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오리

 

  엘에이가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언제인지는 모른다. 태고 적 일수도 있고, 아마도 웨스트 엘에이의 어느 카페에, 아니면 베니스 비치의 어느 이태리인이 주인인 라쟈니아 전문집에 앉아서, 이성을 앞에 앉혀두고 앉아 적당한 양의 알코올을 몸속 혈관에 흘려 보내주면서, 혹은 발밑에 방치되어진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보면서,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람을 느끼면서, 그렇게 혼자 도취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윌셔 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현대식 고층 건물들은 맥아더 공원을 기점으로 엔틱 건물들로 바뀌어 버린다. 아름다운 거리다. 하지만 올림픽 길로 들어서면 마치 한국에서 보았던 지방도시를 연상케 했다. 게다가 사람들의 생김새는 우중충했고 지저분했으며 밤이 되면 도시는 무덤으로 변했다. 나는 당시 엘에이의 극히 일부만 보았던 것이다. 기억을 현재로 가져오기에는 시리고 아팠던 가슴이 용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차가 막혀서 멍하니 차속에 갇혀 하늘만 올려다 볼 때라던가 티브이도 보기 싫고 컴퓨터도 켜고 싶지 않은 여분의 시간에 가끔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고 되짚어 보는 행위, 그리고 그런 기억을 가능한 한 미화시켜 보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물론 순전히 자신에게 지만, 아마도 아름다웠던 엘에이와 그로테스크한 과산화수소의 도시가 동시에 내 기억속에 남아버린건 아마도 경아 때문이 아닐까,

  소독약 냄새가 아주 어릴 때 같이 놀았던 강아지의 발 냄새처럼 계속 따라다니는 걸 제외한다면 당시의 엘에이는 어쨌거나 예뻤다. 경아를 알기 전 이었을 것이다.

  꿈을 꾸다가 일어났을 때 나는 엘에이에 있었다. 꿈이 시작된 곳은 물론 다른 도시였다. 과산화수소 냄새와 흔들리는 대지가 있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문은 활짝 열리면서 찌그러졌고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던 알람시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바다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경험해본 자연의 힘이었다. 그 기억이 엘에이를 아름답다고 기억하게 한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날 엑스터시를 느꼈고 예측하지 못 한, 그 에너지의 활동에 매료 되었었다. 미학은 아마도 이런 현상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 것 같다 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 새벽에 나는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왔다가 깜짝 놀랐었다.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있었고 그들 중에서는 울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았다. 경험이 없는 나에게 그런 초자연 현상은 미학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나쁜 경험이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포 였다는 것을,

엘에이가 왜 아름답냐고 누군가 나에게 물어온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같다. -사막 이었어요. 지진도 자주 나고요. 예쁜 거 하고는 거리가 멀죠. 근데 왜 예쁘냐면 청춘이 거기서 사라져서 그래요.-

  과거를 떠올리는 건 늙었다는 뜻이고 미래를 상상 하는 건 젊었다는 뜻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이런 말을 정작 인정하자면 기분은 별로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걸 감수하면서까지도 가끔은 떠오르는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에도 몇 가지 있지만 그중 가장 강렬했던 것은 스무 살 즈음, 엘에이에 막 들어와서 경험해보았던 내 생애 최초의 사랑 놀음 이었다. 경험부족에다가 선천적 몽유병까지 버무려져서 확실하게 못난이 짓을 했던 그 때를 생각해보면 아직도 가슴이 시리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한때를 회상한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뜻이 아니라 다시 또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젊음 일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누구나 경험해 보았겠지만 현실보다는 꿈속에 빠져있는 시간이 더 많은 나이이다. 항상 꿈을 꾸고 다니기 때문에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현재의 일을 깨닫지 못한다. 길을 지나가다가 마주친 어느 멋진 건물이 왜 내 것이 아닌지를 이해 못한다거나, 역시 길을 지나다가 마주친 느낌 좋은 여자가 왜 내 여자 친구가 아닌지를 이해 못한다거나, 아니면 당시로서 잘나가던 어느 정치가나 재벌가가 왜 나한테 와서 상담을 하지 않을까하는 아주 이상한 상상들이 그런 것이다. 이런 이상한 상상은 젊음이 아닌‘어린’ 치기에서 대개 비롯된다. 예를 들자면 나는 당시 쇼팽 녹턴을 몇 개 칠 줄 알았었다. 하루 베토벤 월광 소나타가 멋있어서 도전을 했었는데 삼 악장은 침공불가의 성이었다. 전공자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취미로 치는 나에게는 적어도 그랬다. 이 개월 후에 나는 피아노 뚜껑을 덮어버리고 다시는 피아노 앞에 앉지 않기로 했다. 안 된다는 걸 이해 못한 것이다. 그대로 끝나면 좋은데 나는 다시 피아노를 기웃거렸다. LP 판에서는 빌헬름 켐프의 삼악장이 연주되고 상상 속에서는 내 손이 건반위에 있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베토벤이, 아니면 피아노가 나한테 사기를 친 거라고 투덜거렸고 그건 곧 확신이 되었다. 정말 영악 했다면 ‘엘리제를 위하여’ 나 뚱땅 거리면서 만족을 했어야 했다.  

  상상은 상상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하나 좋은 점은 그러다보면 프리웨이가 너무 막혀서 한 두 시간을 차에 앉아있어도 별로 지루하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영어 공부를 위해 영화 ‘Falling in love' 를 카셋트 테이프에 담아 하루 종일 듣고 다녔다. 똑같은 대사를 일 년 이상 듣고 다녔더니 나중에는 그 대사가 전부 머릿속에 들어와 버렸고 나중에는 메릴 스트립이 한마디 하면 로버트 드니로 대신 내가 대답을 했다. 그와 똑같은 억양으로, 나는 로버트 드니로가 되어있는 것이다. 차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나는 더 이상의 내가 아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주로 유명인사들 이기는 했지만 가끔, 캠퍼스 한구석에서 혼자 쓸쓸히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반코트 입은 남학생이 되기도 했고 수염을 헤밍웨이처럼 기르고 있던 노교수가 되기도 했으며 다운타운에서 마주쳤던 두 다리 없는 홈리스가 되기도 했다. 휠체어에 몸을 싣고 떠도는 절망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였다.

  이런 모든 일련의 일들은 당시 독립기념일 전야제에 갑자기 터지기 시작하여 불어나는 폭죽과도 같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고 나는 방어 본능을 상실한 채 상상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이건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 안 사실인데, 그런 상태는 나만이 아니었다. 주위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다. 그들 모두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나만의 착각일까,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왔는데 그 믿음에 삼차 방정식을 도입해서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자연이라는 교도관에 의해 수갑을 차고 끌려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결정한 것은 사실 없어, 라고 책임감 없는 말을 종알거리고 싶지는 않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들 중에서도 중증이었다.  그러다보니 꼭 잡고 있어야할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혼동 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우주의 섭리대로 진행되고 우리는 거기까지 참견할 능력이 없으니까.  당시의 나는 그런 현상들이 그저 남아도는 시간 때문에, 혹은 어떤 성적욕망의 한 형태로서 벌어지는 일들로 생각했었다. 아니면 생활환경이 갑자기 태평양을 넘어버리는 바람에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게 경아가 내 기억이라는 하드디스크의 한 부분에만 남게 되어진 다음에도 비슷한 현상들은 계속 되어졌고 여자를 만나고 데이트를 하고 교수에게 좋은 학점을 받고 직장에서 칭찬을 들어도 증세는 호전되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애인 비슷한 여자가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몰두가 되질 않았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경아와의 만남 전후로 나누어 생각해보곤 하는데, 스스로 엄청난 쇼크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전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항상 하던 상상이 반으로 줄어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진처럼 갑자기 벌어진 그 일에는 위험스러운 요소밖에는 없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미학적인 느낌을 가지고 다가와 가을날의 어느 저녁에 문득 문득 떠오르고 운전하다가도 쓴웃음 짓게 하는 건 청춘이었기 때문에, 어렸었기 때문에, 라고 쓰다듬기 좋은 말로 표현할수 있게 되어진 시간의 자비로움 때문이 아닐까,

  열정, 열병이 가져오는 합병증, 통증, 그러한 것들이 그립다. 아플때는 그렇게 아프고 싶어서 상상만 했었다는 것을 몰랐었다.

  시간이 지난후에 알게 되었다. 상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과 번민이 존재 한다는 것, 현실은 상상의 세계를 조롱 한다는 것, 변증법적인 해석으로만 설명 가능한 이 세계의 구조 같은 것들,  그일 이후로 나는 지구가 차가운 흙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태양은 왜 다가 갈수 없도록 뜨거운지, 그리고 그사이에 합의점은 없다는 사실 들을 대충 이해하게 되었다. 내 주위에 존재하는 유기체나 무기체, 혹은 룰 등은 상상으로 풀어 낼수 있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 아니고 방정식에 등장하는 숫자들처럼 일련의 양식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길게 이어져가던 숫자들 중에 하나라도 잘못된 숫자가 나오게 되면 전체가 다 헝클어져 버리는 수학처럼, 어느 정도는 잔인한 저격수들 같은 형태로 그것들은 내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팔십 몇 년 도인가 내가 처음 엘에이에 들어왔을 때 당시 나에게는 몇 명의 친척과 가족,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이 한명 있을 뿐이었다. 나갈 데도 모르겠고 영어도 못하고 해서 집에서 뒹굴고 있는데 그게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로 접어들고 있었다. 물론 ESL 학원에 등록은 했지만 일주일 수업시간은 고작 네 시간뿐 이었다. 만날 영어책을 끼고 다니긴 했지만 그 무료함이란 감옥에 앉아있는 죄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불쌍하게 된 지나친 젊음과 지루하고 긴 시간만이 있을 때 였다.

  누구처럼 휘어지지 않은 낚시 바늘을 물속에 던지고 호숫가에나 앉아 있어야 할 처지였는데 동창 흥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든지 할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산타모니카 바닷물을 몽땅 날라서 말려버리라고 해도 덤벼들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무료한 상태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따라 나갔고 그는 나를 한인 타운에 있는 한 술집에 내려주었다. 당시 그 친구는 학교를 다니면서 밤에 아르바이트로 택시를 했었는데 그때 그 술집하고 친하게 된 모양이었다. 나는 졸지에 웨이터가 되었고 당시의 나로서는 아주 생소한 흰색 와이셔츠를 얻어 입고 멀뚱히 서있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나는 흥기에게 너무 고마웠다. 아니면 거리에 뛰쳐 나와 스트리킹을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었으니까,

  더 정확히 당시 상황을 기억하자면, 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때 그렇게까지 지루한건 아니었다. 학교 알아본다고 돌아다니고 팟 타임 일자리 알아보려고 버스타고 돌아다녔었으니까, 집에 있는 걸 지나칠 정도로 싫어하다보니까 그런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라 짐작된다. 

  내가 경아를 처음만난 게 그곳이다. 마담이 인사를 시키는데 그녀는 자기 이름을 제니퍼 라고 했다. 그러면서 담배를 빼어 물었는데 내 눈에 그녀는 니코틴을 잘 모르는 여자로 보였다. 어색했다.  후에 영어이름과 진짜이름 사이에 있는 묘한 딜레마와 그것을 교묘하게 나누어 사용하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당시 생긴 건 한국아이가 영어 이름 대는게 탐탁치 않게 느껴졌던 건 아직 기억한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어쨌든 나한테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흰 와이셔츠를 입고 마담이나 다른 아가씨들이 부르는 대로 쟁반에 술병이나 잔을 담아서 날라야했다.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 반말로 떠들어도 그냥 모르는 척 했다. 분위기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근데 삼십분도 안돼서 나는 경아라는 존재를 느꼈다. 내 상식으로 그녀는 손님 옆에 앉아서 떠든다거나 술잔을 채워준다거나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러지를 않았다. 카운터 옆의 높은 의자에 앉아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만 연신 피워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내가 막 들어온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는 걸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와의 첫 대화는 이랬다.

 “엘에이 처음이죠?”

 “네?”

  쟁반을 들고 지나가다가 나는 그렇게 그녀를 쳐다봤다.

 “느낌만 보면 알아요.” 

  그게 그녀와의 첫 대화였는데 나는 그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 소리가 너무 컸다. 이 소음에 어떻게 대처할 것 인가 골똘히 연구하고 있는데 그녀가 그렇게 말을 붙였기 때문에 나는 적당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서빙을 하러갔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거의 네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네 시간을 나는 느꼈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새 한 마리가 날아오고 싶어 한다고,

  이제 와서는 상상 이었는지 현실 이었는지 모호한 십대 때의 기억 몇 편이 그런 추측을 가능하게 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건 어느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었다. 소년과 소녀는 지붕위에서 밤을 지샌다. 날아오지도 않는 새에게 계속 먹이를 뿌리면서, 르 끌레지오 였나? 아니다 그 주인공들은 새 먹이는 주지 않았었던 것 같다. 

  새벽 한시에 그녀는 말했다.

 "차로 오 분 거리에 호수가 있어요." 

  마담은 경아한테 완전히 삐져서 멀리 가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차가 없어요. 그 호수에 가보고 싶은데 같이 갈래요?"

 "나도 차는 없어요. 하지만,,,궁금은 하군요."

  나는 그렇게 대답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생전 처음 해보는 술집 청소를 하고 두 시경에 그곳을 떠났다. 차는 흥기 차였다. 그녀를 반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만나고 싶었는데 그녀는 일부러 그랬는지 마담이나 다른 아가씨들이 빤히 쳐다 볼 수 있는 곳에서 내 옆에 냉큼 올라탔다. 흥기는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가는지 우리를 연신 곁눈질했고 어쨌든 우리는 맥아더 팍에 도착했다. 아마도 두시반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아는 핸드백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놓았다. 흥기는 기가 막히는지 아니면 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차에만 앉아있었고 경아와 나만 호숫가로 걸어 나가서 소주를 마셨다. 우리는 그날 처음 만났다. 아니 처음 마주 앉았다. 물론 잔은 없었고 그냥 병나발이었는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술자리는 평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첫눈에 반한다. 글쎄, 그런 걸까. 후에 경험 한 거지만 일 년 넘게 같이 다니다가도 손 한번 안 잡아 보고 남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만나고 하루 만에 눈에서 번개가 친 적도 있었으니까,  이른 봄의 새벽 호수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구름 같은 안개가 덮이고 그 밑으로 몇 안 되는 오리들이 헤엄쳐 다녔다.

  "참 잠도 없는 놈들이네." 라고 나는 말했고 경아는

  "잠을 잘 수가 없는 모양이죠." 라고 대답 했었다.

  그 후로 한참을 더 있었다. 그 시간의 길이를 모르겠다. 흥기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나기까지 였으니까, 무슨 대화를 했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 아무 말도 안 했으면 다행이고 했어봐야 기껏 오리에 관한 얘기였을 것이다. 확신한다. 

  다음날 경아는 아예 손님들 곁으로 가지도 않고 또 그 카운터 옆의 높은 의자에 앉아 밤새 앉아 담배만 괴롭히고 있었다. 아니 담배가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마담이 뭐라고 얘기하자 속으로, 하지만 나 한테는 들리게

  "씨발 귀찮게 왜 그래." 라고 내 뱉었었다. 

   두 번째 날은 어쨌든 그렇게 넘어갔는데 문제는 세 번째 날 이었다. 나는 벌써 관두기로 결정을 하고 흥기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부탁해 놓은 다음이었다. 그전까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라고 공공연히 떠들던 내 허세가 잘못 되었음을 절절하게 느낀 이틀이 지난 후였다. 콧수염을 기른 꽤 점잖게 생긴 사내가 검은 양복을 입은 엄청 덩치 큰 사내들을 넷이나 데리고 들어 온 것이다. 그들은 얌전히 들어가 방에 앉았는데 잠시 후 어깨가 나보다 두 배는 넓어 보이는 한 친구가 나와서 경아에게 눈짓을 했다. 경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 친구가 들어가더니 조금 후에는 두 명이 나왔는데 그 중한명이 경아의 팔을 잡았고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잠시 후에 내가 그 방에 붙들려가서 앉아 있게 되었다. 경아가 문을 발로 차고 나가버린 다음의 일이었다.

 "인사나 합시다" 하고 콧수염이 말했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그는 유명한 깡패 두목 이라고 했다. 나는 그냥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예우로 인사를 꾸벅했을 뿐이다. 그는 웃었다.

 "보니까 경아 행동이 갑자기 이상한 게 그대 때문인 것 같은데,,, 하기사 이런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네?"

  "잘해줘요 마음 착한 아이니까."

  "저 여기 오늘 그만 두려고 하는데요."

  "말 안 해도 알아요. 그렇겠지. 대개 그러니까.,,"

  그는 또 웃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잘 분석이 안 된 내가 나가는데 그가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난 그냥 가끔 경아랑 얘기 하는 게 좋아서 들르던 사람이니까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아요." 

  나는 지금도 술이 좀 취하면 어린 사람들한테 막 말하는데 그는 끝까지 존칭이었다.

 "알겠습니다."

  하고 그 방을 나왔지만 나는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경아는 사라지고 없었다.  네 번째 날은 나가지 말아야 했는데 당장 일할 사람이 없다는 아줌마의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고 그게 별로 안 좋은 기억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그날은 나에게 처음으로 차가 생긴 날이었다. 항상 열 받게만 하던 엄마가 그런 멋진 스포츠카를 가지고 나타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물론 엄마가 내가 술집에 취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차를 도로 가지고 가 버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잠시나마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따라서 흥기의 도움 없이 혼자서 갔다. 경아는 없었다. 일곱 시경에 도착해서 예의상 대충 청소를 해주고 났는데 아줌마는 다짜고짜 술잔을 내놓았다. 취기가 어느 정도 오른 다음 에 알 수 있었는데 아줌마는 나를 일 때문에 부른 것이 아니었다. 그날 마담 아줌마는 계속해서 홀짝 거리며 술을 마셨고 나는 왔다 갔다 하면서 대작을 해주었다. 어차피 마지막 날이었다. 경아 때문에 불려간 거라는 건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새벽 한 시경 에는 조금 언성이 높아지게 되었고 나도 제법 취해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아줌마의 손에 끌려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줌마의 집은 가게서 반 블럭 뒤쪽이라 운전을 할 필요도 없었다. 아줌마는 샤워를 하고 속옷을 입고 나타나서는 멍하니 소파위에 앉아있는 나에게 쏘아 부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손에 맥주를 들고 있었는데 많이 취해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주사는 속옷인가 보다 생각하니 웃겼다.

  "너는 왜 갑자기 엘에이에 나타나서 내 속을 뒤집어 놓니? 경아가 누군지 알아? 나랑 엄마 딸 하자고 약속한 아이야. 그런 아이가 사라졌어. 집에 어제 안 들어왔데. 책임지고 찾아와." 

  당시에 벌써 별로 순진하지 않게 변했던 나는 그녀가 비즈니스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이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일할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나를 불러내서는 그렇게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내 할 일을 다 끝마쳤었다. 일당을 받을 수 있는 확신도 없으면서도, 따라서 나는 그 아줌마에게 꿀릴 것이 없었다. 물론 이틀째 되던 날 손님 한명의 머리를 쟁반으로 내려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써빙용 쟁반은 충분히 소프트 했고 맞은 남자의 공갈처럼 법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리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줌마의 리빙룸 에는 남편 사진은 없었고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두 아들의 사진만 있었다. 아줌마가 기절을 했는지 잠들었는지 옆으로 누웠을 때 나는 카운트다운을 다 마치고 그곳을 나왔다. 

  그렇게 너무 순간적으로, 말하자면 말도 안 되게 경아는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것인데, 지진 비슷한 느낌이어서 그렇게 그냥 잊혀지는 줄 알았었다. 물론 아주 잊어버린 건 아니다. 그럴 만큼 나는 강하지 못하다. 밤이, 그리고 낮이 추워지고 있었고 나는 자꾸 그 아이가 생각이 났다.

  흥기는 나를 다운타운의 조그만 도매상에 취직을 시켰고 나는 그 일이 맘에 들었었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내가 발음이 좋다고 선생들이 적극 추천을 하는 바람에 ESL 고급 클래스를 하나 더 수강해야 했고 바빠졌다. 문법으로 치자면 나는 완전 깡통 수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때도 꿈꾸는 걸 중지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을 것이다. 아줌마를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사라진다는 건 나를 의식해서다. 자신의 존재를 좀 더 값어치 있게 만들려고, 나를 대상으로, 그래서 한편으론 불안했고 한편으론 안심했으며 후자를 정당화하려고 이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흥기가 존재한다면 경아도 존재 한다 엘에이에, 뭐가 다르단 말인가, 몇 년 못 본 삼촌도 존재하고 변하는 것은 없는데, 그 둘 사이가 극명히 다른 연락처의 없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현실은 상상으로 바뀌어 왜 내 옆에 경아가 없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형태로 바뀌어 갔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경아에 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해져 갔다. 거기다가 술이라도 한잔 마시게 되면 그녀의 모습은 더욱 또렷이 보이고 그 하얀 손가락 사이에서 자신을 태우고 있던 볼펜 같은 담배도 떠오르고 클레오파트라처럼 양쪽으로 갈라놓은 단발머리나 파인드레스 사이로 보이던 왼쪽 어깨위의 점 들 같은 것도 떠올랐다.

  열병 비슷한 거였다. 두통, 식욕부진, 그리고 열, 가슴을 서늘한 기운으로 열고 들어와 뜨겁게 늘어 붙어 버리는 어떤 힘, 그 짧은 만남이, 잠깐의 스침이 이런 형태로 나를 괴롭히게 될 줄은 짐작 못했었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어야할 시간에 이집 저집 술집을 기웃거리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리고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다시 마주칠 거라는 것을, 당시의 한인 타운에는 지금처럼 그렇게 많은 술집이나 카페가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올빼미 족속들은 걸핏하면 마주치곤 했었다. 같은 올빼미를 하루밤새 세 번이나 만난 적도 있었으니까, 그때의 그 당혹스러움 이란,  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그녀는 만나지지가 않았다. 상상 속에서만 마주쳤고 끌어안았고 귀에 대고 미안하다. 잘 몰랐다.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만큼의 시간이, 아니 그보다는 조금 길었던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학교에 처음 한국인 여학생이 들어왔고 그런 연유로 친해지게 되어 처음으로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된 날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주제가 오고 갔을 것이다. 여섯시에 도착해서 여덟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으니까, 무슨 복잡한 대화가 있었을 것이다. 새에 관한 얘기를 했던 게 생각나니까. 경아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걸 새 라고 표현한 오페라가 있어요. 제목은 기억 안 나고. 잡히질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쥐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있는데 잘 보이지를 않으니까."

  "바퀴벌레 보다는 그래도 덜 징그럽네요."

  라고 그녀는 말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대화가 조금은 기억나는 이유가 바로 그때, 그녀의 웃는 모습 뒤로 마치 뭉크의 소녀 같은 표정의 여자가 똑바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던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심장이 앞에 있는 물 잔에 퐁당 빠져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클레오파트라의 머리를 한 그녀는 무표정하게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앉아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요. 갑자기?” 하고 마주앉은 아가씨가 물었을 때, “쥐가 나타났어요 잡아야죠.” 라고 나는 대답 했었다. 문 쪽에 더 가까이 앉아있던 경아는 가방을 메고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가기 시작했고 난 뛰어서 그녀를 쫒아가다가 옆자리 테이블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손님들의 작은 비명소리가 들리고 손에 그녀의 어깨가 닿기도 전에 내 몸은 프로레슬러 같은 흑인 시큐리티에 의해 꼼짝도 못 하게 잡히고 말았다.

  아줌마한테 전화를 받은 게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거의 반년만의 통화였기 때문에 목소리를 기억하는데 잠시 시간이 소요되었다.

 “잘 지내 요즘?”

 “아네. 난 또 누구시라고,,”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 했는데. 최근에 경아 만난 적 있어?”

 “갑자기 그건 왜요?”

 “그 후로 걔 집에 돌아와서 얌전히 잘 지냈었어. 가끔 일도 나오고 다시 학교도 알아보고 다니고 하면서, 그런데 몇 일전에 위스키를 거의 한 병이나 마시고 수면제를 열 알 이상 먹어 버렸어. 어디서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죽지는 않고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데 의사 얘기가 후유증이 평생 갈 거라고 하더라. 솔직히 말해봐. 만났었지? 어떻게 한 거야 얘한테? 왜 걔가 널 찾고 있는 거지?” 

  불과 한 달 전에도 나는 그 술집에 갔었다. 아줌마는 그 아이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고 했었다. 머리속이 하얘지는 느낌 이었다.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는데 어쨌든 잠시 후 에 나는 경아의 병실에 있었다. 똑바로 누워 머리를 왼쪽 옆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의식은 없었지만 숨은 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잠이 들은 모양 이었다. 거기서 나는 두 시간 동안 소독약 냄새만 맡다가 돌아 눕혀져있는 그녀의 왼쪽 볼에 입술을 맞춰주고 나왔다. 그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얼마나 울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날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울했던 과거는 대충 짐작 할수 있다. 하지만 자살까지,,,’ 

  다음날 다시 찾아갔을 때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발쪽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얼굴이 익지 않은 그녀의 친구 한명이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청바지 차림 이었다. 경아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 여기서 나갈래.”

  “하루만 더 있지 그래.” 

  그녀의 얼굴은 눈에 띄게 핼쓱해져 있었고 거울처럼 창백했다. 나는 말했다.

 “그리고 그거 알아?”

 “뭐?”

 “자살에 실패하는 사람은 다른 일에도 실패 한다는 거.”

 “실패가 아니라 실수겠지.” 

  그녀의 친구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는지 나가 있겠다며 돌아섰다.

 “지니야 나가지 말고 그냥 있어.”

  친구의 이름은 지니였다. 왜 기집애들은 주로 ‘제이’ 로 시작되는 이름을 쓰나 생각했었다.  그리고 저쪽을 향했던 얼굴이 이쪽으로 돌아왔는데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눈을 훔치던 그녀의 왼쪽 팔목에 가로로 길게 베인 상처 자국이 있었다. 그녀의 자실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나 퇴원하고 싶어. 수속 좀 해줘. 그리고 말이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날 우리 같이 본 오리들이 날 자꾸 쫒아 다녀. 그러면서 나한테 뭐라는 줄 알아? 자기네들은 항상 사람들을 의식 하는데 나는 왜 자기네들을 의식하지 못하냐고. 자기네들보다도 못한 나는 굳이 살아갈 필요도 없대.”

   그녀는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내가 물었었다.

  “근데 그 날은 왜 날보고 도망 간 거야?”"

  “오리들도 사람 보면 도망가잖아.”"

   그러면서 우는 그녀를 우리는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을 빠져 나왔다. 자정을 넘긴 시간 이른 봄의 하늘에는 추워 보이는 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별들은 다정해 보였고 나에게 속삭였다. 넌 니 사랑을 찾은거야, 난 그 별들의 중간에 높이 떠서 그 별들의 친구가 되어있었다.

  “나 오늘부터 이집에서 살 거야.” 

   눈물을 닦으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후에 자세하게 알게 된 사실인데 그녀는 가출소녀였다. 친구 두 명과 같이 타운의 싱글 아파트 하나를 얻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가끔 택시를 이용 하다 보니 택시 운전사를 통해서 그녀들 얘기가 마담 아줌마의 귀에 들어가게 됐고 마담은 좀 더 상태가 좋은 아파트를 하나 얻어서 그리로 그녀들을 이사 시킨 것이다.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같은 건물 이었다. 그녀들은 더 이상 아파트 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마담은 그녀들에게 얼마간의 용돈을 쥐어 주면서 학교에 다시 복학하라고 종용했다. 밤에 심심하면 가게에 놀러 나오라는 말도 물론 빠뜨리지 않고 했다.  경아는 그 집에서 삼년을 살았다. 처음 의기투합해서 같이 들어왔던 친구 두 명은 마담의 술집에 종종 출입을 하더니 일 년을 채 못 채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새장의 새들은 얼굴이 자주 바뀌었다. 지니가 나타난 게 이년 전이었고 그녀는 경아 다음으로 그 새장을 오래 지키고 있는 새가 되었다. 방은 모두 두 개였는데 경아는 새 얼굴이 나타나도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면 방을 내주고 리빙 룸에서 자기도 했다. 그래서 였는지 그들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는데 눈에 적의가 가득 차 있는 소녀들도 알고 보면 경아나 다 비슷한 처지였고 착한 소녀들 이었다. 다만 경아가 하나 참을 수 없는 건 그녀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틀어놓는 하드락 이었다. 그녀는 음악은 잘 몰랐지만 아침에는 아침에 들어야할 음악이 따로 있을 거라고 짐작을 했다. 하루 그들 중의 하나가 아저씨뻘 되는 남자를 데리고 집엘 들어온 적이 있었다. 새벽에 마담은 그 집에 쳐들어왔고 스무 살도 안 된 소녀 애들 앞에서 할 수없는 심한 욕을 퍼부어댔다. 남자가 도망가기도 전에-사실 이 아저씨는 소녀들과 함께 소주잔을 비워가며 포커 놀이를 한 죄 밖에는 없었다.- 급하게 슬리퍼를 끌고 집을 도망 나온 경아는 동쪽으로 두 시간을 걸어서 맥아더 팍에 도착 했고 날이 샐 때까지 오리들 하고 놀았다. 그날 밤 마담은 그 집에서 경아가 돌아올 때 까지 앉아 있었다.  열일곱 번 째 생일날 경아는 처음으로 술집을 구경하게 되었다. 마담이 생일파티 준비해 놓았으니까 꼭 나와야 한다고 다짐을 해놓은 날이기도 했다. 그날 경아는 아버지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과 함께 케잌을 나누어 먹었다. 의붓아버지에게서 맡았던 역한 니코틴과 알코올 냄새가 그 남자들에게서 났다. 하지만 경아는 마담을 생각해서 참았는데 술이 조금 들어가자 냄새는 거짓말처럼 향기로 바뀌어 버렸다. 그 후로 그녀는 간혹 술집을 찾곤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술집 분위기는 눈에 띄게 활기차게 변하곤 했다. 경아는 어렴풋이 자신이 마담 아줌마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일 년을 넘게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아줌마에게 뭔가 보답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지만 그건 남자들하고 어울려야 된다는 뜻 이었고 그러기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사실은 그녀를 심하게 짖 누르는 지독한 외로움에 비하면 생각할 건덕지도 없는 것들 이었다. 그녀의 술집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아줌마의 입 끝에는 감추기 힘든 미소가 생겨났다. 그러다가 콧수염을 알게 되었다.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경아를 따로 부르는 적도 없었고 그저 마주치게 되면 옆에 앉게 하고는 부하 직원들로 보이는 남자들과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다가 일어날 때는 백 불짜리 지폐 한두 장을 경아의 손에 꼭 쥐어 주면서 용돈 하라고 말하고는 했다. 그는 다른 아저씨들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노래를 부른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딱 한번 그가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제목은 몰랐고 그저 귀에는 어느 정도 익은 팝송 이었다. 경아는 그가 전직 가수 인줄로 착각을 해야 했다.   열여덟 번 째 생일날 그녀는 콧수염과 함께 난생 처음 디즈니랜드엘 가게 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남자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고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우연찮게 일찍 가게에 들어서던 날 경아는 마담 아줌마가 콧수염의 직원에게 흰색 봉투를 하나 내미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그뿐 그녀는 그의 정체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한번은 지니가 임신중절을 해야 할일이 생겨서 온통 난리가 났었는데 그걸 조용하게 해치운 사람도 콧수염 이었다. 한인 의사가 있는 개인병원의 서류는 단 한 장이었고 경아는 지니를 부축해서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면서 경아는 어쨌든 고등학교 졸업 자격이 주어지는 시험을 통과했고 타운에 있는 한 옷가게에서 팟 타임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마담 아줌마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아지기 시작한 걸 경아도 느낄 수 있었다. 다음해의 이른 봄에 그녀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잘 알지 못해서 어딘가 있을 거라고만 상상했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 갑자기 나타나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잘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만 연신 빨아댔다. 가슴이 아팠고 무언가 얘기를 하고 싶었다. 지독히도 외로 왔던 지난 얘기를 하고 싶었고 뭔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게 있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럴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비 넥타이를 하고 나타난 어린왕자의 옆모습은 그녀의 지난 상상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그날 그녀는 오리 생각이 났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쉽게 말해 경아가 사라진지 몇 년 지난 후에 그 술집에 어느 정도 취해서 찾아갔더니 마담이 구시렁거리면서 해준 그녀에 대한 대충의 지난 줄거리였다.

  어쨌든 그날 저녁부터 경아는 자기의 집이 아닌 내 집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인 지니가 알아서 정리해 준 것인지 퇴근해보니 분명히 그녀는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내 주차장에 처음 보는 차가 한 대 서있고 리빙룸에는 옷가방이 하나 가득 쌓여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퇴근하기 무섭게 집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죽도 끓여주고 과일도 깎아주고 했는데 젊음 때문인지 그녀는 일주일도 안돼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 되었다.  가끔 지니가 찾아오는 날이면 둘이서 외출을 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이 텅 비어있기도 했다. 그런 날은 나는 꼭 태옆에 감긴 인형처럼 거실을 뱅글뱅글 돌며 걷기 운동을 했다. 아줌마로 짐작되는 인물이랑 전화로 티격태격 싸우는 장면도 두 번인가 보았다.  어쨌든 그녀는 꼬박꼬박 들어왔는데 가끔 열두시를 넘기는 적도 있었지만 그 보담은 항상 일찍 이었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 그런 날의 그녀의 얼굴에는 언뜻 스쳐가지만 미안해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날의 첫 번째 말은 항상 “저녁 먹었어?” 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그녀는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잠시 내 옆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집에 들어왔을 때 그녀가 없으면 난 바로 코메디 프로를 틀고 뱅글뱅글 돌고는 했었다. 학교 숙제를 비롯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뿐이지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남자니까 내가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게 근접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작은 연못위에서 따로 부유하는 두 개의 연꽃잎처럼 그렇게 지냈다. 좀 더 정확히 표현 하자면 이렇다.  경아는 내 방의 침대에서 자고 나는 거실의 소파에서 자곤 했는데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같은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는 적이 많았다. 그러다 시간이 늦어지게 되면 옆으로 점점 몸이 눕혀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키가 좀 더 큰 내가 뒤에 누워 목을 팔걸이에다 걸치게 되고 경아는 내 앞에서 내 팔을 베고 눕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놀고 있는 내 손 하나는 그녀의 몸 어딘가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 자세에서 우리는 티브이에서 상영되고 있는 쇼프로나 드라마를 보며 같이 웃는다거나 드라마에 대한 품평을 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 좁은 소파위에서 그 이상의 행동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십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일 이었지만 사실 심정은 아주 미묘한 것이었다. 동공은 스크린에 맞춰져 있고 몸은 경아와 포개져 있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은 아주 많은 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물론 그 망할 놈의 상상 이었다.

  그녀의 과거와 그녀의 육체와, 나의 미래와 그녀와 나의 얼굴이 포개져 있을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캔버스 같은 것들, 게다가 그녀에게도 성욕이 있을 텐데 하는 걱정까지,,,,  그리고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대충 생각해도 열 가지 이상의 질문이 머릿속에 맴 돌았지만 단 하나도 내 목을 통과해 나올 수가 없었다. 하나의 언어에는 열 가지의 독이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가령“오늘 어디 갔었어?” 라는 단순한 질문을 하나 한다 해도 그곳에는 진실이라는 독과 거짓이라는 아픔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간은 추억의 끝을 보기위해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연말이 다가오던 어느 날이었는데 경아는 나에게 백 불 정도 있느냐고 물었었다. 그전에 그녀는 한 번도 나에게 돈 얘기를 해 본적이 없었다. 언어가 마법사의 병에서 탈출해 나오는 순간이라고 나는 느꼈다. 처음으로 솔직한 대화를 해 볼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있는 거 같은데 왜?”

 “그냥, 마켓도 봐야 되고,, 개스비도 좀 필요하구 그래서,,,”

  나는 주머니를 뒤적여 이십 불짜리 다섯 장을 꺼내놓았다. 

 “돈이 없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응,,가지고 있던 돈이 좀 있어서 몇 개월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노니까 생각보다 빨리 없어지네,,,무슨 일이든지 좀 해봐야 할 거 같아,,,”"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원했던 것은 돈이 아니고 대화 였었던것 같다. 바보 같은 나는, 백불을 빌려 달라는 말을 하려고 얼마나 망설였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는데 그건 곧바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대화의 단절은 불합리가 합리로 바뀌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이유인데 그게 흔들리는 걸 느낀 것이다. 물론 한번은 거쳐야 될 과정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사실 제대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어. 오 육년 전인가 처음 가출을 했을때, 아버지가 계속 찾아와서 돈을 주고 갔었거든, 진짜 아버지,,,그게 뭐,,새엄마가 너무 재수가 없어서 과일칼 집어던지고 재수 없으려니까 청소년 법정에도 가게 됐고, 뭐 그런 얘기고,,,그래 엄마한테 갔는데 엄마가 또 재혼을 했어. 그래 거기서 또 용돈 얻어 쓰고,, 내 또래 기집애들 넷이서 사니까 남자애들 자주 찾아오고, 대충 얘기하자면 그런 건데 계속 아파트 세 내 주던 여자가 술집 마담 아줌마 였어. 그래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갔다가 자기를 만난 거고,,,”

  돈이라는 주제는 대화를 끌어내기에는 적합했다.  그런 식으로 종알거리면서 그녀는 무릎위에 올려놓은 두 팔을 턱에다 괴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아름답다는 뜻은 아마도 보고만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만지라는 뜻일거다 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가 그 자세로 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왜 자기는 나를 안 만져? 아니 왜 우리는 사랑을 안 해?”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느낀 건데 모든 대답들의 구십 퍼센트는 거짓말 이라는 거였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그냥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다른 남자들은 나를 못 만져서 안달이던데.” 

  이미 언어속의 독을 마셔 버리자고 우리는 무언의 합의를 했다고 나는 생각 했다.

  “그럼 너는 아무나 만지라고 그냥 가만히 있어?”

  “아니.”

  “왜 아닌데?”

  “일단은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고, 좌우간 싫어.”

  “그래 니가 싫어할까봐. 그런 거야. 근데 뭐가 잘못 됐다고.”"

   그녀의 눈빛은 설명할 수없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내 몸에 손 안대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어.”

  “무서워서.”

  “무섭다니?”

  “가까운 달이 별 이 된다는 걸 상상해봐. 별은 달보다 훨씬 더 큰데 우리에겐 달이 더 소중해. 왜냐하면 가깝게 있거든.”

  “알아는 듣겠는데 좀 더 인간적으로 얘기해봐.” 

  “우리는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아냐. 너는 니가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하잖아. 니가 그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고?”

  “핑계 대려고 하지마. 난 니가 듣고 싶은 답을 말해 줄 수는 있는데 그거다 거짓말이야.”

  “다시 물어볼게 왜 내 몸에 손 안대?”

  “난 니 몸 상태에 대한 자신이 없었어.”

   그리고 나는 갑자기 심하게는 아니지만 따귀를 얻어 맞았고 경아는 그날 이후 삼일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젊은 날, 아니 어린 날의 경험들은 많은 부분들이 마치 호수에 오리들이 녹아드는 것처럼 알코올에 녹아 버리고 정열이라는 허상의 꿈속에 스며들어가고 결국에는 그 허무조차도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간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좀 유치하긴 하지만 경아가 집을 나갔던 삼 일간 나는 술만 마시고 지냈는데 얼마나 마셨는지 그동안에 그녀가 왔다갔는지 조차도 기억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경아가 집에 없으면 바로 위스키 병을 집어 들고는 했었으니까, 방도 돌고 내 침대도 돌고 그녀의 화장품 냄새도 돌았다. 밖에서는 초겨울의 차가운 태양이 역시 돌고 있었고 나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또 술을 마셨고 또 다시 세계는 빙빙 돌았다. 회사에서는 계속 전화가 왔고 다니던 학교에는 아주 중요한 시험이 있었는데 그것도 전부 빼먹어버렸다. 어쨌거나 나는 회사나 학교에서 쫏겨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렇게 술 때문에 망각 되어진 삼일간의 슬픔만이 내 젊은 날의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는, 마치 캔버스 위의 오일 딱지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다.  삼 일째 되던 날 밤 아홉시 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한손을 수화기에 올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받을 수가 있었다.

  “맥아더 팍에 오리 구경하러 왔는데 검은 아저씨들이 내 주위에 너무 많이 있어. 자기가 와서 좀 구해줘야 겠어.”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해 있어서 어쩔수 없이 흥기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는 바쁘다고 했다가 엄청난 상소리를 들은 다음에 바로 왔다. 내 젊은 날의 기억 중 가장 뒤틀렸던 삼일간의 기억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눈을 떴는데 오른쪽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경아와 내가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기억이 안나.”

  “중요한건 자기가 나 데리러 파크까지 와 주었다는 거지.”

  “그리고?”

   일어나 앉았는데 머리가 많이 아팠다. 해골과 뇌는 확실히 다른 부품 이라는 걸 확인하고 있는데 그녀가 시트로 몸을 가리면서 일어났다.

  “삼 일간 어디 있었어?”

  “무슨 상관이야? 자기가 나한테 그런 거 물어볼 자격 있어?”

  “있는 거 같아. 왜냐하면 너 없는 삼일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술만 마셨거든.”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그녀는 담담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첫날엔 희주라는 친구 애 집에 갔었어. 밤 열시쯤 되니까 아저씨 한명이 오더라구. 그리고 둘이 떨을 태우는 거 같았어. 거기까지는 참았는데 그 아저씨 눈초리가 이상해지 더 라고. 그래서 그냥 나왔어.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지하실에서 하루 지냈어. 나 있는 거 몰랐지? 다음날은 지니 기집애집에서 마담 아줌마 나타날까봐 방에 숨어서 소주 세병 마시고 밤새 자기 욕하고,,, 다음날엔 도저히 갈 데가 없어서 맥아더 팍 호숫가에 갔는데,,,너무 무서운 거야 그래서 자기한테 전화한 거고,,,”

  “낮에는 뭐 했는데?”

  “자기가 뭔데 일일이 보고 해야 돼?”

  “물었어. 대답해.”

   경아는 내 목을 끌어 앉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아직도 기억을 못하겠다. 대답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호바트하고 윌셔에 있는 계단 앞에 그냥 앉아있었어. 배가 고파서 햄버거를 사먹고 싶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었어,,, 기집애들 친구도 아냐,, 하나같이 바쁘데. 걔들 집에서 퍼 자고 있는 거 내가 다 아는데. 자기한테 전화해야 겠다는 생각은 계속 드는데 그러지도 못하겠고,,,자기한테 전화했을 때 난 거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어갔었어. 낮에 뭐했냐고? 그렇게 걸어 다녔어. 차는 타고 다닐 이유가 없었고, 빨리 가야될 곳도 없고, 개스비도 없고,, 그렇잖아? 그렇잖아도 하루가 길어 미치겠던데. 그래 오리들하고 놀고 있는데 까만 아저씨들이 자꾸 모이더라고.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난 필요한 게 없어요,,,라고 대답했는데도 떠나지를 않는 거야. 용기를 내서 그 아저씨들 사이를 깡패처럼 걸어간 다음 알바라도 쪽에 있는 공중전화에 가서 자기한테 전화 한 거야. 그래도 주머니에 코인은 있었거든.”

  시트가 벗겨져 버린 경아의 예쁘장한 가슴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내 젊은 날의 기억 중 한 부분, 하지만 가장 소중했던 날이 그 날이 아니었을까,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 오른편 창문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오고 싶어 했던 그 햇살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음날 나는 출근했고 깎듯이 사과했고 내 처지를 잘 아는 나보다 열 살 많은 사장은 날 이해해 주었고 모든 것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학교 역시 심하게 몸살을 앓았노라고 둘러대고 대충 다 넘어 갈수 있었다. 꿈 같은 날들이 지속되었다. 한편으로 영악했던 나는 이게 오래갈 행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주말엔 영화를 보고 근사한 프랑스 카페에 가서 짧은 불어로 웨이터랑 농담하며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이 삼개월 정도 그렇게 지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기를 바랐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었다. 사랑은 열쇠와 같고 추억은 키와 같다고, 추억으로 사랑을 열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설합을 열어보면 키 뭉치들만 있지 열쇠는 없다. 그 키들이 열쇠용인지 아니면 어느 건물의 비밀스런 방을 여는데 사용됐던 건지 그건 기억에 없다. 버리지도 못한다. 혹시 맞는 열쇠가 나타날까봐, 혹은  비밀의 방을 열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열쇠든 키든, 추억이든 뭐든 다 사라지니까,  정말로 바랬었다. 그리고 내 바람이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은 아니더라도 기대치라도 있었으면 나는 아마도 꿈꾸는 걸 서서히 중단해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오공의 근두운 뒤에 숨어있던 유에프오처럼 홀연히 나타난 한 남자는 바닥에 엎지러진 커피를 흡수하는 내프킨 처럼 내 꿈꾸던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쉽게 넘겨 버렸다.

   모든 것이 깨져 버린 것은 경아의 의붓아버지의 등장이었다. 그가 어떻게 내 집을 알 수 있었는가는 아직도 의문인데, 하여간 그는 나를 찾아왔다. 그는 너무 매너가 좋아서, 사람을 금세 안심 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매너 좋은 사람을 신용 안한다. 경아는 그전까지 한 번도 그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젊은 분이 인상이 참 좋네요. 우리 경아 잘 부탁해요. 참 착한 아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내 옆에 앉아 있던 경아의 눈빛이었다. 마치 쥐떼들이라도 만난 고양이 같은 눈초리로 경아는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내 딸 사랑해요?” 라고 그가 말했을 때 경아는 커피를 타 오겠다며 일어났고 그녀가 가져온 것은 소주병과 잔이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전 사랑이 뭔 줄은 모르 겠구요. 그저 예쁜 거 보면 경아 생각이 나요”     

  라고 대답 했었던 거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 경아는 무지하게 황당했을 것 같다.

  “멋있는 사람이군요. 고마워요. 경아가 상처가 많다 보니 좀 잘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 했었는데,,,”

   여기까지는 그냥 흔한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장면 이었는데, 경아는 갑자기 마시지도 않은 소주잔을 집어 던져 버렸다. 테이블이 유리였는데 깨지지 않은 게 천만 다행 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쏘아 붙혔다.

  “야 이 드러운 새끼야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왔니 당장 나가!”  친 아버지가 아닌 의붓아버지였다는 걸 그때서야 알 수가 있었다. 그가 내 집을 찾아온 이유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마담 아줌마의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경아에게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지만 그녀는 열두 살 때부터 인가 성폭행을 당해왔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되던 즈음에 가출을 한 것이었다.  존재하지 않던 내 상상속의 욕망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경아의 던져진 소주잔에서 산산이 부서져 나갔을 때,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을 알 수있게 되어 버렸다. 내 꿈은 부서진 것이다. 내 청춘의, 상상의 모든 것이 함께 허물어져 버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 상상 속의 바람은 그렇게 물에 빠져버린 수채화처럼 지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꿈꾸는 걸 중지해야했다.

  그러니까 수채화가 아니었다. 오일에 캔버스인데 그것도 덕지덕지 바른 그로테스크한 추상화일 뿐이었다. 수채화는 어쩌면 청춘들이 바라는 그들의 상상이었을 뿐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후로 다시 우리에게는 침묵이 찾아 왔다. 문제는 우리는 더 이상 사랑을 나누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척하는 무거운 침묵만이 공간에 가득 차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날 들이면 그녀는 반바지에 탱탑 차림으로 베개를 끌어안고 소파위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근처를 서성이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면 내 자리, 아니 내 침대에 앉을 수가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엔 밖으로 나왔다. 윌셔가나 6가를 따라 걸었는데 인도에 쳐 박혀 있는 가로수들의 모습이 그렇게 꼴불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인도의 조금씩 튀어 나온 블록들도 눈에 거슬렸다. 쓸데없이 욕하고 발로 걷어차고 걷다가 눈에 들어오는 술집이 있으면 들어가 취할 때 까지 마시고 털레털레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날 들에는 경아는 꼭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곤 했다.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녀는 대답했다.

  “지워지는 것은 없어. 그렇게 바랄 뿐이지.”

   어느 날 퇴근해보니 그녀는 자기의 옷가지들을 몽땅 가지고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만약 조그만 호수라면 그녀는 그저 그나마 그곳에서 몸을 떨고 의지하고 있는 오리였다는 사실을,  

   나는 아는 사람을 총동원해서 그녀를 찾아 다녔다. 그래봐야 몇 명 안 되지만,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의붓아버지라는 사람을 찾아가 멱살을 잡아 본적도 있고 지니를 찾아가 약간의 주사를 부리기도 했다. 맥아더 팍에 가서 새벽까지 앉아 있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전부 허사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녀를 뉴욕에서 보았다는 얘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런 얘긴 사실 할 필요가 없는 건데 빨리 잊으라고 하는 거야. 본데가 술집이었어.”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내 젊은 날, 아니 어린 날의 기억은 대체적으로 참혹한데. 그 중에서도 경아와의 이별은 잊을 수없는 기억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내가 상상 한 건지조차 모호해졌다.  그나마도 그녀가 잠시 사라졌던 그 삼일만이 대체적으로 정확한 느낌으로 기억될 뿐이지 다른 부분들은 몽롱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도 나를 자유스럽게 하지는 못했다. 기억 속에서 지우는 척 했을 뿐이지,  지금도 윌셔길을 걷다가 머리가 클레오파트라 형이면 시선이 돌아간다. 하지만 그것 뿐, 내 조악한 꿈속의 그녀는 그렇게 거리에 있어 주질 않는다. 언제나 오십년 이상이나 그 곳에 있었을 것 같은 가로수들만이 나를 비웃을 뿐이다.

   상상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해마다 가을이 깊어 가면 그녀를 닮은 찬바람이 불어오니까, 

  어느 날 직원인 젊은 아가씨가 내게 물어온 적이 있었다.

 “사랑요? 그런 게 과연 존재하나요?”

 “ 아파서 숨쉬기조차 힘든 거,,,”

  “정말요?”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짐작이구,,,그냥 예쁜 거를 본다거나 맛있는 거 생겼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거지. 뭘 복잡하게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하나는 하면 안 돼. 상상하는 거. 아주 힘들어 져요,,,”