기계는 나의 24시간을 감시하는 훌륭한 친구가 되었다. 내 발목의 족쇄는 이 기계와 무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 내가 집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을 정확히 캄톤에 있는 사무실의 컴퓨터에게 보고했고 그 컴퓨터는 그 사실들을 아침마다 열심히 프린트해서 자신의 주인에게 보고했다.
 
나는 아침 여덟시에 나갔다가 저녁 일곱 시에 들어오는 걸로 스케쥴을 짜 놓았고 일요일도 할 일은 없었지만 아홉시에 나가서 다섯 시에 돌아오는 걸로 해 놓았었는데 그걸 지키느라고 할 일도 없는 일요일에 밖에 나가 쓸데없이 돌아다니고는 했다. 별로 해본적도 없는 전자오락을 배운 것도 그때였다.
 
물론 기계는 사람이 시켜서 그 일을 하는 것뿐 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기계가 얄미웠다. 빨간불을 몸에 달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면 ‘삐이' 소리를 내며 노란불을 켰다. 그때마다 나는 그 기계에다가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엿 먹어라. 짜샤.' 했다가 곧 이어서 영어로 상소리를 퍼 부어댔다.
 
그 외에도 이 기계는 언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지 옆구리에 붙어있는 작은 호스에다가 불어보라고 요구할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전혀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아니 무식한 알코올 재활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기계에 지배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영화들은 이런 장면들을 빼먹지 말았어야했다 라는 게 당시 내 생각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바보 같은 방법으로 치유 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한 골치 아픈 존재다. 물론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면 할 말 없지만, 그 기계 도입됐을 때 정치하는 놈들은 훌륭한 법안 통과 시켰다고 그날 저녁 회식 했을 것이다.
 
내가 나가질 못하게 되자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왔고 두어 달간 내 집은 포커판이 되어 버렸다. 일요일에는 그 기계를 발목에 차고 골프를 치고는 했는데 중심이 잘 맞아서인지 스코어가 더 잘 나왔다.
 
시간 맞추어 들어가려고 어떨 때는 만화방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늦게 들어가는 것도 일찍 들어가는 것도 다 위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졸업식(?)때 나는 단 하나의 엘로 카드도 받지 않았다. 한 달에 두번 찾아가야하는 캄톤 사무실, 시간 약속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기실에서 한동안 기다려야 되는 적이 많았다. 그럴 때면 옆자리 앉아있는 사람들하고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들 중에는 엘로 카드 세장으로 다시 법원으로 불려갔던 사람도 있었고 한두 번쯤은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그걸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떠들어댔는데 듣고 있을라치면 애나 어른이나 철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어쨌거나 법원의 시계는 쉬지 않고 돌아가 구십일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캄톤 사무실에서는 그동안 몇 번 보느라고 미소 정도는 교환 할수 있게 된 남자가 번쩍번쩍 빛나는 큰 가위로 내 발목의 롤렉스를 잘라 냈다. 그는 서류를 몇 장 내밀며 사인을 해달라고 했고 볼펜을 들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술집에 가있었기 때문에 글자를 읽을 시간이 없었다. 끄적 거리고 문을 멋있게 밀고 나오자 푸른 하늘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항상 가난에 시달리던 버지니아 울프는 생각지도 않았던 먼 친척이 자신에게 일정액의 유산을 남기고 죽었는데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것에 대한 사인을 하고 나오자 거리의 가로수들이 갑자기 훨씬 더 푸르러져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런 기분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친구들과 성대한 졸업 파티를 했고 오랜만에 필름이 끊겨 기억나지 않는 새 세계의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삼십대 초반이나 중반으로 보이는 스님은 점잖게 앉아 차를 탔는데 자기들이 하도 많아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일곱 명 이었다. 일곱 시에 있었던 예불이 끝나고 한 스님이 '오늘 템플 스테이 오신 분들 누구죠?' 하고 물었을 때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던 사람들이 나까지 다섯 명, 다른 사람들은 잘 알 수가 없었다.
 
스님이 말했다.
 
"떠돌다 보니 차 타는 법을 잊어 버렸네요. 어쨌든 한잔씩 하죠. 우작입니다. 녹차 중 에서는 제일 상품이죠."
 
특별한 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여기 예법 인건지 말들을 아끼고 있었다. 차 냄새를 음미 하는 것인지 밤톨만한 잔을 코앞에다 대고 있거나 조금씩 마시기도 했는데 하루에 블랙커피만 다섯 잔씩 마셔대는 나같이 무식한 사람으로서는 흉내 내기도 어색한 제스츄어 들 이었다. 얼떨결에 오게 된 나와 달리 그들은 아마도 불교나 차 문화에 많이 근접해 있는 사람들일 것이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다.
 
"한분씩 강제로 말하기로 하죠." 그러면서 그는 맨 왼쪽에 머리를 두 무릎에 묻고 있던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말들이 시작되었다. 어두운 숲에서 달려 나온듯한 상기된 여자가 말했다. 아까 법당에서 혼자만 계속 절을 하던 여자였다.
 
"언제 부터인가 말들을 반대로 하기 시작했어요." 옆에 앉았던 다른 여자가 궁금 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스님은 갑자기 비기 시작한 찻잔들을 채우느라고 손이 바빠졌다. '그래서요?' 라는 말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는데 전부 들었다고 느꼈고 나는 그게 산 쪽에서 나는 이상한 새 소리와 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다음날 제대로 인사를 하게 되었을 때 그들 중의 하나는 '재벌 집 며느리' 였고 그 친구는 '독실한 불교신자' 였는데, 머리에 빨간 리본을 묶고 있었다. 어쨌든 그 밤에 나는 그들에 관해 몰랐었고 '재벌 집 며느리' 가 "그거 저랑 비슷하네요." 라고 말 했을 때 나는 내 발에서 나는 듯한 발고랑 내에 신경을 빼앗기고 있었다. 많이 걸은 탓인지 아니면 기후 탓인지 내 발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상당히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선 신발을 벗을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내 손톱을 바라보았는데 때가 끼어 있는 게 보였다. 그때 '며느리'가 다시 말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면 되는데,,, 시원 하다고 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는데 들어서면서 나랑 상견례가 있었던 남자가 말을 꺼냈다. "반어법 아니구요?" 실내가 조금 활기차게 되었는데 스님이 한마디 보탰다. "혹시,,, 강조 하느라고,," 그 여자는 몽롱한 표정으로 대답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이어지는 질문도 아닌 독백 비슷한 말투를 이어갔다. "의식적으로 한다면 계산 하고 말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입에서 저도 모르게 흘러나와요." 스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혹시 반대쪽 세상으로 환생 하셨나.,,," 그때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 여자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에 무언으로 긍정 표를 던지고 있었다. 여자는 찻잔을 입에 가져가고 다들 침묵했다.
 
다음 남자는 죽음에 관한 얘길 꺼냈고 당연히 대화는 길어졌다. 삶과 인생에 관한 담담한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십대나 이십대 초반 때 꿈꾸어왔던 상상의 세계들이 마치 철새들처럼 왔다가 가고 또다시 돌아오곤 하던 기억들은 그들의 언어들을 자꾸 가라앉히고 있을 것이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이어 윤회에 관해 스님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복잡한 말들이 오고가다가 결론이 이렇게 나왔다. '윤회는 윤회의 방법만이 존재한다. 스스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가 말했다. "그건 불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거 아닌가요?" 스님이 말했다. "믿는 사람에게만 중요하겠죠." 그리고 그는 찻잔을 하나 높이 들었다. "이렇게 분명히 존재합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전에 농담을 한 탓이었는지 스님은 "불교에 관해서만 입니다." 라고 말하고는 웃었다. 나는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저,,,부처님도,,,"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술을 좋아 하셨을까요?"

  내 방으로 돌아오니 아홉시가 되어있었다. 담배 한 갑 을 방의 정 중앙에 놓았다. 방에는 티브이 에서나 보았던 창호지들로 만들어진 창문이며 문 들이 있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졋는지는 몰라도 너무 팽팽해서 구멍이라도 하나 뚫어놓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물품이나 서적들도 팽팽하긴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치열함은 신의 자비로도 감출수가 없다는 뜻일까, 그리고 내가 사는 세계와 그것들에게는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만약에 내가 그 창호지에 하나의 구멍이라도 뚫을 수 있다면, 좀 더 가까워 질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도 들었다. 더 문제는 내가 쓸데도 없는 상상을 자꾸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사색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중독자일 뿐 이므로 나가는 날까지 이 사회의 형식에 맞춰 따라가야 하면 그만이었다.
 
아홉시 반경 에는 그 문제의 담배 갑을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왔는데 낮에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절 입구의 나뭇잎들이 바람을 핑계로 좌우로 움직이면서 마치 귀신처럼 스산한 소리를 냈다. 이삼 분 정도 보이지도 않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눈앞에 갖다 댄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라 귀신이 나타난다 해도 보이지가 않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멈추어 서서 라이터를 켰다. 담배에 불꽃이 만들어지는 동안 작은 불꽃 하나는 주위의 모습을 잠시 비춰 주었는데 온통 크고 작은 나무 들 뿐 이었다. 내 오른손 엄지손가락의 왼편 부분에는 굳은살이 있다. 라이터를 하도 많이 켜서 그렇게 된 것인데 나는 그걸 일을 많이 해서라고 우겨댔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 혼자만 있지 않았다.
 
절에서 밝혀 둔 가로등 밑으로 설핏 스쳐간 그림자는 동물이 아니었다. 숲의 어둠과 똑같아서 구분이 모호한 그림자는 담뱃불과 함께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만난 게 이년 전 이었던 거 같아요."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우리들의 담배 연기는 그 숲속에서 서로 어우러졌다.
 
그림자는 얼굴조차 구분 안 되는 검은 실루엣 이었지만 약간은 비음 비슷한 목소리로 인해 나는 그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말없던 분이군요. 귀신은 아니죠?"
 
“글쎄요,,, 아까 그 분이군요. 어쨌든 저는 귀신 아니에요.”
 
"네, 그나저나 여기가 흡연 장소군요."
 
"그런 거 같아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대개 여기로 오거든요."
 
그리고 나서 어둠과 침묵은 정지되어진 영상 같았다. 그 검은 잉크 속 같은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눈에 들어오는 산속으로 흩뿌려지는 연기의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내가 다시 말했다.
 
"담배는 끊기가 힘든 것 같아요."
 
여자가 잠시 후에 대답했다.
 
"굳이 끊어야할 것들이 있다면 그 중에서는 제일 강적 같아요."
 
우리는 담배를 맛있게 피웠다.
 
"그거 아세요? 무의식이 의식 보다 무서운데 욕망은 의식에 가깝고 니코친은 무의식에 가깝대요."
 
"진짜 무서 운거군요."
 
나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끄고 나서 손끝으로 튕겨 숲속으로 던졌다. 그가 꽁초를 어떻게 처리 하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예불 끝나고 공양 끝나면 참선시간 이고,,, 다 끝나도 여덟시인데 이 산속에 안 들어가 볼래요? 오늘 아침에 혼자 삼십분 정도 들어갔었는데 좀 무섭더라구요."
 
"그러죠."
 
가로등 불빛이 우리들의 모습을 어느 정도 구분해주는 위치까지 왔을 때 '내일 아침까지는 금연인데 하나 더 피우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여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 한 대 더 피우고 갈게요."
 
혹시나 지나는 스님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불안한 장소에서 우리는 다시 회색 연기를 만들어냈다.
 
"절에서는 대화를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요. 아까 식사하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데요. 십분도 넘는 시간이었는데, 기이하게 까지 보이더군요."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시끄럽던 데요."
 
"네?"
 
"전부 머릿속으로 말하고 있었잖아요. 왜 말들을 안 할까,,,담배를 언제 어디 가서 피울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직업은 뭘까,,,등등."
 
"할 말 없군요. 아까 그분처럼 거꾸로 얘기하는 거 아니죠? "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로 조용한 사람들은 없던가요?"
 
"그것 까지는 저도 모르죠."
 
"스님들은 어떨까요?"
 
"조금 덜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결국 비슷할 거 같아요. 상대방 없으면 혼자서 떠들고 그것도 싱거우면 종이하고 떠들고, 아니 요즘은 컴퓨터겠네요. 가상의 인물이든 실존의 인물이든,,,그럴수록 말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열시 전 이었는데도 절은 무덤가처럼 적막했다.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숙소 앞에 도착한 우리는 침묵과 손끝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따뜻한 온돌바닥 위에다 두꺼운 회색 이불을 접어 세 개나 깔아놓고 그 위에 누웠다. 딱딱한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면 몸의 어딘가가 쑤시곤 했었는데 그래서 몇일 전에 터득한 방식이었다. 불은 꺼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도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은 없었고 따라서 나도 소등을 한 것이다. 어둠과 침묵은 내게서 술 담배를 앗아가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두 손을 가슴위에 포개서 올려놓고 세 시간 정도 말짱한 정신으로 누워있었다. '생각하지 말자' 라는 생각만 반복했다.
 
그러다가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어 제 자리에 넣고 컴퓨터 가방을 어깨에 메고 살그머니 방을 빠져 나왔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마치 갑자기 찾아온 지진처럼 내 가슴을 흔든 것이다. 옆방에는 아까 만났던 사람들이 머물고 있다. 이왕 사라질 거면 조용히 사라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혹시나 중간에 스님들 중 누구라도 마주칠까봐 조심해 가면서 아까 택시가 내려준 주차장까지 걸어 내려갔는데 드문드문 산길을 밝혀주던 가로등 들은 거기서 끝이 나고 그 다음은 암흑이었다.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몇 발자국을 더 옮기던 나는 동작을 멈추었다. 이런 지독한 어둠은 그 전에 본적이 없었다. 달빛이나 자동차 중 하나가 없을 경우는 꼼짝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택시로 십분 가량 올라 왔었다. 길과 숲이 구분 안 되는 것은 둘 째 치고 내 발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산짐승이라도 나와 갑자기 덤벼들 것 같은 그 어둠속에 나는 털썩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술 생각은 나지 않았다. 몸속에서 알코올이 거의 빠져 나갔을 때 보이는 내 신체반응 이다. 잠시 후에 나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힘들게 내려온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야했다.
 
다시 이불 세 개를 깔아놓고 눕자 땀이 비 오듯 하고 있었다. 다섯 시에 새벽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반 수명 상태에 있었는데 그동안 머릿속에서는 지나갔던 일들의 부분 장면들이 절대 고장 나지 않는 슬라이드 영상 기처럼 끊임없이 돌아갔고 필름이 떨어 질만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영상까지도 자체 제작되어 상영 되었다.


  법원에서 나에게 내린 형량에는 18개월의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학교에서는 추가로 60번의 AA Meeting (Alcoholics Anonymous) 를 요구했다. 족쇄 풀렸다고 좋아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인 타운에 두 군데 모이는 장소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괜히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될까싶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곤 했는데 습관은 무서운 것인지 처음엔 괴롭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는 즐기게도 되었다. 참으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많을 때는 삼십 명 정도에서 적을 때는 네다섯 명 정도가 모였다. 인원이 적을수록 내가 떠들어야 될 시간이 더 주어지곤 했는데 처음에는 그게 싫더니 나중에는 그걸 도리어 선호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듣고 있는 것 보다는 지껄이는 게 더 시간이 빨리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임이 실제적으로 나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었다. 전날 마시 술기운 영향으로 모임이 끝나고 바로술집으로 직행한 적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게 되면 술에 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다보니 조절 하는데 도움이 되고는 했었다. 당시의 그 기간 동안 내 음주량은 많이 줄어들었었다. 하지만 천성이 조금 비뚤어져 있는 나는 내 발언 시간에 이런 말들을 섞어서 하는 걸 잊지 않았다. '같은 블럭 안에서 리커 스토어 에서는 술을 팔고 차 딜러 에서는 차를 팔고 이게 말이 돼?' 라던가, '바에 왜 파킹랏이 붙어 있는 거지?' 등등 이었다.
 
이곳에서 나 같은 케이스는 일반적인 것에 속했다. 열 번 이상 음주운전에 걸린 사람도 있었고 자전거 음주운전도 있었고 심지어는 말 타고 가다 걸린 사람, 신문에 실렸던 사건의 주인공도 있었고 현직 경찰도 있었고 천주교 신부도 있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도중 음주운전 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었다. 그는 저세상에서 그 프로그램을 다 마쳤을까,
 
그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내가 느낀 것 하나는 생물학적으로 중독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지난날들은 유전적 원인과 결부 시키지 않고 의지력의 크기 정도나 자라온 환경이 만들었을 후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 할 수가 없었다.
 
담배를 예로 들자면 쉽게 끊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의지력 부족이라는 말로 함부로 비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체질이 다른 경우도 있는 것이다. 당시 UCLA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알코올 중독자는 일반인에 비해 엔돌핀의 분비량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후천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그들의 어린 자식들을 상대로 실험해 보고 확인한 후, 가족력은 아마도 그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간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빨리 흘러갔고 프로그램을 끝나갈 즈음해서 운전면허증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 즈음에 가수 존 덴버는 자신의 경비행기를 몰다 추락사 했고 연예 가십 란은 음주비행 이었을 것이라는 기사를 썼다. 그는 헤밍웨이 수준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애주가 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배우 잭 니콜슨이 육십이 넘은 나이에 재혼을 하게 되었는 데 어떻게 만나게 되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AA 모임에서 만났노라고 털어놓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다시 심심한 일상이 돌아왔다.
 
나는 사는 집을 6가로 옮겼다. 한인타운 내에서도 온갖 술집들이 전부 모여 있는 요지로 이사 들어온 것이다. 술을 마시러 운전하고 나갈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미국 바에 가는 적도 있었지만 당시는 사업체가 한인 타운에 위치하고 있어 아무래도 그쪽에서 술자리가 잦았던 것이다.


  일곱 시도 채 되기 전에 우리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참선을 땡땡이 친 것인데 사실 엉덩이에 쥐가 나면서 까지 앉아있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뭔지를 알수있는 수준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틀린 선택도 아니었다. 세멘으로 닦아놓은 길은 곧 사라져 버리고 흙길이 나타났다. 땔감용으로 마련해 놓은 건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장작더미들이 있었고 고대 왕들의 추모비로 보이는 비석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다른 얘기들을 하다가 그녀가 갑자기 그렇게 물어 왔을 때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잠시 망설이다가 곧 솔직해지기로 했다.
 
"여행이죠. 그리고,,,알코올 중독 같아서 재활센터에나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그게 절로 바뀐 거죠."
 
"중독이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 하시나요?"
 
"글쎄요,,, 반 이상은 그러니까 오십일 퍼센트,,,."
 
"그럼 사십구 퍼센트는요?"
 
"습관이 되나요."
 
"중독을 정의 할수 있나요?"
 
"글쎄요. 일반적인 상식정도겠죠. 예를 들어 술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을 망친 적이 한 달에 한번정도 있다. 등의 질문에 답하고 나중에 점수 합해서 계산 하는 거요."
 
"해 본적 있어요?"
 
"당연히,,,"
 
"어떤 대답이 나오던 가요?"
 
"당장 병원에 가라고 나오더군요."
 
"더 강한 레벨도 있던가요?"
 
"육 개월 이상의 요양원 생활이 요구됨. 이었어요."
 
여자가 웃었다.
 
"약한 거는요?"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함. 정도 였겠죠."
 
산길은 점점 좁아져갔고 돌무더기 같은 것들이 나타났는데 상태가 자연적 이라기보다는 마치 로봇태권브이 같은 큰 거인이 심심풀이로 배치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어린 것들이었다. 아마도 연료가 부족한 시대에 땔감으로 사용 되었고 그 후에 다시 심어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되었다.
 
이미 한 시간 가량을 걸은 상태였는데 점점 좁아지던 길은 이제는 지나가기가 힘 들 정도로 가지들로 덮여있었다. 우리는 앉기에 적당한 바위들이 나오자 그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숲은 해가 들어올 수 없도록 무성했지만 새 울음 소리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중독은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거 아닌가요?"
 
"물론 술 담배 도박 등을 제외하면 그럴 수도 있겠죠. 돈에 중독되어야 재벌 될 테고 권력이나 명예욕에 중독 되어야 정치나 사회활동 할 테고,,, 활자에 중독되어야 작가를 할 것이고,,,"
 
"어째 느낌이 좋지 않은데요?"
 
"그럼 이건 어때요? 상대방에게 중독되어야 사랑에 빠질 것이고,,,"
 
"그건 좀 낫군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담배 한가치를 다 태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옆방에 있는 남자분이요."
 
"네."
 
죽음에 관해 지나치리만큼 집착을 보이던 남자를 지칭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새벽 두시까지 그 사람하고 얘기 했어요. 주제는 당연히 죽음에 관한 거였고요."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
 
"다섯 시간 이나 떠들어댄 걸 지금 여기서 어떻게 다 말해요. 어쨌든 중요한건 저한텐 도움이 많이 되었다는 거죠."
 
“도움이 돼 다뇨? 느낌이 이상 했다.
 
바위의 위치 때문에 우리는 삼사 미터 정도 떨어져 앉아있었는데 주위가 적막한 탓에 속삭이듯이 얘기해도 잘 들을 수 있었다.
 
"저 사실 암 말기에요."
 
달리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 재차 담배를 꺼내 물었는데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설마 폐암은 아니겠죠?”
 
“암은 다 암이에요. 어디 부분인지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네,”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년 전에 죽었어요. 자살했는데 그게 사랑 때문 이었대요. 애까지 있는 애가 어쩌다 남자를 하나 만나게 됐는데 홀딱 빠져 버렸나 봐요.”
 
“슬픈 애기겠네요.”
 
“부러운 얘기죠. 누군가에게 중독되었다는 거 잖아요. 난 그런 경험이 없어서요.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이제는 그냥 가게 됐어요."
 
"결혼 했나요?"
 
"했죠. 조건 맞는 사람하고요. 좋아하던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조건이 안 맞아서,,,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이었는지는 늦어서야 알게 되니,,, 부모님들 탓이라고 할 수도 없죠. 결국 그렇게 한건 나였으니까."
 
"의사는 뭐라 그래요?"
 
"소설에서 읽었던 그대로 말하더군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더 갈래요? 아니면 돌아갈 까요?"
 
"결정을 내린 다음 얘기해줘요. 난 결정 내리는 걸 싫어해서요."
 
그녀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암세포들도 의논해서 다니지는 않는 것 같더군요."
 
만난 지 몇 일 되지도 않은 사람 때문에도 슬퍼질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 것인지 눈이 조금 충혈 되는 것 같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올 때와는 달리 앞에서 걸었다.
 
절로 돌아왔을 때는 열한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여자는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죽음'이 주제인 남자와 같이 초파일에 연등을 걸어 놓을 빨래줄 같은걸 대웅각 앞의 공터에 설치하는 일을 도왔다. 열한시반에 점심공양이 있었고 끝난 다음 흡연 장소로 갔는데 '말기환자'는 오지 않았다. 연기가 흩어지면서 사라지고, 사람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위치로 인해 음주운전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전보다 더 심하게 술을 마셔댔다. 걸어 나가면 주위에 유명한 카페들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곳에 있어야하는 이유를 만들어냈다. 몇 년이 그렇게 흘러갔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졌을 때는 마침 컴퓨터와 놀기를 좋아 했을 때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내 손에는 술병이 항상 들려 있었다. 남을 속이는 일은 심각하지만 자신을 속이는 일은 치명적이다 라는 말이 당시의 내게 적절한 표현이었고 핑계는 또 다른 핑계를 만들어 내고 행동에 대한 합리화 작업은 술이 있건 없건 계속 되었다. 외로워서 라던가 스트레스 때문에, 라는 말들은 너무 일반적인 표현이고 술 담배가 나를 마시고 피우고 있었다.
 
감성보다는 이성이 요구되는 사회생활을 알코올 탓에 감정적으로 처리하다보니 문제가 생겼고 뒷수습을 하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곤 했다. 악마가 바쁠 때 대신 보낸 게 술이라는데 틀린 말도 아니었다.
 
뱀이 보이기 시작한 게 그 당시 였던 것 같다. 그 전부터도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날파리 라던가 가구들을 달리의 그림처럼 녹여버리는 아지랑이 들이 나타나긴 했었는데 뱀 까지는 아니었다. 용이 아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두 다섯 종류였는데 제일 큰 놈은 적갈색으로 윤이 반지르르하게 흐르는 놈이었고 주로 침대다리를 감고 돌아 다니길 좋아했고 제일 작은 놈은 검은색으로 손가락 굵기만 했고 책상 위를 기어가다가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한여름인데 창 밖으로 서리가 내리기도 했고 네모난 물체는 몸체가 되고 둥그런 물체는 얼굴이 되어 돌아서는 내 시선에 귀신처럼 스쳐가기도 했다. 놀라서 다시 돌아보면 그것들은 내가 몇 년간 공을 들여 수집해 놓은 가구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삶은 위태로운 줄타기와 같았다. 음주이든 금주이든 한쪽이 계속되어질 경우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 둘 사이의 위험한 간격에는 환각이 존재했다.


  주지스님은 차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최고급차라고 잔을 내밀었는데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커피나 한잔 주시죠. 무식한 사람한테 그런 거 줘봐야 낭비죠. 아는 사람한테 주셔야지,,,"
 
"그럼 유식한척 하세요. 그게 더 인간적이니까."
 
어쨌든 나는 그 차를 받아마셨다. 스님이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않고 향이 좋지요? 라고 물어봐서 고마웠다. '네' 라고 대답하면 되었으니까,
 
"그 분 폐암 말기에요."
 
스님은 말했다.
 
"살 수 있는 기간은요?"
 
"모르죠. 얼마 안 남았다는 거 밖에는, 경험상으로 보면 삼 개월 정도 일 까요,,,"
 
"이런 일이 자주 있나보죠?"
 
"자주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절이다 보니까,,,"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오겠군요."
 
"거사님처럼 알코올 중독 때문에 오시는 분도 계시고,"
 
"저는 그런 말 한적 없는데요."
 
"얼굴에 다 써 있습니다."
 
스님이 웃었는데 그러 고 보니 사촌형 부부와 그가 친한 사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언제 떠나실 거죠?"
 
하고 스님이 물었다.
 
"일주일 있기로 했으니까 삼일 남았어요. 초파일 다음 날이 되겠군요."
 
"엘에이에 특별히 바쁜 일 없으면 좀 더 있어보시지 그래요?"
 
"왜요?"
 
"답은 그 시간이 말해 주겠지요."
 
오후에는 연등을 조립하다가 잠시 쉬려고 흡연 장소로 이동하는데 남자가 따라왔다. '죽음'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답지 않게 그는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해서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담배 안 피우신다면서요." 라고 했더니
 
"거긴 비흡연자 출입금지 구역인가요?" 라고 대답하면서 그가 소리 내서 웃었다.
 
"아니 그게,,,극비를 요하는 장소라서,,,"
 
"여기 스님들 누가 거기서 담배 피우는지 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스님들 중 에도 담배 피우는 분 있고요."
 
"음,,,너무 죄책감 느낄 필요 없군요. 근데 어떻게 끊었어요? 아예 피운 적이 없나요?"
 
"오년정도 됐나요. 그전에는 하루 세 네갑 정도,,,"
 
"그럼 끊기 힘들었을 텐데요."
 
담뱃불을 붙이면서 가능한 한 그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더니 그가 그럴 필요 없다면서 손을 저었다.
 
"비행기를 안탔어요. 담배를 못 피니까, 그래서 외국 여행도 안했고 제주도 갈 때는 기차타고 배 타고,,,"
 
"근데 어떻게 끊었죠?"
 
"가르쳐 줘요?"
 
"네."
 
"따라 한다고 약속하면 가르쳐 드리죠."
 
"할께요."
 
그가 웃었다.
 
"아직은 덜 심각한 거 에요. 나는 와이프가 집을 나가 버렸었거든요. 어쨌든 담배는 끊으면 안돼요. 다시 붙어요."
 
"그럼요?"
 
"그냥 피우지 마세요."
 
"지금 농담 하는 거 아니죠?"
 
"절대 아니죠."
 
"의지력을 말하는 건가요?"
 
"패치. 금연침. 의지력. 효과가 있나요? 그냥 비행기타고오던 시간을 떠올려 보세요."

  별로할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 동기 다섯 명은 함께 산행에 올랐다. 폐암이 담배를 입에 물어서 내가 빼앗았는데 그가 화를 냈다. 다른 세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죽음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화사한 날씨에 어울리는 젊은 여성일 뿐이었다.
 
누가 시작한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절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몇 번 했는지 센다는 식의 답변 이었는데 '며느리' 만 대답이 달랐다. '시어머니 좀 데려가 주세요.' 하고 빈다고 했다. 의아해 하자 '빨간 리본이 변명을 했다.
 
"얘 그렇게 나쁜 애 아닌데요. 그 분이 좀 문제가 있긴 해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
 
"어디가 그렇게 싫은 건데요? 하고 내가 궁금해서 묻자,
 
"설명해도 몰라요. 당해보기 전에는 알 수없는 거고,,, 한 시간만 같이 있으면 지옥에서 십년 있었던 느낌이라면 이해하시겠어요?"
 
"따로 살면 되잖아요?"
 
"분가 하느라고 가출 소동까지 벌였었어요. 성공은 했는데 문제는 일주일에 세 번씩 의무적으로 찾아 뵈어야 한다는 거고."
 
"남편 하고 얘기해 봤나요?"
 
"안 찾아가는 날은 밤 아홉시에 어머니 한테 전화해서 어떤 때는 한시간도 넘게 통화해요. 낮에 있었던 일 부터 시작해서 내일은 무슨 일을 할 거다 까지 시시콜콜하게,,,"
 
"마마보이란 얘기네,,," 말기환자가 말했다.
 
"심각하게요. 아마 나 없을 땐 목욕도 시켜줄지 모르죠."
 
"싱글인 내가 편한 거라니까." 빨간 리본이 종알거렸다.
 
"그래서 밤마다 외롭다고 나한테 전화질이니?"
 
'며느리'의 말에 모두 웃었는데 말기환자 많은 담담한 표정 그대로였다.
 
남자가 한마디 했다.
 
"여기 있는 분들 모두 여기 온 이유가 있군요. 한사람만 빼고."
 
"저요?"
 
빨간 리본이 그를 빼꼼이 쳐다보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거죠."
 
어제 왔던 곳 에서 조금 더 올라가니까 바위더미들이 쌓여있는 장소가 나왔고 우리는 모두 그곳에 편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푸른 하늘이 푸른 숲을 덮고 맑은 물을 따라 어른거리며 흘러 내리고 있었다.
 
"수십 수백 번을 윤회 했을 경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강원도의 한 산속에서 이렇게 같이 앉아있을 수 있는 확률은 정말 미세하네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라더니,,,"
 
남자의 말에 빨간 리본이 웃지도 않고 대답했다.
 
"혹시 우리는 전생에 독수리 오형제가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놀고 있는 동안에 말기환자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급기야,
 
"죽고 싶지 않은데,,," 라는 조그만 목소리가 나왔고 순간 모두는 입을 다물었다.
 
"미안해요. 분위기 망쳐서." 하고 그녀가 사과했다.
 
"미안하긴요. 우리가 미안하지,,,"
 
남자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절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인연은 아무래도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나의 중독도 결국은 '그것'의 다가옴을 늦춰보자는 무의식이 아니었을까, 여자의 눈이 순간 빨갛게 변했는데 며느리는 눈물이 났는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남자가 일어나 말기환자의 어깨를 가만히 안았다.
 
"아쉬워요. 안 해본 게 너무 많은 거 같아서,,,더 아쉬운 거는 이제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난 거 같은데,,,"
 
나는 담배 한가치를 꺼내 물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에 막 불 붙힌 담배를 건네주었다.
 
"내가 아는 미국사람 하나는 암 말기였는데 마지막으로 실컷 논다고 바닷가에서 몇 달간 수영하고 바다공기 마시고 살다가 병이 다 나았대요. 바다에는 특수한 성분이 있다더군요."
 
"한번 해 볼까요? 이번 주가 마지막으로 돌아다니는 거고 다음 주에는 입원해야 돼요."
 
"원하시면 같이 가 드리죠."
 
나는 말해놓고 내가 더 놀랐다.
 
"다 같이 가면 참 좋겠네요."
 
며느리가 조용하게 말했다. 환자는 남자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슴 시리게 높이 있는 하늘은 존재 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개념일 뿐이었다. 빈공간은 이름을 가질 수 없을 터 인데 그것은 가지고 있었다. 실존한다는 것은 영원한 것을 시간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라는 키에르 케고르의 말이 생각났다. 회귀를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우리의 윤회는 윤회의 방식으로만 존재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던 날의 그 다담 시간에 우리들은 바로 옆에 앉아있던 죽음을 몰랐었다. 만약 알았다면 어떤 식의 대화가 오고갔을까, 그렇게 말들을 함부로 할수 있었을까,
 
그 숲속에서는 시간이 별로 대우를 못 받는 듯, 우리는 저녁 공양시간을 빼 먹을 때까지 숲속을 헤집고 다녔다. 절에서 '다섯명 실종' 이라는 신고를 하지 않기 바라면서,


  지금으로부터 대략 사개월전, 엘에이 인근 골프장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드라이버를 지팡이처럼 짚고 서있던 나는 옆에서 날아온 골프공에 맞아 왼쪽 눈 위를 열한바늘이나 꿰매야하는 부상을 입게 되었다. 다행히 눈썹 바로위로 상처가 났기 때문에 얼굴에 흉터는 안 남게 되었는데 대신 눈썹을 죄다 밀어버려서 한동안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다녀야 했다. 실밥을 뽑던 날 의사는 내게 종합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대답이 간단했다.
 
"저랑 동갑이시거든요."
 
검사를 하고 이주 후에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찾아갔을 때 의사는 안경을 쓰면서 사무적으로 말했다.
 
"다른 데는 말짱하구요. 간경화 말기에 간암 초기 증상이에요. 더 이상 술 마시면 죽어요."
 
"그래요? 그럼 폐는 어떻던 가요?"
 
"잘 아시잖아요. 니코친 덩어리라는 거. 근데 건강은 타고 나셨더라구요."
 
"암 이라,,,나는 폐 쪽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이러스들은 아무데나 돌아다녀요. 내일쯤엔 폐에서 발견 될 수도 잇겠죠. 약한 곳이 있으면 그 쪽에 캠프를 치죠. 그러다가 방해하는 세력이 없는 것 같으면 집을 짓기 시작하고. 인간하고 비슷해요. 살아남기 위해 진화하고 발달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요?"
 
"입원 하세요. 애나하임에 있는 대학병원이에요. 제가 거기 출신 이거든요. 돈 없으면 메디칼도 되구요."
 
"나 비즈니스 해야 돼요."
 
"죽기 싫으면 가세요. 아님 말구."
 
그가 나를 보내버린 병원은 추측했던 것보다도 훨씬 재미없었다. 여섯 명이 한 병실을 사용하는데 대개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그 중에서도 세 명은 거의 정신병자 수준 이어서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문제는 내가 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거지인데 운동화신은 거지와 슬리퍼 끌고있는 거지 차이를 역설 했다고나 할까, 어쨌든 자존심 상해서 나는 그곳에서 삼일 만에 탈출했다. 예의 그 의사는 반말조로 나를 힐난했는데 나는 그냥 죽고말거라고만 대답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걸핏하면 전화를 해서 나를 괴롭혔고 걸핏하면 나이를 들먹였는데 하루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나이 스물여덟이에요. 그때 사고가 멈췄으니까 실제 나이도 멈춘 거죠."
 
자살한 중국배우의 말을 인용한 거지만 때로 써먹기에 좋은 말 이었다.


  초파일 하루 전인 금요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나는 기왓장에 낙서를 하는 사람들을 도와 기왓장 정리를 하고 돈을 받는 일을 했는데 낙서 가격은 한 장당 만원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주로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건강은 정말이지 중요한 사안인 듯 싶었다. 검은 기왓장에 흰색 유성 펜을 사용했기 때문에 활자는 선명하게 보였고 멋있었다. 어느 절인가의 건물 지붕에 덮일 기와라고 했다. 나를 졸졸 따라 다니던 말기환자는 기왓장 하나를 들고 한참 고민을 하더니 무언가를 써서 내게 내밀었다. 그곳에는 '예쁘게들 사세요." 라고 씌여 있었다. 내가 피식 웃었더니 그녀가 항의했다.
 
"왜 웃어요. 한참 고민해서 썼구만,,,"
 
오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경내를 둘러본 그들은 대웅전에 들러 간단한 예불을 올리고 절에서 마련한 공양을 하고 내려가곤 했는데 그 시간이 대충 두 세 시간씩 걸렸기 때문에 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무척이나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우리들 다섯 명도 언제부터인가 거기 직원이 되어 있었다.
 
빨간 리본이 다가오더니 볼펜 하나를 내밀었다.
 
"지금 가야돼요. 내일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연락처 적어 줘요. 이메일 하고 미국 전화번호, 또 봐야죠."
 
나는 임시로 구했던 핸드폰 번호와 미국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가시기전에 서울에서 한번 볼 수 있겠죠?"
 
"네, 그렇죠. 그런데 친구 분 은요?"
 
"걘 좀 더 있다 간데요."
 
그리고 그녀는 총총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빨간 리본과 남자는 같은 택시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나는 남자와도 역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어울려 다니던 일행 중 세 명만 남은 것이다.
 
열심히 기왓장을 나르고 잇는데 옆에 잇던 '며느리'가 말했다.
 
"다시는 못 볼 거라는 말을 남기고 이리로 온 거에요. 그런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 겠 어요."
 
"집에서도 여기 있는 걸 모르나요?"
 
"당연히 모르죠. 핸드폰도 두고 왔고, 일 년도 더 전부터 준비해 왔었 거 든요. 따로 통장도 만들어서 돈 꼬불쳐두고,,, 혹시 몰라서 전자여권도 만들어 두고,,,"
 
"왜 나 따라 엘에이 가려고요?"
 
"재워 준다면요."
 
"공범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요."
 
"무슨 범죄 저지르나요?"
 
"아닌가,,,"
 
그날 밤 열 시경에 나는 말기환자와 같이 흡연 장소에 있었다. 짙은 어둠속 이었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녀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초파일날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는 상황이라 그리 바쁘지는 않았고 그저 기왓장만 나르면 되었다. 제일 바쁜 건 식당 쪽 이었다. 아주머니 둘이서 처리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어서 며느리와 말기환자가 합류했고 그 때문에 우리는 오후까지 서로 얼굴을 못 보았다.
 
연등 밑으로 몰려들고 있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죽음이든 내세의 삶이든 나는 모르겠다. 다만 그들은 슬픈 도화꽃같은 느낌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날은 일요일 이었는데 우리는 같은 택시를 타고 절을 나왔다. '며느리'는 갈데가 없다고 하더니만 우리가 나간다고 하니까 바로 가방을 들쳐 멨다.
 
서울역에서는 말기환자가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는데 헤어지기 전에 나는 그녀를 데리고 건물 뒤쪽으로 갔다.
 
"꼭 전화해요. 내가 도와 줄수 있는 거는 도와주고 싶어요."
 
"그러죠. 고마웠어요."
 
잠깐 안고 있다가 놔 주었는데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며느리'는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들어가요. 남편한테 불편한 거 그대로 얘기하고 상의 해봐요. 대화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방법 이잖아요."
 
"그건 이미 다 해본거구요,,,신기한건 살면서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지금 찾아 갈수 있는 집이 없다는 거 에요."
 
"친구 있잖아요."
 
"아마 불편해 할 거에요."
 
"우리는 외로운 존재군요."
 
"많이요."
 
쉽게 헤어 질수가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같이 있었고 저녁에는 빨간 리본이 차를 끌고 나와서 셋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소주를 한 병 마실 수 있었다. 그녀들도 같이 마셨는데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빨간 리본이 친구가 없는 틈을 타서 말했다.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잖아요. 시집 사람들 문제 있는 건 저도 인정하지만 쟤한테도 문제 있어요. 고집이 너무 세요."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어쨌든 이별시간 이었다. 나중을 기약하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몇 주 일을 더 나는 한국에 머물렀다.
 
절에서 나온 나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태백시에서 이박삼일을 머무르고 그곳에서 마을버스 들을 번갈아 타가며 대구까지 오는데 또 그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주로 바닷가를 끼고 움직였는데 내가가는 곳의 파도들은 취해서 출렁거렸다. 한국으로의 여행은 의미가 없어지고 있었고 살아온 날들의 형태도 그러했다.
 
“남는 건 죽은 자와 산자밖에 없군,,,”
 
공항에서 티브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촌형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나라의 전 대통령이 날개도 없이 바위 위에서 뛰어 내리던 날 나는 날개 달린 비행기를 타기위해 인천공항에 있었다. 비행기에 오르기 바로 전에 사촌형은 “죽기 싫으면 그만 마셔.” 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죽기 싫으면 그만 살어,’ 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