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1.

   시연은 컴퓨터 페이지가 열다섯 번째에 도달한 다음 잠시 타이핑을 멈추었다.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 보았다. 다섯 번째 방문했던 이 집을 선택했던 이유는 영우의 어머니가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정원이 바로 그 창가에서 내다보인다는 이유 때문 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애기가 태어날 때 까지 아니 어쩌면 그 후로도 살 수있는 적당한 집을 찾아야 했던 그녀는 신문 광고를 보고 몇 군데 집들을 방문해 보았는데 다섯 번째 방문했던 집이 이 집이었다. ‘식사 제공 가능, 가족같이 생활하실 분, 욕실 따로 있고 부엌은 공동 사용, 한 달에 $800 이 광고였는데 와보고 다른 집 보다 조금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일단 집이 좋았고 가족은 어머니와 아들 단 둘 뿐 이라고 했다. 처음 그 집에 들어섰을 때 영우의 어머니는 그녀의 배를 보고 조금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시연은 말했다.
 
“놀라셨죠. 임산부가 찾아와서, 원정출산이라고 하나요, 그런 건 아니 구요. 그냥 남편이 너무 못되게 굴어서 가출 비슷한 거 했는데 이리로 오게 된 거에요.”
 
“글쎄요. 집세만 제때 잘 준다면야. 그런 것들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라고 영우 어머니는 대답했었다. 시연이 여섯 번째 집을 방문해볼까 아니면 그냥 여기로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면서 영우가 들어왔다. 둘은 잠시 눈이 마주쳤는데 영우는 고개를 까닥해 보이고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시연은 여섯 번째 집에는 가보지 않기로 했다.
 
“어쨌든 애를 여기서 낳게 되면 뭐 복잡해지는 거 아닌가? 산후 조리도 필요할 텐데 보호자라도 오시우?”
 
하고 영우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시연은 두 손을 무릎위에 공손히 얹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통한 다라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니는 병원 있어요. 십이월 말경이 출산 예정일이고요. 그때는 병원에 가 있을 거 에요. 어르신한테 피해 드릴일은 없어요.”
 
“그래요,,,”
 
“그리고. 아마 어머니가 오실 거 에요. 그러면 아마 한 달 정도 계실 텐데 그때는 방세를 더 드릴게요. 그리고 지금도 제가 임산부라는 약점이 있으니까, 팔백불로 광고 내셨지만 천불 드릴게요. 이백불은 그냥 제 배 때문에 신경 쓰시는 것에 대해 죄스러워서 드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영우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하고 독백을 하다가 이층으로 올라갔다. 영우가 불려나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영우는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 에요 지금, 팔백불만 받아요. 아니 그것도 많아. 좀 더 내려 받아요. 혼자 임신한 몸으로 힘들게 다니는 사람한테 도움은 못 줄 망정,,,”
 
시연은 그런 소리를 거실에 앉아 다 들을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어머니는 시연에게 말했다.
 
“그냥 팔백불만 주면 될 거 같은데 약속은 지키자 구요. 애 태어날 때 우리 힘들어 지는 일 없을 거라는 거,”
 
시연은 꾸벅 절을 했다.
 
“지금 제가 현찰로 이천 불을 가방에 가지고 다니고 있거든요. 디파짓도 필요 하시죠?”
 
“글쎄, 아무래도,”
 
“천 육백 불 드릴게요. 그럼 저 내일 이라도 이사 들어 올수 있나요?”
 
“방이라도 봐야지.”
 
“방 따로 있고 욕실 따로 붙어 있다면서요.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고, 작은 소파도 있다 그러 셨죠? 그럼 됐죠. 이렇게 아름다운 집에 살게 된 것도 영광인데요. 감사해요.”
 
시연은 백불 짜리 열여섯 개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영수증 같은 것도 받지 않은 채 그 집을 나왔다. 다음날 심부름센터 같은 곳에 연락을 해서 컴퓨터와 들고 왔던 노트북 컴퓨터, 그리고 옷가지 등을 담은 이민가방 한 개를 가지고 그녀는 이 집으로 이사 들어왔다.
 
창문 밖으로, 정원에 켜있는 수은등이 여러 종류의 꽃들을 불면증에 빠지게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연은 그 꽃들을 내다보면서 잠들어야할 시간에도 그렇게 할수 없는 생명체들을 생각해 보았다. 자신도 그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엘에이, 너무 멀리 왔나, 얼마전에 만화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주인공 소년은 은하계를 건너서 꼭 딸기같이 생긴 별 에서 그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멀리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두려웠다.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와 앉은 그녀는 열다섯 번째의 페이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글은 두려움에서 희망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에 영우는 어머니와 마주 앉아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몇년간 떨어져 살다보니까 생긴 어색함 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 어딘지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뉴저지에서 혼자 살다가 엘에이로 돌아와 어머니 집에 살게 된 게 아직 석 달밖에 되지 않았다. 분명히 어머니가 보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뒷마당에서 따온 게 분명한 오이를 각진 하트 모양으로 썰어서 접시위에 다시 하트 모양으로 올려놓았는데 영우는 그걸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어서 젓가락으로 밥이 담겨있는 그릇의 바닥 모양이 어떻게 생겼나 확인 까지는 하기로 하고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내일 한 여자가 이 집으로 들어 올 거야.”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아까 그 여자요?” 한여름에 손이 잘 닿지 않는 등에서 시작되는 근질거림처럼 참기 힘든 침묵에 어떤 언어를 집어 던질까 고심하고 있는 그의 귀에 어머니의 목소리는 구원처럼 들렸다. 하나의 주제가 생긴 것이다. 하나님이나 사랑에 관한 내용이 어머니 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 배불뚝이 여자가 고마 왔다.
 
“광고 보고 찾아왔나 보죠? 그런데 원정출산 이라는 거 아니에요. 그거 우리나라에서는 도덕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는데,,,.?”
 
“글세, 그게 좀 그렇기는 한데 얘기 들어보니까 아닌 것 같아. 그런 여자들은 왜 애 태어나기 한 두달 전에 와서 서류 다 되면 바로 돌아가는데 저 여자는 여기 온지 삼 개월 됐고 애기 태어난 후에도 여기서 살 거래.”
 
“그래요?”
 
“어차피 너는 이층 올라가면 내려오는 적도 없고 일층 방 두 개나 비었고 니 동생 선영이 몇 달 정도 있다 한번 씩 들르는데 방 하나쯤 남 줘도 되 잖아.”
 
“그건 그렇죠. 그런데 느낌이 어때 보여요?”
 
“글쎄, 일단 방세가지고 문제 만들 일은 없어 보이고 참해 보이더라. 가출했다는 말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영우는 어머니가 만든 하트를 파괴했다. 어머니는 여자고 여자가 하트를 만들 때는 사랑이라는 희한한 느낌의 감정세계에 빠져 들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대상이 아버지가 아닌 자신에게로 옮겨 왔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났다. 파괴의 방법은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던 고추장이 그의 행위를 도왔다. 어머니의 얼굴에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그는 그 전에 본적이 없었다. 그는 우걱우걱 씹어 댔다.
 
“자세한 얘기를 하기는 좀 힘들고 지금 있는 집이 좀 있기가 그래서 여기 우리 집으로 오고 싶다 그러더라.”
 
“그러 시던지요.”
 
“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사랑의 표시는 다 영우의 뱃속에 들어 가 있었다. 거북한 위의 압박감을 느끼며 영우는 이층으로 올라왔고 맨 처음 한 행동은 컴퓨터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 것이었다. 이메일에는 처참하게 죽은 이라크 참전 병사의 사진을 보내준 친구 존의 다음 설명이 있었다.
 
“나는 이런 사진을 보고 있으면 부러워. 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있다가 자기가 원래 살던 시리우스 별로 돌아간 거뿐 인데. 나는 돌아가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거든, 그래서 너한테 한 장 보낸다. 건강해라”
 
하트 모양의 오이 접시가 비워져 버린 이유는 사실은 입막음 이었다. ‘어머니가 만든 음식 먹고 있습니다. 조용히 이층으로 녹아들어 버리겠습니다.
 
와서 죄송합니다. 가능하면 다음엔 안 오겠습니다.‘ 그런 뜻의 함축인데 그러지 않았다가 잘못해서 듣게 되는 어머니의 언어는 그의 하루 이틀 정도 스케쥴을 망쳐버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는 경험상 알고 있었다. 사랑의 표시를 받아들이면 그 가능성은 많이 줄어드니까, 그리고 언어가 아닌 행동으로 하는 말들이 가지는 짜릿한 느낌들은 철 들 면서 누구나 경험해 봤을 거였다.

  다음날, 나타난 건 한명이 아니라 두 명 이었다. 젊은 아줌마는 뱃속에 정체모를 물건을 숨겨놓고는 뒤뚱거리며 걸어왔다. 전날 소파에 앉아 있을 때는 그저 임산부구나 라고만 짐작했을 뿐이지 그렇게 펭귄 같은 모습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두 명 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한명은 아니었다. 저녁에 영우는 집에 들어오다가 식탁에 어머니와 마주앉아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까닥하고 슬쩍 미소 지어보였다. 굳이 그녀가 인사하겠다고 일어서서 걸어 오지만 않았다면 그런 생각 까지는 들지 않았을것이다.
 
“저녁 먹어야지.”
 
소리를 뒤통수에 달고 그는 이층으로 그냥 올라가면서,
 
“식탁 위에 놔두세요. 이따가 배고프면 내려와 먹을 게요.” 라고 했는데,
 
“인사는 해야 될거 아니니.” 라고 어머니가 말했기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앉아있는 식탁으로 걸어갔다. 펭귄이 다시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냥 앉아계세요. 불편해 보이는데.”
 
그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들은 약 오분간 담소를 나누었는데 영우의 눈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그 시간동안 마치 고전 인물화의 모델처럼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입술만 달싹였다는 것이다.  마치 모딜리아니의 임신한 여인처럼 보였다. 
  방으로 돌아온 영우의 생각 속에는 그림들이 있었다. 펭귄, 엄마가 참혹하게 익혀버린 고등어 시체, 독수리가 새겨진 여권, 존의 군복, 꿈 속에서 빨래줄 비슷한 것에 매달려 있던 푸드덕 거리는 비둘기들 이었다.
 
메일을 열었더니 존의 편지가 들어와 있었다.
 
[다음 달에 엘에이 간다. 거기서 이 주간 있다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던가 아니면 마이애미로 가야되는데 아직까지는 결정을 못하겠다. 전에 농담으로 여기 여자나 하나 꼬셔 보고 가야겠다고 했었지? 그거 포기다. 여긴 여자 하나를 꼬시려면 그 가족 전체를 다 꼬셔야 돼. 이게 무슨 소린지 혹시 이해가 되냐? 이해할 필요도 없다. 캠프 펜델튼으로 일단 내릴 거고 부대 밖으로 나오게 되면 연락할게. 샌디에고 바람이나 쏘이러 와라. 택시비 아깝다.]
 
영우는 계산을 해보았다. 그가 떠난 지도 벌써 십사 개월이 지나있었다. 
  
  다이빙 장비 중에 오셔닉 게이지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아 물속에 들어간지 반시간도 채 못채우고 나와버린 영우는 책상 앞에 앉아서 그 동그란 기계를 작은 스쿠루 드라이버로 해체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는 배불뚝이 여자가 이사 들어온 지 몇일 지났을 때였는데 영우는 노크하는 소리를 듣고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방문을 열었다. 여자가 고개를 왼쪽으로 오도 정도 기울이고 그 곳에 서 있었다. 다시 모딜리아니를 흉내내고 있다고 영우는 생각했다.
 
“죄송해요. 제가 컴퓨터를 잘 모르는데요. 작동이 안돼요. 좀 도와주실 수 없나요?” ‘엄마가 나한테 부탁 하라던가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 왔는데 그는 그러지는 않았다.
 
“어떻게 안 되는데요?”
 
“인터넷을 오픈하면 글은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동영상이 안돼요.”
 
그녀는 수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영우는 그녀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배불뚝이 여자는 조심조심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는 영우를 그녀의 방으로 인도했다. 전에도 들어와 본 방이긴 했지만 느낌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얼마나 있다가 갈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컴퓨터가 예상했던 랩탑이 아니라 일반 PC였다. 게다가 처음 보는 런닝머쉰도 있었다. 그런 것들은 침묵하는 고등어처럼 이상하게 보였다.
 
“이 컴퓨터 어디서 난거에요?”
 
“팔 가에 컴퓨터 샾 있길래 거기서 산거에요.”
  어딘지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를 그도 두 번인가 갔었으니까, 영우는 컴퓨터를 껏 다가 다시 켰다. 자동차로 얘기하자면 그렇듯이 많은 여성 운전자들의 경우 액셀 밟으면 가고 브레이크 밟으면 서는 게 차라고 생각하는 게 그들인데 컴퓨터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은 여성을 만들 때 말하는 기능과 사실보다는 조금 과장되어진 감성의 기능을 더 많이 준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영우는 일단 인터넷 옵션으로 들어가 파일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 컴퓨터 사용한지 얼마나 되었죠?”
 
“음,,,제가 여기 온지 세달 됐어요. 오자마자 산거거든요.”
 
“랩탑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네,,,있기는 해요. 그런데 불편해서 못 쓰겠어요. 제가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거든요. 파일은 씨디나 USB로 가져가면 되니까,,,”
 
‘애기처럼 들고 가면 되니까 말이죠.’ 라는 소리가 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다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윈도우 XP 였고 200 GB 512 RAM 이었는데 파일들이 많이 엉켜 있었다.
 
“좀 지웠으면 하는데,,,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막 지워도 돼요?”
 
“네, 근데 한글 문서만 빼놓고요. 낙서 해 놓은 게 좀 있어서요,,,”
 
시연은 배시시 웃었다. 
 “그런 거는 지울 이유도 없어요.”
 
“네,,,그런데 커피 좀 타올까요?” 열 시경 이었다.
 
“전 밤에 커피 마시면 잘 못자요.”
 
“네,,,그럼,,,”
“ 냉장고 옆에 와인 있는 거 아시죠? 그거나 갖다 주세요. 임산부는 술 안 되니까 커피 한잔 타시고.”
 
“네.”
  시연은 웃으면서 방을 나갔다.
 
영우는 파일들을 마구 지웠다 ‘Delete' 'Yes' 등의 버튼을 마구 눌렀다. 컴퓨터는 혼자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따라서 영우는 그녀의 사생활을 지우고 있는 중이었다. 파일 하나가 쓰레기통에 들어가면서 기다려 달라고 애원을 하는 바람에 무료해진 그는 아까 그녀가 말했던 한글문서가 궁금해져서 그걸 클릭해 보았다. 처음에는 빈 화면, ’파일‘을 클릭해 보니까 ’엘에이‘ ’불면‘ 5월 14일’등의 제목 리스트가 있었다. 그는 그중에서 제일 위에 것을 클릭해 보았다.

갈증 목마름 그리고 이 도시,

  시간이 있다 없다 를 느끼는 것과 살아 있다와 죽어있다는 동일한 뜻이 아닐 까, 시간을 느낀다는 것과 못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으며 많이 움직여야하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의 차이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엘에이는 이상한 도시다. 분명히 서울에서보다 여분의 시간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느끼는 강도는 덜하다. 무료함을 억제하는 성분이 이 도시의 공기에는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
  서울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가고 공기는 무겁게 뒤쳐진 마라토너들처럼 늘어져서 흘렀다. 여름엔 열기를 겨울엔 한기를 가을엔 쓸쓸함을 봄에는 기대할게 없다는 씁쓸함을 항상 가져다주었었다.
 
여기는 이상하다. 아는 사람도 한명 없고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도 없는데, 만약 서울 이라면 무료함이라는 시멘트에 깔려 압사 당했을 텐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혹시 정말로 나는 천사의 도시에 온 것이 아닐까, 여기서는 사람들이 그리고 산 들이 가깝지 않다. 멀리 있다. 산들이 나무들이 가로수 가로등 들이 그리고 건물들이 사람들이 전부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애인 사이도 그럴 것이다. 절제를 아는 그들은 오래 가니까, 그래서 그들은 평온해 보이고 필요 없이 가깝게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올림픽 길에 있던 그 끔찍한 하숙집에서 뱃속에 생명체들을 품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남편 얘기만 했다. 여자들은 자아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래 탈출은 했지만 이 모텔은 너무 쓸쓸하다. 친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십오 일 째 나는 홀로 땅위에 내려앉은 구름처럼 부유하고 있다. 일요일이 기다려진다. 반갑게 인사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나 기분이 안 좋은 건 그들은 제복을 입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영어를 전혀 못하지만 미국 교회에 가 보았는데 그들도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하나님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 눈에 그들의 양복은 하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자기들끼리의 예의로 보였다.
 
이러한 노트들이 나에게 도움을 줄 것 이라고 생각해서 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너무 편안하고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뱃속의 아기 내 아기,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 궁금한데 그 아이가 양복을 입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까지 읽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우는 황급히 화면을 내렸다. 그 후로도 글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모니터 오른쪽 옆의 바는 그가 십분의 일도 읽지 않았다는 걸 보여 주었었다. 궁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도둑질로 남의 일기를 본 것이다.

“이거 맞죠? 흰색 와인이네요. 그녀는 영우의 엄마가 가끔 들여다보곤 하던 그 쟁반에 몇 개의 잔을 담아가지고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릴 거 같아요. 파일들이 많이 엉켜 있어서 그래요. 다 지워버리고, 책장 정리하듯이 깔끔하게 해 놓으면 되는 거죠. 아참 이름이 뭐라 그랬죠?”
 
“시연이에요. 이 시연.” 와인 잔을 그에게 내밀면서 그녀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전 영우인데요. 미국 애들은 영이라고 불러요. 와이오유엔지, 발음 쉽잖아요?”
 
“전에 얘기 했었 자나요. 미국 온지 오래 되셨나 봐요?”
 
“열다섯 살 때요. 그래도 고등학교 입학은 했었어요.”
 
“한국말 잘 하시네요.”
 
“못하면 이상한 놈이죠.”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일세와 일점 오세 그리고 이세 등 나누잖아요. 그 기준이 뭐죠?”
 
“몰라요. 나는 일점 이 오세 에요.”
 
시연이 웃다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뭔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데 알 수가 없어 물어 보았다.
 
“뭐하는 거죠?”
 
“컴퓨터가 그동안 지저분하게 생활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열심히 청소 하는 거죠.”
 
“한국말 진짜 잘한다,,,” 시연은 또 웃었다.
 
“이거 보세요. 저 한국 신문만 봐요.”
 
열한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동부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학교 때문에요. 다시 가야되는데 등록금이 없어요. 그래서 내 친구 하나는 이라크로 갔고,,, 별 얘기 다 하네.”
 
“몇 살이에요?”
 
시연은 웃음을 멈추고 그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도 그녀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맑은 호수 갔다고 그는 생각했다. 돌을 던지게 되면 튀어오르는 그 물방울,
 
“어머니가 구워놓은 고등어가 몇 살인가를 생각해 본적이 있어요. 생각하다가 그게 고등어에게는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요.”
 
“알았어요. 다시 안 물어볼 께요.”시연은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떠올려 보았다. 조직사회에 어울리는 복장, 양복 넥타이, 반짝 거리는 구두, 그 옆에 서려면 항상 입어야 했던 정장 원피스나 투피스, 스물 두살 때 소설 한편이 추천되어 시상식장에 갔을 때도 거기는 온통 양복과 흰색 원피스의 물결이었다. 영우처럼 청바지에 튿어진 티셔츠, 샌들 차림을 남편은 어렸을 적에도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 주위에 없었다. 특히 영우의 샌들에는 은색 해골바가지가 매달려 있었는데 음산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의 머릿속 일부를 들여다 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현대화된 엘에이의 니힐리스트는 이십 사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라고 그녀는 생각 했다. 한번은 호기심에 신발장을 열어본 적이 있었는데 남자 구두가 하나 있긴 했지만 거의 새 거 였다.
 
한편 영우는 배불뚝이 내지는 펭귄, 하고 뽀뽀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존이 보낸 편지 중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번은 눈만 빼놓고 온통 천으로 휘감은 여자랑 참호 같은데 열 시간 가량 숨어 있었던 적이 있었어. 그래 눈이 하도 예쁘길래. 아참, 그 여자 영어 좀 하더라. 뽀뽀 하고 싶다고 그랬더니 여자 말이 그랬다가는 오빠들이 나랑 자기 목을 잘라버릴 꺼 라고 그러더라. 웃기지? 내가 지 생명의 은인 이었는데 말이야. 다른 나라에서였으면 끝내주는 로맨스로 결말이 나야할 상황에 왠 목을 잘라?’ 그걸 읽으면서 영우는 하나도 안 웃겼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
 
그는 또 웃었다.
 
“펭귄들은 항상 얼음 위에 있잖아요.”
 
“왠 펭귄 요?”
 
“근데 발에 동상이 안 걸린 데요. 특수한 재질을 가지고 태어나서, 하하,”
 
시연은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지금 제 얘기를 하나요?”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생명체들 보면 너무 놀라워요. 그 중에서도 인간이 제일 독종이고요.”
 
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영우는 웃음을 멈추고 두 잔 째 의 와인을 입으로 가져갔다.
 
“펭귄이 예쁜 거는 아시죠?” 블라인드가 걷혀진 창문의 왼쪽 윗부분에 자리 잡은 달이 둘을 감시하고 있었다. 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 껏 다가 다시 켜 보시고요. 또 문제 있으면 얘기하세요.”
 
영우가 돌아가고 난후 시연은 컴퓨터를 껏 다가 켰다.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져 있었다. youtube 로 가서 너바나 'Smells like teen sprit' 을 클릭했다. 동영상이 나오고 음악이 나오고 커트 코베인이 마이크를 아이스크림처럼 먹으려고 하는 화면이 나왔다. 어린 딸에게 자살하기 전 썼던 그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좋았다. 얼터너티브가 뭔지는 모르지만, 헤로인이 뭔지도 모르지만 좌우간 그녀는 그의 음악이 좋았다. 그런데 컴퓨터가 방해를 한 것이다. 그녀는 ‘Lithium' 과 ’Come as you are' 를 차례로 들었다. 그리고 영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영우가 한 정도의 작업은 그녀도 충분히 할수 있는 것들이었다. 자신도 할수있지만 남에게 부탁 하는 행위,  거기엔 관심 이상의 것이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되자 그녀는 슬퍼졌다.
 
영우는 집으로 돌아와서 일단 신발부터 확인했다. 현관 바로 앞의 플로어에 놓여있는 그녀의 신발은 왼쪽 발은 정갈하게 놓여있고 오른쪽 발은 비뚤어지게 놓여 있었다. 물론 부른 배로 신발을 제대로 정리하기는 힘들었을 테니까 아마도 발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상태는 그녀가 반 만 이성적이라는걸 보여주는 것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말했다.
 
“좀 사는 사람들은 미국에서 애 낳는 게 유행인가 봐. 남자아이일 경우 군대 문제 해결 되고 여자 아이들일 경우에도 미국과 연계 되니까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교육문제 같은 거 말이야.”
 
“나도 궁금 하 길래 인터넷으로 좀 들여다봤어요. 원정출산 비용이 대충 이 만불 정도 든답니다. 또 지금은 무비자 시대고 마음만 먹으면 왠 만한 집안에서도 다 할 수 있데요. 그런데 일 퍼센트의 사람만이 한데요. 이천이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아이가 오천명 이었데요. 그중 팔십 퍼센트가 남자아이 였구요. 일 퍼센트의 상류층이 하는 게 아니에요. 자식한테 목숨 건 부모들, 즉 덜 떨어진 사람들이, 이건 내 표현이 아니 구요. 어느 신문사 기자가 쓴 내용이에요. 원정출산으로 낳은 한국 아이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는 게 그 사람의 결론 이었어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향한 집착, 내지는 그 아이가 커서 자신들을 초청하면 미국에 와서 살 수 있으니까, 이런 것들이라는 거죠.”
 
영우는 덧 붙여 말했다.
 
“그 일부의 사람들 때문에 한국이 미국의 시다바리가 되어 버렸네요.”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니?”
 
“한국 영화중에 친구라고 있어요. 거기서 배웠어요. 내가 니 시다바리가,,,”
 
영우는 그 대사를 흉내 내면서 눈알까지 위로 치켜떴다.
 
“나도 좀 그렇다. 그런 여자가 집에 와 있으니까.”
 
“원정출산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어쨌든 임신 중 이자나. 임신은 한국에서 한 거고.”
 “그건 그러네요.” 영우는 어머니의 집착을 떠올렸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거기엔 애국심이나 비도덕적, 이기적, 이런 말들은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미국행도 원정출산과 별반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나쁜 여자는 아니거든.”
 
어머니와 그런 대화를 주고받은 날, 영우는 오래간만에 존에게 편지를 썼다. 한국어를 사용했다.
 
“우리 집에 펭귄이 한 마리 들어왔다. ‘내 집’ 이 아니고 ‘우리 집’ 이다. 엄마가 데리고 온 거니까 그렇게 된 거다. 조금 친해졌거든 그러니까 몇 일안에 찍은 사진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참고로 말하자면 배가 수박만 해. 걸어가는데 말 걸면 ‘네?’ 하고 쳐다보는데 완전 펭귄이다. 일곱 달인지 여덟 달인지 됐 덴다. 지금은 사진 없어 미안하다. 담에 꼭 보내줄게, 캠프 펜델튼 까지는 백마일 이니까 정중하게 택시비를 백불 요청하는 바이다”
 
그리고 다시 영우는 신발장으로 갔다. 그녀의 신발은 그대로 있었다. 그는 안심을 했다.
 
일요일 아침에 영우는 그녀를 다시 만났다. 계단에서였다.
 
“이층에 안 올라 오자나요?”
 
“영우씨 보려 구요.”
 
“왜요?”
 
“교회 태워 줄 수 있나 물어 보려구요.”
 
“교회 다녀요?”
 
“아니면 어디 가죠?”
 
“말 되네요.”
 “태워 줄래요?”
 
“태우는 건 불 지르는 거거든요.”
 “데려다 달라 구요.”
 
“택시 불러 드리죠.”
 
“잘났어 진짜,,,”
 
“나 몇 살이냐고 물어 봤었죠. 고등어 하고 상의를 했는데요. 자기가 스물 여섯 이래요. 내 나이는 나도 모르고.”
 
“고등어가 스물여섯 까지 살아요?”
 
위 아래로 계단에서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하는 상황이라 불편해져서 영우는 그녀를 이층의 방으로 따라오게 했다.
 
시연은 그를 따라 올라가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남편이 따라 올라 오라고 하면 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했다고 주위에 말했으니까 그랬을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무슨 의미지? 전혀 다른 형태가 오버랩 되어버려선 곤란하다.
 
영우는 말했다.
 
“컴퓨터 잘 돼요?”
 
“네. 덕분에요.”
 
“뱃속에 애기 없었으면 많은 게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슨 뜻이죠?”
 
“이 시간에 엘에이에 있지도 않았을 거 같고. 나한테 교회 태워 달라는 얘기도 안 했을 것이고,”
 
“좀 오버 하시는 거 아니에요? 몇 블록 떨어지지도 않은 교회 태워 달라는 부탁 했을 뿐인데.”
 
“일어나십시오. 사모님 바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나 그냥 택시타고 갈래요.”
 
“농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보였는데요.”
 
둘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맑은, 저수지의 가장 윗부분처럼 맑은 눈이 영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우는 힘들게 반달눈을 만들어서 그녀를 웃겼고 시연도 피식 웃었다.
 
“바로 차 가지고 오겠습니다. 일분 삼십초 후에 내려오십쇼.”
  집 앞에서 영우는 조수석 문을 열어놓고 마치 서울의 호텔 주차장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엘에이 에서는 코메디 프로 아니면 볼 수 없다. -두 팔을 크게 휘둘러 좌석을 가리켰다. 하지만 영우는 서울에서 그런 장면을 직접 보았었다. 백화점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경우에 더 짜증나는 건 일본인들이다. 잘 모르는 일본인과 대화하다가는 척추 디스크와 목뼈 늘어남 증상 같은 것에 걸릴지도 모른다. 문화차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목 뻣뻣하게 하고 미소만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던 영우에게는 희한하게 느껴졌었다.
   시연은 얌전히 그 좌석에 올라탔다. 부엌의 창문 뒤에서 영우의 어머니가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몇 블럭은 거짓말이었고 차로 오 분 정도의 거리에 교회는 위치해 있었다. 교회 건물은 1920 년대에 미국 천주교 교단에서 지은 건물이었는데 1989년에 한국인 개신교 목사에 의해 한국교단 소속으로 바뀐 건물이었다. 아마도 그때도 개신교 신자인 어느 은행원의 능력이 십분 발휘 되었을 것이다. 입구에 어느 정도 조악하지 않은 조각들을 설치해 놓아서 거리를 아름답게 살리고 있었다.
 
“올 때는 어떻게 할 거에요?”
 
“택시 부를 거 에요.”
 
“택시 부르기 전에 내 전화번호 들여다보면서 생각할거 자나요.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그런 과정 생략하고 그냥 나한테 전화 하세요. 바로 올 테니까. 오늘 할 일 없어요. 우주인 친구 하나 있는데 챗팅 하고 아니면 그만이고 그렇거든요.”
 
“그럼 한 시간 있다 전화할 게요.”
 
“한 시간 안에 예배가 다 끝나요?”
 
“그건 알 필요 없구요.”
 
“한 시간 후에 오죠.”
 
 
  그들은 교회에서 출발해 집으로 가지 않고 바닷가로 향했다.
 
“덕분에 바다구경하게 됐네요.”
 
“못 가봤나요?”
 
“한번 가봤어요. 그때는 저랑 비슷한 여자들 넷이서 같이 살고 있어서 우리중의 한명 남편이 오게 되면 신나게 돌아다니곤 했거든요.”
 
“비슷하다는 건 배의 상태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죠. 남편이 태평양 건너 있다는 것도 영주권이 없다는 것도,”
 
“원정 출산 이라고 간단하게 얘기하면 되지. 뭘 그렇게 어렵게 얘기해요.”
 
“대화 끊어질까 겁나서 길게 늘이는 거죠.”
  영우는 잠시 그녀의 컴퓨터를 떠올려 보았다. 혹시 알려진 작가는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훔쳐본 죄 때문에 물어 볼 수는 없었다.
 “왜 그런 걱정을 하죠?”
 
“어색한 사이니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자나요.”
 
“전 안 어색한데요?”
 
“배불뚝이 남의 아내랑 바닷가에 놀러 가는데 안 어색해요?”
 
“배불뚝이니까 안 어색 하죠.”
 
그러고 나서 정말로 침묵이 찾아왔다. 일요일이라 프리웨이에는 차들이 별로 없었다. 10번 프리웨이를 영우는 칠십 마일도 넘게 몰아서 산타모니카 까지 십 오 분만에 도착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속도는 오 마일 이상 낼 수가 없었다. 구월말의 마지막 더위가 해안가를 달구고 있었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기대했던 그들은 창문을 닫고 대신 에어컨 바람으로 대신해야 했다.
 
“에어컨 통과해 나오는 바람도 어쨌든 바닷바람은 맞자나요.” 라고 영우는 말했고 시연은
 
“짝퉁 아니고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영우가 다시 대화가 시작된 걸 반기면서 물었다.
 
“솔직하신 거 같아서 안심 좀 하고 물어보는 겁니다.”
 
“뭔데요?”
 
“원정출산에 관한, 가족은 다 무시하고 순전히 본인 자신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딱 한마디의 단어로 요약 한 다면요.”
 
시연은 웃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그를 쳐다보았더니 옆모습이 꽤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대답했다.
 
“안쓰럽다.”
 
“안쓰럽다. 어째서요?”
 
“조그만 나라에, 그것도 두 동강이가 된 나라에 태어나서 나서 남자들은 다 군대에 가야되고 그러니 원정출산이라는 희한한 일도 생기자나요.”
 
“도덕적 으로는요?”
 
“그런 단어는 어울리지 않아요. 단지 안쓰러움이에요.”
 
“그럼 본인의 원정출산에 관해서는 잘하고 있는 거라 생각 하시나요?
 
“힐난 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그리고 저 원정출산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닙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문화적으로 많이 다른데서 컷어요. 표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같은 한국말이긴 하지만,”
 
차의 속도는 여전히 오 마일 이었다. 성인 남자가 빠르게 걷는다면 나올 그런 속도로 차는 움직이고 있었다. 왼편으로 펼쳐지고 있는 산타모니카의 해변으로는 수평선과 하늘이 접혀져 있었고 해변에는 빽빽이 세워진 차들 뒤로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거래를 하죠.” 라고 시연이 말했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무슨 거래요?
  “안쓰럽다는 말이 나의 경우에는 안쓰러움의 제곱이거 든요. 그 얘기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네요.”
 
“알고 싶으면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되요. 그럼 나도 말해 줄 께요.”
 
“뭔데요?”
 
“나이 태어난 곳. 좋아하는 작가.”
 
“그거 답 다하면 원정출산에 관해 내가 질문하는 거 다 답해주는 거 맞는 건가요?”
 
“약속하죠. 사실 저도 이런 얘기 해보고 싶은 사람이 필요 했었어요.”
 “스물 여섯, 서울 연희동, 스티븐 킹 됐나요?”
  시연은 웃지 않았다. 한참을 골똘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린 한국말을 하는 반 미국인, 한국 사람처럼 생긴 미국인, 이런 사람한테 자신의 끔찍했던 경험담을 얘기한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농담 삼아 나이를 물어 봤을 때 고등어를 앞에 내세웠던 그는 어쩌면 시연 자신이 알 수 없는 많은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쨌든 그녀는 대화를 부드럽게 해야 한다고 느꼈고 이렇게 말했다.
 
“전 스물 여덟 이에요. 내가 두 살 더 많네요?”
 
“네. 그렇군요. 어쨌든 대답 했으니까 제가 궁금한 거 대답하셔야죠. 안쓰러움 플러스 안쓰러움 그건 뭐죠?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 에요?”
 
“조금 더 가면 말리부 라는 도시 있는데 그 동네에 제가 잘 가는 바닷가 있거든요. 입장료는 받지만 거기 있는 식당에서 음식 사 먹으면 그걸로 다 까는 거죠. 좋아요.”
 
“여자 친구랑 자주 왔었겠네요.”
 “저는 뉴저지 살아요. 하기사 더 어릴 땐 여기 살았지,,,그렇죠. 근데 다 떠나버렸으니까. 지금은 배불뚝이 아줌마랑 가는 거고.”
 
“왜 다 떠나 버렸어요?”
 
“철새들이 왜 떠나는지 모르세요?”
 
“몰라요.”
 
“먹고 살려고 그래요.”
 
능력이 없나보죠?”
 
“있어도 여자한텐 안 써요. 자존심 문제에요. 지금부터 여자라는 단어를 얘기하면 한국 여자들 얘기로 아시면 되는데요. 식당 같은데 가면 먹고 바로 일어나서 나가요. 남자가 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 하나 봐요. 너무 이상했어요. 누가 걔들을 그렇게 가르쳤죠?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자존심이 확 상해요. 그럼 나랑 다닌 이유가 내가 돈줄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거죠.”
 
시연은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말고요. 나는 답 다 했으니까. 이제 얘기해 봐요. 안쓰러움의 정의에 대해서.”
 
영우는 계속했다.
 
“바다에 친구들이 많이 살아요. 스쿠버 다이빙을 오래 했거든요. 고등어도 살고 오징어도 살고 돌고래도 살고 몸길이가 십 미터나 되는 수염고래도 살고 가재도 살고 해삼도 살고 새우도 살고 스킵잭도 살고 블루 테일도 살고 엘로우 테일도 살고 좌우간 많이 사는데 개네 들 하테 물어봤더니 그런 애들이랑 놀지 말랬어요. 그래서 없다 구요. 그런데 고등어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바보 같은 놈아 걔네들 그거다 페이백 해야 돼. 안쓰러움의 정의를 알고 싶다고 그럼 니가 페이 해야 돼,,,이런 식이죠.”
 
“그건 고기들 말이 맞네. 그나저나 많이도 물어봤네요?
 
“네, 고기들은 다 내 친구들이에요.”
  그녀는 다시 웃었다.
 “친절하게 설명 안 해 줘도 알아들어요. 그나저나 원정출산에 대해 물어보는 거죠?”
 
“그랬었죠.”
 
“뭘 알고 싶은데요.”
 
“안쓰러움의 정의요.”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려요?”
 
“삼십분 정도요.”
 
“거기 가서 말하면 안 될까요.”
 
“그러세요.”
 
샤도네 한병과 샌드위치. 그게 영우가 시킨 전부였는데 식당 측에서는 UFO를 하나주었다. 그게 소리를 내고 날아가려고 하면 가지러 오라는 거였다. 적당한 파라솔을 잡아 본부로 만들어놓고 영우와 시연은 UFO를 들고 바다로 갔다. 밀려오는 바닷물이 발끝에까지 닿을 정도의 모래사장에서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예쁜 돌들이 발밑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시연이 말했다. “우리나라에 이상이라는 시인이 있어요.”
“알아요.
“어떻게 알 수가 있죠?”
“저는 대한민국 땅에서 십 오년 하고도 사십일을 살았으니까요.”
“가만 보면 재밌어요?”
“더 재미있을 수도 있어요.”
“계산할 때 나가버리지 않고 배불뚝이 아니면?”
“너무 솔직해도 결과는 별로 좋지 않더라구요.”
 
시연은 소리 내서 웃었지만 영우는 시큰둥하게 UFO만 바라보고 있었다. 시연은 도가 지나치게 웃다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영우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뭐야 이거 남의 와이프인 배불뚝이 아줌마와 내가 코드가 맞는다는 거야?’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상이 뭐요?”
“아, 그게요,”
 
시연은 좀 진정을 하고나서 다시 일어섰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체크무늬 임신복이 바닷바람에 심하게 날리고 있었다.
 
“그 시인이 쓴 거중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바다에 갔다. 그곳에도 우울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멋있지 않아요? 바다만 보면 그 구절이 생각나고 또 그가 지금 내 나이에 지구를 떠나버렸다는 것도 생각나고,,,”
 
“유에프오는 날아갈 생각을 안 하네요. 술 생각나는데, 사올걸 그랬죠?”
  
영우는 UFO를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시연은 그런 그의 머리를 잠시 올려다보고 있더니 말했다.
“반 곱슬 인가요?”
 
“네. 그래서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그게 그거로 보여요. 미장원 안 가고 내가 마구 잘라도 표가 안 나고.”
“머리를 직접 잘라요?”
“네. 내 취미에요. 아침에 세수하고 나서 가위를 들고 거울을 노려보다가 다시 가위를 내려놓곤 하죠. 뒷머리에 삐죽이 나와 있는 저 놈하고 이별을 할까 말까, 이별하는 방법은 주로 토일렛을 사용해요. 머리카락들이 토일렛안으로 물과 함께 사라지고 나면 미안한 감정이 들어요.”
 
“그래서 머리가 길군요.”
 
시연은 또 다시 웃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제가 세수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시연은 다시 주저 앉았고 영우는 아까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뭐야 이거 정말 뭔가 통하는 거야?
 
잠시 후에 그들은 들고 왔던 시연의 가방을 올려놓고 사방으로 놓여져 있던 네 개의 철제 의자들을 모두 물구나무서기를 해 놓은 그 본부로 돌아왔다. 사실 시연은 그때부터 웃기 시작 했었다. 주위에는 전부 백인들 뿐 이었는데 그들도 그러고 있는 영우를 웃으면서 보고 지나갔고 한 헤밍웨이 닮은 아저씨는 영우에게, 그런다고 당신 자리가 될까? 라고 농담을 던졌고 영우는 만약 여기 누가 앉으면 갈매기들이 와서 마구 쪼아 댈 겁니다. 라고 대답했었다. 시연은 그들의 대화를 신기하게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샤도네 병은 이미 오픈 되어 있었고 영우는 글래스의 반을 채워서 시연에게 내밀고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 UFO는 날아가고 없었다.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하죠.”
 
“원정출산이요?”
 
“아니요. 안쓰러움의 제곱이요.”
  
시연은 샌드위치에 따라 나온 감자튀김을 먹으면서 어떻게 대답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영우는 다시 말했다.
 "안쓰럽다는 말의 의미를 저는 알고 있어요. 난 엄마가 안쓰럽거든요. 정말 그 말을 이해해요? 그런데 그 안쓰러움에 제곱이 있다니, 놀랄 수 밖에요.”
 
시연은 그를 잠시 쳐다보았다. 머리가 곱슬 거리고 동그란 눈을 하고 어릴때 떠난, 조국의 시인을 알고 있는 청년, 누구에게도 해보지 못한 얘기를 해보고 싶어졌다. 그러다보니 가슴이 먹먹해져서 방금 거닐다 온 해변가를 다시 돌아다보았다. 어린아이들 몇이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공이 너무 커 보였다. 어른 남자들 둘이서 그런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말을 시작해 보자고 그녀는 결심했다.
 
“영화 캐리 보셨어요?”
 
“그거 아주 오래된 거 자나요. 소설은 읽었어요. 스티븐 킹 이죠?”
 
자신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작가의 작품을 그녀는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저는 소설은 못 봤고,,,”
 
시연은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해야 했다. 시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하면 다친다고 했나요. 짤막하고 솔직하게 얘기 할께요. 이분 안 넘길테니까 그냥 들으시면 되요. 제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이에요. 돈 하고는 거리가 멀어요. 그런데 신흥 재벌 이라고 있는데, 그런 말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남자하고 결혼하게 된 거에요. 결혼식 하던 날 알았어요. 뭔가 잘못 됐다는 거, 피로연 때 였는데 남편이 친구들한테 이렇게 말했데요. 그 집이 교육자 집안 이니까. 일단 우리 집안도 모양새는 나온 거고, 오늘이 있기까지 진짜 고생했다. 말도 안 되는 데이트 하느라고 나 진짜 고생했거든, 그말이 고스란히 저한테 들어왔어요. 그리고 결혼 전 후가 그 사람은 완전히 달라요.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다는 게 의아했어요. 웃기는 얘긴데 난 집안 좀 살려보자고 그 사람 하고 혼인 했었나 봐요. 신혼 첫날 하와이로 갔었어요. 덤벼 들 길래 발로 찼는데, 왜 찼냐면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이해 해요? 전혀 아닌데 그런 행동을 하는 상대, 난 옆구리를 찼는데 하필이면 그게 급소를 맞은 거 에요. 아픈 거는 문제가 아닌데 자존심이 상했겠죠. 그래도 폭행은 안 했어요. 그런데 놀란 거는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그 호텔방에 있던 사기 그릇 들이 전부 토막 나 있었던 거죠. 밤새 칼로 찔렀나 봐요. 그리고 손을 베었는지 붕대를 감고 있는데 부엌의 찬장이며 싱크 같은데 시뻘건 피를 마구 발라 놨더 라구요. 그 공포감은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 어쨌든 그리고 돌아와서 몇 달 후에 남편이 술 마시고 들어와서 나를 덮쳤어요. 남자 힘을 당할 수가 없잖아요. 지금 이 뱃속에 있는 애가 그때 걔 에요. 이분 안 넘겼죠?”
 
“이분 십초에요.”
 
더 이상 시연은 말하지 않았다.
 “캐리가 태어날 거 같아서 걱정이 되요?”
 
“걔 엄마는 광신자 였고 스푼이나 칼이 맘대로 날아가는 건 감독의 오버고,,,중요한건 우리가 바닷가에 앉아있고 술병이 비어가고 프렌치 프라이도 당신이 다 먹어치워 버리고,,”
 
“어쨌든 그때부터 도망가자는 생각을 했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전 각본을 다 짰어요. 임신도 되기 전이죠. 그런데 임신이 되더라구요. 아까 말 햇 듯이요. 두 달을 더 참았죠. 돈이 필요할 때는 참아야 되거든요. 그리고 시아버지한테 원정출산을 왜 해야 하는가를 열심히 설명했거든요. 중요한건 내 남편이 아니고 시아버지한테요.
 
“무서운 사람이군요.”
 
“제가 결혼 전에 아무것도 몰랐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일 년도 안 되서 저는 다 알겠더라구요. 얼마나 잘못알고 있었던 것인지.”
 
“지금은 안다. 그래서 무서워졌다?”
 
“그렇게 말할수도 있어요.
 
“아기는 없애 버릴 수도 없었고,,,”
 
“캐리처럼 악마의 자식은 아닐테니까요. 그리고 그건 살인 이니까요.”
 
“그나저나 발로 찬 이유가 정확히 뭐였죠?”
 
“말하기가 좀 곤란해서 그랬는데,,,하죠 뭐, 호텔방에 들어갔는데 맨 처음 한 게 프론트에 전화해서 성인 채널 넣어달라는 주문이었어요. 내가 좀 이상해서, 그런 게 왜 필요하죠? 하고 물었더니 한다는 말이 아 우리도 보고 좀 따라 해야 될 거 아냐 였어요.”
 
“포르노 본다고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요?”
 
“당연히 아니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만약 그때 남편이 내가 물어봤을 때, 만약 이런 식으로 대답을 했다고 가정 해볼께요. 음,,,좀 어색하고 그래서 그런 거 같이 보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럼 제 생각은 전혀 달라져요. 남편 편이 되는 거죠. 그래 한번 봐 보자.”
“혹시 결벽증 있으세요?”
 
영우의 그 말에 시연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 되었다.
 
“저는 남이 먹던 사탕도 먹어요. 친한 친구 거라면 말이죠. 그건 전혀 성질이 다른 이야기에요. 결혼 전에 남편은 예술영화만 보러가자고 했었어요. 무슨 얘긴지 이해하세요? 포르노 본다고 정나미 떨어진 게 아니에요. 영우씨 말마따나 나도 볼 수 있어요.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에요. 나는 너무 놀란 게 천박함을 그렇게까지 감추고 있었다는 거에요. 포르노 중독에 도박 중독 이라는 사실은 더 뒤에 알게 됐지만.”
 
“제 말 때문에 화 나셨다면 사과드리죠.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여자들은, 물론 한국여자에 한 해섭니다. 자아가 없거든요. 그 부모와 그들이 속한 사회의 이상한 흐름에 따라 움직여요. 미국에서 큰 저는 한국에서 막 도착한 여자들과는 데이트조차 못 하겠더라 구요. 그 말일 뿐이었는데 화 나셨어요?”
 
시연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대화가 안 되는 사람한테 이런 말을 하겠어요? 그리고 좀 전에 한국여자들에 관해서 한 말은 저도 공감해요. 왜 제가 저랑 비슷하게 배가 빵빵한 여자들하고 못 어울리고 영우씨 집으로 왔겠어요.”
 
“어쨌든 화 난거는 맞자나요.”
 
시연은 망설이다가 얼굴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영우 같은 남자는 많을 것이다. 솔직하고 사과할 줄 알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남편이 아니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와인 병을 탈탈 털어서 잔에 채우고 한 모금 마신 영우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여자를 싫어하는 이유가, 거짓말이에요, 그들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거든요.”
 
“제가 거짓말을 했나요?”
 
“아뇨. 지금은 거짓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니까요. 혹시 침묵이라는 거짓말 아세요?”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와인 한병 더 할래요?”
 
“그냥 타운으로 가요. 좀 춥네요 이제. 그리고 제가 거짓말쟁이 조건을 타고 났다고요?”
 
“새로운 애인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전 남자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요? 침묵이죠."
“그건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 같은데요.”
 
“그럼 하나만 물어보죠. 만약 지금 배불뚝이 상태가 아니었다면 조금 전에 나한테 했던 얘기들 고스란히 다 할 수 있어요?”
 
시연은 대답대신 빙긋이 웃었다. 제목도 기억 안 나는 미국 영화 한편 이 떠올랐다. 미키 루크는 마주 앉아있는 여자에게 묻는다. 저쪽 테이블 두 남녀 말야.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 거 같아? 불륜, 그리고 섹스, 하지만 인상 깊었던 그 느낌을 영우는 재연하고 있었다. 나인 하프 위크 였던가,,,시연이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그나저나 여자를 싫어해요?”
 
영우는 바로 대답했다.
 
“애인만 좋아해요. 그 외에는 전부 적이에요. 하다못해 애인도 거짓말을 하니까, 황당하긴 한데,,, 하기사 할 수 밖에 없으니,,,
 
시연은 다시 또 웃었다.
 
 “불쌍한 사람들만 만났군요.”
 
“아뇨. 일반적인 사람들이죠.”
 
해가 지고 있었다. 구월도 하루밖에 남겨놓지 않은 해는 빠르게 서쪽 해안속으로 잠수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는 '당신네들 얘기가 구질구질 해서 듣기 싫어 먼저 간다' 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동부에는 언제 돌아가나요?”
 
시연이 물었다.
“내년 일월에요.”
“크리스마스는 여기서 보내겠군요.”
“모르죠.”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연은 자신의 가방을 들쳐 메고 있는 영우의 뒤에서 빠르게 말했다.
 
“원정출산은 그 집안 사람들의 착각이고 난 도망 온 거에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울 엄마밖에 없는데 한사람 더 늘었네요.”
 
차에 시동을 걸면서 영우는 말했다.
 
“안돌아 갈 거라 이건가요?”
 
“네, 그리고 그냥 여기서 살 거에요. 여기는 가슴이 답답하지 않아요.”
 
“어떻게 살 건데요?”
 
일번 도로로 나온 영우는 차를 빠르게 몰았다. 칠십 마일이 넘어서자 시연은 걱정이 돼서 말했다.
 
“뱃속 애기 놀라겠어요.”
 
“소설 쓰시죠?”
 
갑작스런 그의 말에 시연은 많이 놀랐다.
 “그거는 또 어떻게 아세요?”
 
“내가 아까 여자는 거짓말쟁이 어쩌구 한건 당신이 소설 쓰는 사람 이라서 한 얘기였어요.”
 “글은 많이 써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냐 구요.”
 
“얼마 전에 컴퓨터 고쳐준 적 있자나요. 그때 잠깐 읽어 봤어요.”
 “뭘 읽어 보셨나요?”
 
“엘에이에 관한 얘기 였어요.”
 
“함부로 읽어도 돼요?"
 “누군가에게 읽혀졌으면 하고 쓰는 거 아닌가요?”
 
시연은 늪에 빠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느낌은 논리보다 우위다. 그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영우는 몇 마디로 표현하고 있었다. 다시 또 슬퍼졌다. 왜 한 템포씩 늦는 것일까, 미리 만났어야 했어, 왜 이런 모습으로만 나타나야 하는거지, 
 
“등단하고 나서 일부러 책을 안 냈어요. 뱃속의 아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강간의 아픔, 말을 전달했을 경우 듣는 사람이 전하는 사람의 감정을 어느 정도나 이해 할 수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제 추측이 맞 다면 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대충 알아들었겠지만 그 아픔까지는 아닐 거 에요.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말이 운이 없었다 라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스포츠 경기에서는 통하는 말일 거에요. 하지만 인생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이런 바보 같은 인생을 만든 사람의 글을 누구한테 읽으라고 써요. 그러니 그냥 습관상 써대는 거를 컴퓨터에 저장만 하고 있는 거죠. 엘에이 얘기만 읽었다니 다행이네요.”
 
영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미있는 제안 하나 할까요?”
 
시연이 궁금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전에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요. 하루에 글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되요?”
 
“글쎄요 뭐,,,어떨 때는 한 페이지도 안 나가고 어떨 때는 삼사십 페이지도 나가도,,,”
 “아니 시간을 묻는 거에요. 이십사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느냐가 궁금한 거죠.”
 
“그게 왜 궁금해요?”
“화가들은 캔버스에 꿈을 바른다면서요. 그럼 작가들은 페이지를 꿈으로 채우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지난 일들을 써보세요. 그래서 누가 먼저 읽기 전에 나에게 보여주세요. 왜냐면 오늘 들었던 일들이 재밌었다는 말은 실례고 아주 매력적 이었거든요. 말보다 글로 바꾸면 훨씬 더 그럴 거 같아서요.”
 “그런데 글 쓰는 시간은 왜 물어요?”
 
“꿈을 얼마나 꾸느냐를 알아야 제가 기대를 하던가말던가 하죠.”
 
시연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이제는 또 새로운 꿈, 좀 더 어리석은 꿈을 꾸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게 걱정되었다. 그렇게 창밖으로 지나가는 도시 풍경들을 보고 있는데 영우가 너무나 기막힌 말을 했다.
 
“나는 이런 글을 읽어보고 싶어요. 섬세하게, 엘에이로 임신한 상태로 날아온 얘기까지는 그대로 좀 더 리얼하게, 하지만,,,극적 이라는 말 있죠. 배불뚝이 여자가 영우를 만나서 한 말은 모두 가짜, 여자는 엘에이에 살고 싶어서 꾸민 이야기. 이렇게요. 작가한테 스토리 요구하는 말도 안 되는 경우는 좀 이상하지만 그러고 싶어서 그래요. 인생 망가트린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쓰냐고요? 실수하지 않고 잘 달려가는 자동차는 이야기 거리가 안 되죠. 그 운전사가 음주운전 상태라면 스토리가 되겠지만,”
 
“영우씨 얘기는 고등어가 더 흥미로워요.”
 
“그래요. 제대로 한 적 없는데요. 고등어 얘기?
 
“그러니까 흥미롭죠.”
 
해 줘요?”
 
“네.”
 
“고등어 앨러지가 있었어요. 어릴 때, 최초로 난리가 난 게 세 살 때 였다고 들었구요. 병원에 실려갈 때 쯤 되면 온 몸이 새빨갛게 돋아 올라오고 있었다고 해요. 그 어린아이가 온 몸을 마구 긁어대고, 지나간 손톱자리는 다시 부풀어 오르고, 그런데 병원 의사가 내 피를 뽑았데요. 반 정도 뽑아내고 다시 수혈을 해야 한다고, 그리고 나서 치료에 들어가는 거죠. 열 살도 되기전에 세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피 제공자는 나와 혈액형이 같은 엄마 였 구요.”
 
“그러고 나서도 또 먹었다구요?”
 
“네, 엄마가 먹인 거죠. 의사가 그랬데요. 고등어로 끝나는 게 아니고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다른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떤 음식에도 그런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원인을 찾아내야 된다고요. 엄마는 그걸 했어요. 난 끔찍해요. 거미 중에 그런 종 있죠. 살모사도 그렇고, 자기 죽을 줄 알면서도 새끼 까는 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짧아지기 시작한 가을의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어두워져 있는 시간이었다.
 
들어오고 있는 그들을 영우의 어머니가 부엌 창가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엘에이의 깎아놓은 손톱처럼 생긴 달도 역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얘기치 못했던 그 바닷가의 데이트가 있고 난 후, 여기까지 쓰고 나서, 시연은 영우에 관해서 더 알고 싶었지만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얘기했던 이라크에 있다던 친구에 대해서도 더 궁금했지만 더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의 여동생 선영이라는 아이도 보고 싶었다. 그녀의 소설에서처럼 영우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그들을 내다보지 않았다. 만나게 되면 영우는 간단한 인사를 하곤 했다. ‘캐리는 안 태어나요. 그건 영화거든요. 우리 삶은 그보다 더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정도의 인사말이었다. 애기가 발길질을 한다고 느낀 게 시월도 다 저물어 갈 때쯤이었다. 많이 추워져서 긴소매를 입고 다녀야 했는데 시연은 그게 신기했다. 그렇게 사람을 삶아 죽일 듯이 열을 쏘아내던 태양도 계절이 되니까 너그럽게 물러서주는 것이 대견해 보이긴 했다. 그녀에게 사막의 더위는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뱃속에는 열 덩어리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내가 당신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지?”
 
남편의 이메일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시연은 한달전에 영우네 집으로 이사 오면서 전화번호를 바꾸었고 그 번호를 아는 사람은 친정어머니와 영우 밖에 없었다. 처음에 남편은 협박조로 메일을 보냈었다. ‘그런 식으로 하면 돈 안 보낸다.’ 식이었는데 시연은 짤막하게 답장을 보냈다. ‘돈만 가지고 사는 거 아냐. 행복한 마음이 더 중요하지.“ 그 답장을 보면서 그녀는 남편이 얼마나 화가 날지 알고 있었다. 남편 집에서 해준 외제차부터 해서 값나가는 보석류까지 전부 현금화해서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왔던 것이다. 그 액수가 작지 않았고 몇 년 아니 십년 정도 일안하고 살아도 문제없다는 사실은 남편도 잘 알고 있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날마다 들어오는 그의 이메일에는 그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때 그때 시어머니나 시아버지의 목소리를 그 단어들은 나열하고 있었고 따라서 두서가 없었다. 화를 내기도 하고 애원을 하기도 했다가 협박을 하기도 하고, 마치 이세상의 모든 마마보이가 할수 있는 말들의 교과서라도 만들겠다는 듯이 보였다.
  
시연은 적었다. 빨리 그가 사라져 주기를 바랐으니까.
 
“병원에 갔었는데, 애는 잘 크고 있데. 십이월 마지막 주 정도에 태어날 것 같다고 의사가 얘기했어, 삼년이나 사년정도는 내가 어차피 키워야 하니까 신경 끄고 하던 도박이나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아이는 계집아이래.”

  그리고 나서 어제 쓰던 글을 마저 쓸까 아니면 미국 드라마나 한편 보면서 영어 공부나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메신져 창이 열리면서 누군가 대화를 신청해 왔다. 짐작대로 남편이었다. 이메일 보내자마자 바로, 그럼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는 뜻이다. 시계를 보았다. 한국은 오후 두시 였다. 그렇게 할 일이 없을까,,, 그녀는 대화를 거부 하려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분명히 열 받는 대화가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분노에는 카타르시스도 있다. 권태보다는 혐오감이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대화창을 열었다.

나 ; 좀 잘못 알고 있는거 같은데, 그 애기 우리 집안 후계자 거든.”
 
그의 아디부터가 맘에 들지 않았다. 벌써 오래전부터 느낀 거지만.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떳다. ‘그래 이건 즐기는 거야.’ 그 말을 그녀는 혼자서 두 번 반복 했다.
 
시연 ; 어릴 때, 열 살도 되기 전에 고등어를 먹고 세 번이나 병원에 실려 갔던 사람이 있어. 여기 엘에이에서 만났는데,“
 
나 ;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 어제는 아버지한테 맞았어. 니 마누 라 당장 데려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겠대. 그런데 왠 고등어야.“
 
시연은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시연 ; 아니 엘에이에서 미국시민 하나 만들어 가겠다고 그랬더니 제일 좋 아하셨던 분이 아버지, 아니 당신 아버진데 바로 들어오라니 무슨 소리야? 한 달 남았는데.
 
나 ; 야 너 지금 장난 하냐? 상황이 다르잖아. 여기선 전화도 할 수가 없 고 그러니 아버지가 돌아 버린 거고.
 
시연 ; 그럼 당신이 돌은 게 아니라 아버지가 돌은 거네?
  
나 ; 말장난 하지 말고
 
시연 ; 나는 이미 당신에 대해서 잘 알아. 만약 아버지가 돌은게 아니고 당신 이었다면 난 좀 더 부드러워 질수도 있겠지.
 
나 ; 야 아버지가 거기 해결사 얘들 보냈어. 걔들 무서워.
 
시연 ; 인터넷이라 웃는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없어 유감이다. 여기 법치국 가야. 니 아버지 그 고린내 나는 돈 받고 내 몸에 손 댈수 있는 사람 하나도 없어.,,그렇게 철이 안 드니? 여기 미국이야. 사돈에 팔촌 팔아가면서 대충 대충 그렇게 넘어가는 데가 아냐.
 
나 ; 그런데 너 진짜 왜 그러니
 
시연 ; 와인이 한잔 하고 싶은데 뱃속에 얘기 때문에 그러지는 못하고 어쨌든 쉐이크 종류를 좀 마셔야 겠으니까 기다려.
 
별로 재미가 없었다. 상대방을 놀릴 경우 상대방이 어느 정도는 알아들어야 재미가 있는 법인데 남편에게서는 그런 기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코메디 프로나 보면서 실실 웃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연은 딸기를 갈아서 딸기 쉐이크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영우 생각이 났다. 이층방 에서 혼자 뭐하나. 딸기 쉐이크가 두 잔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한잔을 들고 이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는데 뱃속의 아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의 방문을 노크 했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쉐이크 잔을 들고 그렇게 석고상처럼 오 분 정도를 서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잔을 문 밑에 내려 놓고 배를 안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얼음이 다 녹으려면 삼십분은 걸리니까 한 시간 안에만 돌아온다면 맛있게 마실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 그런데 아버지가 보낸 애들은 장난이 아냐. 내가 어릴 때부터 아저씨 라고 부르던 사람들이야. 나 그 사람들 알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시연 ; 당신 진짜 불쌍하다.
 
나 ; 그 고등어는 뭐야? 벌써 놈팽이 생긴 거야?
 
시연 ; 웃기네, 당신은 나랑 결혼한 다음날 바로 술집여자하고 관계 했었자나. 나한테 누가 생기든 그걸 말할 자격이 있어?
 
나 ; 누가 생겼구나
 
시연 ; 앞으로 챗팅은 당신 애인들하고 하세요. 그 마구 허벅지 사진 올리는 애들,,,
 
나 ; 그래서 애기 뺏어 가겠다는 거야?”
 
시연 ; 내가 애기 엄마 거든. 내 맘이야. 더 이상 짜증나니까 대화하고 싶지 않아.
 
나 ; 시연아.
 
까지 그녀는 보았다. 하지만 대화창을 꺼 버렸다.
 
다시 대화 하자는 메신져 창이 떴을 때 그녀는 아예 컴퓨터를 꺼 버렸다. 중요한건 영우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신발장에 자신의 신발을 놓을때 시연은 일부러 약간 비뚤어지게 놓았었다. 영우는 어차피 신발을 벗지 않는다. 그냥 신고 이층으로 올라가 돌아다니다가 특수한 신발, 일종의 샤워용 신발인데 그걸 찾게 되면 좋다고 신고 다닌다. 시연은 영우가 왔으면 하고 바랬다.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온 남편의 메신져 대화 내용이랑 하려다 못한 고등어 얘기랑 그런 게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에 영우가 어느 여자랑 밤을 지새운다면 그건 슬퍼할 일이 아니지만 만약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자신만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건 약간 슬퍼할 일이라고, 열한시 경에 그녀는 컴퓨터를 다시 켰다. 메신져는 없었다. 윤회하듯이 반복되는 삶의 이야기들 특별하지도 않아서 어쩌면 그래서 아름다운건지도 모를 그런 이야기들, 그런 것들을 다시 써 나가야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영우는 존 하고 다니면서 다시금 느꼈는데 생각보다 많은 수의 남자들이 좀 허황되다는 거였다. 멜로즈에 있는 한 바에서도 그랬다. 물론 생긴 건 한국 사람에 가깝지만 억양이나 제스츄어는 미국사람하고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존은 이라크 얘기는 꺼내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희한한 방법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알게 했다. 처음에는 바텐더 여자만 관심을 보여 왔지만 존은 그걸 다 계산하고 있었을 테고 곧 그 안에 잇는 모든 사람들이 존 주위에 몰려들면서 이라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존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낮에 마을을 한 바퀴 돈 적이 있는데, 소녀 하나가 이런 말을 했어. 당신 등 뒤에 귀신이 하나 붙어 있는데. 그 귀신이 이런 말을 했데. 안티야크라는 지역에 당신은 도착해야 되는데 어떻게 핑계를 대던 오 분 늦게 도착해. 그 소녀 말대로 했는데 거기서 폭발물이 터지고 열 다섯 명이 죽었어.]
 
영우가 알고 있기에는 그는 사무실에서 펜대만 굴리고 있었다. 영우는 그의 귓속에다가 한국말로 소근 거렸다.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할 경우는 가끔 유리하다. 남들이 못 알아듣게 할수 있으니까,
 
“야. 임마. 뻥 치지마. 내가 젤 싫어하는 게. 그런 거야.”
 
존은 주위 사람도 들을수 있을 톤으로 영우를 보면서 말했다.
 
[일주일 있으면 거기로 다시 돌아가야 되거든. 이렇게 놀지도 못해?]
 
영우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잠시 고개를 까닥거리며 실례를 구하고 존을 데리고 화장실 쪽으로 갔다. 어릴 때 그들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컸는데 어느때 부터인가 영우가 한국말로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었고 좀 어눌했지만 존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존도 한국말이 많이 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라크에 있던 십일 개월 동안 한국어를 한번 도 사용하지 않았을 터이고 그래서인지 계속 영어로 말을 했다. 영우는 영어를 사용했다.
 
[내 생각엔 오늘은 빨리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니 부모님 기다리고 있자나.]
 
[응,,,지금 몇시지?]
 
[열시야. 더 이상 얘기 안 할테니까. 프론트에 가서 계산하고 니 새로운 친구들한테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고 나와. 나 여기서 기다릴게.]
 
[왜 계산을 내가해야 되는데?]
 
[왜냐하면 너는 이라크에서 돈 벌어 왔으니까.]
 
존을 집에 내려주면서 영우는 그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터에서 막 돌아온 사람한테는 그게 가능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존은 효자였고 공항에 나온 영우에게 술이나 먼저 한잔하고 들어가겠다고 말할 사람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가 보내주던 사진들, 전부 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존은 그런 장면들을 한번이라도 본적이 있는 걸까, 궁금했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부드럽게 물어볼 시간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은 베레모를 벗어 영우에게 씌워주더니 똑 부러진 한국말로 말했다.
 
“엘에이. 그리고 너 내 친구. 그래서 나는 엘에이가 좋아. 십 개월 있다가 다시 올 꺼야. 그때 우리 실컷 놀자.”
 
“어, 일단 부모님들한테 인사드리고 내일 전화해.”
 
집에 들어오는데 신발장에 시연의 구두가 오른쪽 발이 사십오도 틀어져 놓여있었다. 아침에 나갈 때 구두는 똑바로 앞을 보고 있었다. 그는 어차피 신발을 벗지 않으니까 신발장을 들여다볼 이유도 없었는데 그게 눈에 들어온 것이다. 리빙 룸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어머니가 그에게 다가와 몇 마디 하고는 다시 티브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고등어를 계속 내미는 어머니.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이라크 까지 간 존. 그리고 그런 고등어를 거부하는 펭귄, 누가 더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이층은 평화로웠다. 약간의 고등어 시체 냄새만이 감돌고 있을 뿐 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시연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열두시 조금 전이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영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왠 일 이세요? 이 시간에?”
 
“깨운 건 아니죠?”
 
“그렇지는 않고요. 막 들어 왔으니까.”
 
“대화가 하고 싶은데 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전화했어요.”
 
영우는 잠시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위 아래층에서 전화를 한다. 차라리 노크를 하지 그러셨어요.”
 
“그건 예의가 아닌 거 같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오늘 남편하고 메신져 대화를 했어요. 그리고 가슴이 너무 답답해져 버렸어요. 그냥 그런 얘기요. 그런 얘기를 할 사람이 없어서,,,”
 
“지금 다 했네요.”
 
“그런가요? 아닌데,,,”
 
시연은 전화기를 너무 꽉 쥐고 있어서 손에서 땀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저기. 설명하기는 힘든데요. 설마 배불뚝이 아줌마가 이상한 소리 하는 건 아니라는 건 아시죠. 그냥 정말로,,,대화하고파서요,,,”
 
영우는 좀 피곤했고 전화를 끊었으면 했다. 그는 말했다.
 
“오늘 공항에서 친구하나 픽업했는데 걔도 무지하게 떠들고 싶어 하더 라구요. 이해 가요. 저도 그러니까. 하지만 시연님은 컴퓨터하고 대화 하잖아요. 일반인들은 그런 거 꿈도 못 꾸거든요.”
 
시연은 짧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런데 컴퓨터는 대답을 안해요.”
 
그날 시연은 영우의 방 소파에서 잠을 잤다. 영우는 두꺼운 이불을 그녀에게 씌워 주었다. 가을은 그들의 감성이 아닌 피부에 바로 와 닿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영우의 어머니가 티브이 속에서 나와 쳐다보고 있었다.
 
아침에 시연은 몰래 빠져나오려고 했었는데 뒤에서 영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커피나 한잔 마시고 가요.”
 
시연은 이불을 개어 놓으면서 조그마하게 말했다.
 
“제가 타 가지고 올께요. 잠시 계세요.”
 
시간을 보니까 여덟시였다. 여덟 시간을 잔 것이다. 두세 시간도 자지 못하고 깨던 때를 생각하니까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영우는 방에 수면제 가루를 잔뜩 뿌려 놓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일층의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끓인 다음 냉장고를 열어 계란을 두 개 꺼내었다. 너무 서둘다 보니 손이 떨리고 있었다. 계란 프라이를 한 다음에 커피 잔을 들고 이층으로 가려는데 영우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시연은 꾸벅 인사를 했다. 달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쟤는 계란 후라이 안 좋아해. 커피는 포트 째로 가져가는 게 좋아 네 잔 이상 마시거든.”
 
“네 알겠습니다.”
 
대답해놓고 이층방 으로 올라가면서 시연은 기분이 묘해졌다. 마치 이 집 며느리가 된 듯한 이런 기분은 뭐지. 어머니가 알고 있는 것은 뭐지?
 
영우의 방에 들어섰더니 그는  잠에 빠져있었다. 커튼 뒤로 아침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그 바로 앞에 영우의 얼굴이 노출되어 있었다. 눈을 감은 남자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수가 없었다. 햇살이 그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커피 가져 왔어요.”
 
영우는 바로 일어났다.
 
“아 죄송요. 같은 집에 있으니까 이럴 땐 정말 좋군요.”
 
“이불 고마웠어요. 그런데 이불보다는 말,,,이 필요했는데 안 하시데요.”
 
“말은 입 밖으로 나오면 커피 색깔 되요. 커피나 드세요.”
 
생각해보니까 그녀는 뒤뚱거리며 그 방으로 올라왔다가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어 앉아있다 그냥 잠들어 버린 것 뿐이었다.

 

 

  2.

  시연이 영우네 집으로 이사 들어 온지 사십오일 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더니 십이월로 들어서서는 차가운 비를 뿌리기도 했다. 여름에 태어난 엘에이의 비둘기들은 더 이상 날지 않고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어 도시를 더 삭막하게 보이게 했다. 시연의 배는 눈에 띄게 불러갔다. 그런 동안에 그녀는 자신이 엘에이에 와서 처음 구입한 컴퓨터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써넣는 많은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영우와 고등어, 신발장 등이었다. 그리고 빨랫줄에 집게로 잡혀있는 비둘기들이 다음이었다. 영우의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았다. 시연은 그녀가 무서웠다.
 
십이일 이었는데 영우와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말했다. 영우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십이월 이십사일 경일 거 같은데요. 하루 이틀 먼저 와 있으셔도 괜찮아요. 병원비 더 내시는 거 아니거든요. 바깥에 계신 남편분하고 상의 하셔서 그렇게 하도록 하시죠.”
 
그녀는 최근 들어 그런 말을 듣게 되면 “남편 아니에요.” 하고 말하던 걸 그만두었다. 그 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그녀에게는 그것이 편했던 것이다. 첫째는 원정출산 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워 질수 있었고 사람들의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랐다. 남편 아니에요. 그냥 도와주시는 분이에요 하고 대답하면 그래요? 하면서 쓰윽 위아래로 흟어 보던 사람들, 아니면 혼자서만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먼저 남편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무언으로 긍정을 하게 되면 사람들의 태도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원정출산 온 임신부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서 그들끼리 어울리다가 조리원에서 정해놓은 병원을 다녔고 관광을 가도 그들끼리였다. 시연은 조리원에 한 달을 있었는데 스무 명 가량의 같은 처지의 여자들하고 지내야 했지만 단 한명도 거기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들 중 배가 가장 납작했던 시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를 하나 얻어 이사를 했는데 임신한 상태가 아니라면 모르되 이 상태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데 공포감을 느꼈고 그리고 지독히 외로웠다. 그리고 그런 외로움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를 생각하니까 겁이 났다. 태교는 무척 중요할 것 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영우네 집에 이사 들어온 그날 혼자 옷가지 들을 대충 정리 하고나서 그녀는 혼잣말로 “살았다.” 라고 중얼거렸으니까,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태아를 찍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것 저것 설명을 다 마친 의사는 서류 한 장을 내밀면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호자 싸인 필요 하거든요. 그냥 남편이 하시면 돼요.”
 
그녀는 깜짝 놀랐다. 정신이 번쩍드는 기분이었다.
 
“저 이거 꼭 해야 하는 건가요?”
 
“네, 조목 좀목 읽어보시면서 이니셜도 하셔야 하는데, 뭐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의료사고에 관한 협의 사항 정도라고나 할까요? 혹시 영어 읽는데 문제 없으시죠?”
 
“아, 네 물론이죠.”
 
그녀는 밝게 웃었다. 의사는 계속 말했다.
 
“남편 분 계시니까 아무 문제없어요. 형식적인 것이긴 하지만 미국 아시자나요. 이프,,,”
 
그리고 그는 미소 지어보였다.
 
“병원에서는 시 법을 따라야 하는 거니까요.”
 
“지금 당장 사인해야 되나요?”
 
“아니요. 어차피 삼일후에 오셔야 되는데 그때 가져오시면 되죠. 이제 다 되셨어요. 아기 건강하구요. 가서 푹 쉬세요. 삼일 후에 뵐께요.”
 
시연은 세장으로 된 서류를 집어 가슴에 대고 일어나다가 태연한척 물어보았다.
 
“순전히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그럼 남편 없는 여자들은 누가 싸인 해주죠?”
 
“부모님 있잖아요.”
 
“만약 부모님도 없을 경우는요?”
 
의사는 잠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직 보호자란에 싸인을 못해온 분이 없어서 그건 모르겠네요.”
 
시연은 밖으로 나왔다. 영우가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아뇨. 각오하고 온 거니까.”
 
“영우씨 참 착해요. 한 시간이나 걸렸는데.”
 
“어차피 백수거든요.”
 
영우가 운전하는 동안 시연은 서류에 관한 얘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끝내 하지 못했다. 병원까지 태워다 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더 이상의 바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에 다른 말을 했다.
 
“뱃속의 아기에게 제일 화가 날 때가 언젠지 아세요?”
 
“글쎄요. 임신을 안 해봐서.”
 
“술 마시고 싶을 때에요.”
 
“말 되네. 마시면 안 되죠?”
 
“멋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가 최소한 술주정뱅이가 되선 안 되자나요. 애 한테 허락받고 이 힘든 삶을 주는 것도 아닌데,,,그건 너무 하자나요.”
 
그날 영우의 어머니는 아주 오랜만에 영우의 방을 노크했다. 손에는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있었다. 저녁 여덟시였고 다시 비가 오려는지 별들은 검은 구름의 포대기에 쌓여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 있었다. 영우는 존의 이메일을 읽고 있었다.
 
[이제 생각해 보니까. 나는 아버지, 아니 부모님 말을 들었어야 해. 그들이 너무 싫어서 그렇게 도망 간 건데. 거기서도 내가 본거는 폭력이었어. 육체적인 거는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는데 정신적인 거는 다르 자나. 나 많이 잘못 생각 했던 것 같아. 이십일 세기에 몇 억년 된 지구에 앉아서 길어봐야 팔구십년 살면서 창조설을 믿고 있는 바보가 지휘하는 그 전쟁터에 끼게 된거, 우연히 벌어지는 일은 없고 이제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거야. 마이애미 오니까 좋다. 그리고 친구가 있어 이메일 보낼수 있으니까 좋다.]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닌 거 같다만.”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뭐가요?”
 
“니가 병원에까지 다녀야 하니?”
 
“엄마는 나 어디서 낳았어요?”
 
“내가 먼저 물어 봤자나.”
 
“말하고 싶은 게 뭔데요?”
 
“혹시 내가 쟤를 이 집안에 잘못 집어 넣은 건 아니니?”
 
“나 어디서 낳았냐구요.”
 
“병원에서.”
 
“제가 오늘 거기 갔다 온 거에요.”
 
“영우야 너 설마,,, 쟤 좋아하는 거 아니지?”
 
“펭귄을 누가 좋아해요.”
 
“나도 알아. 사랑은 정신적으로 하는 거지 육체는 상관 없다는 거.”
 
“어머니도 저 여자처럼 소설 써요?”
 
“무슨 소리냐?”
 
“지금 말하는 게 터무니 없자나요.”
 
획일화된 사회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감성은 들어내지도 못한 채 빌려온 외제차를 타고 나타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니다보니 결혼이라는 이상한제도에 편승 하게 됐고 그래서 태어 난 게 나다. 그걸 탓할 수도 없다는 게 그를 더 짜증나게 했다.
 
“나가 주실래요.”
 
“영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비둘기들 베란다에서 알 낳고 힘들어할 때 내가 과자 갖다 준거 엄마가 다 치웠 자나요. 지금은 펭귄을 치우고 싶으세요?”
 
“그건, 병균이 워낙 많아서,,,”
 
“그걸 누가 몰라요? 그럼 아들만 귀하고 죽어가는 새 들은 안 불쌍한가요? 지금은 성인이니까 이해하지만 당시 나는 아홉 살 이었어요.”
 
“영우야. 지금 그 얘기 하러온 게 아니자나.”
 
“같은 얘기거든요. 전 자연이 친구 같거든요. 배 째고 성형 수술하고 자연하고 덜 친한 순위 일위가 한국 아니에요?  엄마 시연이 뱃속에 애 커 가는데 그러면서도 나랑 다니는 게 불안해 보였다는 거 자나요. 갈것들은 참견 안 해도 가게 되어 있어요. 일부러 거스를 필요 없다구요. 대부분 집착이 자연스러운걸 거스르죠.”
 
“너 말을 어쩌면 그렇게 하니?”
 
“말만 그렇게 한다는 거 아시잖아요.”
 
울기 시작한 어머니를 놔두고 그는 방을 나와 버렸다.

  시연은 영우가 얘기했던 바닷 속 풍경을 상상해 보았다. 십이월이었고 아무리 고무 옷이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무척 추울 텐데 그는 고집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방파제 같은 곳이었는데 그녀는 너무 추워서 조금 걸어보려 하다가 이내 차로 돌아와 앉아있었다. 이런 계절에 물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신기했는지 두 백인 노부부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영우가 들어간 바위들 틈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시연은 차문을 열고 그들에게 너무 추우니까 차에 들어와 있으라고 손짓 발짓 설명을 했는데 그들은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리고 무언가 그녀에게 물어보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부른 배를 안고서 반시간 가량이나 그곳에서 안절부절 해야 했다.
 
영우는 몸이 물속에 완전히 잠수하기 전 까지는 추위를 느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몸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고 나니까 그는 발을 빨리 움직여서 이곳에 오게 되면 언제나 가곤하던 장소로 헤엄쳐 나갔다. 해초들이 덮인 바위들을 지나면 모래사장이 나오고 그곳에는 엉큼하게 엎드려 멸치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광어와 도다리들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산호초들로 이루어진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바닥에서 천장까지 랍스터 들로 북적대고 있다. 그는 그 중의 한 마리를 잡았다. 준비해온 고무줄로 집게 손가락을 붙들어 매고서 “미안해. 너 오늘 내 저녁하자.” 라고 말했더니 랍스터는 아주 관심 없다는 듯이 ‘아프지만 않게 죽여줘.’ 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고무줄을 풀었다, 장난 친거야, 라고 그는 말했다. 더 깊은 곳으로 가려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잇는 시연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사십 오분 정도 더 사용할 산소가 남아있었다. 길이 삼피트 정도의 새끼 상어가 나타났는데 여름에 한번 만났던 그놈 같았다. 그래서 얼굴을 손으로 툭 쳤는데 반응하는게 맞는 거 같았다. “야 오랜만이다. 엄마 아빠 다 잘 계시냐?” 혼자서 말하고 대답하고 있었다. 옐로우 테일이나 돌고래들이 돌아다니는 깊은 물속으로 가려면 이런 장비로는 어림도 없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만 불 정도가 필요했다.
 
이 추위에 이런 무리를 하는지 시연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그의 가슴속에 식히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는 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듣기만 했었다. 그가 들어간 자리로 그가 다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추웠지만 차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가 소리를 질렀다.
 
“안으로 들어가요.”
 
영우의 차는 지프여서 뒤가 넓었는데 그는 그곳으로 올라타더니 고무 옷과 산소통 등을 던져버리고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추워서 부들 부들 떨고 있었다.
 
“옷 입으세요.”
 
“아니 잠깐 소금물 좀 닦아내고요.”
 
차에 시동을 걸고 그는 샤워 시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대낮 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모래와 소금기를 대충 닦아낸 그는 차로 돌아와 히터를 켰다.
 
“기분이 좀 좋아졌어요.” 덜덜 떨면서 그는 말했다. 잠시 후 차의 히터가 실내를 충분히 덥히자 그는 평온함을 느꼈다. 이런 느낌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랍스터 가져 오신다더니 어떻게 된 거에요?”
 
“그냥 악수만 하고 왔어요. 그놈들 쳐다보면서 가만 생각해 보니까 바다에 대고 제사를 지내야 될것 같은데,,, 또 데리고 나오기가 좀 그래서,"
 "무슨 소리에요?"
 "바다에서 테어난 놈들을 너무 많이 먹은거 같아 그래요."
 "그럼 지구는 사람들한테 제사 지내야 겠네요. 다 잡아 먹으니까,"
 "그건 경우가 다르죠. 지들 맘대로 태어났다가 돌아가는거 뿐 이니까,"
 
캘리포니아 해안의 랍스터 들은 여름에 비해 겨울에 그 수가 두 배로 불어나는데 영우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다른 다이버들과 어울린다면 더 많은걸 알수 있을테지만 주위에 없었고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다 주진 못했다.
 
곱슬곱슬한 머리를 타월에 열심히 문지르고 운전석으로 돌아와서 시동을 켜려고 하는데 시연이 말했다.
 
“사인하나 해 주실수 있어요?”
 
“왠 사인이야 갑자기. 나 머리 좀 말리고요.”
 
거기서 오 분 거리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는데 시연은 하이네켄을 두병 들고 왔다.
 
“술은 안돼요. 애한테 지장 있어요.”
 
“저 근데 다음 주에 얘기 날 꺼 같아요.”
 
“그건 알고 있는 거 자나요.”
 
시연은 그에게 세장짜리 서류를 내밀었다.
 
“그러니까,,,남편인척 해 줄 수 없냐 구요,”
 
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페이퍼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보호자 싸인 이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어머니 오신 다면서요.”
 
“못 오세요. 혈압 때문에 비행기타지 말라고 의사가 그랬데요.”
 
“그럼 보호자가 없이 애를 낳겠다는 거 에요?”
 
“그러니까 부탁드리는 거 자나요.”
 
영우는 그녀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럼 만약 우리 집으로 이사 안 왔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다른 방법이 생겼겠지요.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남편 얘기 좀 해봐요.”
 
“전에 대충 한 거 같은데요.”
 
“과거 말고 미래 쪽으로요.”
 
“미래요?”
 
“어떤 일이 벌어질 거 같다 라던가,,, 추측 같은 거요.”
 
“그게 가능한 가요?”
 
“대답 여하에 따라 사인을 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무섭군요.”
 
“그런 식의 말투는 이 상황에선 안 어울린다는 거 아시죠?”
 
“사인 없어도 병원에서 애 낳을 수는 있어요.”
 
“그럼 그렇게 하시던가.”
 
“영우씨 내면은 잔인하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적 없습니다.”

  볼펜을 굴리는 건 친구의 이마에 만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페이퍼는 사실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영우는 머리를 탈탈 털었다. 샤워를 좀 더 했어야 되는데 찬물만 나오는 바람에 못한 게 못내 찝찝했다.
 
“물에는 왜 들어 가셨어요? 랍스터도 안 가지고 나올 거면서,,,”
 
“찬물에 식힐 려구요.”
 
“뭘요?”
 
“엄지발가락이요.”
 
“엄지발가락이 뜨거워요?”
 
“네.”
 
전날 영우는 꿈을 꾸었다. 비둘기들이 먹이를 물어오고 있었는데 그 비둘기중의 하나가 어머니였다. 도망을 가려고 몸부림치다가 깨어난 곳은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옆에서 펭귄이 자고 있었다. 하이네켄을 여섯 개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소주 한 병을 마신 것까지 기억이 났다.
 
그는 펭귄의 어깨에 손을 댔다.
 
“자요?”
 
“아니 안 자요.”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한 여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요? 얘는 태어나기 바로 전 이고.”
 
“술 아직 안 깼어요. 내일 아침에 얘기 하세요.” 침대에 누워있던 시연을 영우는 뒤에서 앉았다. 시연은 가만히 있었다.
 
“미래의 얘기를 해 달라 그랬잖아요. 난 항상 도망가고 싶었고 그 대상은 엄마 였어요. 사실 뉴저지까지 갈 필요도 없었어요. 여기도 장학금 줄만한 학교 많았으니까.”
  
귀가 간지러워서 시연은 몸을 바로 눕혔다.
 
“저기,,,여자는요. 그리고 저같이 아기를 한 번도 안 낳아본 여자는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너무 무섭거든요. 엄마도 못 온 다 그러 구요.”
 
영우는 오른팔을 이마위에 대고 천장을 보고 누웠다.
 “이러고 있는 거 어머니가 알면 날 죽이려 할 거에요.”
 
“우리가 뭘 했는데요. 그리고 이 배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요.”
 
영우는 계속 천장만 보고 있었다.
 
“영우씨.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이집에 들어와서 어머니랑 얘기하고 있을 때 영우씨 들어왔어요. 저는 그때 바로 어머니한테 이사 들어오겠다고 했어요.”
 
“나한테 첫눈에 반했나요?”
 
“그렇게 얘기하면 그렇죠. 하지만 당신 말마따나 펭귄이, 존재감이 있나요. 사실은 없어요. 그래서 계속 혼자 울었어요. 기분 나쁘겠지만 한마디 할게요. 영우 씨는 마더 콤플렉스에요. 하지만 그게 경제적으로 문제없는 집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시죠?”
 
“모르는데요.”
 
무슨 얘긴지는 모르지만 영우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더 콤플렉스는 당신 남편 아냐?”
 
“아뇨. 그건 파더 콤플렉스요.”
 
“지금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죠?”
 
“저도 몰랐어요. 엘에이 와서 알았어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에 위배되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연이요? 그게 뭐죠?”
 
“신이요. 귤 껍질을 그렇게 안전하게 만들어 놓은 신이요.”
 
“기독교 인 이에요?”
 
"그건 하나도 중요치 않아요. 왜 내 말을 이해 못하세요. 어머니가 비둘기들 내 쫒은 거 자연 위반 한 거잖아요. 아까 랍스터 안 들고 나온 거 저 너무 잘 이해해요.“
 
“어디까지 이해 했는데요?”
 
“자연을 대하는 태도요.”
 
“랍스터 안 들고 나온게 자연을 존경해서다?”
 
“그렇게 보였어요.”
 
“제 생각엔 사람한테는 그런 행동이나 결정을 할 권리가 없어요. 나는 랍스터 들고 헤엄치기 곤란해서 그냥 나온 거에요.”
  "하나 물어볼께요."
  시연은 두팔로 그를 감싸 안았다. 이 정도의 제스츄어는 괜찮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답답해요."
  영우가 그녀를 밀쳐냈다.
 "마치 감성이 애들 놀이터에 간 느낌, 그런데요."
 "편하게 생각 하세요. 근데 난 진짜 이해가 안가는거요."
  시연은 그의 눈을 마치 파고들듯이 노려보았다.
 "왜 너무 힘들죠?"
  하고 그녀가 말했을때 짜증이 좀 낫지만 영우는 천천히 말했다.
 "제 생각에는 그래요. 태어나는거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생명체들이 나 여기있어 하면서 존재를 말하죠. 그거부터가 잘못이에요. 사실은 나 진짜 태어나면 안되는거 였어, 하고 말해야 되거든요. 결혼을 하고 애 들을 만들죠, 하지만 애들은 태어나고 싶다고 부모들하고 상의 한적이 없어요. 다시 고등어 얘기 할께요. 안쓰러움의 제곱,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든요.  아침에 눈을 뜨고 너무 아름다운 태양에 놀라고 그러면서 썪어가는 물질 들이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라져 가는지도 모르죠. 내가 좀 말이 많죠? 
 “지금 나 놀리는 거죠?”
 "전혀 아니고.  정신적인 동지가 필요할 뿐이죠."

 
“이라크로 떠난 친구가 단순히 돈 벌러 갔겠어요? 요즘 한국 애들 누가 그런 짓 하죠?”
 
“그럼요?”
 
“어릴 때부터 같이 컸어요. 비둘기를, 살아있는 놈을 해부한 적이 있어요.”
 
“왜 그랬는데요? 끔찍하네요.”
 
“뱃속의 아기한테 안 좋을 거 같아요. 나중에 얘기해 줄께요.” 
 
 다음날 영우는 이른 시간에 나갔다. 시연은 혼자 앉아서 생각해 보았다. 어떠한 경우든 한국 남자는 남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 하기사 꼭 어떻게 되기를 바랬던것도 아니지 않은가, 만약 그랬다면 자신은 나쁜 여자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외로웠었던걸까, 이런 허무맹랑한 생각 까지도 하게 된것이, 그래도 혹시나  영우가 자신한테 일종의 감정표현 같은걸 할까 생각해 보았다. 안 할 것이다. 규정 되지 않은 말들은 길거리에 쌓여있는 쓰레기나 다를게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배를 내려다보았다. 부풀은 풍선, 옷을 올려서 봤더니 피부에 균열이 있었다. 갈라 터져서 핏줄이 보이고 있었다. 시연은 그런 배를 내려다보다가 너무 외로워 져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영우는 없었다.
 
시연은 울면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엘에이에서 사람은 자유롭다. 서울에서처럼 시 아버지 시 어머니, 엄마 아빠, 시동생 어쩌구 눈치 안 봐도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롭지? 왜 슬프지? 만약 영우가 아침에 자신이 만든 샌드위치를 안 가지고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애는 태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다시 시연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반적으로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개체들에는 멋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는 우주 속에 존재하는 에일리언처럼 설명이 안 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나는 영우라는 남자를 보았을 때 그런 걸 느꼈다. 이 인생이 설명이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찬 아라비안 나이트 처럼 상상 이상의 존재들로 가득 채워 있다는 사실,’ 
 그녀는 화면을 바꿨다. 가끔 낙서를 해놓는 장소, 파일 이름도 '낙서' 였다.
 '너무나 불분명해서 누군가 물어보면 대답할수 없는 복잡한 정신세계가 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 하자면 불분명한이 아니 불필요한이 될것이다. 오늘 하늘에 구름이 이상한 오렌지 빗깔에 쌓여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꼈고 누군가 그걸 같이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사람이 나에게는 없었다. 영우는 아니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지만 아니건 아닌거다. 너바나 얘기 했더니 그는 잘라서 말했다. 예술이요? 웃기는 얘기 하지마세요. 피아노가 왜 발명 됐는데요? 침묵 아니면 소음만 있었기 때문이고요. 미술은 왜 발달 했는데요? 추잡한 거리 풍경, 멀리 갈것도 없고요 엘에이 다운타운이요. 전 혐오 스러워요. 그 스무살도 안된 애들 낙서요. 등등 근데 내가 이런 얘기를 왜 다 기록 하는걸까,,"
 
  
밤에 돌아온 영우는 기분이 많이 상해 있었다.
 
“마더 콤플렉스? 누가 그런 식으로 함부로 얘기하라고 그래.”
 
“전 그냥,,,아는게 없어서.”
  시연은 죄지은 사람처럼 침대 귀퉁이에 앉아있었다.
 
“당신 나 심각 한데 건들였어.”
 
“제가 뭘 잘못했죠?”
 
“잘못한 거 없어. 중요한건 남편이 애들 보냈다며 너무 웃기는 거 같애. 펭귄이 뭘 한다고,,,”
 
“말 그렇게 함부로 하지 마시고요,,,”
 
영우는 소리를 버럭 지를 려다가 참았다. 시연은 어쩌면 그의 가장 민감한 곳을 건드린건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 영우는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한숨을 한번 쉬고 다른 이야길 꺼냈다.
 
“무슨 깡패인지 보냈다구요? 어이가 없네,,,”
  영우는 건들 거리듯이 말했다.
 
“그런거 같아요. 누군지도 대충 알거 같고,,,”
 
시연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다른 얘기를 해야만 했다. 자신의 소설 속에 나오는 영우는 이런 식의 말투는 사용하지 않는다.
 
“어떤 깡패들을 보냈나요?”
 
“난 모르거든요.”
 
“저기요. 이렇게 합시다. 난 원하는 데로 싸인 해 줬고 걔들 온다 그래도 꿀릴 일 없구요.”
 
“가지고 나오지 못한 랍스터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되요? 그런데. 하나만 물어 볼게요. 배가 이렇게 나온 여자를,,,좋아할 수 있어요?”
  영우는 피식 웃었다. 대화가 참 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가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하나 대답할수 있는 말은 그녀는 눈이 맑고 그 눈처럼 깨끗하다는 사실이었다. 깨끗하다는건 간단하다. 행동이나 말을 할때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전의 여자들과 머리싸움 하던걸 생각하면 진저리가 났다. 시연은 마치 존과 같은 남자친구 같았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그럴 필요도 없는,
 
“미래형으로 하쟀더니,,,그런 질문을 하면 어쩌라구요. 좋아한다는 기준이 뭔데,,,.”
 
“그럼 나 안 좋아요?”
 
“싫지 않아요.”
  
 
  영우는 집에 가서 잠을 자고 다음날 병원으로 가서 애기와 누워있는 시연을 보았는데 놀랐다. 전에 보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얘기를 막 낳은 여자가 예쁘다는 얘기는 들은적이 있는데 시연이 그랬다. 그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이런게 자연의 섭리라는 걸까,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가끔 표현하는 천사 라는게 이런게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모딜리아니 이상이었다.
 
“괜찮아요?”
 
“네,,, 덕분에,”
 
“안 아파요?”
 
“아니 편안해요.”
 
“언제 집에 가죠?”
 
“하루만 더 있다 가요.”
 
의사가 그를 불렀다. 그는 아예 남편이 되어 있었다.
 
“여기 싸인 좀 해 주시고요.
 
영우는 하라는 대로 했다.
 
“첫 애기라 당황하셨겠네요.”
 
“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추억 같은 비들, 짜증나게 오른발을 괴롭히고 있었다. 병실의 창가에 서서 그는 비오는 거리를 내다 보았다. 그리고 모든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비가 너무 안오는 도시에서 오래 살은 탓일까, 비는 가슴속으로 내리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난 게 그날 저녁 이었다. 까만 양복에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은 그는 마치 뉴욕의 증권맨 같은 모습이었다. 엘에이에서 이런 모습을 보려면 영화 촬영 장소에나 가야할 것이다.
   병실 문을 열고 그가 들어섰을때 영우는 올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연은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영우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영우가 권하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잠시 대화가 있은 후에 영우는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웃었다.
 
“경찰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 구요. 아기 아빠가 애를 찾는 거에요.”
 
“돌아가기 싫다는게 그녀의 의견 같습니다만,,,.”
 "당신 저 여자 애인인가 봐?"
 
영우는 존을 떠올려 보았다. 아니 그가 보낸 사진 중에서 허리 옆으로 잔뜩 차고 있던 그 무기들을 떠올린 게 맞다. 그 무기들 중의 하나라도 있다면 그를 쏴 죽이고 싶었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폭력이 전문이에요.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는 거 참 안 맞아요.”
 
“그러세요. 저랑 반대군요.”
 
“막 애기낳은 여자를 데리고 갈수도 없고,,,”
   시연의 병실에서는 정문이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이 까만 양복의 동료들이 잔뜩 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 병원 관계자들만 출입하는 뒷문이 생각났다. 서울에서 온 이들이, 아니 엘에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문을 알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라. 아주 낭만적이야. 안 그래요?
  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도 이런 장면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거 같애."
  영우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조금씩 떨리고 있는걸 느꼈다.

 
“당신 여기 교포지?”
 
“그런데요.”
 
“한국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
 
“관심없고. 그냥 가 주세요?"
 
“내가 데려온 애들이 열명 정도고 그중 다섯 명이 여기 출신이야. 어쨌든 움직이지도 못하는 여자를 두고 이게 뭔 짓인지는 모르겠고 내일 봅시다.”
 
“그쪽 문화고 여기 문화고 다른건 없을거고요. 중요한건 내일 두 분이서 직접 대화 하셨으면 해요. 전 애인도 아니고 저러고 다니는게 안쓰러워서 도와준거 거든요.”
  그는 고개를 잠시 갸우뚱 하더니 웃지도 않고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내 영우에게 내밀었다. 영우는 그걸 들여다 보았다. 사진속의 배경은 바다였고 파라솔 밑에 영우는 머리위에 유에프오를 얹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쥬스잔의 스트로우를 입에 문 시연이 해맑게 웃으면서 그런 영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각도가 좋죠? 꼭 영화의 한 장면같이 말이지,,,"
  영우는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라는걸 알았다. 손이 더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감추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었다.
 
 

   사내는 잠시 사라졌다가 아홉시 경에 다시 나타났다. 영우는 그 시간에 병원 내부를 조사하러 다니고 있었다. 시연의 담당 간호사와 마주쳤을 때 뭔가 부탁을 해볼까 하고 망설였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일을 더 꼬이게만 만들것이다.

  시연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 그의 방문을 받았다.
 
“김기수씨 부탁으로 왔습니다.”
 
시연은 짤막하게 말했다.
 
“얘기 몇 달 지나기 전에 비행기 태울 수 없어요.”
 
“그건 아는데. 김기수씨가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제가 그런 거까지 신경 써야 하나요.”
 
“글세요.”
 
그는 웃었다.
 
“당신 누구세요?”
 
“당신 남자친구가 폭력 어쩌구 하던데,,,우린 그런 거 모릅니다.”
 
“조금 아까 통화 했었어요. 폭력은 당신 입에서 나온 거 자나요. 그렇게 쉽게 거짓말을 해요?”
 
“말하는 게 꼭 미국 교포인 것처럼 하네,”
 
“어쨌든 전 지금 가고 싶어도 못 가니까 몇달만 기다려 달라고 전해 주세요."
 
“그게 내 마음대로 안된다니까요."
 
간호원이 있었고 시큐리티도 있었다. 시큐리티는 아마도 남자의 외모때문에 따라온듯 했다. 그는 들어오지는 못하고 병실 문 밖에서 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자기 성질을 못 죽여서 였는지 올빽으로 넘긴 머리를 손으로 자꾸 문지르고 있었다,
 
“저 깡패 아닙니다. 사실은 저희 아버님이 김 회장님 도움을 많이 받으셨어요. 도와달라고 부탁 하길래 온 거 뿐입니다.”
 
“표현 미안한대요. 그쪽 분들 진짜 재수 없거든요. 김 회장님 이라는 말부터 그래요. 이가 갈려요. 시아버지 말씀 하시는 거죠? 왜 시아버지가 제 결혼 생활에 참견을 해야 하죠? 얘 못 데려가는 거 남편이 시켰다면 이해하겠어요. 왜 시 아버지가 이렇게 하죠?
 
“시연씨 간단히 하죠. 저는 그냥 못 돌아갑니다. 같이 가셔야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시연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집 문서였는데 시연은 금방 알아들었다. 부모님이 전부 길거리로 나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 이제 막 애기 낳은 산모에요 많이 아파요. 그리고 엘에이에 당분간 있고 싶어요.”
 
“미안해요 시연양. 김기수씨는 그걸 원하지 않거든요.”
  그는 병실을 나갔다.
 "다시 오죠."

 
영우는 돌아 다니다가 일층 이머전시 룸 뒤에 'EXIT' 이라고 붙어있는 문을 열어보았다. 어두운 숲이 보였다. 다시 로비로 돌아온 그는 커피 판매기로 가서 한잔을 뽑아 마셨다. 열한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
그런데 왜 하필 아기가 십이월 이십사일에 나와.
  그는 혼자 투덜거렸다. 떨리던 손은 진정되어 있었다. 그가 내밀었던 사진 생각이 났다. 발가벗겨진 채로 여러 사람앞에 놓여있는 느낌, 살인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조금은 알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 사진은 모든 일을 쉽게 풀어주었다.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막막하던 그의 머리를 단순하게 만들어 준 것이다.
 
영우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밖으로 나온 그는 돌아다니면서 
차에 일주일정도 생활할 수 있는 음식과 산모인 시연이 필요하다싶은 물건들을 가득 싫었다. 전화를 했더니 시연은 혼자 있다고 했다.
 "언제 다시 온대요?"
 "내일 온대요. 하지만 모르죠. 그리고 그 사람들 지금 이 병원 지키고 있을 거에요."
  그는 아까 확인했던 뒷문 쪽에다 차를 세우고 정문을 피해 한참 걸은 다음 이머젼시 차들이 드나드는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조그마한 상자속에 앉아있던 시큐리티가 일어나는 것이 보여 그는 손을 흔들면서 웃었다.
[미안. 너무 급해서요.]
  시큐리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애기 이불로 둘둘 말아서 데리고 나와요. 힘들겠지만 엘리베이터 타지 말고. 엘리베이터 어느쪽인지는 알죠? 그 옆에 문 열면 계단이에요. 천천히 걸어 내려와요. 내가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시연은 얘기를 데리고 병실을 나왔다. 아랫배가 많이 아팠지만 무조건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났다. 담당 간호원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그녀를 보고 따라왔다. 애기를 안고 있었기때문에 화장실 간다고 거짓말을 할수도 없었다.
 [나 가야먄 돼요.] 그녀는 짦은 영어로 그렇게 말했다. 간호원은 그녀를 잠시 쳐다보더니 안 보일 정도로 고개를 끄덕 거렸다. 병원비 떼어 먹으려고 도망가는 정도로 생각해 주기를 시연은 바랬는데 그게 통한 건지 그녀는 시연에게 애기를 달라고 하더니 턱으로 가자고 엘리베이터 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안타고 'EXIT' 라고 쓰여있는 문을 열자 간호원이 뭐라고 말했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연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밑을 가리켰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더 반복하다가 울기 시작했다. 아파서는 아니었고 아마도 자신이 사용한 'somebody' 라는 말 때문인것 같았다.
  애기를 달라는 시연의 몸짓을 거부하고 간호원은 자신이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랫배에 힘이 없어서 걷기가 힘들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 물었다. 네층의 계단을 내려오는동안 그녀는 이러다가 죽을 수도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애기는 간호원의 손에서 영우에게 넘겨졌다. 마치 이불빨래처럼 보이는 애기를 뒷좌석에 싫고 시연은 그 옆으로 기어 올라가서 누워 버렸다. 필리핀계로 보이는 간호원은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그렇게 떠나가는 그녀에게 오른손으로 바이바이를 했다.
 
“집으로 가면 안돼요?”
 
누운채로 시연은 물었다.
 
“아닌거 같아요. 그 한국에서 온 남자. 눈빛 봤어요?”
 
“네.”
 
“그냥 바보 같은 깡패, 이런 거 아닌 거 같아요. 난 공포심 느꼈어요.”
 
“경찰한테 부탁하면 어떨까요?”
 
“존하고 나하고 어릴 때 부터 같이 큰 친구하나가 엘에이피디에 있어요. 전화 한참 했는데 이십사 시간 지켜줄 수는 없는 거니까 사설 시큐리티를 소개해 주겠다는데 그 비용이 하루에 사 백불 정도에요.”
 
“그건 제가 낼수 있어요.”
 
“언제까지요? 몇 달간, 한 달에 만 이 천불 씩?”
 
“오만불정도 있어요.”
 
“그건 바보같이 쓰지 말고 가지고 있어야지요.”
 
“근데 저 너무 아프거든요.”
 
“황당한 크리스마스네,,,”
 
시간이 열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시연은 땀이 비질거리며 나오는 이마를 문지르며 일어나 앉았다.
 
“그럼 한 일주일간이라도 집에 있으면 안 될까요? 그럼 나도 어느 정도는 움직일 수 있고 그때 도망가면 되자나요.”
 
영우는 운전대를 잡은 손으로 곱슬 머리를 한번 만지고 나서 말했다.
 
“그러면 늦겠죠. 지금부터 동쪽으로 갑니다.”
 
“무슨 소리죠?”
 
“마이애미, 존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거든요.”
 
“엄마는요?”
 
“못 건드려요.”
 
“그럼 한국에 있는 제 부모님들은요?”
 
“전화해서 이사하시라 그래야죠. 그럼 지금부터 스물여덟시간 갈 거에요. 더 정확히는 삼일 정도.”
 “근데 정말 궁금한 거요,,,?”
 
"우리는 스물여덟 시간을 가야돼요. 이게 찝차 자나요. 일반 승용차보다 오래 걸린다구요. 애기 낳고 하루도 안 됐는데, 이게 쿠션이 안 좋다구요. 상황이 이러니 어쩔수 없죠."
  합법적인 나라에서 깡패들이 할수있는 일이 어디까지 인가는 그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은 위험해 보였다. 더 중요한것은 그가 도망치는것이지 시연이 아니었다. 그걸 시연에게 얘기하지 않은것은 그녀도 그걸 알고 있을것이기 때문이었다. 바보같이 캘리포니아 바닷가에 다이빙이나 하고 있던 그를 어쩌면 시연은 도와주러 온 천사일지도 몰랐다. 빠져 나갈 명분이 없었으니까. 존은 군대 내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오래 머물을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하나는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이라크에 갔다온 군인의 입지는 막강하다는거, 아마도 그의 군부대내 아파트에도 누가 와 있던지 함부로 참견 하지는 못할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또한 그만큼 안전한 장소도 없고,
  뒷 트렁크에 실려있는 시연의 컴퓨터 에는 이런 많은 일들이 기록되고 있을것이다. '엄마한테 미안해.' 라는 말 외에 시연은 무슨 기록을 할수 있을까,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거죠?"
  하고 시연은 물어 보았다.
 "컴퓨터에 쓰고 있자나요. 그대로 되겠죠."
 "다음 장면은 없는거 같은데요."
 "오늘 밤은 그냥 달려갈거고 내일 밤에는 모텔에 있어야 되니까 그때 쓰시면 되겠죠. 아니면 작은 도시의 어느 병원 침대일수도 있고,,,"
  차는 한적한 프리웨이를 달리기 시작했고 잠을 자려고 노력하던 시연은 포기하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렇게 된거죠?"
 "뭐가요?"
 "지금 우리요."
  영우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대개의 일들이 그렇죠. 진행되고 있을때는 그 의미나 결론을 모르고 돌이키기 힘든데까지 가면 과거형이 돼서는 왜 이렇게 된거지? 묻는거,,,"
 "그런건가요,,,"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엘에이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냥 달려갈 거에요. 그게 현재로서 우리가 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거겠죠. 하나 궁금하게 생각해 본적은 있죠. 만약 신발을 잘 놓았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가지런히 놓여진 신발을 보고 싶었나 봐요. 나는 얌전히 있었다고 말하는 신발, 내지는 난 너무 힘들게 돌아 다녔다고 말하는 신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신발에는 그림자가 있어요. 놓여있는 방향이 하루를 돌아다닌 자신의 일과를 얘기해요. 단지 그거 뿐이고요. 좀 아퍼서,,,,"
 그녀는 아픈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컴퓨터가 그리워 졌다. 이렇게 쓰고 싶었다. 이상해 보이지만 결국은 내가 결정한 것이라고, 또한 그러한 일들은 누군가 하드 디스크에 저장해 놓은 것처럼 자신의 머릿속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는것, 그냥 단순하게 표현되어지는 삶이나 사랑이라는 단어들은 사실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어렴풋이 느낀건 어떠한 경우든 사람은 진실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것 등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은 사실 은 트렁크에 실려있는 랩탑속의 언어들 속에 어디에선가 스며 들어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걸 만들어낸것도 시연 자신이었다. 날이 밝으면 영우에게 그런 말들을 전부 해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고등어와 랍스터도 마찬가지다. 설명안해도 되는 소소한 감정 상태를 표현하려니까 등장하게 되는 소품들 일뿐이다. 그가 말하는 고등어와 랍스터, 당연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할 것들중에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느냐는 쉽게 입술 적시듯이 뱉어내는 단어들의 영역은 아니다.
  아랫배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시연은 소리안나게 울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새벽이었고 그들은 마이애미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